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6 권
4. 사니사경(闍尼沙經)2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제(那提)21)의 건치주처(揵稚住處)22)에 유행하시면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존자(尊者) 아난은 고요한 방에 앉아 잠자코 생각했다.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다. 여래께서는 사람에게 기별(記別)23)을 주어 이익되게 한 일이 많으시다. 저 가가라(伽伽羅) 대신이 목숨을 마쳤을 때 여래께서는 그에게 기별하셨다.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친 뒤 5하결(下結)을 끊고 곧 천상에서 멸도하여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가릉가(迦陵伽), 세 번째로는 비가타(毗伽陀), 네 번째로는 가리수(伽利輸), 다섯 번째로는 차루(遮樓), 여섯 번째로는 바야루(婆耶樓), 일곱 번째로는 바두루(婆頭樓), 여덟 번째로는 수파두(藪婆頭), 아홉 번째로는 타리사누(他梨舍兜), 열 번째로는 수달리사누(藪達梨舍兜), 열한 번째로는 야수(耶輸), 열두 번째로는 야수다루(耶輸多樓), 이 모든 대신들이 목숨을 마쳤을 때 부처님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기별하셨다.
(5하결을 끊고 곧 천상에서 멸도를 취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5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마쳤을 때에도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별하셨다.
(3결을 끊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적어져 사다함(斯陀含)을 얻고는 이 세상에 한 번 돌아와 곧 고제(苦際)를 모두 없앨 것이다.)
또 5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마쳤을 때에도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별하셨다.
(3결을 끊고 수다원을 얻어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일곱 번 오고 간 뒤에는 반드시 괴로움의 끝을 모두 없앨 것이다.)
또 부처님의 제자가 여러 곳에서 목숨을 마쳤을 때에도 부처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 기별하셨다. (누구는 어디에 태어나고 누구는 어디에 태어날 것이다.)
앙가국(鴦伽國)ㆍ마갈국(摩竭國)ㆍ가시국(迦尸國)ㆍ거살라국(居薩羅國)ㆍ발지국(拔祇國)ㆍ말라국(末羅國)ㆍ지제국(支提國)ㆍ발사국(拔沙國)ㆍ거루국(居樓國)ㆍ반사라국(般闍羅國)ㆍ파루파국(頗漯波國)24)ㆍ아반제국(阿般提國)ㆍ바차국(婆蹉國)ㆍ소라바국(蘇羅婆國)25)ㆍ성본(聖本)ㆍ건타라국(乾陀羅國)ㆍ검병사국(劍洴沙國) 이상 16대국에서 목숨을 마치는 자 있으면 부처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도 기별하셨다. 그런데 마갈국 사람들은 모두 왕족으로서 왕이 친근히 하고 신임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목숨을 마쳤을 때 부처님께서 그들에게는 기별하지 않으셨다.'
그 때 아난은 고요한 방에서 일어나 세존께 나아가 머리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아까 고요한 방에서 묵묵히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매우 기이하고 매우 특별한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에게 기별을 주어 매우 이익되게 하신다. 16대국에서 목숨을 마치는 자 있으면 부처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 기별하셨다. 그런데 오직 마갈국 사람은 왕이 친근히 하고 신임하던 이들만 목숨을 마쳤을 때 유독 기별을 주지 않았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그들에게도 기별하여 주소서. 원컨대 세존이시여, 그들에게도 기별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들 모두를 이익되게 하시고 천상과 인간이 모두 안락을 얻게 하소서. 또 부처님께서는 마갈국에서 도를 얻었으면서도 그 나라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에는 그들에게만은 기별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마땅히 기별하여 주소서. 원컨대 세존이시여, 마땅히 기별하여 주소서. 또 마갈국의 병사왕(缾沙王)26)은 우바새가 되어 부처님을 독실히 믿고 많은 공양을 베풀다가 목숨을 마쳤습니다. 이 왕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3보를 믿고 이해하며 공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래께서는 기별하여 주시지 않습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마땅히 기별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시고 하늘과 사람들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소서.”
그 때 아난은 마갈국 사람을 위하여 세존께 권하고 청한 뒤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났다.
그 때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나가성(那伽城)27)으로 들어가 걸식을 마친 후 큰 숲[大林]에 이르러 어떤 나무 밑에 앉아, 마갈국 사람들이 목숨을 마친 뒤 태어난 곳을 깊이 생각하셨다. 그 때 부처님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귀신이 있었는데 스스로 제 이름을 부르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사니사(闍尼沙)28)입니다. 저는 사니사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무슨 일로 인하여 자신의 이름을 사니사[사니사(闍尼沙)는 진(秦)나라 말로는 승결사(勝結使)라고 한다]라 부르느냐? 너는 무슨 법으로 인하여 스스로 묘한 말로써 '도의 자취를 보았다'고 일컫느냐?”
사니사가 말했다.
“다른 까닭이 아닙니다. 저는 원래 사람의 왕으로서 여래의 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어 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다가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러므로 비사문(毗沙門)천왕의 태자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법을 밝게 비추어 수다원을 얻어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았고 7생 동안 항상 사니사라고 불려왔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큰 숲에서 머물실 만큼 머무시다가 나다촌(那陀村)의 건치처(揵稚處)로 나아가 자리에 앉아 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아난을 불러 오라 하더라고 전하라.”
“예.”
그는 곧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어 아난을 불렀다. 잠시 후 아난이 부처님께 나아와 머리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제 여래를 뵈오매 얼굴빛은 보통 때보다 좋으시고 모든 감관[根]은 고요합니다. 무슨 생각에 머물러 계시기에 얼굴빛이 그러하옵니까?”
그 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까 마갈국 사람 문제로 나를 찾아와 기별해 줄 것을 청하고 갔다. 나는 그 때 곧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나라성(那羅城)으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걸식을 마친 뒤 저 큰 숲속으로 나아가 어떤 나무 밑에 앉아서 마갈국 사람이 목숨을 마친 뒤 태어난 곳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내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떤 귀신이 자기 이름을 불러대면서 나에게 말했다.
'저는 사니사입니다. 저는 사니사입니다.'
아난아, 너는 저 사니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이름을 들으니 너무도 두려워 소름이 끼치고 털이 곤두섭니다. 세존이시여, 그 귀신은 반드시 큰 위덕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사니사라고 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먼저 그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법으로 인하여 스스로 묘한 말로써 (도의 자취를 보았다)고 말하느냐?'
그랬더니 사니사가 대답했다.
'저는 다른 곳에서 다른 법(法)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옛날 사람의 왕으로서 세존의 제자가 되었고 돈독한 신심으로 우바새가 되어 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그 후 목숨을 마친 뒤, 비사문천왕의 아들이 되었고 수다원을 얻어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이 세상에 일곱 번을 오고 간 뒤에 괴로움의 끝을 다하여 7생 동안을 사니사라고 이름했습니다. 언젠가 세존께서는 큰 숲 속 어떤 나무 밑에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그 때 천 개의 바퀴살이 있는 보배 수레를 타고 조그만 일로 비루륵(毗樓勒)천왕에게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멀리 어떤 나무 밑에 앉아 계시는 세존을 뵈었는데 얼굴 모양은 단정하고 모든 감관[根]은 고요해 마치 깊은 못이 맑고 고요하며 투명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부처님께 가서 마갈국 사람으로서 목숨을 마친 자들이 어느 곳에 태어났는가를 물어 보리라.)
또 언젠가 비사문천왕은 대중 가운데서 게송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생의 지난 일들을
우리들은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네.
이제 우연히 세존을 만나
목숨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네.
또 언젠가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은 조그만 일로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그 때 사천왕은 각각 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두뢰타(提頭賴吒)29)는 동방에 앉아 서쪽을 향하고 제석은 그 앞에 있었습니다. 비루륵차천(毗樓勒叉天)30)은 남방에 앉아 북쪽을 향하고 제석은 그 앞에 있었습니다. 비루박차천(毘樓博叉天)은 서방에 앉아 동쪽을 향하고 제석은 그 앞에 있었습니다. 비사문천왕은 북방에 앉아 남쪽을 향하고 제석은 그 앞에 있었습니다. 그 때 4천왕이 모두 먼저 앉은 뒤에 저도 앉았습니다. 또 다른 여러 대신천(大神天)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전에 부처님께 나아가 범행을 깨끗이 닦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도리천에 태어나 모든 하늘을 불어나게 하고 하늘의 5복을 받았으니, 첫 번째는 하늘의 수명이요, 두 번째는 하늘의 몸이며, 세 번째는 하늘의 이름이고, 네 번째는 하늘의 즐거움이며, 다섯 번째는 하늘의 위덕이었습니다. 그 때 도리천의 모든 하늘은 기뻐 뛰면서 말했습니다.
(모든 하늘 무리는 더욱 불어나고 아수륜의 무리는 점점 줄어드는구나.)
그 때에 석제환인은 도리천의 모든 하늘 신들이 기뻐하는 마음을 알고 곧 게송을 지어 말했습니다.'”
도리천의 모든 하늘 신들은
제석과 서로 즐거워하면서
가장 훌륭한 법왕이신31)
여래께 예경(禮敬)한다네.
모든 하늘이 누리는 복
수(壽)ㆍ색(色)ㆍ명(名)ㆍ낙(樂)ㆍ위(威)라네.
부처님 앞에서 범행을 닦아
그래서 이곳에 와 태어났다네.
또 모든 하늘 신들
그 광명과 빛깔 매우 높아라.
지혜로운 부처님의 제자들
여기 태어나 수승하구나.
도리천과 석제환인[因提]은
자신들의 즐거움 깊이 생각하면서
가장 훌륭한 법왕이신32)
여래께 예경한다네.
“사니사 신은 다시 말했느니라.
'도리천의 모든 천신들이 이 법당에 모인 까닭은, 같이 의논하고 생각하고 관찰하고 헤아려 어떤 지시[敎令]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후에 4천왕에게 명령했습니다. 4천왕은 분부를 받고 각각 제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들이 앉은 지 오래지 않아 매우 이상한 광명이 사방을 비추었습니다. 그 때 도리천 천신들은 이 기이한 광명을 보고 모두 크게 놀랐습니다.
(지금 저 빛은 참으로 이상하구나. 장차 무슨 괴변이 있으려는 것인가?)
위덕이 있는 다른 대신천(大神天)들도 또한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지금 저 빛은 참으로 이상하구나. 장차 무슨 괴변이 있으려는 것인가?)
그 때 대범왕(大梵王)은 곧 동자(童子)로 변화해서 머리에는 5각(角) 상투를 틀고 대중 위의 허공에 서 있었습니다. 얼굴 모양은 단정하여 대중들보다 뛰어났고 몸은 자금색으로 모든 하늘 신들의 광명을 덮어 버렸습니다. 그 때 도리천은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고 또한 공경하지도 않고 앉기를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범천 동자[梵童子]는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 앉았고 앉아서는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찰리수요두종(刹利水澆頭種)33)이 왕위에 올랐을 때 기뻐 날뛰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는 앉은 지 오래지 않아 다시 스스로의 몸을 동자의 모습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머리에는 5각의 상투를 틀고 대중 위의 허공에 앉았는데 그것은 마치 역사(力士)가 편안한 자리에 앉은 듯 굳건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게송을 지어 말했습니다.
다루어 항복받는 위없이 높은 이
세상 사람들 밝은 세상에 태어나게 가르쳤네.
큰 밝음으로 밝은 법을 연설하시고
깨끗한 그 범행은 짝할 이 없어
맑고 깨끗한 중생으로 하여금
맑고 묘한 하늘에 나게 하셨네.
그 때 범천 동자는 이 게송을 마치고 도리천 신들에게 말했습니다.
(그의 음성은 다섯 가지 청정함이 있기 때문에 범성(梵聲)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첫째 그 소리가 바르고 곧은 것이요, 둘째 그 소리가 부드럽고 고상한 것이며, 셋째 그 소리가 맑고 트인 것이요, 넷째 그 소리가 깊고 그윽한 것이며, 다섯째 그 소리가 두루 퍼져 멀리 들리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두루 갖추었으므로 범음(梵音)이라고 한다. 이제 나는 다시 설명할 것이니 너희들은 잘 들으라. 여래의 제자인 마갈의 우바새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 아나함(阿那含)을 얻은 자도 있고 사다함(斯陀含)을 얻은 자도 있으며, 수다원을 얻은 자도 있고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태어난 자도 있으며, 화자재천(化自在天)ㆍ도솔천(兜率天)ㆍ염천(焰天)ㆍ도리천ㆍ사천왕에 태어난 자도 있다. 또 찰리ㆍ바라문ㆍ거사대가(居士大家)에 태어나서 5욕을 마음대로 즐기는 자도 있다.)
그 때 범천 동자가 게송으로 말했습니다.
마갈의 우바새로서
목숨을 마친 모든 사람들
8만 4천 사람은
모두 도를 얻었다고 나는 들었네.
수다원을 성취하여
다시는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함께 평탄하고 바른 길 걸어
도를 얻어 다 구제되었네.
이들 모든 중생의 무리
그들은 공덕으로 부지(扶持)되나니
지혜로써 은혜와 사랑을 버리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 거짓을 여의었네.
저 모든 하늘 무리에게
범천 동자는 이와 같이 기별하여
수다원을 얻었다고 말을 하자
모든 하늘 신들 기뻐하였네.
그 때 비사문왕은 이 게송을 듣고 기뻐하면서 말했습니다.
(세존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진실한 법을 연설하시니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여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나는 본래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이러한 법을 연설하시고 미래에도 다시 이러한 법을 설하실 부처님께서 계시어 이런 법을 연설하셔서 도리천 모든 하늘 신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을 일으키게 하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자 범천 동자가 비사문왕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왜 그런 말을 하느냐?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이와 같은 법을 말씀하심은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여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말이다. 여래께서는 다만 방편의 힘으로써 선(善)과 불선(不善)을 말씀하시어 두루 갖추어 설법하여도 얻은 것이 없지만, 공(空)하고 깨끗한 법을 연설하셔서는 얻은 것이 있다. 이 법은 미묘하여 마치 제호(醍醐)34)와 같다.)
그 때 범천 동자는 또 도리천 신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보고 기억하라. 나는 다시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여래ㆍ지진(至眞)께서는 4념처(念處)에 대해서 능숙하게 잘 분별하여 설명하신다. 어떤 것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내신(內身)을 관찰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오로지하여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고 외신(外身)을 관찰함에 있어서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오로지하여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수(受)ㆍ의(意)ㆍ법(法)에 대한 관찰도 또한 그와 같이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오로지하여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내신에 대한 관찰을 마친 뒤에는 타신지(他身智)를 내고, 안으로 수(受)를 관찰한 뒤에는 타수지(他受智)를 내고, 안으로 뜻[意]을 관찰한 뒤에는 타의지(他意智)를 내고, 안으로 법(法)을 관찰한 뒤에는 타생지(他生智)를 낸다. 이것이 여래께서 능숙하게 잘 분별해 말씀하신 4념처이다.
또한 모든 하늘 신들이여, 그대들은 잘 들으라. 여래께서 능숙하게 잘 분별하여 설하신 7정구(定具:八正道 중 앞의 七支)에 대하여 내가 다시 설명하리라. 어떤 것을 일곱 가지라 하는가? 바른 소견[正見]ㆍ바른 뜻[正志]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생각[正念]이다. 이것이 여래께서 능숙하게 잘 분별하여 말씀하신 7정구이다.
모든 하늘 신들이여, 또 여래께서는 4신족(神足)에 대하여 능숙하게 잘 분별하여 말씀하신다. 어떤 것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 번째 욕정멸행에 대하여 성취하여 수습한 신족[欲定滅行成就修習神足]이고, 두 번째는 정진정멸행에 대하여 성취하여 수습한 신족[精進定滅行成就修習神足]이며, 세 번째는 의정멸행에 대하여 성취하여 수습한 신족[意定滅行成就修習神足]이고, 네 번째는 사유정멸행에 대하여 성취하여 수습한 신족[思惟定滅行成就修習神足]이다. 이것이 여래께서 능숙하게 잘 분별하여 말씀하신 4신족이다.)
또 모든 하늘 신들에게 말했습니다.
(과거의 모든 사문 바라문들이 무수한 방편으로 나타낸 한량없는 신족(神足)도 모두 4신족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오는 사문 바라문들이 무수한 방편으로 나타낼 한량없는 신족도 모두 이 4신족으로 말미암아 생겨날 것이다. 지금 현재의 사문 바라문들이 무수한 방편으로써 나타내는 한량없는 신족 또한 모두 이 4신족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다.>
그 때 범천 동자는 곧 스스로 33신(身)의 모양으로 변화하여 삼십삼천(三十三天)과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자리에 앉아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나의 신변력(神變力)을 보았는가?)
(예. 이미 보았습니다.)
범천 동자가 말했습니다.
(나도 또한 4신족을 닦았기 때문에 이렇게 무수히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 삼십삼천은 각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범천 동자는 혼자 우리 자리에 앉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저 범천 동자의 한 화신(化身)이 말하면 다른 화신도 말하고, 한 화신이 침묵하면 다른 화신도 침묵하는구나.)
그 때 그 범천 동자는 신족을 도로 거두고 제석의 자리에 앉아 도리천 신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이제 마땅히 설명하리니 너희들은 잘 들으라. 여래ㆍ지진(至眞)께서는 스스로 자기의 힘으로써 세 가지 지름길을 열어 스스로 정각(正覺)을 성취하셨다. 어떤 것을 세 가지라 하는가? 혹 어떤 중생이 탐욕을 친근히 하고 착하지 않은 행을 익혔다고 하자. 그 사람이 뒤에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하여 진리에 대한 말씀을 듣고 법마다 성취하게 되면 욕심을 떠나고 착하지 않은 행을 버려 환희의 마음을 얻고 편안하고 즐거워하며 또 그 즐거움 속에서 다시 큰 기쁨을 얻게 된다. 마치 사람이 거친 음식을 버리고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어 충족하고 나면 다시 더 맛있는 것을 구하는 것처럼 행자(行者)도 그와 같아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환희의 즐거움을 얻고 또 그 즐거움 속에서 더 큰 기쁨을 일으킨다. 이것을 여래께서 스스로 자기의 힘으로써 첫 번째 지름길을 열어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신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중생이 성내는 마음이 많아 몸과 입과 뜻으로 악한 업(業)을 버리지 못하였다고 하자. 그 사람이 뒤에 선지식을 만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법마다 성취하게 되면 몸으로 짓는 악한 행동과 입과 뜻으로 짓는 악한 행동을 떠나 환희의 마음을 일으키고 편안하고 즐거워지며 또 그 즐거움 속에서 더 큰 기쁨을 일으키게 된다. 마치 사람이 거친 음식을 버리고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어 충족하고 나면 다시 더 맛있는 것을 구하는 것처럼 행자도 그와 같아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환희의 즐거움을 얻고 또 그 즐거움 속에서 더 큰 기쁨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을 여래께서 두 번째 지름길을 여신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중생이 어리석고 어둡고 지혜가 없어 선과 악을 모르고 괴로움과 그 원인과 괴로움의 다함과 거기로 나아가는 길을 실답게 알지 못한다고 하자. 그 사람이 뒤에 선지식을 만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법마다 성취하게 되면 착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알고 능히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멸함과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을 사실 그대로 알며 착하지 않은 행실을 버려 환희의 마음을 내고 편안하고 즐거워지며 또 그 즐거움 속에서 다시 큰 기쁨을 일으키게 된다. 마치 사람이 거친 음식을 버리고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어 충족하고 나면 다시 더 맛있는 것을 구하는 것처럼 행자도 그와 같아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환희의 즐거움을 얻고 또 그 즐거움 속에서 더 큰 기쁨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을 여래께서 세 번째 지름길을 여신 것이라고 한다.
그 때 범천 동자는 도리천에서 이 바른 법을 연설하였고, 또 비사문천왕은 다시 권속을 위해 이 바른 법을 설명했습니다.'
사니사(闍尼沙) 신은 다시 부처 앞에서 이 바른 법을 설명하고, 부처는 다시 아난을 위해 이 바른 법을 설명하고, 아난은 다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해 이 바른 법을 설명했느니라.”
이 때에 아난은 부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 주 해:
20) 경의 이역본(異譯本)으로는 송(宋) 시대 법현(法賢)이 한역한 『불설인선경(佛說人仙經)』이 있다.
21) Ndika이며, 마을 이름으로 아래 문장에는 나가(那伽)ㆍ나라(那羅)로 표기되어 있다.
22) Gijakvasathe라고 하여 구운 벽돌로 만든 집'으로 되어 있다.
23) 제자들에게 사후에 어디에 다시 태어날 것인가와 나아가 성불하는 상황 등을 미리 예언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24) Assaka로 되어 있고 송ㆍ원ㆍ명 3본에는 아습파(阿濕波)로 되어 있다. 『정자통(正字通)』에서는 “본래 습(濕)으로 쓰고 혹 생략해서 ★으로 쓴다'고 하였는데, 후대에 습(濕)을 습(溼)으로 쓰고 ★은 와전되어 루(漯)로 쓰게 되었다. 따라서 고려대장경의 루(漯)는 습(濕)의 오자라고 생각된다.
25팔리본에는 Srasena로 되어 있고, 성본(聖本) Srasena로 되어 있고, 성본(聖本)에는 소라사국(蘇羅娑國)으로 되어 있다.
26) Bimbisra이며, 병사(洴沙)ㆍ빈바사라(頻婆娑羅)라고도 쓰며 의역하여 영승(影勝)ㆍ안색단정(顔色端正)이라고도 한다.
27) 나제성(那提城)이라고 하였다.
28) Janavasabha이며, 귀신의 이름으로 인선(人仙)ㆍ승위(勝威)ㆍ최승존(最勝尊)이라 한역한다.
29) 『전존경』에서는 제제뢰타(提頭賴吒)라고 하였다.
30) 『전존경』에서는 비루륵천(毗樓勒天)이라 하였고, 송ㆍ원ㆍ명 3본에도 '비루륵천'으로 되어 있다.
31) 이 구절이 '최상법중법(最上法中法)'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앞의 『전존경』에도 똑같은 게송이 나오는데, '최상법중왕(最上法中王)'으로 되어 있고, 송ㆍ원ㆍ명 3본에도 역시 '최상법중왕(最上法中王)'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을 '법왕이신'으로 번역하였다.
32) '최상법중왕(最上法中法)'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송ㆍ원ㆍ명 3본에 의거하여 최상법중왕('最上法中王)'으로 수정하여 번역한다.
33) 계승을 위해 관정의식을 치룬 왕족을 말한다.
34) 중 최상의 맛이다. 5미는 우유(牛乳, khīra)ㆍ낙(酪, dadhi)ㆍ생소(生酥, takha)ㆍ숙소(熟酥, navanīta)ㆍ제호(醍醐)이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6 권
[제2분] ①
5. 소연경(小緣經)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청신원림(淸信園林) 녹모강당(鹿母講堂)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견고한 신심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아가 출가하여 도를 닦은 두 바라문이 있었으니, 한 사람은 바실타(婆悉吒)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바라타(婆羅堕)였다. 그 때 세존께서 고요한 방에서 나와 강당 안을 거닐며 경행(經行)하고 계셨다.
이 때 바실타가 부처님께서 경행하시는 것을 보고 재빨리 바라타에게 가서 말했다.
“그대는 아는가? 여래께서 지금 조용한 방에서 나와 강당 안을 경행하고 계신다. 우리들이 함께 세존의 처소를 찾아가면 혹 여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 바라타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함께 세존께 나아가 이마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頭面禮足] 부처님을 따라 경행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두 사람은 바라문(婆羅門)의 종족으로 태어나서 견고한 믿음으로써 내 법 가운데에 출가하여 도를 닦고 있는가?”
그들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지금은 내 법 가운데 출가하여 도를 닦고 있으니, 모든 바라문이 너희들을 싫어하고 꾸짖지 않겠는가?”
그들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큰 은혜를 입고 도를 닦고 있으나 사실 저희들은 저 모든 바라문들에게 혐오와 꾸짖음을 받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들이 무슨 일로 너희들을 혐오하고 꾸짖는가?”
그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들은 '우리 바라문 종족이 가장 으뜸이고, 다른 종족은 비천하고 열등하다. 우리 종족은 맑고 희나 다른 종족은 검고 어둡다. 우리 바라문 종족은 범천의 계통으로서 범천의 입에서 생겨나 현재 세계에서 청정한 깨달음을 얻고 후세에도 또한 청정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청정한 종족을 버리고 저 구담(瞿曇)의 다른 법으로 들어갔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들은 우리가 불법에 출가하여 도를 닦는 것을 보고 이런 말로 우리를 꾸짖어 나무라곤 합니다.”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보아라. 모든 사람들이 마치 짐승처럼 어리석고 미련하고 무식하여 거짓으로 스스로 일컫기를 '바라문 종족이 가장 으뜸이고, 다른 종족은 비천하고 열등하다. 우리 종족은 맑고 희나 다른 종족은 검고 어둡다. 우리 바라문 종족은 범천의 계통으로서 범천의 입에서 생겨나 현재에도 청정하고 후세에도 또한 청정할 것이다'라고 하지만 바실타야, 이제 나의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 가운데에서는 종성(種姓)도 필요 없고 자신들에 대한[吾我] 교만한 마음도 품지 않는다. 세속의 법에서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 법은 그렇지 않다. 만일 사문(沙門)이나 바라문으로서 자기의 종성을 믿고 교만한 마음을 품는다면 나의 법 가운데서는 끝내 무상(無上)의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만일 능히 종성의 관념을 버려 여의고 교만한 마음을 없애면 곧 내 법 가운데서 도를 이루어 정법(正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낮은 부류를 미워하지만 내 법은 그렇지 않다.”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족성(族姓)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어 지혜로운 사람이 칭찬하는 것도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 나무라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을 네 가지 족성이라 하는가? 첫째는 찰리종(刹利種)이요, 둘째는 바라문종(婆羅門種)이며, 셋째는 거사종(居士種)이요, 넷째는 수다라종(首陀羅種)이다.
바실타야, 너는 듣거라. 찰리종 중에도 살생(殺生)하는 자가 있고 도둑질하는 자도 있으며, 음란한 자도 있고 속이고 거짓말하는 자도 있으며, 이간질하는 자도 있고 욕설을 하는 자도 있으며, 말을 꾸미는 자도 있고 간탐하는 자도 있으며, 질투하는 자도 있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도 있다. 바라문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도 또한 이와 같아서 온갖 열 가지 악행이 섞여 있다.
바실타야, 대개 착하지 않은 행(行)에는 착하지 않은 과보[報]가 있고 검고 어두운 행에는 곧 검고 어두운 과보가 있다. 만일 이 과보가 유독 찰리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에만 있고 바라문종에는 없다고 한다면 곧 저 바라문종은 마땅히 스스로 '우리 바라문종이 가장 으뜸이요, 다른 종성은 비천하고 열등하다. 우리 종성은 맑고 희나, 다른 종성은 검고 어둡다. 우리 바라문종은 범천의 계통으로서 범천의 입에서 생겨나 현재에도 청정하고 후세에도 또한 청정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착하지 않은 행을 행하며 착하지 않은 과보가 있고 검고 어두운 행을 행하면 검고 어두운 과보가 있음이, 바라문종ㆍ찰리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에도 반드시 있는 것이라면 곧 바라문종만 유독 '우리 종성은 청정하여 가장 으뜸이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바실타야, 만일 찰리종 가운데는 살생하지 않는 자가 있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란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으며, 욕설을 하지 않고 말을 꾸미지 않으며, 간탐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 자도 있다. 바라문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도 또한 그와 같아서 다같이 열 가지 선행[善]을 닦을 수 있다. 대개 착한 법을 행하면 반드시 착한 과보가 있고 청정하고 깨끗한[淸白] 행을 행하면 반드시 청정한[白] 과보가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 과보가 유독 바라문종에만 있고 찰리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에는 없다면 곧 바라문종은 마땅히 '우리 종성은 청정하여 가장 으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네 가지 족성에 다같이 이 과보가 있다면 곧 바라문만 유독 '우리 종족은 청정하여 가장 으뜸이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현재 바라문종을 보면 서로 결혼하여 출산하고 하는 것들이 세간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거짓으로 '우리는 범천의 종성으로서 범천의 입에서 생겨나서 현재에도 청정하고 후세에도 또한 청정할 것이다'라고 자랑하고 있다.
바실타야,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지금의 내 제자들은 종성이 한결같지 않고 출신이 각기 다른데도 내 법 가운데에 출가하여 도를 닦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묻기를 '너는 누구의 종성이냐?'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나는 바로 사문 석가종[釋種]의 아들이다'라고 대답하여라. 또 스스로 말하되, '내가 바로 바라문종이다. 친히 범천의 입에서 나왔고 법화(法化)를 좇아 생겨나서 현재에도 청정하고 후세에도 청정할 것이다'라고 하여라.
어째서인가? 대범(大梵)이란 곧 여래의 칭호[號]로서 여래는 세간의 눈이요, 세간의 지혜이며, 세간의 법이요, 세간의 범(梵)이며 세간의 법륜(法輪)이요, 세간의 감로(甘露)이며 세간의 법주(法主)이다.
바실타야, 만일 찰리종 중에 불(佛)ㆍ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 등의 10호(號)를 구족하신 분을 독실하게 믿고, 법을 독실하게 믿되, 여래의 법은 미묘하고 청정하여 현재 세상에서 수행해야 하고 언제나 설법하여 열반[泥洹]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이는 것이며, 또 그것은 지혜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으로서 어리석은 범부들은 미칠 수 없는 가르침임을 믿으며, 또 스님을 독실하게 믿되, 스님은 성품이 착하고 질박하고 곧아서 곧 도과(道果)를 성취하고 권속(眷屬)을 성취하며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로서 법과 법을 성취한다.
이른바 대중[衆]은 계중(戒衆)을 성취하고 정중(定衆)ㆍ혜중(慧衆)ㆍ해탈중(解脫衆)ㆍ해탈지견중(解脫智見衆)을 성취한다. 수다원(須陀洹)을 향하는 이 수다원을 얻은 이, 사다함(斯陀含)을 향하는 이, 사다함을 얻은 이, 아나함(阿那含)을 향하는 이, 아나함을 얻은 이, 아라한(阿羅漢)을 향하는 이, 아라한을 얻은 이 등 사쌍팔배(四雙八輩)가 바로 여래의 제자중(弟子衆)이다.
그들은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한 세상의 복전(福田)으로서 마땅히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 믿거나, 또 계(戒)를 독실히 믿어 거룩한 계를 구족하여 이지러지거나 샘[漏]이 없고 모든 흠[瑕]이나 틈[隙]이 없으며 또 더러운 점이 없어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바로서 선적(善寂)을 구족할 것이라고 믿는 자 있다면 바실타야, 모든 바라문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도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독실히 부처님을 믿고 법을 믿고 중성취(衆成就)와 성계(聖戒)를 믿을 것이다.
바실타야, 찰리종 가운데 아라한을 공양하고 공경 예배하는 자가 있다면 바라문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도 또한 모두 아라한을 공양하고 공경 예배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내 친족인 석가종족은 또한 파사닉왕(波斯匿王)을 받들어 섬기고 예경하며, 파사닉왕은 다시 와서 나를 공양하고 예경하느니라. 그렇지만 그는, '사문 구담(瞿曇)은 호족(豪族)의 출신이나 내 종성은 낮고, 사문 구담은 큰 부자요 큰 위덕이 있는 가문의 출신이나, 나는 낮고 빈궁하고 비루하며 하찮은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여래를 공양하고 예경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말하지 않는다.
