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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1 권
[제2분] ⑥
15. 아누이경(阿누夷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명녕국(冥寧國)1) 아누이(阿누夷)2) 땅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아누이성으로 들어가 밥을 구걸하셨다.
1) 팔리본에는 Malla로 되어 있다.
2) 팔리본에는 Anupiy로 되어 있다. 성읍(城邑)의 이름이다.
그 때 세존께서 가만히 혼자 생각하셨다.
'내 이제 밥을 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르니, 지금 잠깐 방가바(房伽婆) 범지(梵志)의 동산으로 가자. 거기서 때를 기다렸다가 밥을 구걸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신 세존께서는 곧 그 동산으로 나아가셨다. 이 때 그 범지가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일어나 맞이하고 서로 문안한 다음 아뢰었다.
“잘 오셨습니다. 구담(瞿曇)이시여, 뵙지 못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무슨 일로 이렇게 여기에 오셨습니까? 원컨대 구담이시여,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 때 세존께서는 곧 그 자리에 앉으셨고, 그 범지는 한쪽에 앉아 세존께 아뢰었다.
“어젯밤에 예차(隸車)의 아들3) 선숙(善宿)4) 비구가 제 처소로 찾아와 말했습니다.
'대사(大師)여, 나는 부처님 처소에서 범행(梵行)을 닦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나를 멀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구담의 잘못을 이렇게 말했지만 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저 선숙이 한 말을 그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줄 알았다. 옛날 언젠가 나는 비사리(毘舍離)에 있는 미후(獼猴)5)못가에 있는 집법당(集法堂)에 있었다. 그 때 그 선숙 비구가 나의 처소로 찾아와 말했다.
'여래께서는 저를 멀리하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래의 처소에서 범행을 닦지 않겠습니다.'
3) Licchavi-putta로 되어 있다. 예차(隸車)는 리차(利車)ㆍ리차비(離車毗)ㆍ리사(離奢)라고 쓰기도 하는데 비사리성에 살고 있는 찰제리 종족의 이름이다.
4) 비구의 이름으로 팔리본에는 Sunakkhatta로 되어 있다.
5) Makkaa)는 연못의 이름이다. 또한 말가타(末伽吒)ㆍ마가타(麽迦吒)라고도 하는데 비사리국 암라원(菴羅園) 옆에 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저는 여래의 처소에서 범행을 닦지 않겠습니다. 여래께서 저를 멀리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느냐?'
선숙이 내게 대답했다.
'여래께서는 저를 위하여 신족(神足)의 변화를 나타내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내 법 가운데서 범행을 청정히 닦으면 마땅히 너를 위해 신족을 나타내겠다)고 간청이라도 하란 말이냐? 또 너는 내게 (여래께서는 마땅히 저를 위하여 신족의 변화를 나타내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는 마땅히 범행을 닦을 것입니다)라고 말이라도 한 적이 있었느냐?'
그 때 선숙이 내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나는 선숙에게 또 말했다.
'나도 또한 너에게 (네가 내 법 가운데서 범행을 깨끗이 닦으면 나는 마땅히 너를 위하여 신족의 변화를 나타내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너도 또한 나에게 (저를 위해 신족을 나타내면 마땅히 범행을 닦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떠냐? 선숙아, 네 생각에 여래가 신족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타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또 내가 설한 법이 능히 출요(出要)를 얻게 하여 괴로움의 끝을 다하게 하리라고 생각하느냐?'
선숙이 내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능히 신족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나타내시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설하신 법은 출요를 얻게 하여 괴로움의 끝을 다하게 하나니,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숙아, 내가 설한 법대로 범행을 닦는 자라면 신족을 나타낼 수 있나니, 나타내지 못하게 되지 않을 것이며, 출요를 얻게 하여 괴로움을 떠나게 하나니, 떠나지 못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법에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느냐?'
선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우리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술법[祕術]을 때때로 저에게 가르쳐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세존께서는 모두 아시면서도 그것을 아껴 저에게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나는 말하였다.
'선숙아, 내가 일찍이 너에게 (네가 내 법 가운데서 범행을 닦으면 네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술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느냐? 또한 네가 나에게 (아버지의 비밀스런 술법을 가르쳐 주시면 저는 마땅히 부처님 처소에서 범행을 닦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느냐?'
선숙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선숙아, 나도 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너도 또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 어떠냐? 선숙아, 너는 여래가 네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술법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설명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또 내가 설한 법이 능히 출요를 얻게 하여 괴로움의 끝을 다하게 하리라고 생각하느냐?'
선숙이 대답했다.
'여래께서는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술법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하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설하신 법은 출요를 얻게 하여 능히 괴로움의 끝을 다하게 할 것이니, 다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선숙에게 말하였다.
'만일 내가 네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술법을 말해 줄 수 있고 또 내가 설한 법이 출요를 얻게 하여 괴로움을 다하게 한다면 너는 내 법 가운데서 또 무엇을 구하고자 하느냐? 너는 지난날 비사리의 발사(跋闍)6) 땅에서 무수한 방편으로 여래를 찬탄하였고 바른 법을 찬탄하였으며 여러 스님들을 찬탄하였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저 청량지(淸凉池)를 여덟 가지로 찬탄하였는데, 첫 번째는 참[冷], 두 번째는 가벼움, 세 번째는 부드러움, 네 번째는 맑음, 다섯 번째는 달달함[甘], 여섯 번째는 티가 없음, 일곱 번째는 마셔도 질리지 않음, 여덟 번째는 몸을 편안케 하는 못이라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좋아하게 하고 즐기게 한 것과 같다. 너도 그와 같이 비사리의 발사 땅에서 여래를 찬탄하며 바른 법을 찬탄하며 여러 스님들을 찬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고 좋아하게 하였다.
선숙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제 네가 이 법에서 물러나면 세상에서는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선숙 비구는 많은 지식이 있고 또 세존과 가까우며 또한 세존의 제자이다. 그런데 목숨을 마칠 때까지 범행을 청정히 닦을 수 없어 계(戒)를 버리고 세속으로 돌아가 비루한 행동을 하는구나.)'.
범지여,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나도 그 때 '그가 내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계율을 버리고 세속으로 돌아가는구나'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범지여, 언젠가 내가 미후못 가에 있는 법강당에 있을 때, 당시 가라루(伽羅樓)라는 니건자(尼乾子)7)가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명성이 자자했으며 많은 지식이 있고 또 이양(利養)도 구비한 자였다. 그 때 선숙 비구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비사리성에 들어가 밥을 구하다가 니건자가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선숙이 심원한 이치에 대하여 니건자에게 묻자 그는 대답하지 못하고 곧 성을 내었다.
6) 발사(跋闍, Vajji)는 종족의 이름이다.
7) 외도의 이름으로 흔히 노형외도(露形外道)ㆍ나형외도(裸形外道)라 부르는 고행주의자를 말한다.
선숙은 혼자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을 성내게 했으니 장차 오랫동안 고뇌의 과보를 받지나 않을까?'
범지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때 선숙 비구는 걸식을 마친 뒤 가사와 발우를 들고 나의 처소로 찾아와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선숙은 그 때 그 사실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아, 네가 어떻게 스스로 사문 석자(釋子)라고 말할 수 있느냐?'
선숙이 이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왜 저를 어리석다고 하시며, 제가 스스로 석자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어리석은 사람아, 네가 아까 니건자에게 가서 심원한 이치를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지 못하고 곧 화를 내었다. 그 때 너는 혼자 (내가 지금 이 니건자를 건드려 화를 내게 했다가 장차 오랫동안 고뇌의 과보를 받지나 않을까?)라고 생각하였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느냐?'
선숙이 내게 물었다.