파사닉왕은 법에서 법을 관찰하여 진실과 거짓을 밝게 분별하기 때문에 청정한 믿음을 내어 여래를 공경할 따름이다.
바실타야, 이제 마땅히 너를 위하여 네 족성의 본연(本然)을 설명하리라. 천지의 시작과 종말, 겁(劫)이 끝나 무너질 때에 중생들은 목숨을 마치고 모두 광음천(光音天)에 태어났는데 자연 화생(化生)하여 생각[念]만으로 음식을 삼고2) 광명을 스스로 비쳐 신족(神足)으로써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 뒤에 이 땅은 모두 물로 변해 온통 가득 차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때에는 해나 달이나 별도 없고, 밤이나 낮이나 연월(年月) 따위의 세수(歲數)도 없고 오직 큰 어둠만 있을 뿐이었다. 그 뒤에는 이 물이 변하여 천지(天地)가 되었고, 광음(光音)의 모든 하늘[天]들은 복이 다해 목숨을 마치고는 다시 이곳에 태어났었다. 그러나 이곳에 났더라도 여전히 생각만으로 음식을 삼고 신족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며 몸에서 광명을 스스로 비추면서 이곳에 오래도록 머물며 각각 스스로 일컫기를 '중생 중생'이라고 했다. 그 뒤로는 이 땅에서 수밀(酥蜜)과 같은 단샘[甘泉]이 솟아났는데 저 처음 온 천신으로서 성질이 경솔한 자는 이 샘을 보고 스스로 생각에 잠겨 말했다.
'이것이 뭘까? 맛을 보아야겠다.'
곧 손가락을 물에 넣어다가 꺼내어 맛보았다. 이렇게 두세 번 하다가 점점 그 감미로움을 깨닫고 드디어 손으로 움켜쥐어 마음껏 그것을 마셨으나, 이러한 즐거움에 집착하여 끝내 만족할 줄 몰랐다. 그 밖의 중생들도 또 그를 본따 그것을 먹어 보았고, 이렇게 두세 번 되풀이하는 동안에 그 감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해서 먹어대자 그들의 몸은 점점 추하게 되고 살결은 굳어져 하늘의 묘한 색(色)을 잃게 되었다. 또 신족은 없어져 땅을 밟고 다니게 되었고 몸의 광명도 갈수록 사라져서 천지가 깜깜해지게[大冥] 되었다.
바실타야, 마땅히 천지의 정해진 법칙은 큰 어둠 이후에는 반드시 일월(日月)과 성상(星象)이 허공에 나타나고 그런 뒤에 곧 밤과 낮ㆍ어둠과 밝음ㆍ연월(年月)과 세수(歲數) 등이 생긴 것이다. 그 때의 중생은 다만 지미(地味:단 샘물)를 먹으면서 오랫동안 그 세계에 머물렀는데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얼굴빛이 초췌했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얼굴빛이 오히려 즐겁고 광택이 있었다. 곱고 추하고 단정함이 여기에서부터 처음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서 단정한 자는 교만한 마음이 생겨 누추한 자를 업신여겼고 거기에서 누추한 자는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단정한 자를 미워했다. 중생들은 이로부터 각각 서로 성내고 다투게 되었고, 이 때 지미는 저절로 말라버렸다. 그 뒤로 이 땅에는 저절로 지비(地肥:大地生成物)가 생겨났는데 빛깔과 맛을 갖추어 향기롭고 조촐하여 먹을 만했다. 이 때 중생들은 다시 그것을 취해 먹으면서 그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얼굴빛이 초췌했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오히려 얼굴빛이 좋고 광택이 났다.
거기에서 단정한 자는 교만한 마음이 생겨 누추한 자를 업신여겼고 누추한 자는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단정한 자를 미워했다. 중생들은 이로부터 각각 서로 다투게 되었고, 이 때 지비는 다시 나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이 땅에는 다시 거칠고 뻣뻣한 지비가 생겨났는데 역시 향기와 맛은 먹을 만했지만 먼저 것보다는 못했다. 이 때 중생들은 다시 이것을 먹으면서 그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얼굴빛이 갈수록 누추하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오히려 얼굴빛이 좋고 윤택하였다. 단정함과 누추함을 두고 서로 시비(是非)가 지나침에 따라 마침내 다툼[諍訟]이 생기게 되었고, 지비는 결국 다시 나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이 땅에는 저절로 멥쌀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등겨가 없고 빛깔과 맛이 구족하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먹을 만했다. 이 때 중생들은 다시 그것을 취해 먹으면서 그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곧 남녀는 서로 보게 되자 점점 정욕이 생겨 갈수록 서로 친근하게 되었다.
다른 중생들은 이것을 보고 서로 말했다.
'네가 한 짓은 잘못이다, 네가 한 짓은 잘못이다.'
그리고 곧 배척하고 대중 밖으로 쫓아내 3개월이 지난 뒤에 돌아오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예전에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지금은 옳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 때 그 중생들은 법이 아닌 것을 익혀 시절(時節)도 없이 정욕(情欲)을 마음껏 즐겼고 그러다 부끄러워하는 마음[慚愧]이 생겨 결국엔 집을 짓게 되었다. 이 때부터 세계에는 처음으로 집[房舍]이 생기게 되어 법답지 않은 것을 좋아하여 익히니 음욕은 갈수록 더해만 갔다. 곧 포태(胞胎)가 있게 된 것은 부정(不淨)으로 생겨났으니 세간의 포태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 때 저 중생들은 저절로 난 멥쌀[粳米]을 먹었는데 취하는 대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생겨났다.
그 중생들 가운데 게으른 자가 가만히 혼자 생각하여 말했다.
'아침에 먹을 것을 아침에 가져오고 저녁에 먹을 것을 저녁에 가져오는 일은 나를 힘들게 하니, 이제부터 하루 먹을 것을 한꺼번에 가져오자.'
그래서 곧 한꺼번에 가지고 왔다. 그 뒤 친구가 그를 불러 함께 쌀을 가지러 가자고 하자, 그 사람은 대답하였다.
'나는 이미 하루 먹을 양식을 한꺼번에 가지고 왔다. 너도 가지러 가려거든 네 마음대로 가져오도록 해라.'
그 사람은 또 혼자 생각했다.
'이 사람은 영리해서 벌써 양식을 저축해 두었구나. 나도 이번엔 3일분의 양식을 저축해야겠다.'
그 사람은 곧 3일분의 양식을 저축했다. 그러자 다른 중생이 또 와서 말했다.
'같이 쌀을 가지러 가자.'
그는 대답했다.
'나는 벌써 3일분의 양식을 저축해 두었다. 너도 가지러 가려거든 가서 실컷 가져오도록 해라.'
그 사람도 또 생각했다.
'이 사람은 영리해서 먼저 3일분의 양식을 가지고 왔구나. 나도 저 사람을 본받아 5일분의 양식을 저축해야겠다.'
그는 곧 가서 가지고 왔다. 그 때 그 중생들은 서로 다투어 저축했다. 그러자 멥쌀은 거칠고 더러워지더니 점차 등겨가 생겼고, 그것을 벤 뒤로 다시는 나지 않았다.
그 때 저 중생들은 이것을 보고 낭패하여 마침내 근심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각자 생각에 잠겨 말했다.
'우리가 본래 처음 났을 때에는 생각을 음식으로 삼고 신족(神足)으로 허공을 날며 몸에서 광명이 나와 스스로 비추면서 세상에 오랫동안 머물렀었다.
그 뒤에는 이 땅에서 마치 수밀(酥蜜)과 같은 단샘[甘泉]이 솟아났는데 감미로워[香美] 먹을 만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함께 먹었었다. 그것을 점점 오래 먹게 되자 많이 먹은 자는 얼굴빛이 초췌하고 적게 먹은 자는 얼굴빛이 오히려 좋고 광택이 있었으니, 이 음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얼굴빛에 차이가 생겼고, 이에 중생은 각각 서로 시비(是非)가 생겨남에 따라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 때 단샘은 저절로 말라버렸다.
그 뒤로 이 땅에서 지비(地肥)가 생겨났는데 빛깔과 향기를 구족하고 향기롭고 맛이 좋아 먹을 만했다. 그 때 우리들은 또 그것을 다투어 먹었는데, 그것을 많이 먹은 자는 얼굴빛이 초췌하고 그것을 적게 먹은 자는 얼굴빛이 좋고 광택이 났다. 중생은 여기서 또 서로 시비가 일어남에 따라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고, 이 때 지비는 더이상 생겨나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다시 거칠고 뻣뻣한 지비가 생겼는데 또한 향기롭고 맛이 좋아 먹을 만했다. 그 때 우리들은 또 그것을 다투어 먹었는데 그것을 많이 먹은 이는 얼굴빛이 추하고 적게 먹은 이는 얼굴빛이 좋았다. 여기서 또 서로 시비(是非)가 생겨남에 따라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 때 지비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저절로 멥쌀이 생겼는데 그것은 등겨도 없었다. 그 때 우리들은 다시 그것을 취해 먹으면서 오랫동안 그 세계에 머물렀는데 그곳의 게으른 자들이 서로 다투어 저축했고 이로 말미암아 멥쌀은 거칠고 더러워졌으며 또 등겨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벤 뒤로는 다시 나지 않으니 장차 어떻게 할까? 그들은 다시 서로 말했다.
'우리는 땅을 갈라 따로따로 표지[標識]를 세우자.'
그리고 곧 땅을 갈라 따로따로 표지를 세웠다. 바실타야,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전지(田地)라는 이름이 생겨 났다. 그 때의 중생은 따로 전지를 차지하고 경계를 정하자 점점 도둑질할 마음이 생겨 남의 벼를 훔쳤다. 그러자 다른 중생들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네가 한 짓은 잘못이다. 네가 한 짓은 잘못이다. 자기에게도 전지가 있는데 남의 물건을 취하다니, 지금부터는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말라.'
그러나 그 중생은 오히려 도둑질하기를 중단하지 않았고, 다른 중생들도 그를 꾸짖기를 그치지 않고서 곧 손으로 그를 때리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자기도 전지가 있으면서 남의 물건을 훔쳤다.'
그 사람도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나를 때렸다.'
그 때 그 대중들은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을 보고 걱정하고 시름하고 또 번민하면서 말했다.
'중생이 갈수록 악해져서 세간에 이런 착하지 않은 일이 있게 되었고 더럽고 부정(不淨)함이 생겼다. 이것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生老病死] 원인이며 번뇌와 고통의 과보로 3악도(惡道)에 떨어지는 요인이다. 전지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다툼이 생겼으니, 이제 차라리 한 사람을 세워 주인으로 삼아 이것을 다스리게 해서 보호해야 할 자는 보호하고 꾸짖어야 할 자는 꾸짖게 하자. 그리고 우리가 함께 쌀을 거두어 그에게 공급해주고 모든 다툼을 다스리게 하자.'
그 때 그들 중에서 몸집이 크고 얼굴이 단정하며 위엄과 덕망이 있는 한 사람을 뽑아 그에게 말했다.
'너는 이제 우리들을 위해 평등한 주인이 되어 마땅히 보호할 자는 보호하고 꾸짖을 자는 꾸짖고 마땅히 내쫓아야 할 자는 내쫓아라. 그러면 우리는 쌀을 모아 그대에게 공급해 주겠다.'
그러자 그 사람은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임금[主]이 되어 다툼을 판결해 주었고, 곧 여러 사람들은 쌀을 모아 그에게 공급해 주었다.
그 사람은 또 착한 말로 여러 사람을 위로했는데, 여러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다들 매우 기뻐하며 함께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이에 세간에는 다시 임금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바른 법으로 백성을 다스렸기 때문에 찰리(刹利)라고 이름했다. 그래서 세간에는 찰리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그 때 그 무리들 중에 어떤 사람은 혼자 이렇게 생각했다.
'집[家]이란 큰 걱정거리[大患]요, 집이란 독한 가시[毒刺]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사는 집을 버리고 혼자 산림(山林) 속에 들어가 고요히 도를 닦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곧 집을 버리고 산림으로 들어가 고요히 깊은 생각에 들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그릇을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 걸식(乞食)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즐겁게 공양하고 기뻐하며 칭찬하였다.
'훌륭하다, 이 사람은 사는 집을 버리고 혼자 산림에 살면서 고요히 도를 닦아 모든 악을 여의었구나.'
여기서 세간에는 처음으로 바라문(婆羅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 바라문 가운데 고요히 앉아 참선(參禪)하고 명상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곧 인간 세상으로 들어가 글을 외우고 익히기를 업으로 삼고 또 스스로 일컫기를 '나는 참선하지 않는 사람[不禪人]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참선하지 않는 바라문'이라 불렀고, 인간 세상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를 또 '인간(人間) 바라문'이라고 불렀다. 이에 세간에는 바라문 종족이 있게 되었다. 그 중생 중에 어떤 사람은 살림 경영하는 것을 좋아해 많은 재보(財寶)를 저축했고, 이로 인해 여러 사람은 그를 거사(居士)라 이름했다. 저 중생 중에는 손재주[機巧]가 많은 사람이 있어, 어떤 것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 그래서 세간에는 처음으로 수다라(首陀羅)라는 기술자[工巧]의 이름이 생겼느니라.
바실타야, 지금 이 세간에는 네 가지 종성의 명칭이 있는데 다섯 번째로 사문의 무리[沙門衆]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느니라. 그 까닭은 바실타야, 찰리의 무리 중 어느 때 어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방식[己法]을 싫어해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옷[法服]을 입고 도를 닦았으니, 그래서 처음으로 사문이라는 이름이 생겼느니라. 바라문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 가운데에서 어느 때 어떤 사람은 스스로 자기들의 생활방식을 싫어해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옷을 입고 도를 닦았으니, 그것을 사문이라 이름했느니라.
바실타야, 찰리종 가운데서 몸[身]의 행이 불선(不善)하고 입[口]의 행이 불선하며 뜻[意]의 행이 불선한 자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괴로운 과보[苦報]를 받느니라. 바라문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 중에 몸[身]의 행이 불선하고 입[口]의 행이 불선하며 뜻[意]의 행이 불선한 자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괴로운 과보를 받느니라.
바실타야, 찰리종 가운데서 몸의 행이 착하고 입과 뜻의 행이 착한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즐거운 과보를 받느니라. 바라문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 중에서 몸의 행이 착하고 입과 뜻의 행이 착한 자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즐거운 과보를 받느니라. 바실타야, 찰리 무리들 중 몸으로 두 가지를 행하고 입과 뜻으로 두 가지를 행하는 자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를 받느니라. 바라문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으로서 몸으로 두 가지를 행하고 입과 뜻으로 두 가지를 행하는 자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를 받느니라.
바실타야, 찰리종 중에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옷을 입고 도를 닦는 자가 있어 7각의(覺意)를 닦으면 오래지 않아 도를 이룰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저 족성자(族姓子)가 법옷을 입고 출가하여 위없는 범행[無上梵行]을 닦아 현재의 법 가운데서 몸소 증득하여, 생사(生死)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다해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몸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바라문종ㆍ거사종ㆍ수다라종 중에서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옷을 입고 도를 닦아 7각의를 닦으면 오래지 않아 도를 이룰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저 족성자가 법옷을 입고 출가하여 위없는 범행을 닦아 현재의 법 가운데서 몸소 증득하여, 생사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다해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몸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바실타야, 이 네 종성 가운데서 다 명행(明行)을 성취한 아라한[羅漢]이 나올 수 있나니 이 아라한을 다섯 종성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범천왕(梵天王)이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중생 중에서는 찰리가 훌륭하니
능히 종성을 버리고 떠나
명행(明行)을 성취한 사람이
세간에서 가장 으뜸이라네.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이 범천왕은 잘 말한 것이요, 잘못 말한 것이 아니며, 이 범천왕은 잘 받아들인 것[善受]이요, 잘못 받아들인 것이 아니니라. 나는 그 때에 곧 그 말을 인가(印可)했나니, 무슨 까닭인가? 지금의 나 여래ㆍ지진(至眞)도 이 뜻을 말했기 때문이니라.”
중생 중에서는 찰리가 훌륭하니
능히 종성을 버리고 떠나
명행을 성취한 사람이
세간에서 가장 으뜸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법을 연설해 마치시자, 바실타(婆悉吒)와 바라타(婆羅墮)는 번뇌가 없는 마음[無漏心]으로 해탈하여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7 권
6. 전륜성왕수행경(轉輪聖王修行經)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라혜수(摩羅醯搜)에 계시면서 사람들과 유행(遊行)하시다가 1,250명 비구들을 데리고 차츰 마루국(摩樓國)에 다달으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스스로 맹렬히 정진하되[熾燃], 법(法)에 맹렬히 정진하고 다른 데에 맹렬히 정진하지 말라. 스스로 귀의하되 법에 귀의하고 다른 데에 귀의하지 말라.4) 어떤 것을 '비구가 스스로 맹렬히 정진하되 법에 맹렬히 정진하고 다른 것에 맹렬히 정진하지 말며, 스스로 귀의하되 법에 귀의하고 다른 데에 귀의하지 말라'고 하는가?
비구는 안 몸[內身]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힘써 게을리하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야 한다. 바깥 몸[外身]을 관찰하고 안팎 몸[內外身]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감각[受]과 뜻[意]과 법(法)의 관찰도 또한 이와 같이 해야 하느니라.
이것을 '비구는 스스로 맹렬히 정진하되 법에 맹렬히 정진하고 다른 것에 맹렬히 정진하지 말며, 스스로 귀의하되 법에 귀의하고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행하는 자는 악마도 방해하지 못하고 공덕이 날로 늘어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아득히 먼 과거 어느 때에 견고념(堅固念)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찰리수요두종(刹利水澆頭種)5)으로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4천하(天下)를 다스렸다. 그 때 왕은 자재(自在)로이 법으로써 다스리고 교화하였으며 사람 중에서 뛰어나 7보(寶)를 구족했다. 첫째는 금륜보(金輪寶)이고, 둘째는 백상보(白象寶)이며, 셋째는 감마보(紺馬寶)이고, 넷째는 신주보(神珠寶)이며, 다섯째는 옥녀보(玉女寶)이고, 여섯째는 거사보(居士寶)이며, 일곱째는 주병보(主兵寶)였다. 그는 천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용맹하고 건장하여 능히 원적(怨敵)을 항복받을 수 있었으니 무기를 쓰지 않고서도 저절로 태평스러웠다. 견고념왕이 오랫동안 세상을 다스렸을 때에 금륜보(金輪寶)가 바로 그 허공에서 갑자기 본 자리를 이탈했다.
그 때 윤보(輪寶)를 맡은 사람이 빨리 달려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지금 윤보가 본 자리를 이탈했습니다.'
그 때 견고념왕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 일찍이 덕이 높은 장로에게 들었는데, 만일 전륜성왕의 윤보가 자리를 이동하면 왕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라 했다. 나는 이제 이미 인간의 복락(福樂)을 누렸으니, 마땅히 다시 방편으로써 하늘의 복락을 받으리라. 마땅히 태자를 세워 4천하를 다스리게 하고 따로 한 고을을 떼어 이발사에게 주어 내 수염과 머리를 깎게 한 뒤 3법의(法衣)6)를 입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리라.'
견고념왕은 곧 태자에게 명령해 말했다.
'너는 모르느냐? 내 일찍이 덕이 높은 장로에게 들었는데, 만일 전륜성왕의 금륜이 본 자리를 이탈하면 왕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제 이미 인간의 복락을 받아 누렸으니, 마땅히 다시 방편으로써 하늘로 옮겨가 하늘의 복락을 받을 것이다. 이제 수염과 머리를 깎고 3법의(法衣)를 입고 출가하여 도를 닦기 위하여 4천하는 너에게 맡기니, 너는 마땅히 스스로 힘써 노력하여 백성들을 잘 보살피도록 해라.'
이 때 태자는 왕의 명령을 받아들였고, 견고념왕은 곧 수염과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서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 그 때 왕이 출가한 지 7일이 지나자 그 금륜보가 갑자기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그 윤보를 맡은 사람이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지금 윤보가 갑자기 보이질 않습니다.'
그 때 왕은 기분이 나빠서 곧 견고념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부왕(父王)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지금 윤보가 갑자기 보이질 않습니다.'
그 때 견고념왕은 그 아들에게 대답했다.
'너는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말라. 그 금륜보는 네 아비의 재산이 아니니라. 너는 다만 전륜성왕[聖王]의 바른 법을 부지런히 행하라. 바른 법을 행하고는 보름달이 밝을 때를 맞아 향탕(香湯)에 목욕하고 채녀(婇女)에게 둘러싸여 정법전(正法殿)에 오르면 금륜의 신보(神寶)는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그 윤보는 천 개의 바퀴살이 있고 광명과 빛깔을 구족하였는데 그것은 하늘의 장인이 만든 것으로서 세상의 것이 아니니라.'
아들이 부왕에게 아뢰었다.
'전륜성왕의 바른 법은 어떤 것입니까? 또 마땅히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왕이 아들에게 말했다.
'마땅히 법에 의해 법을 세우고 법을 갖추어 그것을 공경하고 존중하라. 법을 관찰하고 법으로써 우두머리로 삼고 바른 법을 지키고 보호하라. 또 마땅히 법으로써 모든 채녀들을 가르치고 또 마땅히 법으로써 보호해 살피라. 그리고 모든 왕자(王子)ㆍ대신(大臣)ㆍ동료[群寮]ㆍ관리[百官]들과 모든 백성ㆍ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을 가르쳐 경계하도록 하고 아래로는 짐승들에 이르기까지 다 마땅히 보호해 보살피도록 하라.'
또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또 나라 경계[土境]에 살고 있는 사문 바라문으로서 소행이 맑고 참되고 공덕이 구족하며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교만을 버리고 인욕하며, 어질고 자애로우며, 또 고요히 홀로 제자신이 닦으며 홀로 스스로 그치고 쉬어 혼자 열반에 이르고, 또 자신도 탐욕(貪欲)을 없애고 남도 교화하여 탐욕을 없애게 하며 스스로 성냄[瞋恚]을 없애고 남을 교화하여 성냄을 없애게 하며 스스로 어리석음[愚癡]을 없애고 남을 교화하여 어리석음을 없애게 하거나, 또 물들 수 있는 곳에서도 물들지 않고 악(惡)에 처해 있으면서도 악하지 않으며, 어리석음[愚]에 있으면서 어리석지 않고 집착[着]할 만한데도 집착하지 않으며, 머물 수 있는 곳에서도 머물지 않고 살 수[居] 있는 곳에서도 살지 않고, 또 몸으로 행동하는 것[身行]이 올바르고 입으로 하는 말[口言]이 정직하며, 뜻의 생각[意念]이 올곧거나, 또 몸의 행동이 청정하고 입으로 하는 말이 청정하며, 뜻의 생각이 청정하거나, 또 정념(正念)이 청정하고 인혜(仁慧)에 싫증냄이 없으며, 옷과 음식에 대하여 만족할 줄 알고 발우를 가지고 밥을 빌어 중생을 복되게 하는 이런 사람이 있거든 너는 마땅히 자주 찾아가 언제나 물어야 하느니라.
(무릇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것이 착한 것이며 어떤 것이 악한 것인가? 어떤 것이 범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범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것을 친해야 하고 어떤 것을 친하지 않아야 하는가? 어떤 것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또 어떤 법을 베풀어 행하면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리겠는가?)
너는 이렇게 물어본 뒤에 마음으로 관찰하여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곧 행하고 버려야 할 것은 곧 버려야 한다. 또 나라에 외로운 자와 늙은 이가 있거든 마땅히 물건을 주어 구제하고 가난하고 곤궁한 자가 와서 구하는 것이 있거든 절대로 거절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또 나라에 옛 법[舊法]이 있거든 너는 그것을 고치지 말라. 이런 것들이 전륜성왕이 수행해야 할 법이니, 너는 마땅히 받들어 행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전륜성왕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그 말대로 수행했다. 훗날 보름날 달이 찰 때를 맞아 향탕에 목욕하고 채녀들에 둘러싸여 높은 궁전에 오르자 갑자기 윤보가 저절로 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 윤보는 천 개의 바퀴살이 있는데 광명과 빛깔을 구족하여 하늘의 장인이 만든 것으로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순금으로 된 바퀴의 직경은 14척[丈四]이나 되었다.
그 때 전륜성왕은 묵묵히 혼자서 생각했다.
'내 일찍이 덕이 높은 장로에게서 들었는데 (머리에 관정의식을 받고 임금이 된 찰리 종족이 보름날 달이 찰 때 향탕에 목욕하고 채녀들에 둘러싸여 보배 궁전에 오르면 금륜(金輪)이 갑자기 앞에 나타나는데 그 바퀴에는 천 개의 바큇살이 있고 광명과 빛깔이 구족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늘의 장인이 만든 것으로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며 순금으로 된 바퀴의 직경은 열네 자나 되면 이를 전륜성왕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수레바퀴가 나타난 것도 그런 일이 아닌가? 내 이제 이 윤보를 시험해 보아야겠다.'
그 때 전륜왕은 곧 4병(兵)을 모으고 금륜보를 향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다시 오른손으로 금수레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너는 동방을 향해 법답게 구르되 법칙을 어기지 말라.'
그러자 윤보는 곧 동쪽으로 굴렀다. 그 때 왕은 곧 4병(兵)을 거느리고 그 뒤를 따랐고, 금륜보 앞에서는 네 신(神)이 인도했다. 윤보가 멈춰선 곳에서는 왕도 곧 수레를 멈추었다. 그 때 동방의 여러 작은 나라[小國] 왕들은 이 대왕이 오는 것을 보고 금발우에는 은좁쌀[銀粟]을 담고 은발우에는 금좁쌀[金粟]을 담아 왕에게 와서 머리를 대어 절하고 아뢰었다.
'잘 오셨습니다. 대왕이여, 지금 이 동방의 토지는 풍요로우며 백성들은 불꽃처럼 왕성합니다. 그들은 성질이 어질고 온화하며 자비하고 효도하며 충성되고 유순합니다. 오직 원컨대 성왕(聖王)이시여, 여기서 정치를 행하소서. 저희들은 마땅히 좌우에서 모시고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전륜성왕이 작은 나라 왕들에게 말했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제현(諸賢)들이여, 그대들은 이미 나를 공양하였느니라. 다만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 부디 치우치거나 억울하게 하지 말고, 온 나라 안에 법 아닌 것을 행하는 일이 없게 하라. 이것을 곧 내가 통치하는 방식[我之所治]이라고 말하느니라.'
그 때 모든 작은 나라 왕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 곧 대왕을 따라 여러 나라를 돌아서 동쪽 바닷가에 이르렀다. 이렇게 차례로 남방ㆍ서방ㆍ북방으로 윤보가 가는 곳마다 따라갔고, 그 여러 나라의 왕들도 각각 국토를 바치는 것이 동방의 여러 작은 나라에서와 같았다. 이 때 전륜왕은 금륜을 따라 온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도(道)로써 교화하고 백성들을 안위시킨 뒤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 금륜보(金輪寶)는 궁문 위의 허공에 머물러 있었고 전륜왕은 기뻐 뛰면서 말했다.
'이 금륜보는 진실로 나의 상서(祥瑞)이다. 나는 이제 참으로 전륜성왕이 되었다.'
이것이 금륜보를 성취한 경위이다.
그 왕이 오랫동안 세상을 다스렸을 때 금륜보가 허공에서 갑자기 본 자리를 이탈했다. 그 윤보를 맡은 사람이 빨리 가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지금 윤보가 본 자리를 이탈했습니다.'
그 때 왕은 이 말을 듣고 혼자 생각했다.
'내 일찍이 덕이 높은 장로에게 들었는데, 만일 전륜성왕의 윤보가 자리를 이동하면 왕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이미 인간의 복락을 누렸으니, 마땅히 다시 방편을 써서 하늘의 복락을 받으리라. 당장 태자를 세워 4천하를 맡게 하고, 따로 한 고을을 떼어 이발사에게 주어 내 수염과 머리를 깎게 한 뒤에 3법의(法衣)를 입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리라.'
그 때 왕은 곧 태자에게 명령해 말했다.
'너는 모르느냐? 내 일찍이 덕이 높은 장로에게 들었는데 만일 전륜성왕의 금륜보가 본 자리를 이탈하면 왕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제 이미 인간의 복락을 받아 누렸으니, 마땅히 방편을 써서 하늘로 옮겨가 즐거움[天樂]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수염과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 출가하여 도를 닦고자 4천하를 모두 너에게 맡기니, 너는 마땅히 스스로 힘써 노력하여 백성들은 물론 동물에 이르기까지도 잘 보살피도록 하라.'
이 때 태자는 왕의 명령을 받아들였고, 왕은 곧 수염과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서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 그 때 왕이 출가한 지 7일이 지나자 그 금륜보가 갑자기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그 윤보를 맡은 사람이 곧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지금 윤보가 갑자기 보이질 않습니다.'
그 때 왕은 이 말을 듣고도 그리 걱정하지 않고 또 가서 부왕의 뜻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왕은 갑자기 목숨을 마쳤다.
이전의 여섯 전륜왕은 차례대로 서로 이어 받아[展轉相承]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런데 오직 이 한 왕만은 제 마음 내키는 대로 나라를 다스리고 옛 법을 계승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정치는 공평하지 않아 천하는 원망으로 호소하고 국토는 줄어들며 백성들은 죽어갔다.
그 때 어떤 한 바라문 대신(大臣)이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이제 국토는 줄어들고 백성들은 죽어가고 갈수록 평상시만 못해집니다. 왕이시여, 지금 나라 안에는 지식 있고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널리 통달해, 과거와 현재[古今]에 대해 환히 알고 선왕(先王)들의 나라 다스리는 법[治政之法]에 대해 갖추어 아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불러들여 그 아는 것을 물어 보지 않으십니까? 그들은 마땅히 잘 대답해 줄 것입니다.'
그 때 왕은 곧 모든 신하를 불러 선왕들의 나라 다스리는 법에 대해 물었으나, 모든 지혜 있는 신하들은 사실을 갖추어 대답했다. 왕은 곧 그 말을 듣고 옛날의 정치를 행하고 법으로써 세상을 보호했다. 그러나 아직도 외로운 이들과 노인들을 구제하지는 못했고, 신분이 낮고 빈궁한 사람들에게는 그 베풂이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갈수록 빈곤해져 드디어 서로 침범하고 약탈하여 도둑이 매우 심하게 증가했다. 경관들은 그들을 붙잡아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이 사람은 도둑입니다. 원컨대 왕께서 이 사람을 다스려주십시오.'
왕은 곧 물었다.
'네가 정말 도둑질을 하였느냐?'
그가 대답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빈궁하고 굶주려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 때 왕은 즉시 창고의 물품을 내어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너는 이 물건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또 친척을 구제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다시 도둑질을 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도둑질한 사람에게 왕이 재물을 주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도 남의 물건을 강도질하다가 경관에게 붙잡혔다. 경관이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이 사람은 도둑질을 했습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이 사람을 다스려주십시오.'
왕은 다시 물었다.
'네가 정말 도둑질을 하였느냐?'
그가 대답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빈궁하고 굶주려 스스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둑질을 했습니다.'
왕은 다시 창고의 재물을 내어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너는 이 물건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또 친척을 구제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
다시 어떤 사람이 도둑질한 사람에게 왕이 재물을 주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도 남의 물건을 강도질하다가 또 경관에게 붙잡혔다. 경관이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이 사람이 도둑질을 했습니다. 원컨대 왕께서 이 사람을 다스려주십시오.'