'그는 아라한[羅漢]입니다. 어찌 성내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어리석은 사람아, 아라한이라면 어찌 성을 내겠느냐? 우리는 아라한이 아니기 때문에 성내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너는 지금 스스로 (그는 아라한이다. 그는 오랫동안 7종의 고행(苦行)을 닦고 있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옷을 입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지 않고 밥이나 국수를 먹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梵行)을 범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평생 동안 비사리성에 있는 네 석탑 즉, 동쪽의 우원탑(憂園塔)과 남쪽의 상탑(象塔)과 서쪽의 다자탑(多子塔)과 북쪽의 칠취탑(七聚塔) 등 네 탑을 목숨이 다할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머지 네 가지 고행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후에 이 일곱 가지 고행을 범하고는 비사리성 밖에서 목숨을 마칠 것이다. 마치 승냥이가 옴[疥癩]에 걸려 무덤 사이에서 죽는 것처럼 저 니건자도 또한 그럴 것이다. 스스로 금하는 법을 만들었다가도 뒤에 그것을 모두 범한다. 본래 스스로 맹세하기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옷을 입지 않겠다 하고는 뒤에 옷을 입는다. 본래 스스로 맹세하기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지 않고 밥이나 국수를 먹지 않겠다 하고는 뒤에 그것을 모두 먹는다. 본래 스스로 맹세하기를 범행(梵行)을 범하지 않겠다 하고는 또한 뒤에 그것을 범한다. 본래는 동쪽의 우원탑과 남쪽의 상탑과 서쪽의 다자탑과 북쪽의 칠취탑 등의 네 탑을 벗어나지 않겠다 하고는 이제는 모두 그 곳을 멀리 떠나 다시는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 저 사람은 스스로 이 일곱 가지 맹세를 어기고 비사리성을 떠나 무덤 사이에서 목숨을 마치리라.'
나는 선숙에게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아, 네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네가 직접 가서 보아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때 선숙 비구는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는 성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빈 무덤 사이에서 니건자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나서 내게 찾아와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으나 그 사실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 범지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그 때 선숙에게 말했다.
'어떠냐? 선숙아, 내가 이전에 예언한 그 니건자는 내 말과 같지 않던가?'
그는 내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범지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선숙에게 신통을 증명해 보였는데도 그는 '세존은 나를 위하여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또 언제가 나는 명녕국의 백토읍(白土邑)에 있었다. 당시 구라제(究羅帝)라는 니건자가 그 곳에 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명성이 널리 퍼졌으며 또 많은 이양(利養)을 받는 자였다. 내가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밥을 빌 때였다. 그 때에 선숙 비구는 내 뒤를 따라 오다가 구라제 니건자가 똥무더기 위에 엎드려 겨찌꺼기를 핥고 있는 것을 보았다.
범지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때에 선숙 비구는 이 니건자가 똥더미 위에 엎드려 겨찌꺼기를 핥고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아라한과 아라한도(道)를 향하는 자라도 여기에는 못 미칠 것이다. 이 니건자의 도가 가장 훌륭하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교만을 버리고 똥더미 위에 엎드려 겨찌꺼기를 핥는 저런 고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지여, 그 때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서서 선숙에게 말했다.
'너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어떻게 스스로를 석자(釋子)라고 일컬을 수 있겠느냐?'
선숙이 내게 물었다.
'세존이시여, 왜 저를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시고, 저 스스로를 석자라고 일컫을 수 없다고 하십니까?'
나는 선숙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저 구라제가 똥더미 위에 쭈그리고 앉아 찌꺼기를 핥아 먹는 것을 보고 너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간의 모든 아라한과 아라한도에 향하는 자보다도 이 구라제가 제일 높고 존귀하다. 왜냐 하면 지금 이 구라제는 교만을 버리고 똥더미 위에 엎드려 겨찌꺼기를 핥는 저런 고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는 내게 대답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선숙은 또 물었다.
'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아라한(阿羅漢)에게 질투하는 마음을 내십니까?'
나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나한(羅漢)에게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무엇하러 나한에게 질투하는 마음을 내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인 너는 구라제를 참 아라한이라 하는구나. 그러나 이 사람은 지금부터 7일 뒤에 반드시 배가 부어 죽어서는 기시아귀(起屍餓鬼)로 태어나 항상 굶주림에 괴로워 할 것이며, 죽은 송장은 갈대 새끼에 묶여 무덤 사이에 버려질 것이다. 네가 만일 믿지 못하겠거든 먼저 찾아가 그에게 말해도 좋다.'
그 때 선숙은 곧 구라제의 처소로 가서 그에게 말했다.
'저 사문 구담께서 그대에게 (지금부터 7일 뒤에는 반드시 배가 부어 죽어서는 기시아귀로 태어날 것이며, 죽은 송장은 갈대 새끼에 묶여 무덤 사이에 버려질 것이다)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선숙이 또 말했다.
'그대는 마땅히 음식을 줄여 그의 말이 맞지 않도록 하십시오.'
범지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때 구라제는 만 7일이 되자 배가 부어 죽어서는 곧 기시아귀로 태어났고, 송장은 갈대 새끼에 묶여 무덤 사이에 버려졌다. 그 때 선숙은 부처님의 말을 듣고 손꼽아 날짜를 세었다.
7일이 지나자 선숙 비구는 곧 나형촌(裸形村)으로 가서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구라제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이 대답했다.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무슨 병으로 죽었습니까?'
그들은 대답했다.
'배가 부어 죽었습니다.'
'어떻게 장사를 치렀습니까?'
그들은 대답했다.
'갈대 새끼로 묶어 무덤 사이에 버렸습니다.'
범지여, 그 때 선숙은 이 말을 듣고 곧 무덤 사이로 찾아갔다. 그런데 그 송장이 움직이더니 갑자기 무릎과 다리로 쭈그리고 앉았다. 선숙은 앞으로 나아가 송장에게 물었다.
'구라제여, 그대는 죽었습니까?'
송장이 대답했다.
'나는 벌써 죽었다.'
'당신은 무슨 병으로 죽었습니까?'
송장이 대답했다.
'구담이 나에게 예언하기를 (7일 뒤에는 배가 부어 죽는다)고 하더니, 그 말과 같이 만 7일이 되자 배가 부어 죽었다.'
선숙이 다시 물었다.
'당신은 어디에 태어났습니까?'
송장이 곧 대답했다.
'저 구담이 예언하기를 (기시아귀로 태어난다)고 하더니, 나는 지금 기시아귀로 태어났다.'
선숙이 물었다.
'당신이 죽었을 때 어떻게 장사를 치르던가요?'
송장이 대답했다.
'구담이 예언하기를 (갈대 새끼로 묶여 무덤 사이에 버려진다) 하더니, 과연 그의 말과 같이 갈대 새끼로 묶여 무덤 사이에 버려졌다.'
그 때 송장이 선숙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출가는 했지만 좋은 이익은 얻지 못할 것이다. 구담 사문이 이 일을 사실대로 말했지만 너는 항상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송장은 도로 쓰러졌다.
범지여, 그 때 선숙 비구는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지만 이 사실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곧 그에게 말했다.
'내가 예언한 바와 같이 구라제는 진실로 그렇더냐?'
그는 말했다.
'진실로 그러했습니다. 세존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범지여, 나는 이와 같이 자주 자주 선숙 비구를 위해 신통을 증명해 보였는데도 그는 오히려 '나를 위하여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언젠가 미후못 가에 있는 법강당(法講堂)에 있었다. 당시 파리자(波梨子)라는 범지도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명성이 널리 퍼졌으며 또 많은 이양을 받는 자였다.
그는 비사리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문 구담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데 나도 또한 지혜롭다. 사문 구담은 스스로 신족이 있다고 하는데 나도 또한 신족이 있다. 사문 구담은 초월(超越)의 도를 얻었다고 하는데 나도 또한 초월의 도를 얻었다. 나는 마땅히 그와 더불어 신족을 나타내리라. 그 사문이 한 가지를 나타내면 나는 두 가지를 나타낼 것이요, 사문이 두 가지를 나타내면 나는 네 가지를 나타낼 것이요, 사문이 여덟 가지를 나타내면 나는 열여섯 가지를 나타낼 것이요, 사문이 열여섯 가지를 나타내면 나는 서른두 가지를 나타낼 것이요, 사문이 서른두 가지를 나타내면 나는 예순네 가지를 나타낼 것이다. 저 사문이 나타내는 정도에 따라 나는 그 배를 나타낼 것이다.'
범지여, 그 때 저 선숙 비구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밥을 빌다가 파리(波梨) 범지가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문 구담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데 나도 또한 지혜롭다. 사문 구담은 스스로 신족이 있다고 하는데 나도 또한 신족이 있다. 사문 구담은 초월의 도를 얻었다고 하는데 나도 또한 초월의 도를 얻었다. 나는 마땅히 그와 더불어 신족을 나타내리라. 그 사문이 한 가지를 나타내면 나는 두 가지를 나타낼 것이요, 사문이 네 가지를 나타내면 나는 여덟 가지를 나타낼 것이며, 나아가 사문이 나타내는 정도에 따라 나는 그보다 배가 되게 나타낼 것이다.'
그 때 선숙 비구는 걸식을 마치고 나의 처소로 찾아와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내게 말했다.
'저는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밥을 빌었습니다. 그 때 비사리에 사는 파리자가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문 구담은 큰 지혜가 있다는데 나도 또한 큰 지혜가 있다. 사문 구담은 신족이 있다는데 나도 또한 신족이 있다. 구담이 한 가지를 나타내면 나는 마땅히 두 가지를 나타낼 것이요, 이렇게 구담이 나타내는 정도에 따라 나는 그보다 배나 더 나타낼 것이다.)'
선숙은 이 사실을 낱낱이 내게 말했고, 나는 선숙에게 말했다.
'저 파리자가 대중 가운데에서 그런 말을 버리지 않고 그런 소견을 버리지 않고 그런 교만을 버리지 않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는 것은 끝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가 (나는 이 말을 버리지 않고 이 소견을 버리지 않고도 사문 구담의 처소로 갈 수 있는 자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머리는 곧 일곱 조각이 날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소견과 교만을 버리지 않고 나를 찾아오게 하려고 해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선숙은 말했다.
'세존이시여, 입을 조심하소서. 여래시여, 입을 조심하소서.'
나는 선숙에게 말하였다.
'너는 왜 (세존이시여, 입을 조심하소서. 여래시여, 입을 조심하소서)라고 하는가?'
선숙이 말했다.
'저 파리자는 큰 위신(威神)이 있고 큰 덕력(德力)이 있습니다. 만일 그가 찾아온다면 세존께서 허황된 말을 하신 것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내가 선숙에게 말하였다.
'여래가 하는 말에 두 가지가 있었는가?'
선숙이 대답했다.
'없었습니다.'
또 선숙에게 말하였다.
'만일 두 가지가 없다면 너는 왜 (세존이시여, 입을 조심하소서. 여래시여, 입을 조심하소서)라고 말하는가?'
선숙이 내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파리자를 환히 보아 아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하늘이 와서 말해 준 것입니까?'
나는 말하였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알기도 하지만 또한 모든 하늘이 와서 말해 주기도 한다. 그 때문에 안다. 이 비사리의 아유타(阿由陀)8) 대장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 도리천에 태어났다.
8) '아유(阿由)'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 경의 뒷 부분에 '아유타(阿由陀)'로 되어 있는 것에 의거하여 '타(陀)'를 보완하여 넣었다. 아유타(阿由陀, Ajita)는 리차족의 대장(大將)이었다.
그가 찾아와 내게 말했다.
(저 파리자 범지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계율을 범하며 거짓말로 저 비사리의 대중들 가운데서 아유타 대장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기시귀신으로 태어났다고 저를 비방해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도리천에 태어났습니다.)
저 파리자를 나는 먼저 스스로의 힘으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또 모든 하늘이 찾아와 말했기 때문에 안다.'
나는 어리석은 선숙에게 말하였다.
'네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비사리에 들어가 내가 공양을 마친 뒤에 저 파리자 범지가 있는 곳으로 간다고 네가 직접 외쳐라.'”
부처님께서 이윽고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선숙은 그 밤을 지낸 뒤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밥을 빌었다. 그 때 저 선숙은 비사리 성중에 있는 수많은 바라문과 사문 범지에게 이렇게 낱낱이 말했다.
'저 파리자 범지는 대중들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문 구담에게 큰 지혜가 있다는데 나도 또한 큰 지혜가 있다. 사문 구담에게 큰 위력이 있다는데 나도 또한 큰 위력이 있다. 사문 구담에게 큰 신족이 있다는데 나도 또한 큰 신족이 있다. 사문이 한 가지를 나타내면 나는 두 가지를 나타낼 것이요, 이리하여 사문이 나타내는 정도에 따라 나는 그보다 배를 나타낼 것이다.)
그래서 이제 사문 구담께서 저 파리자의 처소로 가신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모두 그 곳으로 갑시다.'
그 때 파리 범지는 길을 가고 있었다. 선숙은 그를 보고 급히 달려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비사리 대중들에게 (저 사문 구담에게 큰 지혜가 있다는데 나도 또한 큰 지혜가 있다) 라고 하고 나아가 (사문 구담이 나타내는 신족의 정도에 따라 나는 그보다 배를 나타낼 것이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구담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지금 당신의 처소로 가신다고 합니다. 당신은 속히 돌아가 계십시오.'
파리자 범지가 대답했다.
'내 당연히 돌아가 있으리라. 내 당연히 돌아가 있으리라.'
이렇게 말하고 나서 파리자 범지는 곧 두려움에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그리하여 본래 있던 처소로 돌아가지 않고 도두파리(道頭波梨) 범지가 있는 숲으로 들어가 노끈 평상에 앉아 시름에 잠겨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부처님께서 방가바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공양을 마친 뒤 수많은 예차(隸車)와 사문 바라문ㆍ범지ㆍ거사(居士)들과 함께 파리자가 머물던 곳으로 나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 대중들 가운데에는 차라(遮羅)라는 범지가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은 그 차라를 불러 말했다.
'그대는 도두파리 숲으로 가서 파리자에게 말하시오.
(지금 수많은 예차와 사문 바라문ㆍ범지ㆍ거사들이 그대의 숲에 모두 모였다. 대중들은 함께 의논하고는 파리자 범지가 대중들 속에서 사문 구담에게 큰 지혜가 있다는데 자기도 또한 큰 지혜가 있다 나아가 구담이 나타내는 신족의 정도에 따라 자기는 그보다 배를 나타내리라는 말까지 직접 했다. 그 때문에 사문 구담께서는 일부러 그대의 숲으로 오셨으니 그대가 와서 만났으면 한다고 하였다.)'
이에 차라는 대중의 말을 듣고 곧 도두파리가 있는 숲으로 가서 파리자에게 말했다.
'지금 수많은 예차와 사문 바라문ㆍ범지ㆍ거사들이 모두 그대의 숲에 모여 있다. 대중들이 함께 의논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파리자 범지는 대중들 속에서 사문 구담에게 큰 지혜가 있다는데 나도 또한 큰 지혜가 있다. 나아가 사문 구담이 나타내는 신족의 정도에 따라 나는 그보다 배를 나타내리라는 말까지 했다. 구담께서는 지금 그대의 숲에 계신다. 파리자여, 지금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그 때 파리 범지는 차라에게 대답했다.
'당연히 돌아가리라. 당연히 돌아가리라.'
이렇게 말하고 나서는 노끈 평상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불안해 하였다. 그 때 노끈 평상에 그 발이 얽혀 그는 평상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었으니, 어떻게 걸어서 세존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었겠는가?
차라가 파리에게 말했다.
'너는 네 자신이 알지도 못하면서 (당연히 돌아가리라. 당연히 돌아가리라)고 헛소리만 하는구나. 이 노끈 평상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어떻게 저 대중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겠느냐?'