왕이 또 그에게 물었다.
'네가 정말 도둑질을 하였느냐?'
그가 대답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빈궁하고 굶주려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 때 왕은 생각했다.
'먼저 도둑질을 한 자는 내가 그 빈궁함을 보고 그에게 재물을 주면서 앞으로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이 그 소문을 전해 듣고 다시 서로 본받아 도둑이 날로 증가해 이렇게 그치지 않고 있다. 내 이제 차라리 그 사람을 차꼬와 수갑을 채워가지고 거리를 돌게 한 뒤 그를 싣고 성을 나가 넓은 들에서 죽여 뒷사람의 경계로 삼아야겠다.'
그 때 왕은 곧 측근 신하에게 명령하여 그를 묶게 하고 북을 치며 소리를 외쳐 모든 거리를 돌게 한 뒤 그를 싣고 성을 나가 넓은 들판에서 죽였다.
나라 사람들은 도둑질한 사람이 있으면 왕이 결박시켜 거리를 돌린 뒤 넓은 들판에서 죽인다는 것을 다 알았고 그 때 사람들은 갈팡질팡하며 서로 상의해 말했다.
'우리도 만일 도둑질을 한다면 또한 마땅히 이와 같아서 저들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에 백성들은 스스로를 방위[防護]하기 위해 마침내 칼과 활 따위의 무기를 만들어 서로 침노하고 잔인하게 해치며 공격하고 약탈하게 되었다. 이 왕 때부터 처음으로 빈궁함이 생겼고 빈궁함이 생긴 뒤에 처음으로 강도가 생겼으며, 강도가 생긴 뒤에 처음으로 무기가 생겼고 무기가 생긴 뒤에 처음으로 살해하는 일이 생겼으며, 살해가 생긴 뒤에 곧 안색이 파리해지고 수명이 짧아졌다. 그 때 사람의 수명은 바로 4만 살이었는데 그 뒤에 점점 줄어 2만 살이 되었다. 그래서 그 중생들에게는 오래 사는 이[壽]도 있고, 요절[夭]하는 이도 있으며, 괴로움[苦]도 생기고, 즐거움[樂]도 생겼다. 그 괴로움이 생긴 자는 다시 사음(邪淫)과 탐내어 취하는[貪取]마음을 내어 많은 방편을 써서 남의 물건을 도모했다. 이 때 중생들에게는 빈궁함과 강도와 무기와 살해하는 일이 점점 심해져 사람의 수명은 점점 줄어 1만 살이 되었다.
1만 살을 살던 때의 중생도 서로 강도질을 하다가 경관에게 붙잡혔다. 경관이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이 사람이 도둑질을 하였습니다. 원컨대 왕께서 이 사람을 다스려 주십시오.'
왕이 물었다.
'네가 정말 도둑질을 했느냐?'
그가 대답했다.
'저는 도둑질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대중들 속에서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 때 그 중생들은 빈궁함 때문에 곧 강도질을 했고, 강도질을 했기 때문에 곧 무기가 생겼으며, 무기가 생겼기 때문에 곧 살해하는 일이 생겼고, 살해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에 곧 탐취와 사음이 생겼으며, 탐취와 사음이 생겼기 때문에 곧 거짓말이 생겼고, 거짓말이 생겼기 때문에 그 수명은 점점 줄어 천 살이 되었다.
천 살 때에는 곧 입으로 짓는 세 가지 악행(惡行)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으니, 첫째는 이간질하는 말[兩舌]이요, 둘째는 욕설[惡口]이요, 셋째는 꾸밈말[綺語]이다. 이 세 가지 악업이 자꾸 퍼져 더욱 왕성하게 되자 사람의 수명은 점점 줄어 500살이 되었다. 500살을 살 때의 중생들에게는 또 세 가지 악행이 생겼으니, 첫째는 법답지 않은 음욕[非法婬]이요, 둘째는 법답지 않은 탐욕[非法貪]이며, 셋째는 삿된 소견[邪見]이다. 이 세 가지 악업이 자꾸 퍼져 더욱 왕성해지자 사람의 수명은 점점 줄어 300, 200살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지금 내 시대의 사람들은 또 100살로 줄어들었는데 그보다 넘는 이는 적고 그보다 적은 이는 많게 되었다.
이렇게 자꾸 악을 행하여 쉬지 않으면 그 수명은 점점 줄어 앞으로는 10살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10살 때의 사람들은 여자는 5개월7)이 되면 곧 시집을 갈 것이다. 이 때 세간에는 소유(酥油)ㆍ석밀(石蜜)ㆍ흑석밀(黑石蜜)8) 따위의 온갖 감미로운 맛은 다시는 그 이름조차 듣지 못할 것이다. 메벼나 벼는 변해 가라지가 될 것이요 비단[繒]ㆍ명주[絹]ㆍ금빛 비단[錦]ㆍ무늬 비단[綾]ㆍ무명[劫貝:木花]ㆍ모직[白氎] 등 지금 세상의 이름난 옷들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고 다만 거친 털로 짠 것을 제일 가는 옷으로 삼을 것이다.
이 때 이 땅에는 많은 가시나무가 날 것이요, 모기ㆍ등에ㆍ파리ㆍ이ㆍ뱀ㆍ살무사ㆍ벌ㆍ구더기 따위의 독충이 많을 것이다. 금ㆍ은ㆍ유리(琉璃)ㆍ구슬 따위의 이름난 보배는 모두 땅 속으로 묻히고 마침내 기와ㆍ돌ㆍ모래ㆍ자갈이 땅 위로 나올 것이다. 그 때 중생의 무리들은 영원히 10선(善)의 이름은 듣지 못하고 오직 10악(惡)만 있어 세간에 충만할 것이다. 이 때엔 곧 선법의 이름조차 없을텐데 그 사람들은 무엇으로 선행을 닦을 수 있겠는가?
이 때 중생들은 극악해져 부모에게는 불효하고 스승과 어른에게는 공경하지 않으며, 충성하지 않고 의리가 없어 반역하거나 도리를 모르는 사람이 도리어 존경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선행을 닦아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에게 공경하고 순종하며, 충성스럽고 미덥고 정의를 생각하며 도를 따라 수행하는 사람이 곧 존경을 받는 것과 같아, 그 때의 중생들은 10악을 많이 닦아 악도에 떨어질 것이다. 중생들이 서로 보기만 하면 항상 서로 죽이고자 하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슴떼를 보는 것과 같을 것이며, 이때 토지는 도랑ㆍ구덩이ㆍ시내ㆍ깊은 골짜기가 많이 있고 땅은 비고 사람은 드물어 오가는 이들은 사람이 두려워 겁내게 될 것이다.
이 때엔 도병겁(刀兵劫:전쟁)이 일어나 손에 초목을 잡으면 그것이 다 창으로 변해 7일 동안 서로를 해칠 것이요, 지혜로운 사람들은 멀리 숲 속으로 도망쳐 구덩이에 의지해 있으면서 7일 동안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자비롭고 착한 말로 외칠 것이다.
'그대들은 우리를 해치지 마시오. 우리도 그대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니, 초목의 열매나 먹으면서 생명을 보전합시다.'
그리고 7일이 지난 뒤, 숲에서 나올 때 살아 있는 사람은 서로 보고는 기뻐하고 경하(慶賀)하며 말할 것이다.
'당신도 살았구료[不死], 당신도 살았구료.'
마치 부모가 외아들과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가 서로 만났을 때 그 기쁨이 무량한 것처럼 그 사람들도 이렇게 각각 기쁜 마음으로 서로 경하할 것이다. 그런 다음 서로 집을 물어 보았을 적에 그 집의 친족들이 많이 죽었으면, 그 때는 다시 7일 동안 슬피 울고 부르짖고 서로 향해 통곡하면서 7일을 보내다가 다시 7일 동안은 서로 경하하고 즐거워하며 기뻐할 것이다. 그러다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이 너무나 많은 악을 쌓았기 때문에 이런 난리를 만나 친족들은 죽고 가족들은 망가졌다. 이제는 마땅히 조금씩이라도 함께 선(善)을 닦아야 하겠다. 무슨 선을 닦아야 할까? 마땅히 살생(殺生)을 하지 말자.'
그 때에 중생들은 모두 자애로운 마음을 품고 서로 해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중생들 육신의 수명이 점점 불어나 10살이던 수명이 20살이 될 것이다. 20살 때의 사람은 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조금씩 선을 닦아 서로 해치지 않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나 20살이 되었으니, 이제 다시 조금 더 선한 일을 닦자. 마땅히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이미 살생은 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제는 도둑질을 하지 말자.'
그리하여 이미 도둑질하지 않기[不盜]를 닦으면 수명은 늘어나 40살이 될 것이다. 40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조금씩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다시 조금씩 더 선한 일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앞으로는 사음(邪婬)하지 말자.'
이에 사람들은 모두 사음하지 않으므로 그 수명은 늘어나 80살이 될 것이다. 80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조금씩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조금 씩 더 선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앞으로는 거짓말[妄言]을 하지 말자.'
이에 그 사람들은 모두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으므로 수명이 늘어나 160살이 될 것이다. 160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조금씩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우리는 조금씩 더 선한 일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마땅히 이간질하는 말[兩舌]을 하지 말자.'
이에 그 사람들은 모두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으므로 수명이 늘어나 320살이 될 것이다. 320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조금씩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조금씩 더 선한 일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마땅히 욕설[惡口]을 하지 말자.'
이에 그 사람들은 모두 욕설을 하지 않으므로 수명이 늘어나 640살이 될 것이다. 640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다시 조금씩 더 선한 일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마땅히 꾸밈말[綺語]을 하지 말자.'
이에 그 사람들은 모두 꾸밈말을 하지 않으므로 수명이 늘어나 2천 살이 될 것이다. 2천 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다시 조금씩 더 선한 일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마땅히 간탐하지[慳貪] 말자.'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간탐하지 않고 보시(布施)를 행하므로 수명이 늘어나 5천 살이 될 것이다. 5천 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다시 조금씩 더 선한 일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마땅히 질투하지 않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선을 닦자.'
그리하여 그 사람들은 모두 질투하지 않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선을 닦으므로 수명이 늘어나 1만 살이 될 것이다. 1만 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다시 조금 더 선한 일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마땅히 바른 소견을 내어 전도(顚倒)된 생각을 일으키지 말자.'
이에 그 사람들은 모두 바른 소견을 내어 전도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수명이 늘어나 2만 살이 될 것이다. 2만 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다시 조금씩 더 선한 일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마땅히 세 가지 착하지 않은 법[不善法]을 없애자. 첫째는 법답지 않은 음욕[非法婬]이요, 둘째는 법답지 않은 탐욕[非法貪]이며, 셋째는 삿된 견해[邪見]이다.'
이에 그 사람들은 모두 세 가지 착하지 않은 법을 없애므로 수명이 늘어나 4만 살이 될 것이다. 4만 살을 살 때의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선을 닦았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으니, 이제 다시 조금씩 더 선한 일을 닦자. 어떤 선을 닦아야 할까? 마땅히 부모를 효도로 받들고 스승과 장로를 공경하여 섬기자.'
이에 그 사람들은 모두 부모를 효도로 받들고 스승과 장로를 공경하여 섬기므로 수명은 늘어나 8만 살이 될 것이다. 8만 살을 살 때의 여자들은 나이 5백 살이 되어야 비로소 시집을 갈 것이다.
그 때의 사람에게는 마땅히 아홉 가지 괴로움이 있으리니, 첫째는 추위요, 둘째는 더위며, 셋째는 굶주림이요, 넷째는 목마름이며, 다섯째는 대변이요, 여섯째는 소변이며, 일곱째는 욕심이요, 여덟째는 탐욕이며, 아홉째는 늙는 것이다. 대지는 평평하고 고르기 때문에 구덩이나 언덕이나 가시나무가 없을 것이요, 또 모기ㆍ등에ㆍ뱀ㆍ독사ㆍ독충 따위도 없을 것이며, 기와ㆍ돌ㆍ모래ㆍ자갈은 모두 변해 유리(琉璃)가 될 것이다. 백성들은 왕성하고 5곡(穀)도 지천에 깔려 풍성하고 즐겁기 끝이 없을 것이며, 이 때에는 8만 개의 큰 성(城)이 일어날 것이다. 마을과 성들은 서로 나란히 붙어 있어 닭 우는 소리가 서로 들릴 것이다.
바로 그 때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실 것이니 이름을 미륵(彌勒)이라 하고,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 등의 열 가지 명호[十號]를 구족하실 것이니, 그것은 지금 여래께서 열 가지 명호를 구족하신 것과 같을 것이다. 그는 저 여러 하늘들 중에 제석천[帝釋]ㆍ범천[梵]ㆍ악마[魔] 혹은 마천(魔天)과 악마의 하늘 그리고 모든 사문 바라문ㆍ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 중에서 몸소 깨달음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또 내가 지금 여러 하늘들 중에 제석천ㆍ악마 혹은 마천과 사문 바라문ㆍ모든 하늘ㆍ세상 사람 중에서 몸소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다.
그는 마땅히 설법하되, 처음 말도 훌륭하고 중간과 나중의 말도 훌륭하여 의미를 갖추어 담고 있을 것이며 범행(梵行)을 청정히 닦을 것이니, 그것은 내가 지금 설법하는 말이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모두 참되고 바르며 의미를 구족하고 범행이 청정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수천 만 명이나 될 것이니, 오늘의 내 제자가 수백인 것과 같다. 그 때의 사람들은 그 제자를 일컬어 자자(慈子)라 부르리니, 내 제자를 석자(釋子)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 때 양가(儴伽)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있으리니, 그는 관정의식을 한 찰리 종족[刹利水澆頭種]의 전륜성왕으로 4천하를 맡아 바른 법으로 다스려 항복하지 않는 이가 없고 7보를 구족할 것이니, 첫째는 금륜보(金輪寶)이고, 둘째는 백상보(白象寶)이며, 셋째는 감마보(紺馬寶)요, 넷째는 신주보(神珠寶)며, 다섯째는 옥녀보(玉女寶)요, 여섯째는 거사보(居士寶)요, 일곱째는 주병보(主兵寶)이다. 왕에겐 천 명의 아들이 있어 용맹하고 웅렬(雄烈)하여 능히 외적을 물리칠 것이고 사방에서 공경하고 순종하여 무기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태평하게 될 것이다.
이 때 성왕은 큰 보당(寶幢)을 세우리니, 둘레는 16심(尋)이요, 높이는 1천 심(尋)이나 되며 천 종류의 온갖 색깔로 그 깃대를 장엄하게 꾸밀 것이다. 그 깃대에는 백 개의 고(觚)가 있고 한 고에 백 개의 수술[枝]이 있는데, 보배 실로 짜서 만들고 여러 보물을 사이사이 껴 넣을 것이다. 여기서 성왕은 그 깃대를 부수어 사문 바라문과 온 나라 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고 그런 다음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法衣)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고 위없는 행[無上行]을 닦아 현재 세계에서 몸소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고 죽음을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서며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해 마쳐 뒷세상의 목숨[後有]을 받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선행(善行)을 부지런히 닦으라. 선행을 닦음으로써 곧 수명은 늘어나고 안색은 좋아지며 안온하고 쾌락할 것이요, 또 재보(財寶)는 풍요롭고 위력을 구족할 것이다. 마치 모든 왕이 전륜성왕의 옛 법을 따라 행하여 곧 수명은 늘어나고 안색은 좋아지며 안온하고 쾌락하고, 또 재보는 풍요롭고 위력을 구족한 것과 같을 것이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마땅히 선법을 닦으면 수명은 늘어나고 안색이 좋아지며 안온하고 쾌락할 것이요, 또 재보는 풍요롭고 위력을 구족할 것이다.
비구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렇게 비구가 욕정(欲定)을 닦아 익히고 정근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멸(滅)의 행을 성취함으로써 신족(神足)을 닦는 것이다. 다음에는 정진정(精進定)ㆍ의정(意定)ㆍ사유정(思惟定)을 닦고 정근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멸의 행을 성취함으로써 신족(神足)을 닦는 것이니, 이것을 수명의 늘어남이라 한다.
비구의 안색이 좋아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여기서 비구는 계율을 구족하고 위의를 성취하며 조그마한 죄를 보고도 큰 두려움을 느끼고 모든 계율을 골고루 배워 두루 채우고 모두 갖추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 안색이 좋아지는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비구의 안온과 쾌락이라 하는가? 여기서 비구는 음욕(淫欲)을 끊고 불선법(不善法)을 제거하고,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제1선(禪)을 행한다. 다음에는 각과 관을 없애고 안으로 믿어[內心] 기쁘고 즐거우며 생각을 거둬 전일(專一)하게 하여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을 행한다. 다음에는 기쁨을 버리고 평정[護:捨], 마음을 오로지 하여 산란하지 않으며, 스스로 몸에 즐거움[身樂]을 알고 성현이 구하는 바인 평정[護]ㆍ기억[念]ㆍ즐거움[樂]으로 제3선을 행한다. 다음에는 괴로움과 즐거움도 버려 멸하는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멸하였으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護]ㆍ기억[念]ㆍ청정(淸淨)으로 제4선을 행한다. 이것을 비구의 안온과 쾌락이라고 한다.
비구의 재보(財寶)가 풍요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비구는 자비심을 닦아 익혀 한 세계[方]에 가득 채우고 다른 세계에도 또한 그렇게 하며 넓게 두루 하여 둘도 없고 한량도 없다. 모든 번뇌와 원한이 없어지고 마음에는 질투와 미움이 없으며 고요하고 잠잠하고 유순한 경지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낀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버리는 마음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을 비구의 재보가 풍요롭다고 하는 것이다.
비구 위력이 구족하다는 말은 어떤 것인가? 여기서 비구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習聖諦:集諦]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盡聖諦:滅諦]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道聖諦]도 사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비구가 위력을 구족한 것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모든 힘있는 자를 두루 관찰해 보아도 악마의 힘을 넘어설 이가 없으나, 번뇌[漏]를 끊어 없앤 비구의 힘이라야 능히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 주 해:
3) 제15권 70번째 소경인 『전륜왕경(轉輪王經)』도 이 경전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4) 부분은 고려대장경의 “당자치연 치연어법 물타치연 당자귀의 귀의어법 물타귀의(當自熾燃 熾燃於法 勿他熾燃 當自歸依 歸依於法 勿他歸依)”에 대한 비교적 원문의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다. 그러나 팔리본에는 해당 내용이 '자귀의(自歸依)'와 '법귀의(法歸依)'로 독립되어 있어 고려대장경 원문의 내용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5) 무사계급 혹은 왕족을 지칭하고 수요두(水澆頭)는 관정(灌頂)을 의미한다.
6) 도(道)를 배우는 사람이 걸치는 세 종류의 가사(袈裟)로 첫째는 승가리(僧伽梨, saghṭi)이고, 둘째는 울다라승(鬱多羅僧, uttarsaga)이며, 셋째는 안타회(安陀會, antara-Vsaka)를 말한다.
7) 5월(月)로 되어 있으나 팔리본에 의하면 5년(paca-vassik)으로 되어 있다. 내용상 여성의 결혼 적령기로는 5년이 5월보다 더 적절할 듯하다.
8) 소유ㆍ석밀ㆍ흑석밀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팔리본에는 이 내용이 소(酥)ㆍ낙(酪)ㆍ유(油)ㆍ사탕[砂糖]ㆍ소금[鹽] 등으로 되어 있다.
■ 주 해:
1) 경의 이역 경전으로는 송나라 시대 시호(施護) 등이 한역한 『불설백의금당이바라문연기경(佛說白衣金幢二婆羅門緣起經)』이 있으며, 『중아함경』 제39권 154번째 소경인 『바라바당경(婆羅婆堂經)』과 『증일아함경』 제34권 『칠일품(七日品)』의 첫 번째 소경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2) 본문에는 '자연화생이념위식(自然化生以念爲食)'으로 되어 있으나 팔리(Pli)본에 의하면 이 부분이 'manomay pīti-bhakkh(기쁜 생각으로 음식을 삼고)'로 되어 있으니, 광음천(光音天)에 대한 설명으로는 고려대장경보다 팔리본의 내용이 더 자세하므로 독자들의 참조를 바란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8 권
[제2분] ③
8. 산타나경(散陀那經)1)
1) 경의 이역 경전으로는 송 시대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니구타범지경(佛說尼拘陀梵志經)』이 있으며, 『중아함경』 제26권 104번째 소경인 『우담바라경(優曇婆羅經)』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열기성(羅閱祇城) 비하라산(毗訶羅山)의 칠엽수굴(七葉樹窟)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왕사성에 어떤 거사(居士)가 있었는데 이름을 산타나(散陀那)라고 했다. 그는 구경 다니기를 좋아해서 날마다 성을 나와 세존이 계시는 곳으로 왔다. 그 때 그 거사는 해를 우러러보며 혼자 가만히 생각했다.
'지금은 가서 부처님을 뵙기에 좋은 때가 아니다. 지금 세존께서는 틀림없이 조용한 방에서 삼매에 들어 계실 것이고, 모든 비구 대중들도 또한 참선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저 오잠바리(烏暫婆利:優曇婆羅) 범지녀(梵志女)가 있는 숲으로 가서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세존께 나아가 문안 예배드리고 다시 모든 비구들에게도 가서 문안 예배하리라.'
그 때 범지녀의 숲에는 한 범지가 있었는데 이름을 니구타(尼俱陀)라고 했다. 그는 500명의 범지 아들들과 함께 그 숲에 있었다. 그 모든 범지의 무리들은 한곳에 모여 높은 소리로 도(道)에 방해되는 혼탁하고 난잡한 이야기들을 떠들어대면서 온종일 이렇게 보내고 있었다. 혹은 나라 일을 의논하기도 하고 혹은 전쟁과 무기에 관한 일을 의논하기도 하며, 혹은 국가의 화합[義和]에 관한 일을 의논하기도 하고, 혹은 대신과 서민의 일을 의논하기도 하며, 혹은 수레와 말로 동산을 노니는 일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고, 혹은 좌석ㆍ의복ㆍ음식ㆍ여자의 일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며, 혹은 산ㆍ바다ㆍ거북ㆍ자라의 일에 대해 의논하는 등 단지 이와 같이 도(道)에 방해가 되는 이야기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저 범지는 멀리서 산타나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대중들에게 조용히 하도록 명령했다.
그 이유는 저기 사문 구담(瞿曇)의 제자가 지금 밖에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문 구담의 청정한[白衣] 제자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으며, 그가 반드시 여기로 올 것이므로 그들에게 마땅히 조용히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범지들은 다 조용히 침묵하였다. 산타나 거사가 범지들에게 가서 문안드리고 한쪽에 앉아 범지에게 말했다.
“우리 스승님 세존께서는 항상 한적한 것을 좋아하시고 시끄러운 것은 좋아하시지 않는다. 그대들과 모든 제자들이 모여 도(道)에 방해되는 쓸데없는 말로 소리 높혀 떠드는 것과는 다르다.”
범지는 또 거사에게 말했다.
“사문 구담이 사뭇 일찍부터 사람들과 말하지 않았다면 대중들은 무엇으로 사문께서 큰 지혜가 있는 줄을 알았는가? 당신의 스승께서 항상 변두리에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은 마치 애꾸눈 소가 풀을 먹을 때 보이는 곳으로만 치우쳐 가는 것과 같다. 당신의 스승인 사문 구담도 또한 이와 같아서 치우치게 홀로 보는 것만 좋아하여 사람이 없는 곳을 즐긴다. 당신의 스승이 만일 여기에 온다면 우리들은 애꾸눈 소[瞎牛]라고 부를 것이다. 그는 항상 스스로 큰 지혜가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한 마디 말로써 그를 궁색하게 만들어 그가 아무 말도 못하게 할 것이다. 마치 거북이가 여섯 기관을 움츠리는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 버리겠다. 말하자면 아무 걱정 없게 한 화살로 쏘아 도망갈 곳이 없게 할 것이다.”
이 때 세존께서는 한가하고 조용한 방에 계시면서 천이(天耳)로써 범지와 거사가 이런 논란을 벌이는 것을 들으시고서 곧 칠엽수굴을 나와 오잠바리의 범지녀(梵志女)가 있는 숲으로 가셨다. 그 때 저 범지는 멀리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모든 제자에게 명령했다.
“너희들은 다 조용히 하라. 사문 구담이 여기로 오고 있다. 너희들은 부디 일어나 맞이하거나 공경 예배하지 말라. 또 앉기를 청하지도 말라. 별도로 한 자리를 정해 그에게 주고 그가 앉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물어야 한다.
'사문 구담이여, 그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떤 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쳐 안온(安穩)함을 얻게 하였으며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게 하였는가?'”
그 때 세존께서 점점 그 동산에 다다르시자, 범지들은 저도 모르게 일어나 세존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구담이시여, 잘 오셨습니다. 사문이여, 오랫동안 서로 뵙지 못했습니다. 이제 무슨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우선 좀 앉으십시오.”
이 때 세존께서는 곧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웃으시고 다시 잠자코 혼자 생각하셨다.
'이 모든 미련한 사람들은 스스로 한결같지[自專] 못하여 먼저 약속[要令]을 했으면서도 끝내 지키지[全] 못하니, 그것은 부처의 신통력으로 저들의 나쁜 마음을 저절로 무너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 때 산타나거사는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니구타범지도 부처님께 인사하고 역시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사문 구담이시여,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떤 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어 안온함을 얻게 하고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게 하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잠깐 멈추어라. 범지여, 내 법은 깊고도 넓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제자들을 가르쳐 안온함을 얻게 하고 범행을 깨끗이 닦게 하였으니 그대들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스승과 그대의 제자들이 행하는 도법(道法)에 대해서도 청정한 것과 대해서도 청정하지 못한 것이 있음을 나는 다 말할 수 있다.”
그 때 500범지의 제자들은 다 큰 소리로 서로들 말했다.
“구담 사문은 큰 위세(威勢)가 있고 큰 신력(神力)이 있어, 남이 자신의 뜻을 물으면 곧 남의 뜻까지 열어주는구나.”
니구타 범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구담이시여, 원컨대 그것을 분별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잘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해 설명해 주겠노라.”
범지가 대답했다.
“기꺼이 듣기를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행하는 것은 다 비루하다.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 손으로 가리는 일이나 병 속에 든 밥은 받지 않고 발우에 담았던 음식은 받지 않으며, 두 벽의 중간에 있던 밥을 받지 않고 두 사람의 중간에 있던 밥을 받지 않으며, 두 칼의 중간에 있던 밥을 받지 않고 두 발우 중간에 있던 밥은 받지 않으며, 여럿이 함께 먹는 집의 밥은 받지 않고 아기 밴 집의 밥은 받지 않으며, 개가 문에 있는 것을 보면 그 집의 밥은 받지 않고 파리가 많은 집의 밥은 받지 않는다. 초청하여 주는 음식은 받지 않고 남이 먼저 알고 있었다고 말하면 그 밥은 받지 않는다. 물고기를 먹지 않고 짐승 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다. 두 그릇에 받아 먹지 않고 한 밥덩이를 한 번에 삼켜도 그렇게 일곱 번만 먹고는 그만 먹는다. 사람들이 보태 주는 밥을 받되 일곱 덩이를 넘지 않는다.
혹은 하루에 한 번 먹기도 하고 혹은 2일ㆍ3일ㆍ4일ㆍ5일ㆍ6일ㆍ7일만에 한 번 먹기도 한다. 혹은 또 과일을 먹거나 혹은 가라지[莠]를 먹거나 혹은 밥물을 먹거나 혹은 싸래기[糜米]를 먹거나 혹은 벼쭉정이를 먹기도 한다. 혹은 소똥을 먹거나 혹은 사슴똥을 먹거나 혹은 나무뿌리ㆍ줄기ㆍ잎ㆍ과일을 먹기도 하고 혹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먹기도 한다. 혹은 옷을 입거나 혹은 사의(莎衣)를 입기도 하며, 혹은 나무껍질을 입거나 혹은 풀을 몸에 걸치거나 혹은 사슴 가죽을 입기도 하며, 혹은 머리털을 두거나 혹은 털을 엮어 입거나 혹은 묘지에 버린 옷을 입기도 한다. 혹은 항상 손을 들고 있는 자도 있고 혹은 평상에 앉지 않거나, 혹은 늘 쭈그리고 앉는 자도 있고 혹은 머리는 깎고 수염을 기른 자도 있다. 혹은 가시덤불에 눕는 자도 있고 혹은 과일 위에 눕는 자도 있으며, 혹은 알몸으로 소똥 위에 눕는 자도 있다. 혹은 하루에 세 번 목욕하고 혹은 하룻밤에 세 번 목욕하기도 한다. 이렇게 수없는 온갖 고통들로 제 몸을 괴롭게 한다. 어떤가? 니구타여, 이렇게 수행하는 것을 청정한 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범지가 대답했다.
“이 법은 청정한 것이요, 청정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청정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대들이 청정하다고 하는 법 가운데에 더러운 때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리라.”
범지가 말했다.
“좋습니다. 구담이시여, 어서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저는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항상 스스로 헤아려 생각하기를 '우리가 이와 같이 수행하면 마땅히 공양과 공경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나니 이것이 곧 더러운 때[垢]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공양을 받고 나서 그 즐거움에 대한 집착이 굳어져서 애착하고 물들어 버릴 줄을 모르며, 멀리 여의어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번뇌를 벗어날 길을 알지 못하나니, 이것이 바로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멀리서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다 함께 좌선하다가 만약 사람이 없을 때는 마음대로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다른 이의 바른 이치에 대해 들어도 기꺼이 인가(印可)하지 않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다른 이의 바른 질문을 받고도 인색하여 대답하지 않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만일 누가 사문 바라문에 공양하는 것을 보면 곧 그것을 꾸짖으며 막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만일 사문 바라문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물건을 먹는 것을 보면 나아가 그것을 꾸짖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청정하지 못한 음식이 남아돌아도 기꺼이 남에게 주지 않고 만일 청정한 음식이 있으면 탐착하여 저 혼자 먹으며, 자기 허물은 보지 않고 번뇌를 벗어나는 길[出要]을 모르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는 착하다고 자랑하면서도 남에 대해선 헐뜯고 비방하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婬]ㆍ이간하는 말[兩舌]ㆍ욕설[惡口]ㆍ거짓말[妄言]ㆍ꾸밈말[綺語]ㆍ탐취(貪取)ㆍ질투(嫉妬)ㆍ사견(邪見) 등 전도(顚倒)된 일들을 행하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게으르고 잘 잊어버리며 선정(禪定)을 익히지 않고 지혜가 없어 마치 금수와 같나니, 이것이 바로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고귀한 척 하면서 교만(憍慢)ㆍ만(慢)ㆍ증상만(增上慢)을 부리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신의(信義)가 없고 또한 반성도 없으며 또한 청정한 계율을 지니지도 않고 부지런히 힘써 남의 가르침을 받을 줄 모르며 항상 악한 사람들과 짝이 되어 끝없이 나쁜 짓을 하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걸핏하면 성내고 원한[瞋恨]을 품으며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며, 자기의 소견만 믿고 남의 장점과 단점[長短]을 찾으며, 항상 사견(邪見)을 품고 변견(邊見)에 사로잡혀 있으니, 이것이 더러운 때이다. 어떠냐? 니구타여, 이렇게 행하는 자를 깨끗하다 하겠느냐?”
그는 대답했다.
“그것은 부정한 것이지 청정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마땅히 너희들의 더러운 법 가운데서 다시 청정하여 더러운 때가 없는 법을 설명해 주겠다.”