이렇게 파리자를 꾸짖고 곧 돌아가 대중들에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의 이름으로 저 파리자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그는 (당연히 돌아가리라. 당연히 돌아가리라)고 나에게 말하고는 노끈 평상에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평상에 발이 얽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노끈 평상조차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대중들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겠습니까?'
그 때 한 두마예차자(頭摩隸車子)9)가 대중 가운데 앉았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길게 꿇어앉아 손을 모으고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이제 직접 가서 그 사람을 데려오겠습니다.'”
9) '일두마예차자(一頭摩隸車子)'가 팔리본에는 'aatara Licchavi-mahmatta(한 예차족의 대신)'으로 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그 때 그 두마예차자(頭摩隸車子)에게 말했다.
'그 사람은 그러한 말을 하고 그러한 소견을 품고 있으며 그러한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부처가 있는 곳으로 오게 하려고 해도 그리 될 수 없다. 두마자야, 정말로 그대가 가죽끈으로 꽁꽁 묶고 여러 마리 소로 함께 끌어 그의 몸이 부수어지게 한다 하더라도 그는 끝내 그런 말과 그런 소견과 그런 교만을 버리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올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그대가 가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두마예차자는 일부러 파리자의 처소로 찾아가 파리자에게 말했다.
'수많은 예차인과 사문 바라문ㆍ범지ㆍ거사들이 그대의 숲에 모두 모였다.
대중들이 함께 의논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파리자 범지는 대중들 속에서, 사문 구담에게 큰 지혜가 있다는데 나도 또한 큰 지혜가 있다. 나아가 사문 구담이 나타내는 신력의 정도에 따라 나는 그보다 배나 더 나타내리라는 말까지 직접 했다. 사문 구담께서는 지금 그대의 숲에 계신다. 그대는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그 때 파리자는 곧 대답했다.
'당연히 돌아가리라. 당연히 돌아가리라.'
이렇게 말하고는 그 몸을 평상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 때 노끈 평상에 다시 그 발이 얽혀 그는 그 노끈 평상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었으니 어떻게 걸어서 세존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었겠는가?
그 때 두마가 파리자에게 말했다.
'너는 스스로 알지도 못하면서 (당연히 돌아가리라. 당연히 돌아가리라)고 헛소리만 하는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그 노끈 평상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어떻게 대중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겠는가?'
두마가 다시 파리자에게 말했다.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비유를 들어 말해 주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옛날에 어떤 짐승의 왕 사자가 깊은 숲 속에 살고 있었다. 사자는 아침에 처음으로 굴에서 나올 때에 사방을 돌아보고 몸을 떨치면서 세 번 포효한 뒤 비로소 돌아다니면서 짐승을 잡아먹었다. 파리자여, 저 짐승의 왕 사자가 먹기를 마치고 숲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한 마리 승냥이가 그 뒤를 따라 다니다가 먹다 남은 고기를 먹었다.
승냥이는 기운이 충족해지자 스스로 생각했다.
(저 숲의 사자가 도대체 어떤 짐승이기에 나보다 낫단 말인가? 나도 이제는 한 숲을 차지하여 아침에 굴을 나와 사방을 돌아보고 몸을 떨치면서 세 번 포효한 뒤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짐승을 잡아먹으리라.)
그래서 그는 어느 숲에 혼자 있다가 아침에 굴에서 나와 몸을 떨치면서 세 번 포효한 뒤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사자처럼 포효한다는 것이 그만 승냥이 울음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다. 파리자여, 너도 지금 마찬가지이다. 부처님의 위엄과 은혜를 입고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들의 공양을 받으면서, 이제는 다시 여래와 다투는구나.'
그 때 두마자는 게송으로써 꾸짖었다.
승냥이가 사자를 자처해
스스로 짐승의 왕이라 하지만
사자처럼 포효해 봐도
결국엔 승냥이 소리만 나왔다네.
홀로 빈 숲 속에 살면서
스스로 짐승의 왕이라 자처해
사자처럼 포효했지만
결국엔 승냥이 소리만 나왔다네.
땅에 꿇어앉아 구멍 속의 쥐를 찾고
무덤을 파고서 죽은 송장 찾고 있구나.
사자처럼 포효했지만
결국엔 승냥이 소리만 나왔다네.
두마자가 다시 말했다.
'너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부처님의 위엄과 은혜를 입고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들의 공양을 받으면서, 이제는 다시 여래와 다투는구나.'
그 때 두마자는 네 가지 비유로 면전에서 꾸짖은 뒤 돌아가 대중들에게 알렸다.
'나는 여러분의 이름으로 파리자를 불렀습니다. 그는 내게 (당연히 돌아가리라. 당연히 돌아가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곧 노끈 평상 위에서 그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평상에 발이 얽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끈 평상조차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대중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겠습니까?'”
그 때 세존이 두마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까 그대에게 '아무리 그 사람을 부처에게 데려오려고 해도 그리 될 수는 없다. 그대가 정녕 가죽끈으로 꽁꽁 묶고 여러 마리 소로 함께 끌어 그의 몸이 부수어지게 한다 하더라도 그는 끝내 그러한 말ㆍ그러한 소견ㆍ그러한 교만을 버리고 내게 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범지여, 나는 그 때 곧 대중에게 여러 가지로 설법하고 교시하여 그들을 이롭고 기쁘게 하고, 그 대중 속에서 세 번 사자처럼 외친 뒤 몸을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본 자리로 돌아왔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문 바라문이 말했다.
'일체 세간은 범자재천(梵自在天)이 만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일체 세간을 정말로 범자재천이 만든 것인가?'
그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내게 물었다.
'구담이여, 그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는 그들에게 대답했다.
'어쩌다 이 세간이 처음으로 무너졌을 때, 어떤 중생이 있어 목숨이 다하고 행(行)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을 마치고 거기서 다시 다른 공범처(空梵處)에 태어났다. 거기서 그는 사랑을 일으켜 낙착심(樂着心)을 내고 다시 다른 중생들도 그곳에 와서 태어나게 하고 싶어 했다. 곧 그 다른 중생들도 목숨이 다하고 행이 다해 다시 그곳에 태어났다.
그 때 그 중생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바로 대범천왕이다. 나는 갑자기 생겨났으며 나를 만든 자가 없다. 나는 능히 모든 이치를 끝까지 알고, 1천 세계에서 가장 자재로울 수 있어 능히 만들어 내고 능히 변화해 미묘하기 제일이요, 모든 사람의 부모가 되었다. 내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에는 오직 나혼자였고 아무도 없었다. 내 힘에 의해서 이 중생이 있게 되었으니 내가 이 중생들을 만든 것이다.)
저 다른 중생들도 또한 순종하며 (범왕(梵王)께서는 갑자기 나타나셨다. 모든 이치를 다 알고 1천 세계에서 가장 자재로울 수 있어 능히 만들어 내고 능히 변화해 미묘하기 제일이요, 모든 사람의 부모가 되었다. 먼저 이 한 분이 있은 뒤에 우리가 있게 되었으니, 이 대범왕이 우리를 만들어 내셨다)고 말하였다. 그 모든 중생들은 거기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이곳에 태어났다. 그들은 점점 자라나자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았다.
그들은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전생 일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대범천은 갑자기 나타났다. 그를 만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모든 이치를 다 알고 1천 세계에서 가장 자재로울 수 있어 능히 만들어 내고 능히 변화해 미묘하기 제일이요, 모든 사람의 부모가 되었다. 저 대범천은 항상 존재하고 옮기지 않으며 변하거나 바뀜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범천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항상됨 없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변하거나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이 범지여, 저 사문 바라문들은 이러한 이유로 저마다 '저 범자재천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범지여, 이 세계를 만든 것은 그들이 미칠 바가 아니요, 오직 부처만이 알 수 있고. 또 이 일보다 더한 것도 부처는 다 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만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고(苦)ㆍ집(集)ㆍ멸(滅)ㆍ미(味)ㆍ과(過)ㆍ출요(出要)를 여실히 알고, 평등한 관찰로써 남김 없이 해탈했기 때문에 이름하여 여래(如來)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렇게 말했다.
'장난스런 웃음과 게으름이 중생의 시초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어떻게 너희들은 진실로 장난스런 웃음과 게으름이 중생의 시초라고 말하는가?'
그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내게 물었다.
'구담이시여, 그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때 나는 대답했다.
'어떤 광음천의 중생은 장난스런 웃음과 게으름을 좋아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점점 자라나자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았다. 그는 곧 심정삼매(心定三昧)에 들어 삼매의 힘으로써 전생의 일들을 알았다.
그리고는 곧 이렇게 말했다.
(저 곳의 다른 중생들은 장난치며 웃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저곳에 있으면서 영원히 머물고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온갖 장난치며 웃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무상하고 변하는 중생이 되었다.)
이와 같이 범지여, 저 사문 바라문은 이런 이유로 장난치며 웃는 것을 중생의 시초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부처는 모두 알고 이보다 더한 것도 또한 안다. 그러나 알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고ㆍ집ㆍ멸ㆍ미ㆍ과ㆍ출요를 여실히 알고, 평등한 관찰로써 남김 없이 해탈했기 때문에 이름하여 여래라 한다.”
부처님께서 방가바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문 바라문이 말했다.
'실의(失意)가 중생의 시초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정말로 실의가 중생의 시초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내게 물었다.
'구담이시여, 그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어떤 중생이 이리저리 서로 보다가 그만 실의(失意)10)에 빠졌다. 그 때문에 그는 목숨을 마친 뒤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점점 자라나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았다.
10) 팔리본에는 mano-padsika 즉 심예(心穢)라고 하였다.
심정삼매에 들어 삼매의 힘으로 전생 일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저 곳의 중생들은 이리저리 서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저 곳에서 자주자주 서로 보았기 때문에 곧 실의하여 이 무상하고 변하는 중생이 되었다.)'
이와 같이 범지여, 저 사문 바라문은 이런 이유로 실의가 중생의 시초라고 말한다. 이런 것은 오직 부처만이 알고 이보다 더한 것도 또한 안다. 그러나 알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고ㆍ집ㆍ멸ㆍ미ㆍ과ㆍ출요를 여실히 알고, 평등한 관찰로써 남김 없이 해탈했기 때문에 이름하여 여래라 한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말했다.
'나는 아무 원인 없이 났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로 본래 아무 원인 없이 났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내게 물었다. 그 때 나는 대답했다.
'어떤 중생은 생각도 없고 앎도 없었다. 그 중생은 생각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곧 목숨을 마친 뒤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점점 자라나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았다.
그는 곧 심정삼매에 들어 삼매의 힘으로 전생 일을 알고 곧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본래 없었는데 지금 갑자기 있게 되었다. 이 세간은 본래 없었는데 지금은 있게 되었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와 같이 범지여, 사문 바라문은 이런 이유로 원인 없이 났다고 한다. 이런 것은 오직 부처만이 알고 이보다 더한 것도 또한 안다. 그러나 알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고ㆍ집ㆍ멸ㆍ미ㆍ과ㆍ출요를 여실히 알고, 평등한 관찰로써 남김 없이 해탈했기 때문에 이름하여 여래라 한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한 것은 이와 같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으슥한 곳에서 나를 비방해 이렇게 말했다.
'사문 구담은 스스로 (내 제자는 깨끗한 해탈[淨解脫]에 들어가 깨끗한 행을 성취했지만 그들은 청정(淸淨)은 알되 깨끗한 것을 두루 알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 제자는 깨끗한 해탈에 들어가 깨끗한 행을 성취했다. 그러나 그들은 청정을 알되 깨끗한 것을 두루 알지는 못한다'라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범지여, 나는 스스로 '내 제자는 깨끗한 해탈에 들어가 깨끗한 행을 성취했다. 그들은 청정을 알고 모든 깨끗함을 두루 다 안다'라고 말했다.”
이 때 범지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들은 좋은 이익을 얻지 못하여 사문 구담을 비방해 말했습니다.
'사문은 스스로 (내 제자는 깨끗한 해탈에 들어가 깨끗한 행을 성취했다.
그러나 그들은 청정을 알되 깨끗한 것을 두루 알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세존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내 제자는 깨끗한 해탈에 들어가 깨끗한 행을 성취했다. 그리고 그들은 청정을 알고 모든 깨끗함을 두루 다 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또한 이 깨끗한 해탈에 들어가 깨끗한 행을 성취하고 일체를 두루 알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거기에 들어가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너는 견해가 다르고 인내(忍耐)가 다르며 행이 다르다. 다른 견해에 의거해 깨끗한 해탈에 들어가려 하는 것은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그저 네가 부처를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끊어지지 않게만 한다면 긴긴세월 동안 영원히 안락을 얻을 것이다.”
그 때 방가바 범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6. 선생경(善生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열기성(羅閱祇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 안에 들어가 밥을 빌고 계셨다. 그 때 라열기성에 선생(善生)11)이라는 장자(長者)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이른 아침에 성을 나와 동산으로 가서 소풍하곤 했는데 방금 목욕을 하고 나서 온몸이 젖은 채로 동ㆍ서ㆍ남ㆍ북과 상ㆍ하의 모든 방위를 향해 두루 예배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선생 장자가 동산으로 나가 소풍하는데 갓 목욕하여 온몸이 젖은 채로 모든 방위를 향해 절하는 것을 보았다.
11) Siglaka)은 시가라월(尸迦羅越)로 음역하기도 한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보고 곧 그에게로 가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슨 일로 이른 아침에 성을 나와 동산 숲에서 온몸이 젖은 채로 모든 방위를 향해 절을 하는가?”
그러자 선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 아버지께서 임종하실 적에 '네가 예배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먼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ㆍ상방ㆍ하방에 예배하라'고 제게 유언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명령을 감히 어길 수 없어 목욕한 뒤 손을 모으고 동방을 향해 예배하고 남ㆍ서ㆍ북방과 상ㆍ하 모든 방위에도 두루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장자의 아들아, 그것은 방위라는 이름이 있을 뿐이다.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 현성법(賢聖法)에서는 그 6방에 예배하는 것을 공경으로 여기지 않는다.”
선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저에게 현성법에서는 어떻게 6방에 예배하는지 그 법을 말씀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들어라. 잘 생각해보고 기억하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선생이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즐겨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결업(結業)12)에 대해 알고 네 곳에서 악행을 짓지 않으며 또 능히 여섯 가지 손재업(損財業)을 안다면 선생아, 이것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악행을 떠나 6방을 예경한다'고 하느니라. 그러면 이승에서도 좋고 저승에서도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이요, 이승에서도 뿌리[根]가 되고 저승에서도 뿌리가 될 것이다. 현재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세상의 1과(果)를 얻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하늘의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선생아, 마땅히 알라. 네 가지 결행(結行)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살생이요, 두 번째는 도둑질이요, 세 번째는 음탕한 짓을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네 곳[處]인가? 첫 번째는 욕심이요, 두 번째는 성냄이요, 세 번째는 두려움이요, 네 번째는 어리석음이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 네 곳에서 악을 지으면 곧 손해가 있을 것이다.”
12) 아래에서는 결행(結行)이라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
이 네 가지 법을 가진 사람은
마치 그믐을 향하는 달처럼
그 명예가 날로 줄어들리라.
부처님께서 다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 네 가지로써 악을 짓지 않으면 곧 이익이 있을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
이런 악행을 짓지 않는 사람은
마치 보름을 향하는 달처럼
그 명예가 날로 더해가리라.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손재업(損財業)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술에 빠지는 것이요, 두 번째는 노름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방탕한 짓을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기악(伎樂)에 미혹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악한 벗과 사귀는 것이요, 여섯 번째는 게으른 것이니, 이것을 여섯 가지 손재업이라고 한다.