범지가 말했다.
“오직 원컨대 그것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고행하는 자들이 스스로 헤아려 생각하기를 '우리의 수행이 이와 같으므로 마땅히 공양ㆍ공경ㆍ예사(禮事)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면, 이것이 고행의 때[垢]가 없는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이 공양을 얻고는 마음에 탐착하지 않고 멀리 여의어 벗어날 줄을 알며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알면, 이것을 고행의 때가 없는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좌선을 함에 항상한 법이 있어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달리하지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가 없는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다른 이가 말하는 바른 이치를 들으면 기뻐하며 인가하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가 없는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만약 다른 이가 바른 질문을 하면 기쁘게 해설해 주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비록 어떤 사람이 사문 바라문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를 대신해 기뻐하면서 꾸짖어 막지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垢]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비록 사문 바라문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물건을 먹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꾸짖지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고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청정하지 못한 음식이 있을 때 마음으로 인색하지 않고 비록 청정한 음식이 있어도 집착하여 물들지 않으며 능히 자기의 허물을 보아 번뇌를 벗어나는 법[出要法]을 아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스스로 칭찬하지 않고 다른 이를 헐뜯지도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이간하는 말ㆍ욕설ㆍ거짓말ㆍ꾸밈말ㆍ탐취ㆍ질투ㆍ삿된 견해를 행하지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부지런히 힘써 잊지 않고 선행(禪行) 익히기를 좋아하며 지혜를 많이 닦아 짐승처럼 어리석지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고귀한 척하거나 교만하여 스스로 대단한 척하지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항상 신의를 가지고 되풀이하여 행을 닦아 능히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힘써 가르침을 받으며 항상 착한 사람과 짝이 되어 선 쌓기를 그치지 않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저 고행하는 자들은 원한을 품지 않고 거짓을 행하지 않으며 자기 견해만 믿지 않고 남의 단점을 찾지 않으며 사견을 품지 않고 또한 변견(邊見)도 없나니, 이것을 고행의 때를 여읜 법이라 한다. 어떠냐? 범지여, 이와 같은 고행은 청정하여 때를 여읜 법이라 하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이와 같은 것은 참으로 청정하여 때를 여읜 법입니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러한 고행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제일 견고한 행[堅固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멀었다. 그것은 겨우 처음 시작하는 껍질에 불과할 뿐이다.”
범지가 말했다.
“원컨대 나무의 마디[樹節]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마땅히 잘 들어라. 내 이제 말하리라.”
범지가 말했다.
“예. 기꺼이 듣기를 원하나이다.”
“범지여, 저 고행자는 자신도 살생하지 않고[不殺生] 남을 시켜 살생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신도 도둑질하지 않고[不偸盜] 남을 시켜 도둑질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신도 사음하지 않고[不邪婬] 남을 시켜 사음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신도 거짓말하지 않고[不妄言] 남을 시켜 거짓말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애로운 마음[慈心]으로 한 세계를 두루 채우고 다른 세계에도 또한 그렇게 하나니, 자애로운 마음은 광대하여 둘도 없고 한량없으며 원한을 맺는 일도 없어 세간에 두루 찬다. 슬퍼하는 마음[悲心]ㆍ기뻐하는 마음[喜心]ㆍ버리는 마음[捨心]도 이와 같다. 이 고행이 고루 행해지면 나무의 마디라 이름한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원컨대 고행견고(苦行堅固)의 뜻을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잘 들어라. 내 마땅히 그것을 설명해 주리라.”
범지가 말했다.
“예.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기를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고행자는 자기도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 살생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도둑질하지 않고 남을 시켜 도둑질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사음하지 않고 남을 시켜 사음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시켜 거짓말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한 세계를 두루 채우고 다른 세계에도 또한 그렇게 하나니, 자애로운 마음은 광대하여 둘도 없고 한량없으며 원한을 맺는 일도 없어 세간에 두루 찬다. 슬퍼하는 마음ㆍ기뻐하는 마음ㆍ버리는 마음도 또한 그와 같다.
저 고행자는 스스로 과거 무수한 겁(劫) 동안의 일을 알아 1생ㆍ2생에서 무수한 생에 이르기까지 국토의 형성과 파괴[成敗] 겁수(劫數)의 시작과 끝남[終始]을 다 보고 다 알며 또 자기에 대해서도 다 보아 안다. 곧 나는 일찍이 저 종성(種姓)으로 태어났었고 이와 같은 이름[名字]과 이와 같은 음식과 이와 같은 수명과 이와 같은 고락(苦樂)을 받은 것과, 저기로부터 여기에 태어났고 여기로부터 저기에 태어났던 이렇게 무수한 겁 동안의 일들을 다 기억한다. 범지여, 이것을 저 고행자의 단단하여 무너짐이 없는 것[牢固無壞]이라고 한다.”
범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제일이라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잘 들어라. 내 마땅히 그것을 설명해 주리라.”
범지가 말했다.
“예.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기를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고행자는 자기도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 살생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도둑질하지 않고 남을 시켜 도둑질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사음하지 않고 남을 시켜 사음하게 하지도 않으며, 자기도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시켜 거짓말하게 시키지도 않는다. 그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한 세계를 두루 채우고 다른 세계도 또한 그렇게 하나니, 자애로운 마음이 광대하여 둘도 없고 한량 없으며 원한을 맺는 일도 없어 세간에 두루 찬다. 슬퍼하는 마음ㆍ기뻐하는 마음ㆍ버리는 마음도 또한 이와 같다.
저 고행자는 스스로 과거 무수한 겁 동안의 일을 알아 1생ㆍ2생에서부터 무수한 생에 이르기까지 국토의 형성과 파괴, 겁수의 시작과 끝을 다 보고 다 알며 또 자기에 대해서도 다 보아 안다. 곧 나는 일찍이 저러한 종성으로 태어났었고 이와 같은 이름ㆍ음식ㆍ수명과 이와 같은 고락(苦樂)을 치뤘으며, 저기로부터 여기에 태어났고 여기로부터 저기에 태어났던 것 등, 이렇게 무수한 겁의 일을 다 기억한다.
또 저 고행자는 천안(天眼)이 청정하여 중생의 무리들을 관하면,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난 것과 얼굴이 잘 생기고 못생긴 것과 선업과 악업으로 인하여 나아가는 세계와 행(行)을 따라 떨어짐을 다 보고 다 안다. 또 중생의 몸[身]으로 지은 행위[行]가 착하지 않은 것과 입[口]으로 지은 행위가 착하지 않은 것과 뜻[意]으로 지은 행위가 착하지 않은 것을 안다.
또 현성(賢聖)을 비방하고 삿되고 전도된 견해를 믿음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세 갈래 악한 세계[惡道]2)에 떨어질 것과 혹은 어떤 중생이 몸으로 지은 행이 착하고 입과 뜻으로 지은 행도 착하며, 현성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믿고 행함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하늘이나 사람 중에 태어날 것임을 안다. 저 수행자는 천안이 청정하여 중생을 관하면, 심지어 행을 따라 떨어질 곳까지 보아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것을 고행의 제일 훌륭한 것[第一勝]이라고 한다.”
2) 등 중생이 악행(惡行)을 지은 결과로 태어나 고통을 받는 삼악취(三惡趣)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이 법 가운데에는 또 훌륭한 것이 있다. 나는 항상 이 법으로써 모든 성문(聲聞)을 교화하였고 그들은 이 법으로써 범행(梵行)을 닦았느니라.”
그 때 500범지 제자들은 각자 큰 소리를 내어 서로 말했다.
“이제 세존을 뵙고 보니 가장 존귀하고 으뜸가는 분이시다. 우리 스승은 그분께 미칠 수 없다.”
그 때 저 산타나 거사가 범지에게 말했다.
“당신은 좀전에 스스로 말하기를 '만일 구담이 여기에 오면 우리들은 마땅히 애꾸눈 소[瞎牛]라고 부를 것이다'고 하였는데, 세존께서 지금 여기 오셨는데도 어째서 그렇게 부르지 않는가? 또 당신이 좀전에 말하기를 '한 마디 말로써 저 구담을 궁색하게 하여 아무 말도 못하게 하겠다. 마치 거북이가 여섯 기관을 움츠리는 것처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아무 걱정 없게 한 화살로 쏘아 도망칠 곳이 없게 하리라'고 했는데, 지금 당신은 어째서 한 마디 말로 여래를 궁색하게 하지 못하는가?”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전에 이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하는가?”
그는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째서 장로[先宿] 범지들에게 듣지 못했는가? 모든 불여래(佛如來)께서 산림에 혼자 있으면서 한적한 곳을 좋아하시는 것은 내가 오늘날 한가롭게 있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대의 법이 시끄러운 것을 즐겨 쓸데없는 일로 떠들면서 날을 보내는 것과는 같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니라.”
범지가 말하였다.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한적한 곳에 혼자 계시는 것을 좋아하신 것이 지금 세존과 같으며, 그리고 우리들의 법이 시끄러운 것을 즐겨 쓸데없는 일로 떠들면서 날을 보내는 것과는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째서 구담 사문은 보리(菩提)를 잘 말씀하시어 능히 자기 자신도 조복(調伏)하고 남도 조복시킬 수 있으며, 자신도 그쳐 쉼[止息:선정]을 얻고 능히 다른 사람도 그쳐 쉬게 할 수 있으며, 자신도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하고 다른 이도 도달하게 하며, 자신도 해탈을 얻고 남도 해탈하게 하며, 자신도 멸도(滅度)를 얻고 남도 멸도시킨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그 때 범지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로 예배하고 손으로 부처님 발을 어루만지면서 자기 이름을 대며 말했다.
“저는 니구타 범지입니다. 저는 니구타 범지입니다. 이제 저는 세존의 발에 귀의하며 예배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잠깐 기다리라. 그대가 마음으로 깨달으면 그것이 곧 예경(禮敬)하는 것이다.”
그 때 그 범지는 거듭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차 부처님께서 이양(利養)을 위하여 설법하는게 아닌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만일 이양이 있다면 모두 너희들에게 베풀어 줄 것이니라. 내가 연설하는 법은 미묘하고 제일가는 것이어서 불선(不善)을 멸하고 선법을 늘어나게 하느니라.”
또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차 부처님께서 명예를 위해서나, 존중받기 위해서나, 도사(導師)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나, 권속을 위해서나, 대중을 위해서 설법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이제 그대의 권속은 다 그대에게 귀속될 것이다. 내가 연설하는 법은 불선을 멸하고 선법을 늘어나게 하느니라.”
또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차 부처님께서 그대를 불선취(不善趣)와 흑명취(黑冥趣) 가운데 두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대는 그런 마음을 내지 말라. 그대가 다만 모든 불선취와 흑명취를 떠나 버리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내 스스로 그대를 위하여 선하고 청정한 법을 연설하리라.”
또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차 부처님께서 그대를 선법취(善法趣)와 청백취(淸白趣)에서 물리치시려는 게 아닌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그대는 다만 선법취와 청백취 가운데서 힘써 부지런히 수행하면 되느니라. 내 스스로 그대를 위하여 선하고 청정한 법을 연설하여 선하지 않은 행을 멸하고 선한 법을 더하게 하느니라.”
이 때 500 범지 제자들은 단정한 마음과 바른 뜻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그 때 악마 파순(波旬)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500 범지 제자들은 단정한 마음과 바른 뜻을 가지고 부처로부터 법을 듣는다. 나는 이제 가서 그 뜻을 부수어야겠다.'
그 때 악마는 곧 제 힘으로 그 뜻을 부수어 산란하게 했다.
세존께서 산타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500 범지 제자는 단정한 마음과 바른 뜻을 가지고 나에게서 법을 들었는데, 저 하늘의 악마 파순은 그 뜻을 부수어 산란하게 했다. 내 이제 돌아가려 하니 너도 함께 가자.”
이 때 세존께서는 오른손으로 산타나 거사를 들어 손바닥에 놓고 허공을 타고 돌아가셨다.
산타나 거사, 니구타 범지 및 500 범지 제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8 권
9. 중집경(衆集經)3)
3) 경의 이역본으로는 송 시대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대집법문경(佛說大集法門經)』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말라(末羅)를 유행하시면서 1,250명의 비구들과 함께 파바성(波婆城)에 있는 사두(闍頭)의 암파(菴婆) 동산에 다다르셨다.
이 때 세존께서는 보름날 달이 가득 찬 밤에 맨땅에 앉아 계셨고 모든 비구들도 앞뒤를 둘러싸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밤에 많은 설법을 마치시고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모여와서 다 함께 정근하며 잠을 자지 않고 있구나. 나는 등병을 앓아 잠깐 쉬고 싶다. 네가 이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라.”
그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땅히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곧 승가리(僧伽梨)를 네 겹으로 접어 오른쪽 옆구리에 깔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그 때 사리불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했다.
“지금 이 파바성에는 니건자(尼乾子)가 있다. 그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뒤에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늘 서로의 잘잘못을 캐고 서로 꾸짖으며 시비하고 있다.
'나는 이 법을 알지만 당신은 모른다. 당신은 사견(邪見)을 가졌지만 나는 바른 법을 가졌다.'
이렇게 말이 서로 얽혀 앞뒤가 없다. 모두 자기 말을 참되고 바르다고 여기고 있다.
'내가 이길 것이고, 당신 논리는 질 것이다. 나는 이제 담론(談論)의 주인이 될 것이니, 당신들은 물을 것이 있으면 내게 와서 물으라.'
모든 비구들이여, 지금 이 나라 백성으로서 니건자를 받드는 자는 다 저 무리들의 다투는 소리를 싫어하고 괴로워하나니, 그것은 그 법이 참되거나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이 참되거나 바르지 못하면 번뇌를 벗어날 길이 없다. 비유하면 썩은 탑은 다시 흙을 바를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이것은 삼야삼불(三耶三佛)4)의 말씀이 아니다.
모든 비구들이여, 다만 우리 석가(釋迦) 무상존(無上尊)의 법만이 가장 참되고 바르기 때문에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새 탑은 장엄하게 꾸미기가 쉬운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삼야삼불의 말씀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법과 율(律)을 모아 저 다툼을 막고 범행(梵行)을 오래 세우고 이익됨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1]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바른 법을 설하셨다.
'일체 중생은 다 음식을 우러르며러 살아간다.'
여래의 설법 중에 또 한 가지 법이 있다.
'일체 중생은 다 행(行)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住]5).'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법이다. 우리는 지금 함께 이 법과 율을 모아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4) 삼야삼불(三耶三佛): samyaksaṃbuddha의 음역. 부처님 10호(號)의 하나로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ㆍ삼야삼불단(三耶三佛檀)이라고도 한다. 정변지(正遍知)ㆍ등정각(等正覺)ㆍ정등각(正等覺)은 이에 대한 번역이다. 외도(外道)ㆍ아라한(阿羅漢)ㆍ보살(菩薩)의 깨달음을 각각 사각(邪覺)ㆍ정각(正覺)ㆍ등각(等覺)이라 하는데 대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정등각(正等覺)이라 한다.
5) 본문에는 왕(往)자로 되어 있으나 『장아함경』 명본(明本)에는 '주(住)'로, 팔리본에는 'ṭhitika(住立)'으로 되어 있는데 내용상 후자가 더 적합하므로 이를 따랐다.
[2]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두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명(名)이요, 둘째는 색(色)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치(癡)요, 둘째는 애(愛)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유견(有見)이고, 둘째는 무견(無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무참(無慚)이요, 둘째는 무괴(無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유참(有慚)이요, 둘째는 유괴(有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진지(盡智)요, 둘째는 무생지(無生智)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욕애(欲愛)를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정묘색(淨妙色)이요, 둘째는 부사유(不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진에(瞋恚)를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원증(怨憎)이요, 둘째는 부사유(不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사견(邪見)을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종타문(從他聞)이요, 둘째는 사사유(邪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정견(正見)을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종타문(從他聞)이요, 둘째는 정사유(正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는 것으로서 첫째는 학해탈(學解脫)이요, 둘째는 무학해탈(無學解脫)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는 것으로서 첫째는 유위계(有爲界)요, 둘째는 무위계(無爲界)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마땅히 함께 이것을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3]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세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3불선근(不善根)으로서 첫째는 탐욕(貪欲)이요, 둘째는 진에(瞋恚)이며, 셋째는 우치(愚癡)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근으로서 첫째는 불탐(不貪)이요, 둘째는 불에(不恚))이며, 셋째는 불치(不癡)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행(不善行)으로서 첫째는 불선신행(不善身行)이요, 둘째는 불선구행(不善口行)이며, 셋째는 불선의행(不善意行)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행으로서 첫째는 신(身)불선행이요, 둘째는 구(口)불선행이며, 셋째는 의(意)불선행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악행(惡行)으로서 첫째는 신(身)악행이요, 둘째는 구(口)악행이며, 셋째는 의(意)악행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행으로서 신선행과 구선행과 의선행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상(不善想)으로서 욕상(欲想)ㆍ진상(瞋想)ㆍ해상(害想)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상(善想)으로서 무욕상(無欲想)ㆍ무진상(無瞋想)ㆍ무해상(無害想)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사(不善思)로서 욕사(欲思)ㆍ에사(恚思)ㆍ해사(害思)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사(善思)로서 무욕사(無欲思)ㆍ무에사(無恚思)ㆍ무해사(無害思)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복업(福業)으로서 시업(施業)ㆍ평등업(平等業)ㆍ사유업(思惟業)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수(受)로서 낙수(樂受)ㆍ고수(苦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애(愛)로서 욕애(欲愛)ㆍ유애(有愛)ㆍ무유애(無有愛)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유루(有漏)로서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화(火)로서 욕화(欲火)ㆍ에화(恚火)ㆍ우치화(愚癡火)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구(求)로서 욕구(欲求)ㆍ유구(有求)ㆍ범행구(梵行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증성(增盛)으로서 아증성(我增盛)ㆍ세증성(世增盛)ㆍ법증성(法增盛)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界)로서 욕계(欲界)ㆍ에계(恚界)ㆍ해계(害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界)로서 출리계(出離界)ㆍ무에계(無恚界)ㆍ무해계(無害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界)로서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ㆍ진계(盡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취(聚)로서 계취(界聚)ㆍ정취(定聚)ㆍ혜취(慧聚)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戒)로서 증성계(增盛戒)ㆍ증성의(增盛意)ㆍ증성혜(增盛慧)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삼매(三昧)로서 공삼매(空三昧)ㆍ무원삼매(無願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상(相)으로서 지식상(止息相)ㆍ정근상(精勤相)ㆍ사상(捨相)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명(明)으로서 자식숙명지명(自識宿命智明)ㆍ천안지명(天眼智明)ㆍ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변화(變化)로서 첫째는 신족변화(神足變化)요, 둘째는 지타심수의설법(知他心隨意說法)이며, 셋째는 교계(敎誡)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욕생본(欲生本)으로서 첫째는 현욕(現欲)으로 말미암아 인간이나 천상에 나는 것이며, 둘째는 화욕(化欲)으로 말미암아 화자재천(化自在天)에 나는 것이며, 셋째는 타화욕(他化欲)으로 말미암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낙생(樂生)으로서 첫째는 중생이 저절로 성취하여[自然成辦] 환락심(歡樂心)을 내는 것이 마치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처음 태어났을 때와 같은 것이요, 둘째는 중생이 생각[念]을 낙(樂)으로 삼아 스스로 착하다고 외치는 것이 광음천(光音天)과 같은 것이며, 셋째는 지식락(止息樂)을 얻은 것이 변정천(遍淨天)과 같은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고(苦)로서 행고(行苦)ㆍ고고(苦苦)ㆍ변역고(變易苦)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근(根)으로서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ㆍ지이근(知已根)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당(堂)으로서 현성당(賢聖堂)ㆍ천당(天堂)ㆍ범당(梵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발(發)로서 견발(見發)ㆍ문발(聞發)ㆍ의발(疑發)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론(論)으로서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논(論)이 있었으며, 미래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요 이런 논이 있을 것이며, 현재에 이런 일이 있고 이런 논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취(聚)로서 정정취(正定聚)ㆍ사정취(邪定聚)ㆍ부정취(不定聚)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우(憂)로서 신우(身憂)ㆍ구우(口憂)ㆍ의우(意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장로(長老)로서 연기장로(年耆長老)ㆍ법장로(法長老)ㆍ작장로(作長老)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안(眼)으로서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正法]이라고 한다.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고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4]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네 가지 바른 법을 설명하셨으니 이른바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악업(惡業)으로서 첫째는 거짓말[妄語]이요, 둘째는 이간하는 말[兩舌]이며, 셋째는 욕설[惡口]이요, 넷째는 꾸밈말[綺語]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선행(善行)으로서 첫째는 진실한 말[實語]이요, 둘째는 부드러운 말[軟語]이며 셋째는 꾸밈이 없는 말[不綺語]이요, 넷째는 이간하지 않는 말[不兩舌]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럽지 않은 말로서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不見言見]이요,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不聞言聞]이며, 깨닫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不覺言覺]이요,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不知言知]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성어(聖語)로서 본 것은 보았다고 말하는 것[見則言見]이요, 들은 것은 들었다고 말하는 것[聞則言聞]이며, 깨달은 것은 깨달았다 말하는 것[覺則言覺]이요,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는 것[知則言知]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종류의 음식으로서 단식(摶食)ㆍ촉식(觸食)ㆍ염식(念食)ㆍ식식(識食)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受)로서 현재에 고행을 지어 뒤에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요, 현재에 고행을 지어 뒤에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며, 현재에 즐거운 행을 지어 뒤에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요, 현재에 즐거운 행을 지어 뒤에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受)로서 욕수(欲受)ㆍ아수(我受)ㆍ계수(戒受)ㆍ견수(見受)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박(縛)으로서 탐욕신박(貪欲身縛)ㆍ진에신박(瞋恚身縛)ㆍ계도신박(戒盜身縛)ㆍ아견신박(我見身縛)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자(刺)로서 욕자(欲刺)ㆍ에자(恚刺)ㆍ견자(見刺)ㆍ만자(慢刺)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생(生)으로서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념처(念處)이다. 여기서 비구는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요, 외신신관(外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해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며, 내외신신관(內外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수관(受觀)ㆍ의관(意觀)ㆍ법관(法觀)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의단(意斷)으로 여기서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법(惡法)은 방편으로써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악법은 방편으로써 멸하게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善法)은 방편으로써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선법은 방편으로써 깊이 생각하여 그것을 더하고 넓히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신족(神足)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사유욕정멸행(思惟欲定滅行)을 성취한다. 정진정(精進定)ㆍ의정(意定)ㆍ사유정(思惟定)도 또한 그러하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선(禪)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악(惡)과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고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는 것이요, 각(覺)과 관(觀)이 그쳐 안으로[內信] 한마음[一心]이 되어 각(覺)도 없고 관(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에 들어가는 것이며, 기쁨을 떠나 평정을 닦아 생각이 나아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身樂]을 알고 모든 성인이 구하는 기억[憶念]ㆍ평정[捨]ㆍ즐거움[樂]이 있는 제3선에 들어가는 것이요, 괴로움도 멸하고 즐거움의 행도 여의는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다 멸했으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범당(梵堂)으로서 첫째는 자애로움[慈]이요, 둘째는 불쌍히 여김[悲]이며, 셋째는 기뻐함[喜]이요, 넷째는 평정[捨]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무색정(無色定)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일체의 색(色)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고, 먼저 성냄의 생각[瞋恚想]을 없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무량한 공처(空處)를 생각하는 것이요,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들어가는 것이며, 식처를 버리고 이미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가는 것이요,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법족(法足)으로서 탐하지 않는 법족[不貪法足]이요, 성내지 않는 법족이며, 바른 생각의 법족[正念法足]이요, 바른 선정의 법족[正定法足]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현성족(賢聖族)으로서 여기서 비구들은 의복에 만족할 줄 알아 좋은 것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것을 만나도 걱정하지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금기(禁忌)할 바를 알고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알아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그 일을 성취하여 빠짐도 없고 줄어듦도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을 성취할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을 첫 번째 만족할 줄 아는 데에 머무는 현성족[第一知足住賢聖族]이라고 한다. 본래부터 지금까지 아직 항상 고뇌하여 산란하지 않고, 모든 하늘과 악마ㆍ제석ㆍ사문 바라문과 하늘 및 세간 사람들을 헐거나 꾸짖지 않으며, 음식ㆍ평상ㆍ와구(臥具)ㆍ병들고 허약할 때의 의약 등 모두 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섭법(攝法)으로서 혜시(惠施)ㆍ애어(愛語)ㆍ이인(利人)ㆍ등리(等利)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다원지(須陀洹支)로서 비구들이 부처님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법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스님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계율에 있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증(受證)으로서 견색수증(見色受證)ㆍ신수멸증(身受滅證)ㆍ염숙명증(念宿命證)ㆍ지루진증(知漏盡證)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도(道)로서 고지득(苦遲得)ㆍ고속득(苦速得)ㆍ낙지득(樂遲得)ㆍ낙속득(樂速得)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성제(聖諦)로서 고성제(苦聖諦)ㆍ고집성제(苦集聖諦)ㆍ고멸성제(苦滅聖諦)ㆍ고출요성제(苦出要聖諦)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사문과(沙門果)로서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아나함과(阿那含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처(處)로서 실처(實處)ㆍ시처(施處)ㆍ지처(智處)ㆍ지식처(止息處)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지(智)로서 법지(法智)ㆍ미지지(未知智)ㆍ등지(等智)ㆍ지타인심지(知他人心智)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변재(辯才)로서 법변(法辯)ㆍ의변(義辯)ㆍ사변(詞辯)ㆍ응변(應辯)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식주처(識住處)로서 색식주(色識住)는 색을 연(緣)으로 하여 색(色)에 머물며 애(愛)와 더불어 더하고 자라난다[增長]. 수(受)ㆍ상(想)ㆍ행(行)도 또한 그와 같이 머문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액(扼)으로서 욕액(欲扼)ㆍ유액(有扼)ㆍ견액(見扼)ㆍ무명액(無明扼)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무액(無扼)으로서 무욕액(無欲扼)ㆍ무유액(無有扼)ㆍ무견액(無見扼)ㆍ무무명액(無無明扼)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정(淨)으로서 계정(戒淨)ㆍ심정(心淨)ㆍ견정(見淨)ㆍ도의정(度疑淨)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지(知)로서 받아야 할 것을 받을 줄 알고, 행해야 할 것을 행할 줄 알며, 즐겨야 할 것을 즐길 줄 알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위의(威儀)로서 가야 할 때에 갈 줄 알고, 머물러야 할 때에 머물 줄 알며, 앉아야 할 때에 앉을 줄 알고, 누워야 할 때에 누울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사유(思惟)로서 소사유(少思惟)ㆍ광사유(廣思惟)ㆍ무소유사유(無所有思惟)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기론(記論)으로서 결정기론(決定記論)ㆍ분별기론(分別記論)ㆍ힐문기론(詰問記論)ㆍ지주기론(止住記論)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의 4불호법(不護法)으로서 여래는 신행(身行)이 청정하고 모자라거나[闕] 샘[漏]이 없어 저절로 방호(防護)된다. 구행(口行)의 청정ㆍ의행(意行)의 청정ㆍ명행(命行)의 청정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일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5]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다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5입(入)으로서 눈의 빛깔[眼色]ㆍ귀의 소리[耳聲]ㆍ코의 냄새[鼻香]ㆍ혀의 맛[舌味]ㆍ몸의 닿임[身觸]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으로서 색수음(色受陰)ㆍ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개(盖)로서 탐욕개(貪欲盖)ㆍ진에개(瞋恚盖)ㆍ수면개(睡眠盖)ㆍ도희개(掉戱盖)ㆍ의개(疑盖)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하결(下結)로서 신견결(身見結)ㆍ계도결(戒盜結)ㆍ의결(疑結)ㆍ탐욕결(貪欲結)ㆍ진에결(瞋恚結)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상결(上結)로서 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ㆍ무명(無明)ㆍ만(慢)ㆍ도(掉)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근(根)으로서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력(力)으로서 신력(信力)ㆍ정진력(精進力)ㆍ염력(念力)ㆍ정력(定力)ㆍ혜력(慧力)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멸진지(滅盡枝)로서 첫째 비구는 불여래(佛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의 10호(號)를 구족한 이를 믿는 것이요, 둘째 비구는 병이 없어 몸이 항상 안온한 것이며, 셋째는 순박하고 곧아 아첨이 없는 것이니 능히 이러한 자에게 여래께서는 곧 열반으로 가는 길을 보이신다. 넷째는 스스로 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착란(錯亂)하지 않게 하여 전에 외운 것을 기억해 잊지 않는 것이요, 다섯째는 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을 잘 관찰하여 현성(賢聖)의 행으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는 것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발(發)로서 비시발(非時發)ㆍ허발(虛發)ㆍ비의발(非義發)ㆍ허언발(虛言發)ㆍ무자발(無慈發)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선발(善發)로서 시발(時發)ㆍ실발(實發)ㆍ의발(義發)ㆍ화언발(和言發)ㆍ자심발(慈心發)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5증질(憎嫉)로서 주처증질(住處憎嫉)ㆍ단월증질(檀越憎嫉)ㆍ이양증질(利養憎嫉)ㆍ색증질(色憎嫉)ㆍ법증질(法憎嫉)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취해탈(趣解脫)로서 첫째는 몸의 부정상(不淨想)이요, 둘째는 음식의 부정상이며, 셋째는 일체행의 무상상(無常想)이요, 넷째는 일체 세간의 불가락상(不可樂想)이며, 다섯째는 죽음의 상[死想]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출요계(出要界)로서 첫째는 비구는 욕심에 대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동요되지도 않으며 또 친근하지도 않는다. 다만 출요(出要)를 생각하여 멀리 여의기를 즐기고 친근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다루어 부드럽게 하고 출요로 욕심을 여의며 저 욕심에 의지해 일어나는 모든 번뇌[漏]의 얽매임도 또한 다 버리고 멸하여 해탈을 얻는다. 이것을 욕출요(欲出要)라 한다. 진에출요(瞋恚出要)ㆍ질투출요(嫉妬出要)ㆍ색출요(色出要)ㆍ신견출요(身見出要)도 또한 그와 같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희해탈입(喜解脫入)이다. 만일 비구가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한적한 곳을 즐겨 마음을 오로지 하면 알지 못하던 것을 알 수 있고, 다하지 못한 것을 다할 수 있으며, 편안하지 못하던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나니,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여기서 비구는 여래의 설법을 듣거나 혹은 범행자(梵行者)의 말을 듣거나 혹은 스승[師長]의 설법을 듣고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여 법의 뜻을 분별하면 마음의 환희를 얻고, 마음의 환희를 얻고 나면 법애(法愛)를 얻으며, 법애를 얻고 나면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고,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면 곧 선정(禪定)을 얻으며, 선정을 얻고 나면 진실한 지견(知見)을 얻는다. 이것을 처음의 해탈입(解脫入)이라 한다. 여기서 비구는 법을 듣고 기뻐한 뒤에는 그것을 받아 지녀 외우고, 또한 기뻐하여 남을 위해 설명하며, 또한 기뻐하여 사유(思惟)하고 분별하고 또한 기뻐하여 법에 대해 선정[定]을 얻는 것이니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인(人)6)으로서 중반열반(中般涅槃)07)ㆍ생반열반(生般涅槃)8)ㆍ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9)ㆍ유행반열반(有行般涅槃)10)ㆍ상류아가니타(上流阿迦尼吒)11)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우리는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6) 다섯 종류의 아나함(阿那含), 다섯 종류의 불환과(不還果)라고 쓰기도 한다. 즉 불환과의 지위에 오른 성자(聖者)로서, 근기에 영리함과 둔함이 있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는데 선후(先後)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섯 종류로 나눈 것이다.
7) 지위에 오른 성자가 욕계(欲界)에서 죽어 색계(色界)에 태어나는 중유(中有)의 지위로 아라한과를 증득하면 반열반(般涅槃)에 들게 된다.
8) 성자가 욕계로부터 색계에 태어나서 오래지 않아 성도(聖道)를 일으켜서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9) 성자가 색계에 태어났으나 수행을 게을리하여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10) 태어나서 거기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하여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11) 초선(初禪)에 태어난 불환과의 성자가 다시 위의 하늘인 색구경천(色究竟天)에 태어나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6]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여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내육입(內六入)으로서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ㆍ의입(意入)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외육입(外六入)으로서 색입(色入)ㆍ성입(聲入)ㆍ향입(香入)ㆍ미입(味入)ㆍ촉입(觸入)ㆍ법입(法入)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식신(識身)으로서 안식신(眼識身)ㆍ이식신(耳識身)ㆍ비식신(鼻識身)ㆍ설식신(舌識身)ㆍ신식신(身識身)ㆍ의식신(意識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촉신(觸身)으로서 안촉신(眼觸身)ㆍ이촉신(耳觸身)ㆍ비촉신(鼻觸身)ㆍ설촉신(舌觸身)ㆍ신촉신(身觸身)ㆍ의촉신(意觸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6수신(受身)으로서 안수신(眼受身)ㆍ이수신(耳受身)ㆍ비수신(鼻受身)ㆍ설수신(舌受身)ㆍ신수신(身受身)ㆍ의수신(意受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상신(想身)으로서 색상(色想)ㆍ성상(聲想)ㆍ향상(香想)ㆍ미상(味想)ㆍ촉상(觸想)ㆍ법상(法想)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사신(思身)으로서 색사(色思)ㆍ성사(聲思)ㆍ향사(香思)ㆍ미사(味思)ㆍ촉사(觸思)ㆍ법사(法思)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애신(愛身)으로서 색애신(色愛身)ㆍ성애신(聲愛身)ㆍ향애신(香愛身)ㆍ미애신(味愛身)ㆍ촉애신(觸愛身)ㆍ법애신(法愛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쟁본(諍本)이다. 만일 비구가 성내기를 좋아해 버리지 못하고 여래를 공경하지 않으며, 또한 법을 공경하지 않고 또한 스님 대중을 공경하지 않으며, 계(戒)에 있어서 샘[漏]이 있고 물들고 더러워 깨끗하지 못하며,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다투기를 좋아해 남의 미움을 사고 깨끗한 대중을 어지럽게 하며 하늘과 사람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스스로 안을 관찰[內觀]하라. 만일 성냄과 원한을 가지고 저렇게 대중을 어지럽히는 것이 있거든 마땅히 화합(和合)한 대중을 모아 널리 방편을 베풀어 이 다툼의 근본을 뽑아라. 너희들은 또 마땅히 생각을 오로지 하여 스스로 관찰하라. 만일 맺힌 원한이 이미 다했거든 마땅히 다시 방편으로써 그 마음을 막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라. 모든 비구들이여, 성내고 뒤틀어져 자상하지 못하고 인색하고 질투하며 교활하고 허망하여 스스로 자기 견해로 인해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고도 버리지 못하고 사견(邪見)에서 헤매고 변견(邊見)과 함께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계(界)로서 지계(地界)ㆍ화계(火界)ㆍ수계(水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찰행(察行)으로서 눈은 빛깔을 살피고 귀는 소리를 살피며, 코는 냄새를 살피고, 혀는 맛을 살피며, 몸은 촉감을 살피고, 뜻은 법을 살피는 것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출요계(出要界)이다. 만일 비구가 '나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아도 다시 진에(瞋恚)가 생긴다'고 한다면, 다른 비구들은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를 비방하지 말라. 여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자애로움의 해탈[慈解脫]을 닦고자 하면서 다시 성내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성내는 마음을 다 없앤 뒤에 비로소 자애로움을 증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나는 불쌍히 여기는 해탈[悲解脫]을 행해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기쁨의 해탈[喜解脫]을 행해도 걱정하고 번민하는 마음이 생기며, 버림의 해탈[捨解脫]을 행해도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무아(無我)의 행을 행해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며, 무상(無想)의 행을 행해도 숱한 어지러운 생각이 생긴다'고 한다면 또한 그와 같이 할 것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무상(無上)으로서 견무상(見無上)ㆍ문무상(聞無上)ㆍ이양무상(利養無上)ㆍ계무상(戒無上)ㆍ공경무상(恭敬無上)ㆍ억념무상(憶念無上)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사념(思念)으로서 불념(佛念)ㆍ법념(法念)ㆍ승념(僧念)ㆍ계념(戒念)ㆍ시념(施念)ㆍ천념(天念)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7]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일곱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7비법(非法)으로서 믿음이 없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慚]이 없으며,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愧]이 없고, 들은 것이 적고, 게으르며, 잊음이 많고, 지혜가 없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정법(正法)으로서 믿음이 있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있고, 들은 것이 많으며, 꾸준히 힘쓰고, 모두 기억하며, 지혜가 많은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로서 혹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초식주(初識住)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른데 광음천(光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공처(空處)에 머물고 식처(識處)에 머물며 불용처(不用處)에 머문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근법(勤法)이다. 첫째는 비구가 계행(戒行)에 힘쓰는 것이고, 둘째는 탐욕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며, 셋째는 삿된 소견을 깨뜨리려고 애쓰는 것이요, 넷째는 많이 듣기[多聞]를 힘쓰는 것이며, 다섯째는 정진(精進)에 힘쓰는 것이요, 여섯째는 바른 생각[正念]에 힘쓰는 것이며 일곱째는 선정에 힘쓰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상(想)으로서,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음식이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 죽음의 생각[死想], 무상(無常)하다는 생각, 무상은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 괴로움은 나[我]가 없다는 생각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삼매구(三昧具)로서 바른 견해[正見]ㆍ바른 생각[正思]ㆍ바른 말[正言]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기억[正念]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각의(覺意)로서 염각의(念覺意)ㆍ법각의(法覺意)ㆍ정진각의(精進覺意)ㆍ희각의(喜覺意)ㆍ의각의(猗覺意)ㆍ정각의(定覺意)ㆍ호각의(護覺意)이다.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8]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여덟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세간의 여덟 가지 법으로서 이로움[利]과 쇠함[衰]과 헐뜯음[毁]ㆍ기림[譽]ㆍ칭찬ㆍ비방ㆍ괴로움ㆍ즐거움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해탈로써 색(色)을 대하여 색이라고 관찰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요, 마음 속으로 색(色)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 색을 관찰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깨끗한 해탈이 세 번째 해탈이요, 색(色)이라는 생각을 초월하여 성내는 생각[瞋恚想]을 없애고 공처(空處)해탈에 머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공처를 초월하여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초월하여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초월하여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유상무상처를 초월하여 상지멸(想知滅)에 머무는 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성도(聖道)로서 바른 견해ㆍ바른 생각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기억ㆍ바른 선정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인(人)으로서 수다원향(須陀洹向)ㆍ수다원ㆍ사다함향(斯陀含向)ㆍ사다함ㆍ아나함향(阿那含向)ㆍ아나함ㆍ아라한향(阿羅漢向)ㆍ아라한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9]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아홉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9중생거(衆生居)로서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중생거(衆生居)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르니 광음천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생각도 없고 깨달아 아는 것도 없는데 무상천(無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공처에 머무는데 이것이 일곱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식처(識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여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여덟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아홉 번째 중생거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10]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열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10무학법(無學法)으로서 무학의 바른 견해ㆍ바른 생각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기억ㆍ바른 방편ㆍ바른 선정ㆍ바른 지혜ㆍ바른 해탈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그 때 세존께서는 사리불의 말을 인가(印可)하셨고, 모든 비구들은 사리불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9 권
[제2분] ④
10. 십상경(十上經)1)
1) 경의 이역 경전으로는 후한 시대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이 있으며, 참고가 될 만한 경문으로는 『장아함경』 제8권 9번째 소경인 『중집경(衆集經)』과 제9권 11번째 소경인 『증일경(增一經)』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앙가국(鴦伽國)을 유행하시면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첨파(瞻婆)성으로 나아가 가가(伽伽)못 가에 머무시면서 보름날 달이 가득 찼을 때, 세존께서 맨 땅에 앉으시어 대중들에게 둘러싸인 채 밤새도록 설법하셨다.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정근하면서 잠자지 않고 설법을 듣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등병을 앓아 조금 쉬고 싶으니, 너는 이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라.”
사리불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곧 승가리(僧伽梨)를 네 겹으로 접어 오른쪽 옆구리에 깔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그 때 장로 사리불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했다.
“이제 내가 설법하는 상ㆍ중ㆍ하의 말은 다 참되고 바르며 의미(義味)를 구족하고 범행(梵行)이 청정하다. 그대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1]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사리불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했다.
“열 가지 상법(上法)이 있다. 그것은 온갖 결박(結縛)을 끊고 니원(泥洹:열반)에 이르게 하여 괴로움의 끝[苦際]을 다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또 550가지 법을 구족하고 있는데 이제 마땅히 밝혀 주리니 그대들은 잘 들으라.
모든 비구들이여, 1성법(成法)ㆍ1수법(修法)ㆍ1각법(覺法)ㆍ1멸법(滅法)ㆍ1퇴법(退法)ㆍ1증법(增法)ㆍ1난해법(難解法)ㆍ1생법(生法)ㆍ1지법(知法)ㆍ1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1성법이라 하는가? 모든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수법이라 하는가? 항상 스스로 자기 몸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1각법이라 하는가? 번뇌를 내는 접촉[有漏觸]을 말한다.
어떤 것을 1멸법이라 하는가? 아만(我慢)을 말한다.
어떤 것을 1퇴법(退法)이라 하는가? 오로관(惡露觀)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증법이라 하는가? 오로관을 말한다.
어떤 것을 1난해법이라 하는가? 간단이 없는[無間] 선정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생법이라 하는가? 유루해탈(有漏解脫)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지법이라 하는가? 모든 중생은 다 음식을 우러러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증법이라 하는가? 걸림 없는 마음의 해탈[無礙心解脫]을 말한다.
[2]
또 2성법(成法)ㆍ2수법(修法)ㆍ2각법(覺法)ㆍ2멸법(滅法)ㆍ2퇴법(退法)ㆍ2증법(增法)ㆍ2난해법(難解法)ㆍ2생법(生法)ㆍ2지법(知法)ㆍ2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2성법이라 하는가?
제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에게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2수법이라 하는가? 지(止)와 관(觀)을 말한다.
어떤 것을 2각법이라 하는가? 명(名)과 색(色)을 말한다.
어떤 것을 2멸법이라 하는가? 무명(無明)과 애(愛)를 말한다.
어떤 것을 2퇴법이라 하는가? 계율을 허물고 바른 견해를 깨뜨리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2증법(增法)이라 하는가? 계율을 갖추고 바른 견해를 갖추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2난해법이라 하는가?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 중생에게 때[垢]가 생기고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 중생이 청정해지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2생법이라 하는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이다.
어떤 것을 2지법이라 하는가? 시처(是處:有爲界)와 비처(非處:有爲處)를 말한다.
어떤 것을 2증법(證法)이라 하는가? 명(明)과 해탈을 말한다.
[3]
또 3성법(成法)ㆍ3수법(修法)ㆍ3각법(覺法)ㆍ3멸법(滅法)ㆍ3퇴법(退法)ㆍ3증법(增法)ㆍ3난해법(難解法)ㆍ3생법(生法)ㆍ3지법(知法)ㆍ3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3성법이라 하는가?
첫째는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이요, 둘째는 귀로 설법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며, 셋째는 법다운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3수법이라 하는가?
3삼매(三昧)를 말하나니, 곧 공(空)삼매ㆍ무상(無相)삼매ㆍ무작(無作)삼매이다.
어떤 것을 3각법이라 하는가?
3수(受)를 말하나니, 곧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어떤 것을 3멸법이라 하는가?
3애(愛)를 말하나니, 곧 욕애(欲愛)ㆍ유애(有愛)ㆍ무유애(無有愛)이다.
어떤 것을 3퇴법이라 하는가?
3불선근(不善根)을 말하나니, 곧 탐불선근(貪不善根)ㆍ에불선근(恚不善根)ㆍ치불선근(癡不善根)이다.
어떤 것을 3증법이라 하는가?
3선근을 말하나니, 곧 무탐선근(無貪善根)ㆍ무에선근(無恚善根)ㆍ무치선근(無癡善根)이다.
어떤 것을 3난해법이라 하는가?
세 가지 알기 어려운 것[難解]을 말하나니, 곧 현성(賢聖)에 대해 알기 어렵고, 법을 들어도 알기 어려우며, 여래에 대하여 알기 어려운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3생법이라 하는가?
3상(相)을 말하나니, 곧 식지상(息止相)ㆍ정진상(精進相)ㆍ사리상(捨離相)이다.
어떤 것을 3지법이라 하는가?
3출요계(出要界)를 말하나니, 곧 욕계(欲界)의 경계를 벗어나 색계(色界)에 이르고, 색계의 경계를 벗어나 무색계에 이르러, 일체의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버려 여의는 것으로서 그것을 다함[盡]이라고 이름한다.
어떤 것을 3증법이라 하는가?
3명(明)을 말하나니, 곧 숙명지(宿命智)ㆍ천안지(天眼智)ㆍ누진지(漏盡智)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30가지 법이라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나니,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4]
다시 4성법(成法)ㆍ4수법(修法)ㆍ4각법(覺法)ㆍ4멸법(滅法)ㆍ4퇴법(退法)ㆍ4증법(增法)ㆍ4난해법(難解法)ㆍ4생법(生法)ㆍ4지법(知法)ㆍ4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4성법이라 하는가?
4윤법(輪法)을 말하나니, 첫째는 중국(中國:中印度)에 머물러 사는 것이고, 둘째는 선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이며, 셋째는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요, 넷째는 전생[宿]에 선의 근본[根本]을 심은 것이다.
어떤 것을 4수법이라 하는가?
4념처(念處)를 말하나니, 곧 비구는 내신신(內身身)을 관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외신신(外身身)을 관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내외신신(內外身身)을 관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수의법(受意法)을 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4각법이라 하는가?
4식(食)을 말하나니, 곧 단식(摶食)ㆍ촉식(觸食)ㆍ염식(念食)ㆍ식식(識食)이다.
어떤 것을 4멸법이라 하는가?
4수(受)를 말하나니, 곧 욕수(欲受)ㆍ아수(我受)ㆍ계수(戒受)ㆍ견수(見受)이다.
어떤 것을 4퇴법이라 하는가?
4액(扼)을 말하나니, 곧 욕액(欲扼)ㆍ유액(有扼)ㆍ견액(見扼)ㆍ무명액(無明扼)이다.
어떤 것을 4증법(增法)이라 하는가?
4무액(無扼)을 말하나니, 곧 무욕액(無欲扼)ㆍ무유액(無有扼)ㆍ무견액(無見扼)ㆍ무무명액(無無明扼)이다.
어떤 것을 4난해법이라 하는가?
4성제(聖諦)를 말하나니, 곧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진제(盡諦:滅諦)ㆍ도제(道諦)이다.
어떤 것을 4생법이라 하는가?
4지를 말하나니, 곧 법지(法智)ㆍ미지지(未知智)ㆍ등지지(等知智)ㆍ타심지(他心智)이다.
어떤 것을 4지법이라 하는가?
4변재를 말하나니, 곧 법변(法辯)ㆍ의변(義辯)ㆍ사변(辭辯)ㆍ응변(應辯)이다.
어떤 것을 4증법(證法)이라 하는가?
4사문과(沙門果)를 말하나니, 곧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아나함과(阿那含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40가지 법이라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으니,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5]
다시 5성법(成法)ㆍ5수법(修法)ㆍ5각법(覺法)ㆍ5멸법(滅法)ㆍ5퇴법(退法)ㆍ5증법(增法)ㆍ5난해법(難解法)ㆍ5생법(生法)ㆍ5지법(知法)ㆍ5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5성법이라 하는가?
5멸진지(滅盡枝)를 말하나니, 첫째는 불(佛)ㆍ여래(如來)ㆍ지진(至眞) 등 10호(號)를 구족하신 분을 믿는 것이요, 둘째는 병이 없어 몸이 항상 안온한 것이며, 셋째는 질박하고 곧고 아첨함이 없어 바로 여래(如來) 열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을 오로지해 산란하지 않고 항상 외워 잊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법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잘 관찰하여 현성(賢聖)의 행으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5수법이라 하는가?
5근(根)을 말하나니, 곧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이다. 어떤 것을 5각법이라 하는가? 5수음(受陰)을 말하나니, 곧 색수음(色受陰)ㆍ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다. 어떤 것을 5멸법이라 하는가? 5개(蓋)를 말하나니, 곧탐욕개(貪欲蓋)ㆍ진에개(瞋恚蓋)ㆍ수면개(睡眠蓋)ㆍ도희개(掉戲蓋)ㆍ의개(疑蓋)이다.
어떤 것을 5퇴법이라 하는가?
5심애결(心碍結)을 말하나니, 첫째는 비구가 부처님을 의심하는 것이니, 부처님을 의심하면 곧 친근하지 않고 친근하지 않으면 곧 공경하지 않나니, 이것이 초심애결(初心碍結)이다. 또 비구가 법(法)에 대해서, 승가[衆]에 대해서, 계(戒)에 대해서 뚫려 새는[穿漏] 행과 참되고 바르지 않은 행과 더럽고 물든 행이 있어 계(戒)를 친근하지도 않고 또한 공경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것이 4심애결이다. 또 비구가 범행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나쁜 마음을 내고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아 추악한 말로 헐뜯어 꾸짖는 것, 이것을 5심애결이라 한다.
어떤 것을 5증법(增法)이라 하는가?
5희본(喜本)을 말하나니, 첫째는 기쁨[悅]이요, 둘째는 생각[念]이며, 셋째는 의지함[?]이요, 넷째는 즐거움[樂]이며, 다섯째는 선정[定]이다.
어떤 것을 5난해법이라 하는가?
5해탈입(解脫入)을 말하나니, 만일 비구가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고 한적한 곳을 즐겨 전념일심(專念一心)하여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고 다하지 못한것[未盡]을 다하며, 편안하지 못한 것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만일 비구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거나 혹은 범행자의 말을 듣거나 혹은 장로[師長]의 말을 듣고 생각하고 관찰하여 법의 뜻을 분별하면 마음에 곧 기쁨을 얻고, 기쁨을 얻은 뒤에는 다시 법애(法愛)를 얻고, 법애를 얻은 뒤에는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며, 몸과 마음이 안온해진 뒤에는 곧 선정을 얻고, 선정을 얻은 뒤에는 여실한 지혜를 얻을 것이다. 이것을 초해탈입(初解脫入)이라고 한다. 여기서 비구는 법을 듣는 것을 기뻐하고, 받아 지니고 외우는 것 또한 기뻐하며, 남을 위해 설법하는 것 또한 기뻐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 또한 기뻐하며, 법에서 선정을 얻어 기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5생법이라 하는가?
현성(賢聖)의 5지정(智定)을 말하나니, 첫째는 삼매를 닦아 현생에도 즐겁고 내생에도 즐거워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요, 둘째는 현성의 무애(無愛)로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부처님과 현성들이 수행했던 것으로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요, 넷째는 적멸상(寂滅相)을 의지해 도반 없이 홀로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삼매에 한마음으로 들고 한마음으로 일어나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다.
어떤 것을 5지법이라 하는가?
5출요계(出要界)를 말하나니, 첫째는 비구가 탐욕에 대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또한 친근히 하지도 않고 다만 출요(出要)만을 생각하여 멀리 여의기를 좋아하며 친근하여 게으르지 않으면 그 마음은 조화롭고 부드러워진다. 출요로 욕심을 여의면 욕심으로 인해 일어난 번뇌[漏]도 또한 다 멸해 버려 해탈을 증득하게 된다. 이것을 욕출요(欲出要)라고 한다. 진에출요(瞋恚出要)ㆍ질투출요(嫉妬出要)ㆍ색출요(色出要)ㆍ신견출요(身見出要)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5증법(證法)이라 하는가?
5무학취(無學聚)를 말하나니, 곧 무학의 계취(戒聚)ㆍ정취(定聚)ㆍ혜취(慧聚)ㆍ해탈취(解脫聚)ㆍ해탈지견취(解脫知見聚)이다.
이것을 50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나니,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6]
다시 6성법(成法)ㆍ6수법(修法)ㆍ6각법(覺法)ㆍ6멸법(滅法)ㆍ6퇴법(退法)ㆍ6증법(增法)ㆍ6난해법(難解法)ㆍ6생법(生法)ㆍ6지법(知法)ㆍ6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6성법이라 하는가?
6중법(重法)을 말하나니, 만일 비구가 6중법을 닦으면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대중과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홀로 다니더라도 잡됨이 없을 것이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여기서 비구가 몸으로 항상 자애(慈愛)를 행해 범행자(梵行者)를 공경하고 어질고 사랑하는 마음에 머물면 그것을 이름하여 중법(重法)이라 하나니,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여 대중과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홀로 다니더라도 잡됨이 없을 것이다.
다시 또 비구가 입의 자애와 뜻의 자애를 행해 법으로써 공양을 받고 또 발우에 남은 것을 남과 나누어 저와 남[彼此]이라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 다시 비구는 현성의 행하는 계(戒)를 범하지 않고, 헐뜯지 않아 물들고 더러움이 없으며, 지자(智者)가 칭찬하는 계를 잘 구족하고 지녀 정의(定意)를 성취하는 것이다.
다시 비구가 현성의 출요법(出要法)을 평등하게 성취하여 괴로움을 다하며 바른 견해와 모든 범행을 가지면 이것을 이름하여 중법이라 하나니, 그것은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대중과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홀로 다니더라도 잡됨이 없을 것이다.
어떤 것을 6수법이라 하는가?
6염(念)을 말하나니,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시(念施)ㆍ염천(念天)이다.
어떤 것을 6각법이라 하는가?
6내입(內入)을 말하나니,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ㆍ의입(意入)이다. 어떤 것을 6멸법이라 하는가? 6애(愛)를 말하나니, 색애(色愛)ㆍ성애(聲愛)ㆍ향애(香愛)ㆍ미애(味愛)ㆍ촉애(觸愛)ㆍ법애(法愛)이다.
어떤 것을 6퇴법이라 하는가?
6불경법(不敬法)을 말하나니,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고[不敬佛], 법을 공경하지 않으며[不敬法], 스님을 공경하지 않고[不敬僧], 계를 공경하지 않으며, 선정을 공경하지 않고[不敬定],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不敬父母]이다.
어떠한 것을 6증법(增法)이라 하는가?
6경법(敬法)을 말하나니, 부처님을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며[敬法], 스님을 공경하고[敬僧], 계를 공경하며[敬戒], 선정을 공경하고[敬定], 부모를 공경하는 것[敬父母]이다.
어떤 것을 6난해법이라 하는가?
6무상(無上)을 말하나니, 견무상(見無上)ㆍ문무상(聞無上)ㆍ이양무상(利養無上)ㆍ계무상(戒無上)ㆍ공경무상(恭敬無上)ㆍ염무상(念無上)이다.
어떤 것을 6생법이라 하는가?
6등법(等法)을 말하나니, 여기서 비구는 눈으로 빛깔을 보아도 걱정이 없고 기쁨도 없이 버림[捨]에 머물러 생각을 오로지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며, 법에 대한 의식[意]에 있어서도 걱정하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며 버림에 머물러 생각을 오로지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6지법이라 하는가?
6출요계(出要界)를 말하나니, 만일 비구가 '나는 자비로운 마음을 닦는다'고 말하면서 또 성을 낸다면 다른 비구들이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를 비방하지 말라. 여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자해탈(慈解脫)을 닦으면서 다시 성을 낸다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성내는 마음을 없앤 뒤에야 비로소 자애로움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나는 비해탈(悲解脫)을 행한다'고 하면서 증오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거나, '희해탈(喜解脫)을 행한다'고 하면서 걱정하고 번민하는 마음을 내거나, '사해탈(捨解脫)을 행한다'고 하면서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거나, '나[我]라는 것은 없는 것이라는 행을 행한다'고 하면서 의심하는 마음을 내거나, '무상행(無想行)을 행한다'고 하면서 숱한 어지러운 생각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6증법(證法)이라 하는가?
6신통을 말하나니, 첫째는 신족통증(神足通證)이요, 둘째는 천이통증(天耳通證)이요, 셋째는 지타심통증(知他心通證)이요, 넷째는 숙명통증(宿命通證)이요, 다섯째는 천안통증(天眼通證)이요, 여섯째는 누진통증(漏盡通證)이다.
이것을 60가지 법이라 한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하지 않나니, 여래께서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7]
다시 7성법(成法)ㆍ7수법(修法)ㆍ7각법(覺法)ㆍ7멸법(滅法)ㆍ7퇴법(退法)ㆍ7증법(增法)ㆍ7난해법(難解法)ㆍ7생법(生法)ㆍ7지법(知法)ㆍ7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7성법이라 하는가?
7재(財)를 말하나니, 믿음의 재물[信財]ㆍ계율의 재물[戒財]ㆍ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의 재물[?財]ㆍ남에 대한 부끄러움의 재물[愧財]ㆍ들음의 재물[聞財]ㆍ보시의 재물[施財]ㆍ지혜의 재물[慧財]이니 이것을 7재라 한다.
어떤 것을 7수법이라 하는가?
7각의(覺意)를 말한다. 여기서 비구는 염각의(念覺意)를 닦을 때 탐욕 없는 것[無欲]에 의지하고, 적멸(寂滅)에 의지하며, 멀리 여읨[遠離]에 의지하는 것이다. 법각의(法覺意)를 닦고, 정진각의(精進覺意)를 닦고, 희각의(喜覺意)를 닦고, 의각의(猗覺意)를 닦고, 정각의(定覺意)를 닦고, 사각의(捨覺意)를 닦을 때 탐욕 없는 것에 의지하고 적멸에 의지하며 멀리 여읨에 의지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7각법이라 하는가?
7식주처(識住處)를 말한다. 만약 어떤 중생이 각기 다른 몸에 각기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니 하늘과 사람이 이것이며, 이것이 초식주(初識住)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각기 다른 몸에 한 생각을 하는 것이니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최초로 날 때가 이것이며, 이것이 두 번째 식주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한 몸에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니 광음천이 이것이며, 이것이 세 번째 식주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한 몸에 한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변정천(遍淨天)이 이것이며, 이것은 네 번째 식주이다. 혹 어떤 중생이 공처(空處)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다섯 번째 식주이고, 혹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여섯 번째 식주이다. 혹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일곱 번째 식주이다.
어떤 것을 7멸법이라 하는가?
7사법(使法)을 말하나니, 욕애사(欲愛使)ㆍ유애사(有愛使)ㆍ견사(見使)ㆍ만사(慢使)ㆍ진에사(瞋恚使)ㆍ무명사(無明使)ㆍ의사(疑使)이다.
어떤 것을 7퇴법이라 하는가?
7비법(非法)을 말하나니, 비구가 믿음이 없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으며, 다른 이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없고, 들은 것이 적으며, 게으르고, 잘 잊으며, 지혜가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을 7증법(增法)이라 하는가?
7정법을 말하나니, 비구가 믿음이 있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며, 다른 이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있고, 들은 것이 많으며, 게으르지 않고 굳게 기억하며 지혜가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7난해법이라 하는가?
7정선법(正善法)을 말하나니, 비구가 의(義)를 좋아하고, 법을 좋아하며, 때[時]를 잘 아는 것을 좋아하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좋아하며, 스스로 거두기[自攝]를 좋아하고, 비구 대중 모으기를 좋아하며, 사람을 분별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7생법이라 하는가?
7상(想)을 말하나니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 음식은 부정한 것이다는 생각,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 죽음에 대한 생각, 무상(無常)하다는 생각, 무상한 것이어서 괴롭다는 생각, 괴로운[苦] 것으로서 나[我]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어떤 것을 7지법이라 하는가?
7근(勤)을 말하니, 계행(戒行)에 힘쓰고, 탐욕 없애기에 힘쓰며, 사견(邪見)을 깨뜨리기에 힘쓰고, 많이 듣기에 힘쓰며, 정진에 힘쓰고, 바른 생각에 힘쓰며, 선정에 힘쓰는 것이다.
어떤 것을 7증법(證法)이라 하는가?
7누진력(漏盡力)을 말한다. 여기서 번뇌가 다한 비구는 일체 모든 고(苦)ㆍ집(集)ㆍ멸(滅)ㆍ미(味)ㆍ과(過)ㆍ출요(出要)에 대하여 진실되게 보아 알고, 욕심[欲]을 관찰하기를 불구덩이나 칼과 같이 본다. 욕심을 알고 욕심을 보아, 욕심을 탐하지 않고 마음이 욕심에 머무르지 않는다.
번뇌가 다한 비구[漏盡比丘]는 역순으로 관찰하여, 진실되게 깨달아 알고 진실되게 본다. 그래서 세간의 탐욕과 질투처럼 악하고 불선한 법으로 인해 번뇌[漏]를 일으키지 않는다. 4념처(念處)를 닦되 많이 닦고 많이 행하며, 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와 현성의 여덟 가지 도(道)를 많이 닦고 많이 행한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70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하지 않나니,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8]
다시 8성법(成法)ㆍ8수법(修法)ㆍ8각법(覺法)ㆍ8멸법(滅法)ㆍ8퇴법(退法)ㆍ8증법(增法)ㆍ8난해법(難解法)ㆍ8생법(生法)ㆍ8지법(知法)ㆍ8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8성법이라고 하는가?
8인연을 말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범행(梵行)을 얻지 못하고도 지혜를 얻고, 범행을 얻고 나면 지혜는 더해지고 많아지게 된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여기서 비구는 세존을 의지해 머물거나, 혹 장로[師長]를 의지해 머물거나, 혹 지혜 있는 운 범행자(梵行者)를 의지해 머물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다른 이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을 내고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이것을 첫 번째 인연이라고 한다.
그는 아직 범행을 얻지 못하고도 지혜를 얻고 범행을 얻고 나면 지혜는 더해지고 많아지게 되는데 다시 세존을 의지해 머물면서 때에 따라 청해 묻는다.
'이 법은 무엇을 뜻하며, 어디로 나아가는 것입니까?'
그러면 모든 존장(尊長)들은 그를 위하여 깊은 뜻을 열어 설명하는데 이것을 두 번째 인연이라 한다.
이미 법을 들어 마치고 몸과 마음이 즐겁고 고요해지면 이것을 세 번째 인연이라고 한다.
이미 즐겁고 고요해지고 나서는 도를 방해하는 쓸데없는 잡담을 하지 않으며 대중 속으로 나아가 혹은 스스로 설법하기도 하고 혹은 남에게 설법을 청하기도 하며 다시 현성들의 침묵을 저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네 번째 인연이라 한다.
심오하고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의 의미가 훌륭하고 진실하고 진리가 담긴 법을 많이 듣고 널리 알며 지니고 지켜 잊지 않고 범행(梵行)을 구족하고, 듣고 나서 마음에 들어가 견해가 흔들리지 않으면 이것을 다섯 번째 인연이라 한다.