선생아,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결행을 알고 네 곳에서 악행을 짓지 않으며 또 여섯 가지 손재업을 안다면, 선생아, 이것이 네 곳을 떠나 6방을 공양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금생도 좋고 후생도 좋으며, 이승에서 뿌리가 되고 저승에서도 뿌리가 될 것이다. 현재에서는 지혜로운 자들에게 칭찬받고 세상의 1과(果)를 얻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하늘의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선생아, 마땅히 알라. 술을 마시면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재물을 없애게 되고, 두 번째는 병이 생기며, 세 번째는 다투게 되고, 네 번째는 나쁜 이름이 퍼지게 되며, 다섯 번째는 성을 내고 사나워지게 되고, 여섯 번째는 지혜가 날로 줄어든다. 선생아, 만일 저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살림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선생아, 노름을 해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재산이 날로 없어지고, 두 번째는 이기더라도 원한을 사게 되며, 세 번째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꾸지람을 듣고, 네 번째는 사람들이 공경하지도 믿지도 않으며, 다섯 번째는 사람들이 멀리하게 되고, 여섯 번째는 도둑질할 마음이 생기게 된다. 선생아, 이것을 노름으로 생겨나는 여섯 가지 손실이라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노름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살림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방탕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두 번째는 재물을 보호하지 못하며, 세 번째는 자손을 보호하지 못하고, 네 번째는 항상 스스로 놀라고 두려워하며, 다섯 번째는 온갖 괴로움과 불행이 항상 그 몸을 휘감고, 여섯 번째는 허망한 일이 생기기 쉽다. 이것을 방탕의 여섯 가지 손실이라고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방탕한 짓거리를 멈추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선생아, 기악에 미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가수를 구해야 하고, 두 번째는 춤꾼을 구해야 하며, 세 번째는 거문고와 비파를 구해야 하고, 네 번째는 파내조(波內早, akkhna)를 구해야 하며, 다섯 번째는 손에 드는 작은 방울[多羅槃, pissara]을 구해야 하고, 여섯 번째는 큰 북[首呵那, kumbhath]을 구해야 한다. 이것을 기악의 여섯 가지 손실이라고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기악을 즐겨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악한 벗과 사귀는 것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속임수를 써 속이게 되고, 두 번째는 으슥한 곳을 좋아하게 되며, 세 번째는 남의 집사람을 꾀이게 되고, 네 번째는 남의 물건을 얻으려고 꾀하게 되며, 다섯 번째는 재물과 이익만 좇게 되고, 여섯 번째는 남의 허물을 들추어 내기를 좋아하게 된다. 이것을 악한 벗과 사귀는 여섯 가지 손실이라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악한 벗과 사귀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게으름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부유하고 즐겁다고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가난하고 궁핍하다면서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춥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덥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때가 이르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고, 여섯 번째는 때가 늦었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게으름의 여섯 가지 손실이라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게으름을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술에 미혹해 빠지는 사람
그에게는 또 술친구만 늘어나
올바르게 모은 재산
어느새 다시 흩어지고 마네.
술 마심에 절도가 없고
언제나 노래와 춤과 유희 즐기며
대낮에 남의 집에 놀러 다니니
그로 인해 스스로 함정에 떨어지네.
나쁜 벗 사귀어 고치지 않고
도 닦는 사람을 비방해 말하니
세상 사람들 삿된 소견을 비웃고
행실이 더럽다고 버림받으리.
좋다 나쁘다 겉모양에 집착하고
의논하는 것이라곤 승부를 겨루는 일
악함13)과 친해 돌아올 줄 모르면
행실이 더럽다고 남의 버림받으리.
술 때문에 거칠고 미혹하게 되어
가난하고 궁핍한 것 생각하지 못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겨 사치 좋아하다가
가정을 파괴하고 재앙을 불러오네.
노름하고 술 마시는 무리를 만들고
음탕한 남의 여자 엿보며
더러운 행실을 좋아하여 익히나니
마치 그믐을 향하는 달 같구나.
악한 짓을 행하고 악한 과보 받으며
악한 벗들과 함께 일을 저지르면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언제나 얻는 것 하나도 없네.
대낮에는 마냥 잠자기만 좋아하고
밤에는 깨어 바라는 것 많으면
외롭고 어리석어 좋은 벗 없고
집안의 살림살이 다스릴 줄 모르네.
이르다 늦다 핑계대며 일하기 싫어하고
춥다 덥다 핑계로 더욱 게으름 피우니
하던 일은 하나도 끝맺지 못하고
또 다시 다 된 일도 망치고 마네.
추위와 더위 가리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일하면
어느 사업이고 안 될 것 없어
마침내 근심 걱정 없게 되리라.
13) '요(要)'자로 되어 있는데 송ㆍ원ㆍ명 3본에는 모두 '악(惡)'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악(惡)'자를 취하여 번역하였다.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원수가 있으니 너는 마땅히 깨달아 알라. 어떤 것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 번째는 두려운 체하면서 복종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달콤한 말이며, 세 번째는 공경하고 순종하는 체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나쁜 벗이다.
두려워서 복종하는 데에는 네 가지 사연[事]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먼저는 주었다가 뒤에 가서 빼앗는 것이요, 두 번째는 적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며, 세 번째는 두려워서 억지로 친한 체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이익을 위하기 때문에 친한 체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려워서 복종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달콤한 말로 친한 체하는 데에도 또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선하건 악하건 무조건 따르는 것이요, 두 번째는 어려움이 있으면 저버리는 것이며, 세 번째는 겉으로 어서 오라고 하며 속으로는 막는 것이요, 네 번째는 위태로운 일이 생기면 곧 배척하는 것이다. 이것을 달콤한 말로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공경하고 순종하며 친한 체하는 것에도 또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미리 속이는 것이요, 두 번째는 나중에 속이는 것이며, 세 번째는 현재에 속이는 것이요, 네 번째는 조그마한 허물만 보아도 곧 매질하는 것이다. 이것을 공경하고 순종하며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악한 벗이 친한 체하는 것에도 또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술을 마실 때에 벗이 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도박할 때에 벗이 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음탕한 짓을 할 때에 벗이 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노래하고 춤출 때에 벗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악한 벗이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두려워 복종하면서 억지로 친한 체하고
달콤한 말로도 그렇게 하며
공경하고 순종하며 거짓으로 친한 체하고
악한 벗은 나쁜 짓으로 친한 체하네.
이런 친구 믿을 수 없나니
어서 빨리 그들을 멀리 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알아
마치 위험한 길을 피하듯 하네.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친할 만한 친구에 네 가지가 있다. 그들은 이익되는 바가 많고 또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잘못을 그치게 하는 친구이고, 두 번째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친구이며, 세 번째는 남을 이롭게 하는 친구이고, 네 번째는 고락을 함께하는 친구이다. 이것이 친할 만한 네 가지 친구로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나니 마땅히 그들을 친근히 하라.
선생아, 잘못을 그치게 하는 것에 네 가지 사연[事]이 있으니, 그들은 이롭게 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사람이 악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곧 그것을 말리는 것이요, 두 번째는 사람에게 정직한 도리를 보여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는 것이요, 네 번째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태어나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허물을 그치게 하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에도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첫 번째는 남의 이익을 보면 대신 기뻐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남의 악을 보면 대신 걱정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남의 덕을 칭찬하고 기리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이 악을 말하는 것을 보면 곧 그것을 막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에도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그가 방일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가 방일하여 재산을 잃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몰래 서로 가르쳐 훈계하는 것이다. 이것이 남을 이롭게 하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고락을 함께하는 것에도 네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그를 위해 신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를 위해 재물을 아끼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를 위해 그의 두려움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그를 위해 남몰래 깨우쳐 훈계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락을 함께하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또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허물을 억제하고 악함을 막아주는 친구
남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친구
남을 이롭게 하여 그를 도와주는 친구
제 일처럼 고락을 함께하는 친구
이런 친구라야 친할 만한 친구이며
지혜로운 이들이 가까이 할 자
친구 중에 더없이 좋은 친구
마치 그 어머니 아들을 사랑하듯이.