닦아 익히기를 부지런히 하여 악을 멸하고 선을 늘여가며 힘써 감당하여 법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여섯 번째 인연이라 한다.
지혜로써 일어나고 멸하는 법을 알고 현성이 지향하는 것을 알아 능히 괴로움의 끝을 다한다면, 이것을 일곱 번째 인연이라 한다.
5수음(受陰)의 생겨나는 모양과 멸하는 모양을 관찰하여 '이것은 색(色)이요, 색집(色集)이며, 색멸(色滅)이다. 이것은 수(受)요, 수집(受集)이며, 수멸(受滅)이다. 이것은 상(想)이요, 상집(想集)이며, 상멸(想滅)이다. 이것은 행(行)이요, 행집(行集)이며, 행멸(行滅)이다. 이것은 식(識)이요, 식집(識集)이며, 식멸(識滅)이다'라고 안다면, 이것을 여덟 번째 인연이라고 하는데, 이로 인하여 아직 범행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지혜가 생기고 범행을 얻고 나면 지혜는 더해지고 많아지게 된다.
어떤 것을 8수법이라고 하는가?
현성의 여덟 가지 도를 말하나니, 바른 견해[正見]ㆍ 바른 뜻[正志]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기억[正念]ㆍ바른 선정[正定]이다.
어떤 것을 8각법이라 하는가?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을 말하나니, 이로움[利]ㆍ쇠함[衰]ㆍ헐뜯음[毁]ㆍ기림[譽]ㆍ칭찬[稱]ㆍ비방[譏]ㆍ괴로움[苦]ㆍ즐거움[樂]이다.
어떤 것을 8멸법이라 하는가?
8사법(邪法)을 말하나니, 삿된 견해[邪見]ㆍ삿된 생각[邪思]ㆍ삿된 말[邪語]ㆍ삿된 행동[邪業]ㆍ삿된 생활[邪命]ㆍ삿된 방편[邪方便]ㆍ삿된 기억[邪念]ㆍ삿된 선정[邪定]이다.
어떤 것을 8퇴법이라 하는가? 8해태법(懈怠法)을 말한다.
어떤 것을 8해태라 하는가? 비구가 걸식하여 밥을 얻지 못하면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 나는 마을로 내려가 걸식하였으나 얻지 못해 몸이 몹시 피로하다.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이제 좀 누워서 쉬어야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서 쉬며,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초해태(初懈怠)라 한다. 게으른[懈怠] 비구는 이미 넉넉하게 걸식하여 먹고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침에 마을로 들어가 걸식하여 과하게 얻어 먹고 나니 몸이 나른하고 무겁다.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이제 좀 누워서 쉬어야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쉬며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조금만 일을 하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을 해서 몸이 몹시 피곤하다. 그래서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이제 좀 누워서 쉬어야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할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일 일을 하면 반드시 몸이 몹시 피곤할 것이다. 지금은 좌선도 경행도 하지 말고 미리 누워 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조금 걸어왔더라도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침부터 걸어와서 몸이 몹시 피곤하다. 그래서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나는 이제 좀 누워 쉬어야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조금만 걸을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내일 걸으면 반드시 몹시 피곤해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좌선도 경행도 하지 말고 미리 누워 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6해태(懈怠)라 한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조금만 아프더라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중한 병을 얻어 몹시 피곤하고 여위어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모름지기 누워 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게으른 비구는 앓던 병이 이미 나아도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병이 나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 몸이 여위어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스스로 누워 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8증법(增法)이라 하는가? 8불태(不怠)를 말한다.
어떤 것을 8정진(精進)이라 하는가?
비구가 마을에 들어가 걸식했으나 밥을 얻지 못하고 돌아와 곧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내 몸이 홀가분하여 졸음도 적어졌구나.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며,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래서 비구가 곧 정진하면 이것을 초정진(初精進)이라고 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걸식하여 풍족하게 먹고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여 배불리 먹어 기력이 충만해졌다. 마땅히 힘써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할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좀전에, 일을 하기 위해 도를 닦던 것을 그만뒀었다. 이제는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할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일은 할 일이 있어 내가 도 닦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니, 지금 곧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길을 걸은 일이 있으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침에 길을 걸느라 도 닦는 일을 중단했었다. 지금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길을 걸을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내일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도 닦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니, 지금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병을 앓을 때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중한 병을 얻어 혹 죽을지도 모르니, 지금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병을 앓다가 조금 차도가 있으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병은 처음보다 차도가 있지만 혹 다시 도져서 내가 도 닦던 것을 중단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제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한다. 이것이 여덟 가지이다.
어떤 것을 8난해법이라 하는가?
범행 닦는 것을 방해하는 여덟 가지 여가가 없는 곳[不閑]을 말한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여래ㆍ지진(至眞)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고 적멸무위(寂滅無爲)하여 보리도(菩提道)로 향할 때, 어떤 사람이 지옥 속에 태어난다면 이것을 범행을 닦을 수 없는 여가가 없는 곳[不閑處]이라 한다.
여래ㆍ지진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고 적멸무위하여 보리도로 향할 때 어떤 중생이 축생ㆍ아귀ㆍ장수천(長壽天)의 지식(知識)도 없고 불법(佛法)도 없는 변지(邊地)에 태어난다면, 이것을 범행을 닦을 수 없는 여가가 없는 곳이라 한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等正覺)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고 적멸무위하여 보리도로 향할 때 혹 어떤 중생이 중국(中國:印度)에 태어났으면서도 삿된 견해와 마음을 가지면 악행(惡行)을 성취하여 반드시 지옥에 들어간다. 이것을 범행을 닦을 수 없는 여가가 없는 곳이라고 한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고 적멸무위하여 보리도로 향할 때, 혹 어떤 중생이 중국에 태어났으면서도 귀먹고 눈멀고 벙어리가 되어 법을 듣거나 범행을 닦지 못하면 이것을 범행을 닦을 수 없는 여가가 없는 곳이라고 한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지 않으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거나 적멸무위하거나 보리도로 향하는 이가 없을 때, 어떤 중생이 중국에서 태어나고, 모든 감관[根]을 구족하여 성인의 가르침을 받을 만하지만 부처님을 만나지 못해 범행을 닦을 수 없다면 이것을 여덟 번째 여가가 없는 곳이라 한다.
어떤 것을 8생법이라 하는가?
8대인(大人)의 깨달음을 말한다. 도(道)는 마땅히 욕심이 적은 것으로서 욕심이 많음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만족할 줄 아는 것으로 만족함이 없으면 도가 아니다. 도는 한가하고 고요한 것으로서 여럿이 즐기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스스로 지키는 것으로서 희롱하고 웃고 하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정진하는 것으로서 게으른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생각을 오로지하는 것으로서 많이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뜻을 안정시키는 것으로서 뜻이 산란한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지혜로운 것으로서 어리석은 것은 도가 아니다.
어떤 것을 8지법이라 하는가?
8제입(除入)을 말한다. 안에 색상(色想)을 가지고 바깥의 일부분의 색을 보고 혹 좋다거나 혹 추하다고 항상 관찰하고 항상 생각한다면 이것을 초제입(初除入)이라 한다.
마음 속의 색(色)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바깥의 무량한 색을 보고 혹은 좋다거나 혹은 추하다고 항상 관찰하고 항상 생각한다. 이것을 두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 속에 색(色)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색의 적음을 보고 혹은 좋다거나 혹은 추하다고 항상 관찰하고 항상 생각한다면, 이것을 세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속에 색이라는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무량한 색을 보고 혹 좋다거나 혹 추하다고 항상 관찰하고 항상 생각한다면, 이것을 네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 속에 식이라는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푸른색을 관(觀)하고 그 청색(靑色)ㆍ청광(靑光)ㆍ청견(靑見)을 마치 푸른 연꽃이나 또는 푸른 바라내의(婆羅衣)2)가 순일(純一)한 청색ㆍ청광ㆍ청견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여 항상 관찰하고 항상 기억하면 이것을 다섯 번째 제입이라 한다.
2) vattha Bārāna-seyyaka라고 함. 바라내 지방에서 생산되는 옷이다.
마음 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누런 색을 관(觀)하고, 그 황색(黃色)ㆍ황광(黃光)ㆍ황견(黃見)은 마치 누런 꽃이나 누런 바라내의가 황색ㆍ황광ㆍ황견과 같다고 본다. 항상 관찰하고 항상 기억하여 이런 생각을 가지면 이것을 여섯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 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붉은 색을 관(觀)하고 적색(赤色)ㆍ적광(赤光)ㆍ적견(赤見)이 마치 붉은 꽃이나 붉은 바라내의의 순일한 적색ㆍ적광ㆍ적견과 같다고 본다. 항상 관찰하고 항상 기억하여 이런 생각을 가지면 이것을 일곱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 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흰색을 관하고, 그 백색(白色)ㆍ백광(白光)ㆍ백견(白見)은 마치 흰 꽃이나 흰 바라내의의 순일한 백색ㆍ백광ㆍ백견과 같다고 본다. 항상 관찰하고 항상 기억하여 이런 생각을 가지면 이것을 여덟 번째 제입이라 한다.
어떤 것을 8증법(證法)이라 하는가?
8해탈을 말한다. 마음 속에 색(色)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바깥 색(色)을 관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요, 마음 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색을 관하는 것은 두 번째 해탈이요, 청정한 해탈이 세 번째 해탈이요, 색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고 성내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에 머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요, 공처를 초월하여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초월하여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요, 불용처를 초월하여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유상무상처를 초월하여 상지멸(想知滅)에 머무는 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80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는 것으로서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아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9]
다시 9성법(成法)ㆍ9수법(修法)ㆍ9각법(覺法)ㆍ9멸법(滅法)ㆍ9퇴법(退法)ㆍ9증법(增法)ㆍ9난해법(難解法)ㆍ9생법(生法)ㆍ9지법(知法)ㆍ9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9성법이라 하는가?
9정멸지법(淨滅枝法)을 말하나니, 계정멸지(戒淨滅枝)ㆍ심정멸지(心淨滅枝)ㆍ견정멸지(見淨滅枝)ㆍ도의정멸지(度疑淨滅枝)ㆍ분별정멸지(分別淨滅枝)ㆍ도정멸지(道淨滅枝)ㆍ제정멸지(除淨滅枝)ㆍ무욕정멸지(無欲淨滅枝)ㆍ해탈정멸지(解脫淨滅枝)이다.
어떤 것을 9수법이라 하는가?
9희본(喜本)을 말한다. 첫째는 기쁨이요, 둘째는 사랑[愛]이며, 셋째는 흐뭇함[悅]이요, 넷째는 즐거움[樂]이며, 다섯째는 선정[定]이요, 여섯째는 여실지(如實知)이며, 일곱째는 없애는 것[除捨]이요, 여덟째는 욕심 없음(無欲)이며, 아홉째는 해탈(解脫)이다.
어떤 것을 9각법이라 하는가?
9중생거(衆生居)를 말한다. 혹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초중생거(初衆生居)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른데 광음천(光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중생은 생각도 없고 깨달아 아는 것도 없는데 무상천(無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공처(空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여섯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중생이 식처(識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일곱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불용처(不用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여덟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아홉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것을 9멸법이라 하는가?
9애본(愛本)을 말한다. 애착[愛]을 인연하여 구함[求]이 있고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利]이 있으며, 이익을 인연하여 씀[用]이 있고 씀을 인연하여 욕심[欲]이 있으며,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著]이 있고 집착을 인연하여 질투[嫉]가 있으며, 질투를 인연하여 지킴[守]이 있고 지킴을 인연하여 보호함[護]이 있다.
어떤 것을 9퇴법이라 하는가?
9뇌법(惱法)을 말한다. 어떤 이가 이미 나를 침노하여 번민케 했고 지금도 나를 침노하여 번민케 하며 앞으로도 나를 침노하여 번민케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미 침노하여 번민케 했고 지금도 침노하여 번민케 하며 앞으로도 침노하여 번민케 할 것이다. 또 그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이미 사랑하고 공경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공경하며 앞으로도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다.
어떤 것을 9증법(增法)이라 하는가?
9무뇌법(無惱法)을 말한다. 저 사람이 이미 나를 침노했다 해서 내가 번민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미 번민하지 않았고 지금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침노하여 번민하게 했다 해서 내가 번민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미 번민하지 않았고 지금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이미 사랑하고 공경했다해서 내가 번민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미 번민하지 않았고 지금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것을 9난해법이라 하는가?
9범행(梵行)을 말한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이 있다 하여도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킨다면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을 지켜도 들은 것이 많지 않다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면서 들은 것이 많다면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고 들은 것이 많다 하더라도 설법하지 못한다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이 많으면서 설법을 잘해야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을 잘해도 대중을 기르지 못한다면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을 잘해도 대중을 기를 수 있어야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이 많고 설법도 잘 하며 대중을 기를 수 있어도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하지 못한다면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를 수 있고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할 수 있어야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대중을 기르고 능히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의 말을 연설하더라도 4선(禪)을 증득하지 못했다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또 4선까지 증득했다면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또 4선을 증득했어도 8해탈에서 거꾸로[逆] 행하고 바로[順] 행하지 못하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속에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4선을 구족하고 8해탈을 거꾸로 바로 행하면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속에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4선을 증득하고 8해탈을 거꾸로 바로 행하지만, 번뇌[有漏]를 다하여 번뇌 없음[無漏]을 이루고 심해탈(心解脫)과 지혜해탈(智慧解脫)을 성취하여 현재 세계에서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다해 마쳐 다시 뒷세상의 몸[有]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면 곧 범행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 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4선을 성취하고 8해탈의 법을 거꾸로 바로 행하며 번뇌[有漏]를 버리고 번뇌 없음[有漏]을 이루고 심해탈과 지혜해탈을 성취하여 현재 세계에서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다해 마쳐 다시 몸을 받지 않을 수 있어야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어떤 것을 9생법이라 하는가?
9상(想)을 말한다.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不淨想], 음식도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觀食不淨想]3),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一切世間不可樂想], 죽음에 대한 생각[死想], 무상하다는 생각[無常想], 무상한 것이라서 괴롭다는 생각[無常苦想], 괴로운 것이며 나[我]가 없다는 생각[苦無我想], 다한다는 생각[盡想], 욕심이 없는 생각[無欲想]이다.
3) '관식상(觀食想)'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의미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송ㆍ원ㆍ명 3본에 의하여 '관식부정상(觀食不淨想)'으로 번역하였다.
어떤 것을 9지법이라 하는가?
9이법(異法)을 말한다. 생겨나는 과보[生果]가 다른 것은 인과(因果)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촉(生觸)이 다른 것은 인촉(因觸)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수(生受)가 다른 것은 인수(因受)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상(生想)이 다른 것은 인상(因想)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집(生集)이 다른 것은 인집(因集)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욕,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一切世間不可樂想], 죽음에 대한 생각[死想], 무상하다는 생각[無常想], 무상한 것이라서 괴롭다는 생각[無常苦想], 괴로운 것이며 나[我]가 없다는 생각[苦無我想], 다한다는 생각[盡想], 욕심이 없는 생각[無欲想]이다.
어떤 것을 9지법이라 하는가?
9이법(異法)을 말한다. 생겨나는 과보[生果]가 다른 것은 인과(因果)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촉(生觸)이 다른 것은 인촉(因觸)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수(生受)가 다른 것은 인수(因受)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상(生想)이 다른 것은 인상(因想)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집(生集)이 다른 것은 인집(因集)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욕(生欲)이 다른 것은 인욕(因欲)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리(生利)가 다른 것은 인리(因利)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구(生求)가 다른 것은 인구(因求)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번뇌(生煩惱)가 다른 것은 인번뇌(因煩惱)가 다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9증법(證法)이라 하는가?
9진(盡)을 말한다. 만일 초선(初禪)에 들어가면 소리가 없어지고, 제2선에 들어가면 각관(覺觀)이 없어지며, 제3선에 들어가면 기쁨[喜]이 없어지고, 제4선에 들어가면 숨결의 출입이 없어지며, 공처(空處)에 들어가면 색(色)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고, 식처(識處)에 들어가면 공상(空想)이 없어지며,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가면 식상(識想)이 없어지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가면 불용상(不用想)이 없어지며,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면 상수(想受)가 없어지는 것이다.
모든 비구여, 이것을 90가지 법이라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으니, 여래께서는 이미 다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10]
다시 10성법ㆍ10수법ㆍ10각법ㆍ10멸법ㆍ10퇴법ㆍ10증법ㆍ10난해법ㆍ10생법ㆍ10지법ㆍ10증법이 있다.
어떤 것을 10성법이라 하는가?
10구법(求法)을 말한다. 첫째는 비구가 250조항의 계(戒)를 갖추고 또한 위의(威儀)를 갖추며 조그마한 죄라도 발견되면 크게 두려워하며 평등하게 계를 배워 마음에 비뚤어지거나 삿됨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선지식(善知識)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말이 바르고 정직하며 함축[含受]한 바가 많은 것이요, 넷째는 착한 법 구하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펴기를 아끼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범행자(梵行者)들이 시설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거기 가서 돕되, 고달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을 하며 또한 남에게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여섯째는 많이 듣고 들은 것은 잘 지녀 일찍이 잊어버리는 일이 없는 것이요, 일곱째는 정진하여 착하지 않은 법은 없애고 착한 법을 더하게 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항상 스스로 전념하여 다른 생각이 없고 본래의 선행을 생각하기를 눈 앞에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요, 아홉째는 지혜를 성취하여 법의 생멸(生滅)을 관찰하고 현성(賢聖)의 율(律)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끊는 것이며, 열째는 한가하게 하고 생각을 오로지해 사유하며 선정[禪] 도중에 희롱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을 10수법이라 하는가?
10정행(正行)을 말한다. 바른 견해[正見]ㆍ바른 생각[正思]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기억[正念]ㆍ바른 선정[正定]ㆍ바른 해탈[正解脫]ㆍ바른 지혜[正知]이다.
어떤 것을 10각법이라 하는가?
10색입(色入)을 말한다.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ㆍ색입(色入)ㆍ성입(聲入)ㆍ향입(香入)ㆍ미입(味入)ㆍ촉입(觸入)이다.
어떤 것을 10멸법이라 하는가?
10사행(邪行)을 말한다. 삿된 견해[邪見]ㆍ삿된 생각[邪思]ㆍ삿된 말[邪語]ㆍ삿된 행동[邪業]ㆍ삿된 생활[邪命]ㆍ삿된 방편[邪方便]ㆍ삿된 생각[邪念]ㆍ삿된 선정[邪定]ㆍ삿된 해탈[邪解脫]ㆍ삿된 지혜[邪智]이다.
어떤 것을 10퇴법이라 하는가?
10불선행적(不善行迹)을 말한다. 몸으로 살생[殺]ㆍ도둑질[盜]ㆍ간음[淫]을 하고, 입으로 이간하는 말[兩舌]ㆍ욕설[惡罵]ㆍ거짓말[妄言]ㆍ꾸밈말[綺語]을 하고, 뜻으로 탐욕[貪取]ㆍ질투(嫉妬)ㆍ삿된 견해[邪見]를 가지는 것이다.
어떤 것을 10증법(增法)이라 하는가?
10선행을 말한다. 몸으로 살생ㆍ도둑질ㆍ간음을 하지 않고, 입으로 이간하는 말ㆍ 욕설ㆍ거짓말ㆍ꾸밈말을 하지 않으며, 뜻으로 탐욕ㆍ질투ㆍ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을 10난해법이라 하는가?
10현성거(賢聖居)를 말한다. 첫째는 비구가 5지(枝:五蓋)를 없애는 것이요, 둘째는 6지(枝:六根)를 성취하는 것이요, 셋째는 하나를 지키는 것[一護]4)이요, 넷째는 네 가지에 의지하는 것[依四]5)이며, 다섯째는 이론[異諦:외도의 논리]을 멸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수승하고 묘한 진리를 구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혼탁한 생각이 없는 것이요, 여덟째는 신행(身行)이 이미 선 것이며, 아홉째는 심해탈(心解脫)이요, 열째는 혜해탈(慧解脫)이다.
4) ekārakkha(一護)라고 되어 있다. 이를 한역하면 일호(一護)가 된다.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사일(捨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ekārakkha(一守護)를 eka(一)+a(不)+rakkha(護)로 잘못 한역한 데서 비롯된 문구인 듯하다.
5) 의거해야 할 네 가지를 말한다. 즉 첫째는 습관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요, 둘째는 없애야 할 것이요, 셋째는 멀리 회피해야 할 것이요, 넷째는 참고 인내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을 10생법이라 하는가?
10칭예처(稱譽處)를 말한다. 만일 비구로서 자기 자신이 믿음을 얻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모든 믿음을 얻은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계를 지니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모든 계를 지닌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욕심이 적어진 뒤에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모든 욕심이 적은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만족할 줄 알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모든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하고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많이 듣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많이 들은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정진하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정진하는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생각을 오로지 하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생각을 오로지 하는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선정을 얻고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선정을 얻은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지혜를 얻고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지혜를 얻은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10지법이라 하는가?
10멸법을 말한다.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능히 삿된 견해를 없애고 모든 삿된 견해를 인연하여 일어나는 무수한 악을 또한 다 없앤다. 바른 견해를 인연하여 일어나는 무수한 선을 또한 다 성취한다. 바른 뜻[正志]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기억[正念]ㆍ바른 선정[正定]ㆍ바른 해탈[正解脫]ㆍ바른 지혜[正智]에 대해서도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은 능히 삿된 지혜를 없애고, 모든 삿된 지혜를 인연하여 일어나는 무수한 악을 다 없애고, 모든 바른 지혜를 인연하여 일어나는 무수한 선법을 또한 다 성취한다.
어떤 것을 10증법(證法)이라 하는가?
10무학법(無學法)을 말한다. 무학(無學)의 바른 견해ㆍ 바른 생각ㆍ 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기억ㆍ바른 선정ㆍ바른 해탈ㆍ바른 지혜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100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으니 여래는 이미 다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그 때에 사리불은 부처님의 인가(印可)를 받았고, 모든 비구들은 사리불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9 권
11. 증일경(增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에게 미묘한 법을 연설해 주리라.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 말이 다 참되고 바르며, 의미도 청정하고 범행(梵行)도 구족했다. 그것은 하나씩 늘어가는 법[增法]이다. 너희들은 잘 듣고 잘 생각하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그러자 모든 비구들은 가르침을 받아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한 가지씩 늘어나는 법이란 1성법(成法)ㆍ1수법(修法)ㆍ1각법(覺法)ㆍ1멸법(滅法)ㆍ1증법(證法)을 말한다.
[1]
어떤 것이 1성법인가? 선법(善法)을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1수법인가? 항상 스스로 몸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1각법인가? 번뇌[有漏]를 일으키는 촉(觸)을 말한다.
어떤 것이 1멸법인가? 아만(我慢)이 있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1증법인가? 걸림이 없는 마음의 해탈[無碍心解脫]을 말한다.
[2]
또 2성법ㆍ2수법ㆍ2각법ㆍ2멸법ㆍ2증법이 있다.
어떤 것이 2성법인가?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慚]을 알고 다른 이에 대한 부끄러움[愧]을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이 2수법인가? 지(止)와 관(觀)을 말한다.
어떤 것이 2각법인가? 명(名)과 색(色)을 말한다.
어떤 것이 2멸법인가? 무명(無明)과 유애(有愛)를 말한다.
어떤 것이 2증법인가? 명(明)과 해탈을 말한다.
[3]
또 3성법ㆍ3수법ㆍ3각법ㆍ3멸법ㆍ3증법이 있다.
어떤 것이 3성법인가?
첫째는 착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이요, 둘째는 귀로 법의 소리를 듣는 것이며, 셋째는 법 가운데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3수법인가?
3삼매(三昧)를 말하나니, 공(空)삼매ㆍ무상(無想)삼매ㆍ무작(無作)삼매이다.
어떤 것이 3각법인가?
3수(受)를 말하나니,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어떤 것이 3멸법인가?
3애(愛)를 말하나니, 욕애(欲愛)ㆍ유애(有愛)ㆍ 무유애(無有愛)이다.
어떤 것이 3증법인가?
3명(明)을 말하나니, 숙명지(宿明智)ㆍ천안지(天眼智)ㆍ누진지(漏盡智)이다.
[4]
다시 4성법ㆍ4수법ㆍ4각법ㆍ4멸법ㆍ4증법이 있다.
어떤 것이 4성법인가?
첫째는 중국(中國:인도)에 사는 것이요, 둘째는 착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이며, 셋째는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요, 넷째는 전생에 선(善)의 근본을 심은 것이다.
어떤 것이 4수법인가?
4념처(念處)에 머무는 것이다. 비구는 안 몸[內身身]을 관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게으르지 않으며 기억해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요, 바깥 몸[外身身]을 관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게으르지 않으며 기억해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며, 안팎의 몸[內外身身]을 관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게으르지 않으며 기억해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요, 수(受)ㆍ의(意:心)ㆍ법(法)에 관한 것도 또한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4각법인가?
4식(食)을말하나니,단식(摶食)ㆍ촉식(觸食)ㆍ염식(念食)ㆍ식식(識食)이다.
어떤 것이 4멸법인가?
4수(受)를 말하나니, 욕수(欲受)ㆍ아수(我受)ㆍ계수(戒受)ㆍ견수(見受)이다.
어떤 것이 4증법인가?
4사문과(沙門果)를 말하나니,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아나함과(阿那含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이다.
[5]
다시 5성법ㆍ5수법ㆍ5각법ㆍ5멸법ㆍ5증법이 있다.
어떤 것이 5성법인가? 5멸진지(滅盡支)를 말한다. 첫째는 부처ㆍ여래ㆍ지진(至眞) 등 10호(號)의 구족하신 분을 믿는 것이요, 둘째는 몸에 병이 없어 항상 안온한 것이다. 셋째는 순박하고 정직하여 아첨이 없고 바로 여래 열반의 지름길로 나아가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을 오로지해 산란하지 않고 읽고 외워 잊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법이 일어나고 멸함을 잘 관찰하고 현성의 행(行)으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5수법인가? 5근(根)을 말하나니,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이다.
어떤 것이 5각법인가? 5수음(受陰)을 말하나니, 색수음(色受陰)ㆍ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다.
어떤 것이 5멸법인가? 5개(蓋)를 말하나니, 탐욕개(貪欲蓋)ㆍ진에개(瞋恚蓋)ㆍ수면개(睡眠蓋)ㆍ도희개(掉戱蓋)ㆍ의개(疑蓋)이다.
어떤 것이 5증법인가? 5무학취(無學聚)를 말하나니, 무학계취(無學戒聚)ㆍ무학정취(無學定聚)ㆍ혜취(慧聚)ㆍ해탈취(解脫聚)ㆍ해탈지견취(解脫知見聚)이다.
[6]
다시 6성법ㆍ6수법ㆍ6각법ㆍ6멸법ㆍ6증법이 있다.
어떤 것이 6성법인가? 6중법(重法)을 말한다. 어떤 비구가 6중법을 닦으면 그것은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대중과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홀로 다니더라도 잡됨이 없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여기서 비구가 몸으로는 항상 자애로움을 행하고 범행(梵行)을 닦으며 어질고 사랑스런[仁愛] 마음에 머무는 것을 이름하여 중법(重法)이라 한다. 그렇게 하면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대중과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홀로 다니더라도 잡됨이 없다.
다시 비구는 말이 자애롭고 마음이 자애로워서 자기가 공양받은 것과 또 발우에 남은 음식을 남과 함께 나누어 먹고 저와 남[彼此]이라는 생각을 품지 않으며, 또한 비구는 성인이 행한 계율을 범하지 않고 헐뜯지 않아 물들고 더러움이 없으며, 지혜로운 이에게 칭찬을 받고, 계를 잘 구족하고 지녀 현성의 출요(出要)를 평등하게 성취하여 괴로움을 다하고 바른 견해와 모든 범행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중법이라 한다. 그렇게 하면 공경받을 만하고 존중받을 만하며 대중과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홀로 다니더라도 잡됨이 없다.
어떤 것이 6수법인가? 6념(念)을 말하나니, 부처님에 대한 생각[佛念]ㆍ법에 대한 생각[法念]ㆍ스님에 대한 생각[僧念]ㆍ계율에 대한 생각[戒念]ㆍ보시에 대한 생각[施念]ㆍ하늘에 대한 생각[天念]이다.
어떤 것이 6각법인가? 6내입(內入)을 말한다.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ㆍ의입(意入)이다.
어떤 것이 6멸법인가? 6애(愛)를 말하나니, 색애(色愛)ㆍ성애(聲愛)ㆍ향애(香愛)ㆍ미애(味愛)ㆍ촉애(觸愛)ㆍ법애(法愛)이다.
어떤 것이 6증법인가? 6신통(神通)을 말하나니, 첫째는 신족통증(神足通證)이요, 둘째는 천이통증(天耳通證)이며, 셋째는 지타심통증(知他心通證)이요, 넷째는 숙명통증(宿命通證)이며, 다섯째는 천안통증(天眼通證)이요, 여섯째는 누진통증(漏盡通證)이다.
[7]
다시 7성법ㆍ7수법ㆍ7각법ㆍ7멸법ㆍ7증법이 있다.
어떤 것이 7성법인가? 7재(財)를 말하나니, 믿음의 재물[信財]ㆍ계율의 재물[戒財]ㆍ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의 재물[慚財]ㆍ남에 대한 부끄러움의 재물[愧財]ㆍ들음의 재물[聞財]ㆍ보시의 재물[施財]ㆍ은혜의 재물[惠財], 이것을 7재라 한다.
어떤 것이 7수법인가? 7각의(覺意)를 말한다. 여기서 비구는 염각의(念覺意)를 닦을 때 탐욕 없는 것[無欲]에 의지하고, 적멸(寂滅)에 의지하며, 멀리 여읨[遠離]에 의지한다. 법각의를 닦고, 정진각의를 닦고, 희(喜)각의를 닦고, 의(猗)각의를 닦고, 정(定)각의를 닦고, 사(捨)각의를 닦을 때 탐욕 없는 것에 의지하고, 적멸에 의지하며 멀리 여읨에 의지한다.
어떤 것이 7각법인가? 7식주처(識住處)를 말한다. 만일 어떤 중생이 각기 다른 몸으로 각기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니 하늘과 사람의 세계가 바로 이것이며 이것이 초식주(初識住)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각기 다른 몸으로 한 생각을 하는 것이니 범광음천(梵光音天)에 맨 처음 태어날 때가 바로 이것이며 이것이 두 번째 식주(識住)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한 몸에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니 광음천(光音天)이 바로 이것이며, 이것은 세 번째 식주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한 몸에 한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변정천(遍淨天)이 바로 이것이며 이것은 네 번째 식주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공처(空處)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다섯 번째 식주이고, 혹은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여섯 번째 식주이며, 혹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일곱 번째 식주이다.
어떤 것이 7멸법인가? 7사법(使法)을 말하나니, 욕애사(欲愛使)ㆍ유애사(有愛使)ㆍ견사(見使)ㆍ만사(慢使)ㆍ진에사(瞋恚使)ㆍ무명사(無明使)ㆍ의사(疑使)이다.
어떤 것이 7증법인가? 7누진력(漏盡力)을 말한다. 여기서 누진(漏盡)이 된 비구는 일체 모든 고(苦)ㆍ집(集)ㆍ멸(滅)ㆍ미(味)ㆍ과(過)ㆍ출요(出要:道)에 대해서 진실 되게 보아 알고 욕심을 관찰하기를 불구덩이나 칼과 같이 본다. 욕심을 알고 욕심을 보아 욕심을 탐하지 않고 마음이 욕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 다시 잘 관찰하여 진실되게 알고 진실되게 보면 세간의 탐욕[貪]과 음행[婬]처럼 악하고 불선한 법으로 인해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4념처(念處)를 닦되 많이 닦고 많이 행하며 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와 현성의 여덟 가지 도(道)를 많이 닦고 많이 행한다.