만일 친할 만한 친구를 친하려거든
마땅히 견고한 친구를 친하도록 하라.
친근히 하는 이가 계행을 구족하면
불빛이 사람을 비추듯 하리라.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여섯방위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부모는 동방이요, 사장(師長)은 남방이요, 아내는 서방이요, 친척은 북방이요, 종들은 하방이요, 사문 바라문과 행이 높은 모든 사람은 상방이다.
선생아, 남의 자식된 자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敬順]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이바지해 받들어 모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할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먼저 부모에게 아뢰는 것이며, 세 번째는 부모가 하는 일은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부모의 바른 명령을 감히 어기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부모가 하던 바른 가업(家業)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선생아, 대개 남의 자식된 자는 다섯 가지 일로써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며, 부모도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아들을 사랑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자식을 통제하여 악을 행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가리키고 타이르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 사랑이 뼈 속까지 사무치도록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자식에게 좋은 짝을 구해주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때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대주는 것이다. 선생아, 자식이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하며 공손히 받들어 섬기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제자가 스승을 공경하고 받드는 데에도 또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필요한 것을 대주는 것이요, 두 번째는 예경하고 공양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존중하고 우러러 받드는 것이요, 네 번째는 스승의 가르침이 있으면 공손히 따르고 어기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스승에게 법을 듣고는 잘 기억해 잊지 않는 것이다. 선생아, 대개 제자된 자는 마땅히 이 다섯 가지 법으로써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고 섬겨야 한다.
스승과 어른도 또한 다섯 가지 일로써 제자를 잘 보살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법대로 잘 길들이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가 듣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묻는 바에 따라 그 뜻을 알게 해 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좋은 벗을 소개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인색함이 없이 아는 것을 다 가르쳐 주는 것이다. 선생아, 제자가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고 순종하며 공손히 받들어 모시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남편이 아내를 공경하는 데에도 또한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서로 예의로써 대접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위엄을 지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제 때에 옷과 양식을 대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때에 따라 몸치장을 하게 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집안일을 맡기는 것이다. 선생아, 남편은 이 다섯 가지 일로써 아내를 공경하고 대접해야 한다.
아내도 또한 다섯 가지 일로써 남편을 공경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먼저 일어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나중에 앉는 것이며, 세 번째는 부드러운 말을 쓰는 것이요, 네 번째는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뜻을 먼저 알아 받드는 것이다. 선생아, 남편이 아내14)를 이같이 공경하고 대접하는 것이다. 이같이 공경히 대접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14) 보면 여기는 “아내가 남편을…”로 되어야 할 것 같다. 송ㆍ원ㆍ명 3본에는 “아내가 남편을…”로 되어 있다.
선생아, 사람된 자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친족을 가까이하고 공경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베풀어주는 것이요, 두 번째는 착한 말을 쓰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이롭게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이익을 함께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속이지 않는 것이다. 선생아, 이것이 다섯 가지 일로써 친족을 가까이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친족도 또한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사람을 가까이하고 공경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방종하고 안일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방종하고 안일하여 재산을 잃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몰래 서로 가르쳐 훈계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항상 서로 칭찬하는 것이다. 선생아, 이렇게 친족을 보살피고 공경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주인은 다섯 가지 일로써 하인을 가르쳐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그 능력에 알맞게 부리는 것이요, 두 번째는 제때에 음식을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제때에 보수를 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병이 들면 약을 주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휴가를 허락하는 것이다. 선생아, 이것이 다섯 가지 일로써 하인을 부리는 것이다.
하인도 또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주인을 받들어 섬겨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주지 않으면 가지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일을 순서 있게 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주인의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다. 이것이 주인이 하인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시주(施主)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사문 바라문을 공양해 받들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따뜻한 행동으로 대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따뜻한 말로 대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때 맞추어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문을 막지 않는 것이다. 선생아, 이처럼 시주는 이 다섯 가지 일로써 사문 바라문을 공양해 받들어야 한다.
사문 바라문은 또 여섯 가지 일로써 가르쳐야 한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악을 짓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착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선한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듣지 못한 것을 들려 주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이미 들은 것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요, 여섯 번째는 하늘에 태어나는 길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선생아, 이것이 시주가 사문 바라문을 공손히 받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으로써 말씀하셨다.
부모는 동방이고
스승은 남방이며
아내는 서방이고
친족은 북방이며
하인은 하방이고
사문은 상방이네.
모든 장자의 아들들아
모든 방위에 예경하고
공경하고 순종해 때를 놓치지 않으면
죽어서는 모두 천상에 태어나리.
은혜로운 보시와 부드러운 말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 준다네.
너와 나 이익을 공평히 하고
가진 것을 남과 함께 나눠 가져라.
이 네 가지15)는 큰 짐이라
무거운 짐 실은 수레와 같네.
그러나 세간에 이 네 가지가 없다면
효성스런 봉양은 있을 수 없네.
15) 구절에서 거론된 보시(布施)ㆍ애어(愛語)ㆍ이행(利行)ㆍ동사(同事)의 4섭법(攝法)을 말한다.
이 법은 세간에 있어
지혜로운 사람이 선택하는 것
이것을 행하면 큰 과보 얻고
아름다운 이름 멀리 퍼지리.
평상과 자리를 장엄하게 꾸미고
훌륭한 음식을 차려 올리며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주면
아름다운 이름 멀리 퍼지리.
친구는 서로 버리지 않고
이익되는 일들을 서로 보여주며
상하가 늘 서로 화합한다면
이 때 비로소 좋은 명예 얻는다.
마땅히 먼저 기예부터 익히고
그런 다음 재물 늘릴 직업을 가지며
재물을 얻어 이미 구족하거든
마땅히 스스로 지키고 보호하라.
재물 쓰되 사치하지 말고
마땅히 줄 사람 가리어 주라.
남을 속이고 함부로 내닫거든
아무리 빌어도 주지 말아라.
재물을 쌓되 적은 데서 시작하라.
마치 여러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재물은 날마다 점점 불어나
마침내 줄거나 소모됨이 없으리라.
첫째는 음식에 만족할 줄 알고
둘째는 일을 하되 게으르지 말며
셋째는 미리 모으고 쌓아
그것으로 궁핍할 때를 준비하라.
넷째는 밭 갈고 장사도 하며
목장 만들어 짐승 먹이고
다섯째는 마땅히 탑묘(塔廟)를 세우고
여섯째는 절의 방사(房舍)를 지어라.
재가자는 이 6업(業)을 부지런히 힘써
잘 닦아 그 때를 놓치지 말라.
이와 같이 그 행을 닦아 나가면
집안살림 줄어들 일 없고
재물은 날로 점점 불어나
바다로 온갖 강물 흘러들 듯하리.
그 때 선생(善生)은 세존께 아뢰었다.
“참으로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실로 제가 본래 기대했던 것보다 월등하고 제 아버지의 가르침을 넘어섰습니다. 엎어진 자로 하여금 우러름을 얻게 하고, 닫힌 자로 하여금 열림을 얻게 하며, 미혹한 자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고,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서 눈 있는 자가 보게 하셨습니다. 여래의 말씀도 그와 같아서 무수한 방편으로써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깨치게 하고 맑고 깨끗한 법을 보여주셨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께서는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시기 때문에 능히 열어 보이시어 세상의 밝은 길잡이가 되셨습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합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바른 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저는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 때 선생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2 권
[제2분] ⑦
17. 청정경(淸淨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가비라국) 면기(緬祇)1)에 있는 우바새의 동산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이 때 사미(沙彌) 주나(周那)2)는 파파(波波)3)국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마친 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가유라위국 면기에 있는 동산의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아난에게 아뢰었다.