[8]
다시 8성법ㆍ8수법ㆍ8각법ㆍ8멸법ㆍ8증법이 있다.
어떤 것이 8성법인가? 8인연을 말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범행을 얻지 못하고도 지혜를 얻고, 범행을 얻고 나면 지혜는 더해지고 많아지게 된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여기서 비구는 세존을 의지해 머물거나, 혹은 장로[師長]를 의지해 머물거나, 혹은 지혜 있는 범행자를 의지해 머물면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다른 이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慚愧]을 내고 사랑[愛]하고 공경[敬]하는 것이다. 이것을 첫 번째 인연이라 한다.
그는 아직 범행을 얻지 못하고도 지혜를 얻고 이미 범행을 얻고 나면 지혜는 더해지고 많아지는데 다시 세존을 의지해 머물면서 때에 따라 청해 묻는다. '이 법은 무엇을 뜻하며, 어디로 나아가는 것입니까?'
그러면 그 때 존장은 곧 그를 위하여 깊은 뜻을 열어 설명하는데, 이것을 두 번째 인연이라 한다.
이미 법을 듣고 나서 몸과 마음이 즐겁고 고요해지면, 이것을 세 번째 인연이라 한다.
도를 막는 쓸데없는 잡담을 하지 않고 대중 속으로 나아가, 혹은 스스로 설법하기도 하고 혹은 남에게 설법을 청하기도 하며 다시 현성들의 침묵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네 번째 인연이라 한다.
심오하고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의 의미가 다 훌륭하고 진실하고 진리가 담긴 법을 많이 듣고 널리 알며 지니고 지켜 잊지 않고, 범행을 구족하고, 듣고 나서 마음에 들어가 견해가 흔들리지 않으면 이것을 다섯 번째 인연이라 한다.
닦고 익히기를 부지런히 힘써 착하지 않은 행(行)을 없애고 착한 행은 날로 더하며 힘써 감당하여 이 법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여섯 번째 인연이라 한다.
또 지혜로써 생기고 없어지는 법을 알고 성현이 지향하는 것을 알아 능히 괴로움의 끝을 다한다면, 이것을 일곱 번째 인연이라 한다.
또 5수음(受陰)이 생겨나는 모양[生相]과 멸하는 모양[滅相]을 관찰하여, '이것은 색(色)이요, 색집(色集)이며, 색멸(色滅)이다. 이것은 수(受)요, 수집(受集)이며, 수멸(受滅)이다. 이것은 상(想)이요, 상집(想集)이며, 상멸(想滅)이다. 이것은 행(行)이요, 행집(行集)이며, 행멸(行滅)이다. 이것은 식(識)이요, 식집(識集)이며, 식멸(滅)이다'라고 안다면 이것을 여덟 번째 인연이라 하는데, 이로 인하여 아직 범행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지혜가 생기고 이미 범행을 얻고 나면 지혜는 더해지고 많아지게 된다.
어떤 것이 8수법인가? 현성의 여덟 가지 도(道)를 말하나니, 바른 견해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기억ㆍ바른 선정이다.
어떤 것을 8각법이라 하는가?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을 말하나니, 이로움[利]ㆍ쇠함[衰]ㆍ헐뜯음[毁]ㆍ칭찬[譽]ㆍ칭송[稱]ㆍ비방[譏]ㆍ괴로움[苦]ㆍ즐거움[樂]이다.
어떤 것을 8멸법이라 하는가? 8사법(邪法)을 말하나니, 삿된 견해ㆍ삿된 생각ㆍ삿된 말ㆍ삿된 행동ㆍ삿된 생활ㆍ삿된 방편ㆍ삿된 기억ㆍ삿된 선정이다.
어떤 것을 8증법이라 하는가? 8해탈을 말한다. 색(色)에 대하여 색이라고 관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요, 마음 속에 색(色)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밖의 색을 관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요, 청정한 해탈이 세 번째 해탈이다. 색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고 성내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에 머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요, 공처를 초월하여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초월하여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요, 불용처를 초월하여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유상무상처를 초월하여 상지멸(想知滅)에 머무는 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9]
다시 9성법ㆍ9수법ㆍ9각법ㆍ9멸법ㆍ9증법이 있다.
어떤 것이 9성법인가? 9정멸지법(淨滅枝法)을 말하나니, 계정멸지(戒淨滅枝)ㆍ심정멸지(心淨滅枝)ㆍ견정멸지(見淨滅枝)ㆍ도의정멸지(度疑淨滅枝)ㆍ분별정멸지(分別淨滅枝)ㆍ도정멸지(道淨滅枝)ㆍ제정멸지(除淨滅枝)ㆍ무욕정멸지(無欲淨滅枝)ㆍ해탈정멸지(解脫淨滅枝)이다.
어떤 것이 9수법인가? 9희본(喜本)을 말한다. 첫째는 기쁨[喜]이요, 둘째는 사랑[愛]이며, 셋째는 흐뭇함[悅]이요, 넷째는 즐거움[樂]이며, 다섯째는 선정[定]이요, 여섯째는 여실지(如實知)요, 일곱째는 없애는 것이요, 여덟째는 욕심 없음[無欲]이요, 아홉째는 해탈이다.
어떤 것이 9각법인가? 9중생거(衆生居)를 말한다. 혹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 세계와 사람 세계가 그것이다. 이것이 초중생거(初衆生居)이다. 혹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 가지인데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중생거이다. 혹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른데 광음천(光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중생거이다. 혹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은 네 번째 중생거이다. 혹 어떤 중생은 생각도 없고 깨달아 아는 것도 없는데 무상천(無想天)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공처(空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여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식처(識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일곱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불용처(不用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여덟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아홉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것이 9멸법인가? 9애본(愛本)을 말하나니, 애착[愛]을 인연하여 구함[求]이 있고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利]이 있으며, 이익을 인연하여 씀[用]이 있고 씀을 인연하여 욕심[欲]이 있으며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著]이 있고 집착을 인연하여 인해 질투[嫉]가 있으며, 질투를 인연하여 지킴[守]이 있고 지킴을 인연하여 보호함[護]이 있다.
어떤 것이 9증법인가? 9진(盡)을 말한다. 만일 초선(初禪)에 들어가면 곧 소리가 없어지고, 제 2선에 들어가면 각관(覺觀)이 없어지며, 제 3선에 들어가면 곧 기쁨[喜]이 없어지고, 제 4선에 들어가면 숨결[息]의 출입이 없어지며, 공처(空處)에 들어가면 색상(色想)이 없어지고, 식처(識處)에 들어가면 곧 공상(空想)이 없어지며,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가면 곧 식상(識想)이 없어지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가면 불용상(不用想)이 없어지며,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면 상수(想受)가 없어지는 것이다.
[10]
다시 10성법ㆍ10수법ㆍ10각법ㆍ10멸법ㆍ10증법이 있다.
어떤 것이 10성법인가? 10구법(救法)을 말한다. 첫째는 비구가 250조항의 계(戒)를 갖추고 또한 위의(威儀)를 갖추며 조그마한 죄라도 발견되면 크게 두려워하며 평등하게 계를 배워 마음에 비뚤어지거나 삿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선지식(善知識)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말이 바르고 정직하며 함축한 바가 많은 것이요, 넷째는 착한 법 구하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펴기를 아끼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범행자(梵行者)들이 곧 가서 돕되, 고달프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하며 또 남에게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요,
여섯째는 많이 듣고 듣고 나서는 굳게 지녀 일찍이 잊은 일이 없는 것이다. 일곱째는 부지런히 힘써 착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착한 법은 자라게 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항상 스스로 생각을 오로지하여 다른 생각이 없고 본래의 선행(善行)을 기억하기를 눈 앞에 있는 것과 같이 보는 것이다. 아홉째는 지혜를 성취하여 법의 생멸(生滅)을 관찰하고 현성의 계율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끊는 것이요, 열째는 한적한 곳에 있기를 즐거워하고 생각을 오로지해 선정 가운데서 희롱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10수법인가? 10정행(正行)을 말하나니, 바른 견해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기억ㆍ바른 선정ㆍ바른 해탈ㆍ바른 지혜이다.
어떤 것이 10각법인가? 10색입(色入)을 말하나니,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ㆍ색입(色入)ㆍ성입(聲入)ㆍ향입(香入)ㆍ미입(味入)ㆍ촉입(觸入)이다.
어떤 것이 10멸법인가? 10사행(邪行)을 말하나니, 삿된 견해[邪見]ㆍ삿된 뜻[邪志]ㆍ삿된 말[邪語]ㆍ삿된 행동[邪業]ㆍ삿된 생활[邪命]ㆍ삿된 방편[邪方便]ㆍ삿된 선정[邪定]ㆍ삿된 해탈[邪解脫]ㆍ삿된 지혜[邪智]이다.
어떤 것이 10증법인가? 10무학법(無學法)을 말하나니, 무학의 바른 견해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ㆍ바른 해탈ㆍ바른 지혜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하나씩 늘어나는 법이라고 한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설명했다. 내가 여래가 되어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이미 다 갖추었으나,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간절히 너희들을 훈계해 가르쳤다.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힘써 이것을 받들어 행하라.
모든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무 아래 빈 곳에 한가히 있으면서 부지런히 힘써 좌선(坐禪)하여 스스로 방자하지 말라. 지금 노력하지 않고서 뒷날에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것이 내 가르침이니 힘써 이것을 받아 지니도록 하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0 권
[제2분] ⑤
12. 삼취경(三聚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미묘한 법을 연설하리니, 의미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3취법(聚法)이라 한다. 너희들은 잘 듣고 깊이 생각하여 기억하도록 하라.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1]
그 때 모든 비구들은 가르침을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법취(法聚)1)의 세계란, 하나의 법은 악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요, 다른 하나의 법은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의 법은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인가 하면, 인자한 마음이 없고 독해(毒害)할 마음을 품는 것이니, 이것이 장차 악한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인가 하면, 악한 마음으로써 중생을 해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장차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이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인가 하면, 능히 정근하여 신념처(身念處)2)를 닦는 것이니, 이것이 장차 열반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법이다.
1) 법취(法聚): 법온(法蘊)이라고도 한다. 취(聚)는 쌓였다는 뜻이니 불법을 총괄하여 일컫는 말이다. 곧 팔만 사천 법문이 모여서 쌓였다는 뜻으로 팔만 사천 법취라고 부른다.
2) 신념처(身念處): 수행자가 3현위(賢位)에서 5정심관(停心觀) 다음에 닦는 수행법의 첫 번째로서, 부모에게서 받은 육신이 부정하다고 관하는 것이다.
[2]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이 있고, 또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이 있으며, 다시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인가 하면, 하나는 계율을 허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견(見)을 깨뜨리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인가 하면, 하나는 계를 갖추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견을 갖추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법인가 하면, 하나는 그치는 것[止]이요, 다른 하나는 관하는 것[觀]이다.
[3]
다시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이 있고,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이 있으며,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인가 하면, 세 가지 불선(不善)의 근본으로서, 즉 탐욕이라는 불선의 근본과 성냄이라는 불선의 근본과 어리석음이라는 불선의 근본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인가 하면, 세 가지 선의 근본으로서, 즉 탐욕이 없는 선의 근본과 성냄이 없는 선의 근본과 어리석음이 없는 선의 근본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세 가지 법인가 하면, 세 가지 삼매로서, 즉 공(空)삼매ㆍ무상(無相)삼매ㆍ무작(無作)삼매이다.
[4]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이 있고,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이 있으며,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정다운 말과 성내는 말과 두렵게 하는 말과 어리석은 말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정답지 않은 말과 성내지 않는 말과 두렵게 하지 않는 말과 어리석지 않은 말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네 가지 법인가 하면, 4념처(念處)를 말한다. 4념처란 신념처(身念處)ㆍ수념처(受念處)ㆍ심념처(心念處)ㆍ법념처(法念處)이다.
[5]
다시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다섯 가지 법이 있고 선한 세계로 향하는 다섯 가지 법이 있으며 열반으로 향하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다섯 가지 법인가 하면, 다섯 가지 계율[戒]를 깨뜨리는 것으로서, 즉 살생ㆍ도둑질ㆍ음행ㆍ거짓말ㆍ술을 마시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다섯 가지 법인가 하면,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서, 즉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행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다섯 가지 법인가 하면, 다섯 가지 근본[五根]으로서 즉 다섯 가지 근본이란 믿음의 근본ㆍ정진의 근본ㆍ생각의 근본ㆍ선정의 근본ㆍ지혜의 근본이다.
[6]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인가 하면, 여섯 가지 불경(不敬)을 말하나니, 즉 부처를 공경하지 않고 법을 공경하지 않으며, 승단을 공경하지 않고 계율을 공경하지 않으며, 선정[定]을 공경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인가 하면, 여섯 가지 경법(敬法)으로서 즉 부처를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며, 승단을 공경하고 계율을 공경하며, 선정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섯 가지 법인가 하면, 여섯 가지 사념(思念)으로서 즉 부처를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며, 승단을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며, 보시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7]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인가 하면, 살생ㆍ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ㆍ음탕한 것ㆍ거짓말ㆍ이간시키는 말ㆍ욕설ㆍ꾸밈말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인가 하면,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이간질하지 않고 욕설하지 않으며, 꾸밈말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인가 하면, 일곱 가지의 각의(覺意)로서, 즉 염각의(念覺意)3)ㆍ택법각의(擇法覺意)4)ㆍ정진각의(精進覺意)5)ㆍ의각의(猗覺意)6)ㆍ정각의(定覺意)7)ㆍ희각의(喜覺意)8)ㆍ사각의(捨覺意)9)이다.
3) 수행함에 있어서 늘 잘 생각하여 정(定)과 혜(慧)가 한결같도록 하는 것
4) 모든 법을 살펴서 선악(善惡)의 진위(眞僞)를 가려내는 것.
5) 적에 용맹한 마음으로 쓸데없는 사행(邪行)을 여의고 바른 도에 전력을 기울여 게으르지 않는 것.
6) 견해를 끊어버릴 적에 참되고 거짓됨을 알아서 올바른 선근(善根)을 생하는 것.
7) 들어서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
8) 선법(善法)을 얻어서 기뻐하는 것.
9) 경계에 집착하던 마음을 여읠 적에 거짓되고 참되지 못한 것을 추억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
[8]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여덟 가지 삿된 행위[邪行]로서 삿된 소견ㆍ삿된 뜻ㆍ삿된 말ㆍ삿된 행동ㆍ삿된 생활ㆍ삿된 방편ㆍ삿된 생각ㆍ삿된 선정[定]을 말한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세상의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을 말한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여덟 가지 현성의 도(道)로서, 즉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이다.
[9]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아홉 가지 괴롭힘[惱]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 나를 침노해 괴롭혔고, 현재에도 나를 침노해 괴롭히며, 앞으로도 나를 침노해 괴롭힐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과거에 침노해 괴롭혔고, 현재에도 침노해 괴롭히며, 앞으로도 침노해 괴롭힐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자를 과거에 사랑하고 공경했고, 현재에도 사랑하고 공경하며, 앞으로도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아홉 가지 괴롭힘이 없는 것[無惱]을 말한다. 그가 과거에 나를 침노했는데 내가 번민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여 과거에도 번민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저가 과거에도 침노했는데 내가 괴로워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여 과거에도 번민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자를 저는 과거에도 사랑하고 공경했는데 내가 괴로워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여 과거에도 번민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기쁨, 둘째는 사랑, 셋째는 기뻐함, 넷째는 즐거움, 다섯째는 선정[定], 여섯째는 진실된 지견, 일곱째는 버림, 여덟째는 욕심 없음, 아홉째는 해탈이다.
[10]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인가 하면, 열 가지 불선(不善)으로서 즉 몸으로 짓는 살생ㆍ도둑질ㆍ음행과 입으로 짓는 이간질하는 말ㆍ욕설ㆍ거짓말ㆍ꾸밈말과 뜻으로 짓는 탐욕ㆍ질투ㆍ사견(邪見)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인가 하면, 열 가지 선행(善行)으로서 즉 몸으로 짓는 살생ㆍ도둑질ㆍ간음을 하지 않는 것, 입으로 짓는 이간시키는 말ㆍ욕설ㆍ거짓말ㆍ꾸밈말을 하지 않는 것, 뜻으로 짓는 탐욕ㆍ질투ㆍ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인가 하면, 열 가지의 곧은 길로서 즉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ㆍ바른 해탈ㆍ바른 지혜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열 가지의 법은 열반에 이르게 할 수 있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3취(聚)의 미묘하고 바른 법이라 한다.
내가 여래가 되어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모두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나, 너희들을 걱정하기 때문에 경도(經道)를 연설하는 것이다.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제 자신의 몸을 걱정하라. 마땅히 나무 밑에 한가히 있으면서 깊이 생각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지금에 노력하지 않고 뒷날에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0 권
13. 대연방편경(大緣方便經)10)
10) 경의 이역본으로는 후한 시대 안세고가 한역한 『불설인본욕생경(佛說人本欲生經)』과 송 시대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대생의경(佛說大生義經)』이 있으며, 같은 내용의 경으로는 『중아함경』제 24권97번째 소경인 『대인경(大人經)』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사국(拘流沙國)의 겁마사(劫摩沙) 마을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아난은 고요한 곳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너무도 기이하고 특별하구나. 세존께서 말씀하신 열두 가지 인연법의 광명은 매우 깊어 알기 어렵구나. 그러나 내가 마음 속으로 관찰해 보니 마치 눈앞에 있는 일과 같은데 무엇 때문에 깊은 이치가 있다고 하는가?'
그렇게 생각한 아난은 곧 고요한 곳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갔다.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저는 아까 조용한 방에서 잠자코 혼자 생각하기를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열두 가지 인연법의 광명은 매우 깊어 알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마음 속으로 관찰해 보니 마치 눈 앞에 있는 일과 같은데 무엇 때문에 깊다고 하는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아난아, 이 열두 가지 인연법의 광명은 너무도 심오하며 이해하기 어렵다. 아난아, 이 열두 가지 인연법은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다. 모든 하늘ㆍ악마ㆍ범천ㆍ사문 바라문으로서 아직 인연법에 대하여 관찰하지 못한 자가 만일 생각으로 헤아려보고[思量] 관찰하여 그 이치를 분별하려고 한다면 곧 정신이 아득하여 관찰해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내가 이제 너에게 말해 주겠다. 늙고 죽음에는 연(緣:外緣)이 있다. 만일 누가 '무엇이 늙고 죽는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생(生)이 늙고 죽음[老死]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어떤 것이 생의 연인가' 하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유(有:존재)가 생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유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취(聚)가 유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취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애(愛)가 취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애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수(受)가 애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수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촉(觸)이 수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촉의 연인가?'하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6입(入)이 촉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6입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명색(名色)이 6입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명색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식(識)이 명색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식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행(行)이 식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또 누가 '무엇이 행의 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치(癡)가 행의 연이 된다'라고 대답하라.
아난아, 이와 같이 치(癡)를 연(緣:外緣)으로 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으로 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을 연으로 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연으로 하여 6입이 있으며, 6입을 연으로 하여 촉이 있고 촉을 연으로 하여 수가 있으며, 수를 연으로 하여 애가 있고 애를 연으로 하여 취가 있으며, 취를 연으로 하여 유가 있고 유를 연으로 하여 생이 있으며, 생을 연으로 하여 늙음과 죽음과 걱정과 슬픔과 고뇌 등 큰 근심[患]의 덩어리가 있다. 이것이 큰 고음(苦陰)의 연이 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생을 연으로 하여 늙고 죽음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이 생이 없다면 그래도 늙음과 죽음이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난아, 이 연법(緣法)을 통해서 늙음과 죽음은 생으로 인하여 생기고 생을 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유를 연하여 생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이 욕유(欲有:欲界)ㆍ색유(色有:色界)ㆍ무색유(無色有:無色界)11)가 없다면 그래도 생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러한 연법을 통해서 생은 유로 인하여 생겨나고 유를 연하여 생이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취를 연하여 유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ㆍ아취(我取)12)가 없다면 그래도 유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러한 연법을 통하여 유는 취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고 취를 연하여 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애를 연하여 취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욕애(欲愛)ㆍ유애(有愛)ㆍ무유애(無有愛)가 없다면 그래도 취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러한 연법을 통해서 취는 애로부터 생겨나고 애를 연하여 취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수를 연하여 애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낙수(樂受)ㆍ고수(苦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13)가 없다면 그래도 애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11) 세 가지를 3유(有)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유(有)란 나고 죽음의 과보이다. 욕유란 욕계의 생사(生死)이고, 색유란 색계의 생사이며, 무색유란 무색계의 생사를 말한다.
12) 네 가지를 4취(取)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취(取)란 집착을 뜻한다. 욕취란 욕계에서 5욕의 대상 경계에 대하여 일으키는 탐욕의 집착이고, 견취란 잘못된 견해를 진실이라고 집착하는 것이며, 계취란 정인정도(正因正道)가 아닌 것을 정인정도라고 집착하는 것이고, 아취란 자기의 말에 대하여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13) 세 가지를 3수(受)라 하는데, 여기에서 수(受)란 감각 즉 느낌이라는 뜻이다. 낙수란 바깥 경계와의 접촉에서 생겨나는 즐거움의 느낌이고, 고수란 바깥 경계와의 접촉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에 느끼는 괴로움이며, 불고불낙수란 고수와 낙수에 속하지 않는, 즉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말한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애는 수로부터 생겨나고 수를 연하여 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마땅히 알라. 애(愛)를 인하여 구함[求]이 있고 구함을 인하여 이익[利]이 있고 이익을 인하여 씀[用]이 있고 씀을 인하여 욕심[欲]이 있고 욕심을 인하여 집착[著]이 있고 집착을 인하여 질투[嫉]가 있고 질투를 인하여 지킴[守]이 있고 지킴을 인하여 보호[護]가 있다. 아난아, 보호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칼과 막대기와 다툼[諍訟]이 있어 무수한 악을 짓는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보호함[護]이 없게 한다면 그래도 칼과 막대기와 다툼[靜訟]이 있어 무수한 악을 일으키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하여 칼과 막대기와 다툼은 보호로부터 일어나고 보호를 연하여 칼과 막대기와 다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난아,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킴[守]을 인하여 보호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지킴이 없게 한다면 그래도 보호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보호는 지킴으로부터 생겨나고 지킴을 인하여 보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질투[嫉]로 말미암아 지킴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질투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지킴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지킴은 질투로부터 생겨나고 질투를 연하여 지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집착[著]으로 인하여 질투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집착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질투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질투는 집착으로부터 생겨나고 집착을 연하여 질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욕심[欲]으로 인하여 집착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욕심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집착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집착은 욕심으로부터 생겨나고 욕심을 연하여 집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씀[用]을 인하여 욕심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씀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욕심이 생기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런 이치를 통해서 욕심은 씀으로부터 생겨나고 씀을 연하여 욕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이익[利]을 인하여 씀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이익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씀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런 이치를 통해서 씀은 이익으로부터 생겨나고 이익을 연하여 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구함[求]을 인하여 이익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구함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이익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이익은 구함으로부터 생겨나고 구함을 연하여 이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애(愛)를 인하여 구함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애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구함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구함은 애(愛)으로부터 생겨나고 애를 인하여 구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애를 인하여 구함이 있다. 이리하여 지키고[守] 보호함[護]에 이르기까지의 이치도 마찬가지이며, 수(受)도 또한 그와 같아서 수를 인하여 구함이 있으며, 나아가 지키고[守] 보호함[護]에 이르기까지의 이치도 마찬가지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촉(觸)을 연하여 수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아난아, 만일 눈이 없고 빛이 없고 눈의 인식작용[眼識]이 없다면 그래도 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귀ㆍ소리ㆍ귀의 인식작용과 코ㆍ냄새ㆍ코의 인식작용과 혀ㆍ맛ㆍ혀의 인식작용과 몸ㆍ닿임ㆍ몸의 인식작용과 뜻ㆍ법ㆍ뜻의 인식작용이 없다면 그래도 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만일 일체 중생들에게 촉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수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이치를 통하여 수는 촉으로부터 생겨나고 촉을 연하여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명색(名色)을 연하여 촉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중생에게 명색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마음의 감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일체 중생에게 형색(形色)과 모형[相貌]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몸의 감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만일 명색이 없다면 그래도 감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緣法)을 통해서 촉은 명색으로부터 생겨나고 명색을 연하여 촉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식(識)이 모태(母胎)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래도 명색이 생길 수 있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식이 모태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다면 그래도 명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식이 태에서 나와 어린아이 때 없어지고 만다면 그래도 명색이 자라날 수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만일 식이 없다면 그래도 명색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이 연법을 통해서 나는 명색은 식으로부터 생겨나고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아난아, 명색을 연하여 식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식이 명색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곧 식이 머무를 곳이 없을 것이다. 만일 식이 머무를 곳이 없다면 그래도 생ㆍ노ㆍ병ㆍ사와 우ㆍ비ㆍ고ㆍ뇌가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만일 명색이 없다면 그래도 식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아난아, 나는 이 연법을 통해서 식은 명색으로부터 생겨나고 명색을 연하여 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명색은 6입(入)을 연(緣)하고 6입은 촉을 연하고 촉은 수를 연하고 수는 애를 연하고 애는 취를 연하고 취는 유를 연하고 유는 생을 연하고 생은 노ㆍ사ㆍ우ㆍ비ㆍ고ㆍ뇌의 큰 고음의 쌓임[大苦陰集]을 연한다.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하게 말하고 가지런하게 대답하고 가지런하게 한계를 짓고 가지런하게 연설하고 가지런하게 지혜로 관찰[智觀]하고 가지런하게 중생을 위하느니라. 아난아, 모든 비구는 이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바르게 관찰하여 번뇌가 없어진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얻으면 아난아, 이 비구는 마땅히 지혜의 해탈[慧解脫]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의 해탈을 증득한 비구는 여래의 마지막도 알고 여래의 마지막이 아닌 것도 알며, 여래의 마지막과 마지막 아닌 것도 알고, 여래의 마지막 아닌 것과 마지막 아님이 아닌 것도 안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하게 말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대답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한계를 짓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지혜로 관찰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알아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을 얻은 비구는 알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며 다만 이렇게 알고 볼 뿐이다.
아난아, 나[我]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를 거의 아견(我見)이라고 하고 명색(名色)과 수(受)를 다 나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수(受)는 나가 아니고 나라는 것이 수이다'라고 말하고, 혹 어떤 사람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라는 것이 수도 아니며, 수법(受法)이 곧 나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수(受)도 나라는 것이 아니고 나라는 것도 수가 아니며, 수법도 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애(愛)가 나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아난아, 저 나라는 견해를 가진 자들이 '수가 바로 나이다'라고 하거든 너는 마땅히 그들에게 '여래께서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이 세 가지 수(受)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낙수가 있을 때는 고수와 불고불낙수는 있을 수 없고, 고수가 있을 때는 낙수와 불고불낙수는 있을 수 없으며, 불고불낙수가 있을 때는 고수와 낙수는 있을 수 없다고 하셨다'라고 말하라.
왜냐 하면 아난아, 낙촉(樂觸)을 연으로 하여 낙수(樂受)가 생겨나나니, 만일 낙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하기 때문이다. 아난아, 고촉(苦觸)을 연으로 하여 고수가 생겨나나니, 만일 고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불고불락촉을 연으로 하여 불고불락수가 생겨나나니, 만일 불고불락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두 개의 나무를 서로 비비면 곧 불이 일어나지만 각각 딴 곳에 두면 불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낙촉을 연으로 하여 낙수가 생겨나는 것이므로 만일 낙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고촉을 연으로 하여 고수가 생겨나는 것이므로 만일 고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불고불락촉을 연으로 하여 불고불락수가 생겨나는 것이므로 만일 불고불락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아난아, 이 세 가지 수(受)는 작용이 있는 것[有爲]이기 때문에 항상한 것이 아니고 연을 따라 생겨나나니, 다하는 법이요 멸하는 법이요 썩어 무너지는 법이다. 저것들은 나의 소유도 아니요 나 또한 저것의 소유가 아니다. 마땅히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그것을 관찰하라.
아난아 저들이 나[我]라는 견해를 가지는 것은 수(受)를 나[我]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수는 나가 아니고 나라는 것이 수이다'라고 말하거든 너는 마땅히 그에게 '여래께서 고수ㆍ낙수ㆍ불고불락수 이 세 가지 수(受)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만일 낙수가 나라면 낙수가 멸할 때에는 곧 두 개의 나라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만일 고수가 나라면 고수가 멸할 때에는 곧 두 개의 나라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도 잘못이다. 만일 불고불락수가 나라면 불고불락수가 멸할 때에는 곧 두 개의 나라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도 잘못이다'라고 말하라.
아난아,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보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라는 것이 곧 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고 나라는 것은 수도 아니며, 수법(受法)이 나이다'라고 말하거든 너는 마땅히 그에게 '모든 것에는 수가 없는데 너는 어떻게 수법이 있다고 하는가? 네가 바로 수법이냐?' 하고 말하라. 그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는 수도 아니며, 수법이 곧 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는 수도 아니며, 수법도 나가 아니다. 오직 애(愛)가 나이다'라고 말하거든, 너는 그에게 '모든 것은 수가 없는데 어떻게 애가 있겠느냐? 네 자신이 곧 애이냐?'라고 말하라. 그러면 그는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요, 나도 수가 아니며, 수법도 나가 아니다. 애가 바로 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곧 잘못이다.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하게 말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대답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한계를 짓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연설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지혜로 관찰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중생을 위하느니라.
아난아, 모든 비구는 이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바르게 관찰하여 번뇌가 없어진 마음의 해탈을 얻으면 아난아, 이 비구는 마땅히 지혜의 해탈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의 해탈을 증득한 비구는 나[我]라는 것이 있는 것도 알고 나라는 것이 없는 것도 알며, 나라는 것이 있는 동시에 나라는 것이 없는 것도 알고, 나라는 것이 있지도 않고 나라는 것이 없지도 않은 것도 또한 안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하게 말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대답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한계를 짓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지혜로 관찰하고 이렇게 가지런하게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알아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을 얻은 비구는 알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며 다만 이렇게 알고 볼 뿐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똑같이 모두 결정적으로 말한다. 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혹은 소량[少:少量]의 색(色)을 나라고 하고 혹은 무량[多:無量]의 색을 나라고 한다. 혹은 소량의 무색(無色)을 나라고 하고 혹은 무량의 무색을 나라고 한다.
아난아, 저 소량의 색을 나라고 하는 자는 '소량의 색이 나이다.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다른 이가 보는 것은 그르다'고 단정하여 말한다. 무량의 색을 나라고 하는 자도 무량의 색을 나라고 하여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남이 보는 것은 그르다고 한다. 소량의 무색을 나라고 하는 자도 소량의 무색을 나라고 하며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남이 보는 것은 그르다고 하며, 무량의 무색을 나라고 하는 자도 무량의 무색을 나라고 하여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남이 보는 것은 그르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7식주(識住)14)와 2입처(入處)15)에 대해서 모든 사문 바라문은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귀의처가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14) 과보를 따라 생(生)을 받아 태어나서 그 세계에 머무는 것을 그 심식(心識)이 좋아하는 일곱 가지 처소.
15) 안주하는 두 곳. 즉 무상입(無想入)과 비상비무상입(非想非無想入)을 말한다.
어떤 것을 일곱 가지라고 하는가?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곧 하늘과 사람 세계가 그것이니, 이것이 초식주(初識住)이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귀의처가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아난아, 만일 비구로서 초식주를 알되 그 원인을 알고 그 멸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허물[過:初識住의 過患]을 알고 그 벗어나는 방법을 알면 그는 진실 그대로를 알게 되리라. 아난아, 그 비구는 '저는 나라는 것이 아니요 나도 저라는 것이 아니다. 진실 그대로를 보아 안다'고 말하리라.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각기 다르니 범광음천(梵光音天)이 그것이며,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기 다르니 광음천(光音天)이 그것이다.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며, 어떤 중생은 공처(空處)에 머물고 어떤 중생은 식처(識處)에 머물며, 어떤 중생은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르나니 이것을 7식주처라고 한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귀의처가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아난아, 만일 비구로서 7식주를 알되 그 원인을 알고 그 멸을 알고 그 맛을 알며 그 허물을 알고 그 벗어나는 방법을 알면 그는 진실 그대로를 알고 보게 되리라. 그 비구는 '저는 나[我]가 아니요 나도 저가 아니다. 사실 그대로를 알고 볼 뿐이다'라고 말하리니, 이것이 7식주이다.
어떤 것이 2입처(入處)인가?
무상입(無想入)과 비상무상입(非想無想入)이 그것이다. 어떤 사문 바라문이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귀의처가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아난아, 만일 비구로서 2입처를 알되 그 원인을 알고 그 멸을 알며 그 맛을 알고 그 허물을 알며 벗어나는 방법을 알면 그는 사실 그대로를 알고 사실 그대로를 보게 되리라. 그 비구는 '저는 나가 아니요 나도 저가 아니다. 사실 그대로를 알고 볼 뿐이다'라고 말하리니, 이것이 2입처이다.
아난아, 또 8해탈이 있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색(色)에 대하여 색으로 관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고, 마음 속으로 색(色)을 생각하여 바깥의 색을 관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깨끗한 것을 관하여 해탈하는 것이 세 번째 해탈이요, 색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有對想]을 멸하고 잡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공처에 머무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공처(空處)를 초월하여 식처에 머무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고, 색처(色處)를 초월하여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르는 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초월하여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고, 멸진정(滅盡定)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아난아, 모든 비구가 이 여덟 가지 해탈에서 역순으로 노닐면서 드나들기를 자재로이 한다면 그러한 비구는 구해탈(俱解脫)16)을 얻는다.”
그 때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6) 구해탈(俱解脫): 정(定)에 대하는 두 가지 장애인 번뇌장(煩惱障)과 해탈장(解脫障)을 다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0 권
14. 석제환인문경(釋提桓因問經)1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갈타국의 암바라(菴婆羅) 마을 북쪽 비타산(毘陀山)에 있는 인타바라(因陀婆羅) 굴 속에 계셨다.
그 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미묘하고 착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을 뵙고 싶어하면서 '내가 지금 세존이 계시는 곳에 가야겠다'고 하였다. 이 때 모든 도리천들은 석제환인이 미묘하고 착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고자 한다는 말을 듣고 곧 제석에게 나아가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제석이여, 미묘하고 착한 마음을 내어 여래께서 계신 곳으로 가려고 하시니 저희들이 모시고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 때 제석은 곧 음악신[樂神] 반차익(般遮翼)18)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세존께서 계시는 곳에 가려고 하는데 너도 같이 가자. 이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도 나와 함께 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갈 것이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17) 경의 이역본으로는 송(宋) 시대 법현(法賢)이 한역한 『제석소문경(帝釋所問經)』과 원위(元魏) 시대 길가야(吉迦夜)와 담요(曇曜)가 공역한 『잡보장경(雜寶藏經)』 73번째 소경인 『제석문사연경(帝釋問事緣經)』이 있고, 『중아함경』제33권 134번째 소경인 『석문경(釋問經)』과 내용이 동일하다.
18) 하나로서 늘 제석을 모시고 다니며 기악(伎樂)을 연주한다고 하는 악신(樂神)의 이름이다.
이렇게 대답하고 반차익은 유리 거문고를 가지고 제석 앞의 도리천 무리들 가운데서 거문고를 울려 공양했다. 이 때 석제환인과 도리천의 모든 하늘과 반차익은 법당 위에서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더니 역사(力士)가 팔을 한 번 폈다가 굽힐 만큼 짧은 시간에 마갈타국 북쪽에 있는 비타산에 이르렀다. 그 때 세존께서 화염삼매(火焰三昧)에 드시자 저 비타산도 불빛과 동일하게 변하였다. 그러자 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서로 말하기를 “이 비타산이 불빛과 동일하게 된 것은 바로 여래와 모든 하늘의 힘 때문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때 석제환인이 반차익에게 말했다.
“여래ㆍ지진(至眞)을 뵙기란 매우 어렵다. 그 분은 이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내려와 고요하고 묵묵하게 소리 없이 짐승들을 벗삼아 노닐고 계신다. 이곳엔 늘 여러 큰 천신(天神)들이 세존을 모시고 있으니, 너는 먼저 가서 유리 거문고를 연주하여 세존을 즐겁게 하라. 나는 모든 하늘신들과 함께 뒤따라 가겠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반차익은 곧 유리 거문고를 가지고 먼저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유리 거문고를 타면서 게송으로 노래했다.
발타(跋陀)19)여, 그대의 아버지께 예배하노니
그대의 아버지는 매우 단엄하시네.
너를 낳을 때 상서로운 징조 있어
내 마음은 한없이 즐거웠노라.
19) 발타(跋陀): 딸인데 아름답기가 마치 태양의 빛과 같다고 한다.
본래의 조그마한 인연 때문에
마음 속에 욕심이 생겨
갈수록 그 마음 더욱 커져서
마치 아라한을 공양하듯 한다네.
석자(釋子)는 4선(禪)에 전념하고
항상 한가히 있기를 즐기며
바른 뜻으로 감로(甘露)를 구하시는데
나도 또한 그렇게 전념한다네.
능인(能仁)께서 도의 마음을 일으켜
반드시 정각(正覺)을 성취하려 하나니
내 지금 바라는 것은 그녀와
반드시 그 자리에서 만나고자 함이라네.
내 마음은 염착(染着)이 생겨
사랑하고 좋아함을 버리지 못했네.
버리고자 하여도 버릴 수 없어
갈고리에 매인 코끼리 같다가
더울 때 시원한 바람 만난 듯하고
목마를 때 찬 샘물 얻은 것 같으며
열반을 취(取)한 것 같고
물이 불을 꺼 주는 것 같다네.
마치 병자가 좋은 의사 만난 듯하고
굶주린 자가 맛있는 음식을 얻어
실컷 배불리고 즐겨 하는 것 같으며
아라한이 법에서 노니는 것 같네.
코끼리가 갈고리에 매였으면서도
항복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달리고 몰아쳐 제지하기 어렵고
방일(放逸)하여 그칠 줄 모르는 것 같네.
마치 맑고 시원한 못에
온갖 꽃들이 물위를 덮을 때
더위에 지친 코끼리가 거기에 목욕하여
온몸이 유쾌함을 얻는 것 같네.
이제까지 내가 보시한 것과
모든 아라한을 공양한 것으로
세상에 복의 갚음 있다면
모두 그에게 주어 바치리라.
그대가 죽으면 함께 죽으리니
그대 없이 나 혼자 살기보다는
차라리 내 몸을 죽여 버리리
그대 없이 나는 살 수 없다네.
도리천의 주인이신
제석이여, 이제 내 소원 들어주소서.
그대 예절 갖춤을 칭송하오니
그대는 잘 생각하고 살피소서.
그 때 세존께서 삼매에서 일어나 반차익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반차익이여, 너는 청정한 음성으로 유리 거문고에 맞추어 여래를 칭송하는구나. 거문고 소리와 너의 음성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슬프고도 조화로우며 아름답고도 애닲아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네 거문고 연주는 온갖 뜻을 갖추고 있다. 욕심의 결박을 말하기도 하고 또한 범행(梵行)을 말하기도 하였으며 또 사문을 말하기도 하고 또 열반을 말하기도 하는구나.”
그러자 반차익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기억하나이다. 옛날 세존께서 울비라(鬱鞞羅)20)마을 니련선(尼連禪)21) 물가에 있는 아유파타(阿遊波陀)의 니구율(尼俱律) 나무 밑에서 처음으로 불도를 성취하셨을 때 시한타(尸漢陀:帝釋天의 御者) 하늘 대장의 아들과 집악(執樂)천왕의 딸이 한곳에 함께 살면서 다만 애욕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도 그 때 그들의 마음이 그런 줄을 알고 곧 게송을 지어 애욕의 결박에 대해 말하였고 범행(梵行)을 말하였으며, 또 사문을 말하고 열반도 말했습니다.
20) 있는 마을의 이름.
21) 지류(支流)인데 부처님께서 일찍이 이 강에서 고요히 앉아 명상하면서 6년 동안의 고행(苦行)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 강가에서 목욕하셨다고 한다.
그 때 저 천녀(天女)가 제 노래를 다 듣고 나서, 눈을 들어 웃으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반차익이여, 나는 아직 여래를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도리천의 법강당에서 저 모든 하늘이 여래에게는 이와 같은 덕이 있고 이와 같은 힘이 있다고 칭송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믿음을 가지고 여래를 가까이 하고 있으니 이제 나도 당신과 친구가 되고자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 단 한 마디 말만 하고 그 뒤에는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석제환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반차익이 이미 여래를 즐겁게 하였으니, 나는 이제 차라리 저 사람을 생각하리라.'
그리고는 제석은 그 사람 생각을 했다. 때마침 반차익도 생각했다.
'지금 저 제석천이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는 유리 거문고를 가지고 제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제석이 그에게 말했다.
“너는 내 이름과 도리천의 뜻을 대신해서 '세존께서는 편안하게 머무시며 유보(遊步)가 강녕하십니까?' 하고 문안드려라.”
그 때 반차익은 제석의 분부를 받고 곧 세존께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석제환인과 도리천의 모든 하늘신들이 일부러 저를 보내어 세존께 '편안하게 머무시며 유보가 강녕하십니까?' 하고 문안드리게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와 제석, 그리고 도리천의 수명이 연장되고 쾌락하며 근심이 없게 하리라. 왜냐 하면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 그리고 아수륜(阿須輪) 등 온갖 중생들은 다 수명과 안락과 근심이 없기를 탐하기 때문이다.”
그 때에 제석은 다시 가만히 생각했다.
'우리들도 세존께 가서 예배하는 것이 좋겠다.'
곧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 때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저는 세존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아야 할지, 가까이 앉아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너 하늘 무리가 많긴 하다만 내게 다가앉아라.”
그러자 세존이 계시던 인타라굴이 저절로 넓어져 아무런 장애될 것이 없었다. 그 때에 제석은 도리천의 모든 하늘신과 반차익과 함께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제석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살고 있는 어떤 바라문의 집에 계셨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화염삼매에 드셨는데 제가 때마침 조그마한 인연이 있어 천 바퀴살이 있는 보배 수레를 타고 비루륵천왕(毗樓勒天王:南方增長天王)을 만나기 위해 허공을 지나가다가, 합장한 채 세존 앞에 서 있는 한 천녀(天女)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잠시 후에 그녀에게 말하기를 '만일 세존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시거든 너는 마땅히 내 이름으로 세존께 (편안하게 머무시며 유보가 강녕하십니까?) 하고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였는데 얼마 안 있어 그녀는 그 뒤에 저를 위하여 제 마음을 전달하지 않았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일을 기억하시나이까?”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너를 대신해 내게 문안했다. 나는 삼매에서 일어나 네가 타고 가는 수레 소리도 들었다.”
제석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옛날 제가 조그마한 인연이 있어 도리천 여러 하늘 신들과 함께 법당에 모여 있을 때 저 모든 고향의 하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시면 여러 하늘의 무리는 늘어나게 되고 아수라의 무리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제 저는 직접 세존을 뵙고 제 자신이 스스로 알고 몸소 진리를 깨쳤습니다. 여래ㆍ지진께서 세상에 나타나 모든 하늘 무리를 불어나게 하시고 아수륜의 무리는 줄어들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구이(瞿夷)라는 석가 종족의 여자가 있었는데 세존 앞에서 범행을 깨끗이 닦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 도리천 궁전에 태어나 곧 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은 모두 말하기를 '구이, 큰 하늘의 아들은 큰 공덕이 있고 큰 위력이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또 다른 세 비구는 세존 앞에서 범행을 깨끗이 닦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자 악기를 연주하는 신들 가운데에 태어나 밤낮으로 제게 와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구이는 그것을 보고 게송으로 놀렸습니다.
네가 부처님의 제자였을 때
나는 본래 속가에 있었지.
옷과 밥으로 공양 올리고
예배하며 정성을 다하였다네.
너희들은 이름이 무엇이길래
몸소 부처님의 가르침 받고도
깨끗한 눈[淨眼: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
그대들은 관찰하지 않은 것인가.
나는 본래 너를 예배해 공경했고
부처님 좇아 훌륭한 법을 들었기에
저 삼십삼천에 태어나
제석의 아들 되었다네.
내가 스스로 가진 바 공덕을
너희들은 어째서 관찰하지 못하는가.
나는 본래 여자의 몸이었으나
지금은 제석의 아들 되었네.
너희들도 본래는 우리와 함께
범행을 닦았건만
지금은 홀로 낮고 천한 데 있으면서
우리들의 시중을 들고 있구나.
본래 폐악(弊惡)한 행동 했기에
지금 그 때문에 이 갚음 받아
홀로 낮고 천한 곳에 있으면서
우리들의 시중을 들고 있구나.
이 깨끗하지 못한 곳에 태어나
남의 놀림을 받고 있나니
내 이 말 듣고 마땅히 싫어하되
이곳을 싫어하고 걱정해야 하느니라.
지금부터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다시는 남의 심부름꾼 되지 말라.
두 사람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여래의 법을 깊이 생각하라.
저 연모하고 집착하는 것 버려
욕심의 부정한 행을 관찰하여라.
욕심의 결박은 진실되지 않아
온 세상을 속이고 현혹되게 한다.
코끼리가 굴레를 벗어버린 듯
도리천을 벗어나
제석과 도리천 대중들이
법강당에 모였더이다.
저는 자신의 용맹한 힘으로써
도리천을 벗어나자
제석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고
모든 하늘도 또한 잘못을 깨달았다네.
이분은 곧 석가의 아들로서
도리천을 벗어나셨네.
욕심의 결박을 걱정하고 싫어했다고
구이는 이제 이렇게 말하였네.
마갈타 나라에 부처가 있으니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네.
저 아들도 본래는 뜻 잃었었으나
나중에 다시 정신이 돌아왔네.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만
그대로 악기 연주하는 신이 되었고
두 사람은 도의 진리[道諦] 깨달아
도리천을 벗어났다네.
세존께서 말씀하신 법
제자는 의심을 품지 않았네.
똑같이 그 법을 들었건만
두 사람은 저 한 사람보다 뛰어났네.
스스로 수승(殊勝)함을 보고 나서
다 광음천에 태어났다네.
나는 저 법을 관찰하여 깨달았기에
그 때문에 부처님 계신 이곳에 왔다네.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디 틈을 내시어 저의 의심을 단번에 풀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물음을 따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해 낱낱이 연설하리라.”
그 때에 제석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과 건달바와 아수라 및 그 밖의 중생들은 다 무슨 원한이 있기에 서로 상대가 되어 끝내는 원수가 되고 서로 칼과 막대기를 쓰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원한이 생기는 것은 다 탐냄과 질투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과 아수륜과 그 밖의 중생들로 하여금 칼과 막대기로 서로 해를 입히는 것이다.”
그 때에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원한이 생기는 것은 모두 탐냄과 질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과 아수륜과 그 밖의 중생들 모두가 칼과 막대기로 서로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의심의 그물이 다 걷히어 다시는 의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탐냄과 질투는 무엇 때문에 생기고 어떤 것이 인(因)이 되며 어떤 것이 연(緣)이 되며, 또 무엇이 그 근본이 되고 무엇을 따라 생기며 무엇을 따라 없어지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탐냄과 질투는 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사랑과 미움이 그 인(因)이 되고, 사랑과 미움이 그 연(緣)이 되며, 또 그 근본이 된다. 이것을 따라 있는 것이고 그것이 없으면 곧 없어질 것이니라.”
그 때에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탐냄과 질투가 생기는 것은 사랑과 미움때문입니다. 사랑과 미움이 그 인이 되고, 그 연이 되며, 또 그 근본이 됩니다. 이것을 따라 있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곧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 말씀을 듣고 미혹이 모두 없어져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랑과 미움은 또 어디서부터 생겨나며 무엇이 그 인이 되고 연이 되며, 무엇이 그 근원이 되는지, 이것은 무엇을 따라 생기고 무엇을 따라 없어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사랑과 미움이 생기는 것은 모두 탐욕 때문이니, 탐욕이 인이 되고 탐욕이 연이 되며, 탐욕이 그 근본이 된다. 이것을 따라 있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곧 없어질 것이니라.”
그 때에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랑과 미움이 생기는 것은 다 탐욕 때문이며, 탐욕이 그 인이 되고, 탐욕이 그 연이 되며, 또 탐욕이 그 근본이 됩니다. 이것을 따라 있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곧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미혹이 모두 없어져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다만 이 탐욕은 무엇 때문에 생기고 무엇이 그 인이 되며 무엇이 그 연이 되고, 또 무엇이 그 근본이 되는지, 이것은 무엇을 따라 생기고 무엇을 따라 없어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사랑은 생각[想] 때문에 생겨나나니 생각이 그 인이 되고, 생각이 그 연이 되며, 생각이 그 근본이 된다. 이것을 따라 있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곧 없어질 것이다.”
그러자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랑은 생각 때문에 생겨나나니 생각이 그 인이 되고, 생각이 그 연이 되며, 생각이 그 근본이 됩니다. 이 생각을 따라 사랑이 있게 되나니,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곧 없어질 것입니다. 제가 지금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생각은 또 무엇으로부터 생겨나며, 무엇이 인이 되고 무엇이 연이 되며, 무엇이 근원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생각은 조희(調戱)에서 생긴다. 조희가 인이 되고, 연이 되며, 또 조희가 그 근원이 된다. 이것을 따라 있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곧 없어지는 것이다. 제석이여, 만일 조희가 없으면 곧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곧 탐욕이 없으며, 탐욕이 없으면 곧 사랑과 미움이 없고, 사랑과 미움이 없으면 곧 탐냄과 질투가 없다.
만일 탐냄과 질투가 없으면, 곧 일체 중생은 서로 상해(傷害)하지 않을 것이다. 제석이여, 다만 조희를 연하는 것이 근본이 된다. 조희가 인이 되고 조희가 연이 되며 조희가 그 근본이 된다. 이것을 따라 생각이 있고 생각을 따라 탐욕이 있으며 탐욕을 따라 사랑과 미움이 있고 사랑과 미움을 따라 탐냄과 질투가 있으며 탐냄과 질투가 있기 때문에 중생이 서로 상해하는 것이다.”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조희로 말미암아 생각이 있습니다. 조희가 인이 되고 조희가 연이 되며 조희가 그 근본이 되나니, 이것을 따라 생각이 있게 됩니다. 조희로 말미암아 생각이 있나니 이것이 없으면 곧 생각이 없어질 것입니다. 만일 원래 조희가 없으면 곧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곧 탐욕이 없으며, 탐욕이 없으면 곧 사랑과 미움이 없고, 사랑과 미움이 없으면 곧 탐냄과 질투가 없으며, 탐냄과 질투가 없으면 곧 일체 중생은 서로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생각은 조희 때문에 생겨나나니, 조희가 인이 되고 조희가 연이 되며 조희가 그 근본이 됩니다. 조희를 따라 생각이 생겨나고 생각을 따라 탐욕이 있으며 탐욕을 따라 사랑과 미움이 있고 사랑과 미움을 따라 탐냄과 질투가 있으며 탐냄과 질투를 따라 일체 중생들이 서로 상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미혹이 모두 없어져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그 때 제석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다 조희를 없애고 멸적(滅迹)의 경지에 있습니까, 조희를 없애고 멸적의 경지에 있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다 조희를 없애고 멸적의 경지에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제석이여, 세간에는 여러 가지 세계가 있다. 중생들은 각각 자신이 처해 있는 세계를 굳게 지켜, 버리고 떠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은 옳다 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제석이여, 모든 사문 바라문은 다 조희를 없애고 멸적의 경지에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때에 제석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간에는 온갖 중생이 있는데 제각기 자기가 처해 있는 세계를 굳게 지켜, 버리고 떠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만 옳다 하고 남은 모두 허망하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사문 바라문은 다 조희를 없애고 멸적에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 말씀을 듣고 의혹이 다 없어져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제석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몇 가지의 조희를 끊어 없애야 멸적에 있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조희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입[口]이고, 둘째는 생각[想]이며, 셋째는 구[求]함이다. 저 입으로 하는 말은 자기를 해치고 남을 해치며 또 둘다 한꺼번에 해치기도 한다. 그러니 이러한 말을 버리고 말한 대로 하면 자신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한꺼번에 해치지도 않는다. 이것을 아는 비구는 입이 말한 대로 마음을 오로지해 산란하지 않다.
또 생각도 또 자기를 해치고 남을 해치며 둘 다 한꺼번에 해치기도 한다. 이 생각을 버리고 생각한 대로 하면 자신을 해치지도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한꺼번에 해치지도 않는다. 이것을 아는 비구는 생각한 대로 마음을 오로지해 산란하지 않다.
제석이여, 구함도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며 둘 다 한꺼번에 해치기도 한다. 이 구함을 버리고 구한 대로 하면 자신을 해치지도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한꺼번에 해치지도 않는다. 이것을 아는 비구는 구한 대로 마음을 오로지해 산란하지 않다.”
그 때에 석제환인이 말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더이상 의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두 몇 가지를 현성의 사심(捨心)이라 이름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사심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을 기뻐하는 것이요, 둘째는 몸을 걱정하는 것이며, 셋째는 몸을 버리는 것이다. 제석이여, 저 몸을 기뻐하는 것은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며 또 둘 다 한꺼번에 해치기도 한다. 이 기쁨을 버리고 기뻐한 대로 하면 자신을 해치지도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한꺼번에 해치지도 않는다. 이것을 아는 비구는 생각을 오로지해 잊지 않나니, 이것을 곧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비구라고 이름한다.
제석이여, 저 몸을 걱정하는 것은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며 또한 둘 다 한꺼번에 해치기도 한다. 이 걱정을 버리고 걱정한 대로 하면 자신을 해치지도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한꺼번에 해치지도 않는다. 이것을 아는 비구는 생각을 오로지해 잊지 않나니, 이를 바로 구족계를 받은 비구라고 한다.
다시 제석이여, 저 몸을 버리는 것은 자기를 해치고 남을 해치며 또 둘 다 한꺼번에 해치기도 한다. 이 버림을 버리고 버린 대로 하면 자신을 해치지도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한꺼번에 해치지도 않는다. 이것을 아는 비구는 생각을 오로지해 잊지 않나니, 이것을 곧 구족계를 받은 비구라고 한다.”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더 이상 의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제석이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느 정도라야 현성(賢聖)의 율법대로 모든 감각[根]이 구족하다고 이름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눈이 빛깔을 파악할 때 나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친해야 할 것과 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귀가 소리에 대해서와 코가 냄새에 대해서와 혀가 맛에 대해서와 몸이 감촉에 대해서와 뜻이 법에 대해서도 나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나니, 친해야 할 것과 친하지 않아야 할 것이 그것이다.”
그 때에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 주시지 않으셨지만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 알 수 있습니다. '눈이 빛깔을 파악할 때 나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친해야 할 것과 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귀에 대해서와 소리에 대해서와 코가 냄새에 대해서와 혀가 맛에 대해서와 몸이 감촉에 대해서와 뜻이 법에 대해서도 각각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나니, 친해야 할 것과 친하지 않아야 할 것이 그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세존이시여, 만일 눈이 색을 볼 때에 선한 법은 줄고 불선한 법이 늘어난다면 이와 같이 눈이 빛을 파악하는 것을 저는 친근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귀가 소리를, 코가 냄새를, 혀가 맛을, 몸이 감촉을, 뜻이 법을 파악할 때에도 선한 법이 줄고 불선한 법이 늘어난다면 저는 그것을 친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눈이 빛을 볼 때에 선한 법이 자라나고 불선한 법이 줄어든다면 이와 같이 눈이 빛을 파악하는 것에 대해 저는 친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귀가 소리에 대해서, 코가 냄새에 대해서, 혀가 맛에 대해서, 몸이 닿임에 대해서, 뜻이 법에 대해서 알 때에도 선법이 자라나고 불선법이 줄어든다면 저는 그것을 친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것을 현성의 율법대로 모든 감관이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제석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더 이상 의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제석은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두 몇 명의 비구를 구경(究竟)ㆍ구경 범행(梵行)ㆍ구경 안온(安穩)ㆍ구경 무여(無餘)라고 이름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애욕으로 괴로워하는 바를 닦아 몸이 적멸[滅]을 얻으면 그것을 구경ㆍ구경 범행ㆍ구경 안온ㆍ구경 무여라고 한다.”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본래부터 오랫동안 의심의 그물을 품고 있었는데 이제 여래께서 그 의심을 다 풀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전에 사문 바라문에게 찾아가서 이 뜻을 물어본 적이 있었느냐?”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옛날 사문 바라문에게 가서 이 뜻을 물었었습니다. 옛날 어느 때 제가 강당에 모여 여러 하늘 신중들과 여래께서는 마땅히 세상에 나오실 것이라느니, 아직 나오시지 않을 것이라느니 하면서 논란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추구(推求)하다가 여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는 것을 보지 못하고 제각기 궁(宮)으로 돌아가 다섯 가지 욕락을 즐긴 적이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 그 뒤 어느 때 모든 큰 하늘 신들이 스스로 다섯 가지 욕락을 마음껏 즐기다가 드디어 각각 목숨을 마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저는 너무 무서워서 털이 곤두섰습니다. 그 때 사문 바라문들이 집을 떠나 한가한 곳에 기거하면서 욕심을 여읜 것을 보고 저는 그들을 찾아가 '어떤 것을 구경(究竟)이라고 합니까?'라고 제가 이 뜻에 대해 물었지마는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모르고 있었으므로 도로 저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고, 저는 '나는 석제환인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저에게 '너는 어떤 제석이냐?' 라고 물었고 저는 '나는 하늘의 제석으로서 마음에 의심되는 것이 있어 물으러 왔을 뿐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제가 보아 알고 있는 제석의 뜻을 말해주었고 그들은 제 말을 듣고 저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제자로서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얻어 다른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일곱 번을 이 세상에 오간 뒤에는 반드시 도과(道果)를 이룰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에게 수다원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주소서.”
이 말을 마치고 다시 게송을 지어 말했다.
저 물들고 더러운 생각 때문에
나에게 의심이 생겼었으나
오랜 세월을 모든 하늘과 함께
여래의 법을 추구하였네.
출가한 여러 사람들이
한적한 곳에 있는 것 보았네.
그들이 불세존(佛世尊)이라 하기에
찾아가 경례하고 물어 보았네.
'이제 나는 일부러 와 묻노니
어떤 것을 구경(究竟)이라 하는가?'
이렇게 물었으나 그들은 내게
도적(道迹)으로 나가는 법 대답하지 못했네.
오늘 만난 짝할 이 없는 높은 분은
내가 오랫동안 찾던 분으로서
당신의 행을 이미 관찰해 보고서
마음은 벌써 바르게 사유(思惟)한다네.
오직 거룩한 성인만이 이미
내 마음의 행하는 바와
오랫동안 닦은 업을 아나니
깨끗한 눈을 지닌 분이시여, 예언을 해주소서.
사람 중에서 가장 높으시고
3계의 무극존(無極尊)이신 분께 귀명합니다.
은애(恩愛)의 가시덤불 끊고서
이제 일광존(日光尊)께 예배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찍이 희락(喜樂)과 염락(念樂)을 얻었던 때를 기억하는가?”
제석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옛날 제가 얻었던 희락과 염락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옛날 아수륜과 싸웠었습니다. 그 때 제가 이기고 아수륜은 패했습니다. 그 때 저는 돌아와 환희와 염락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환희와 염락을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오직 칼과 막대기의 희락과, 싸움과 다툼의 희락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에게서 얻은 희락과 염락에는 칼과 막대기와 다툼으로 인한 즐거움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희락과 염락을 얻었다. 그 가운데서 또 어떤 공덕의 과(果)를 구하고자 하는가?”
그 때에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희락과 염락 가운데서 다섯 가지 공덕의 과를 구하고자 합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하면 게송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곧 게송을 읊었다.
내 만일 뒷날에 목숨을 마쳐
하늘 나라의 수명[壽]을 버리고
모태(母胎)에 있어서도 근심을 품지 않으며
내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하오리다.
부처님께선 건너지 못한 자를 건너게 하시고
참되고 바른 길을 말씀하셨네.
세 가지 불법(佛法:三菩提) 가운데서
나는 범행을 닦으리라.
지혜의 몸으로 살고
마음은 스스로 바른 이치를 보며
본래 일어난 곳을 환히 알아
여기서 영원히 해탈하리라.
다만 마땅히 부지런히 수행하여
부처님의 진실한 지혜를 익히자.
비록 도과(道果)의 증득은 이루지 못해도
그 공덕 오히려 하늘보다 나으리라.
모든 신묘(神妙)한 하늘과
저 아가니타(阿迦尼吒) 하늘들
말후신(末後身)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저곳에 태어나리라.
나는 이제 이곳에서
하늘의 청정한 몸을 받았고
또 수명이 늘어남을 얻었기에
깨끗한 눈 가지신 분인 줄 나는 안다네.
이 게송을 마치고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희락과 염락 가운데서 이러한 다섯 가지 공덕의 과를 얻고자 합니다.”
그 때에 제석이 모든 도리천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도리천상의 범동자(梵童子) 앞에서 지극한 공경으로 예배하고 섬겼으니, 이제 부처님 앞에서 다시 그 공경을 베푼다면 또한 좋지 않겠는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범동자는 갑자기 허공 중에 있던 하늘 무리들 위에 서서 제석천을 향해 게송으로 말했다.
하늘 왕의 청정한 행은
중생들께 많은 이익 주었네.
마갈 제석의 주인이여,
능히 여래의 뜻을 물었네.
범동자는 이 게송을 마치자 곧 사라졌다.
그 때에 제석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의 발에 절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물러갔다. 도리천의 모든 하늘과 반차익(般遮翼)도 부처님 발에 절하고 물러갔다.
제석천은 조금 앞서 가다가 반차익을 돌아보고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는 먼저 가서 부처님 앞에서 거문고를 연주하여 부처님을 즐겁게 해 드려라. 그러면 나와 모든 하늘들이 뒤따라 가겠다. 나는 이제 너를 네 아버지의 지위에 앉힌다. 너는 건답화(乾沓和:건달바) 중에서 제일 우두머리이다. 나는 마땅히 저 건답화왕의 딸 발타를 너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리라.”
세존이 이렇게 설법하시자 8만 4천 모든 하늘들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서 법안(法眼)이 생겼다. 그 때 석제환인과 도리천의 모든 하늘, 그리고 반차익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