“저 파파성 안에 살던 니건자(尼乾子)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제자들이 두 파로 갈라져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서로 맞대고 헐뜯고 욕하면서 상하가 따로 없이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며 그 지견(知見)을 다투어 '나는 이것을 알 수 있지만 너는 이것을 알 수 없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앞의 것을 뒤에 붙이고 뒤의 것을 앞에 붙이며, 뒤바뀌고 어지러이 얽혀 어떤 일정한 법칙도 없이 서로 '내가 하는 말은 옳고 네가 하는 말은 그르다. 너에게 의심이 있거든 마땅히 내게 물으라'고 합니다.
대덕(大德) 아난이여, 그때 니건자를 섬기던 저 나라 사람들은 이 다투고 있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1) 면기(緬祇, Vedha)는 성읍의 이름이다.
2) 주나(周那, Cunda)는 순타(純陀)로도 쓴다.
3) 파파(波波, Pv)는 왕사성 부근에 있던 말라족(末羅族)의 도성이다.
아난이 주나 사미에게 말했다.
“우리들이 세존께 알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 너와 함께 나아가 이 사실을 세존께 아뢰리라. 만일 세존께서 어떤 가르침이 계시거든 우리는 다 같이 받들어 행하자.”
그 때 사미 주나는 아난의 말을 듣고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그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이 사미 주나가 파파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친 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이곳에 와 제 발에 절하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파국에 살던 니건자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제자들이 두 파로 갈라져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맞대고 헐뜯고 욕하면서 상하가 따로 없이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며 저들의 지견을 주장하여 '나는 이것을 알 수 있는데 너는 이것을 알 수 없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들 합니다. 앞의 것을 뒤에 붙이고 뒤의 것을 앞에 붙이며, 뒤바뀐 소견으로 어지러이 얽혀 어떤 일정한 법칙도 없이 '내 말은 옳고 네 말은 그르다. 너는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내게 물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니건자를 섬기던 저 파파국 백성들은 이 다툼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주나 사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나야, 저 그른 법에서는 들을 만한 것이 없다. 그것은 삼야삼불(三耶三佛)4)의 말씀이 아니다. 마치 썩은 탑에는 색칠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저들에게 스승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다 삿된 소견을 품고 있고, 또 그들에게 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다 참되고 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들을 만한 것이 못되고, 그 법으로는 번뇌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은 삼야삼불의 말씀이 아니어서, 마치 썩은 탑에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4) samm-sambuddha이다. 정변지(正遍知)ㆍ정등각(正等覺)이라는 뜻이다. 또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번역하기도 한다.
저 모든 제자들이 그 법을 따르지 않고 삿된 소견을 버리고 바른 소견을 행하려고 할 때에 주나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여러분, 그대들 스승의 법은 바른 것이어서 마땅히 그 법을 행할 만한데 왜 버리느냐?'라고 말한다고 하자. 그 때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이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도(道)를 잃어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에게 비록 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진정(眞正)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이 진정하여 듣고 행할만하며 또 번뇌를 벗어나게 한다면 그것은 삼야삼불의 말씀일 것이니, 마치 새로운 탑에는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다. 그러나 저 모든 제자들이 이 법 가운데 있어서 부지런히 닦지도 않고 성취하지도 못해 평등한 도를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들에게 와서 '여러분, 그대들 스승의 법은 바른 법이다. 마땅히 그 법을 행해야 하겠거늘 왜 그것을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가려 하느냐?'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제자가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진정한 도를 보아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법은 진정(眞正)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주나에게 말씀하셨다.
“주나야, 저들에게 스승이 있다지만 그들은 다 삿된 소견을 품었고, 또 법이 있다지만 그것은 다 진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 법은 들을 만한 것이 못되고 또 그것은 번뇌를 벗어나게 하지 못하며 삼야삼불의 말씀도 아니니, 마치 썩은 탑에는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성취하고 그 행을 순종하여 모든 삿된 소견을 일으켰을 때에 주나야,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네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네가 행하는 것도 옳다. 이제 이처럼 그것을 부지런히 수행하면, 너는 반드시 현재에서 도과(道果)를 성취하리라'라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제자도 그 말을 믿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함께 도를 잃고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법이 진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이 진정하여 들을 만하며 또 번뇌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법이라면 그것은 삼야삼불의 말씀일 것이니, 마치 새로운 탑에는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성취하고 수순(隨順)하며 수행하여 바른 소견을 내려고 할 때에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네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네가 행하는 것도 옳다. 이제 이처럼 부지런히 수행하니 너는 반드시 현재에서 도과를 성취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제자도 그 말을 믿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다 바른 소견으로서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법은 진정하기 때문이다.
주나야, 혹 어떤 도사(導師)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을 생기게 하고, 혹 어떤 도사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의 근심을 없애 준다.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이 생기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나야, 도사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成道)한 지 오래지 않아 그 법은 구족하고 범행(梵行)이 청정하며 여실한 진요(眞要)인데 이를 잘 펴서 나타내 주지도 못하고 도사가 어느새 멸도(滅度)에 든다고 하자.
그 때 그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어 모두들 근심에 잠겨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우리 스승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한 지 오래지 않지만,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했으며 여실한 진요였다. 끝내 펴서 나타내 주지도 못하고 이제 도사께서 갑자기 멸도에 드셨으니, 우리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구나.'
이것을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를 근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이 없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사가 세상에 나왔는데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하며 여실한 진요이다. 그리하여 그 법을 널리 편 뒤에야 도사가 바야흐로 멸도에 든다고 하자. 그러면 그 제자들은 모두 수행할 수 있어 근심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스승은 세상에 나와 성도한 지 오래지 않지만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했으며 여실한 진요이다. 그리고 널리 펴신 후에야 도사께서는 멸도하시어 우리 제자들이 모두 수행할 수 있게 하셨다.'
주나야, 이것이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이 없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주나에게 말씀하셨다.
“지(支)5)가 성취된 범행에 대해 말해주리라. 이른바 도사가 세상에 나왔다가 집을 떠난 지 오래지 않고 그 이름이 널리 퍼지지 않았으면 이것을 범행지(梵行支)를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이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으면 이것을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5) aga이고 지분(支分)ㆍ부분(部分)이라는 뜻이다. 송ㆍ원ㆍ명 3본에는 '지(枝)'자로 되어 있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이고 그 이름 또한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모든 제자가 아직 그 훈계와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범행을 구족하지 못하고 안락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아직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아직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異論)이 일어났을 때 법답게 가서 그것을 없애지 못하고 아직 변화를 부리지 못하며 신통을 증득하지 못했다면, 이것을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이고 그 이름도 널리 퍼져 모든 제자들이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을 구족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이미 자기의 이익을 거두었고 또 법을 받아 분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 능히 법답게 가서 그것을 없애고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하였다면, 이것을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또한 오래이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모든 비구니가 그 교훈을 받지 못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 능히 법으로써 실답게 멸하지 못하고 변화가 없어 신통을 증득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도 오래이고 이름도 널리 퍼졌으며, 모든 비구니가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을 구족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러 자기의 이익을 거두며, 또한 능히 법을 받아 분별하고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나면 능히 법답게 멸하며,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하였다면, 이를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모든 우바새ㆍ우바이가 널리 범행을 닦고 나아가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함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주나야,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지 않고 그 명성[名聞]이 없으며 이양(利養)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고 명성과 이양이 다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성과 이양이 다 구족하더라도 모든 비구가 명성과 이양을 구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성과 이양이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고 모든 비구 대중도 또한 그것을 구족하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다. 비구니 대중들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주나야, 나는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이름도 널리 퍼졌으며 나의 모든 비구들은 이미 나의 가르침을 받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얻었고 또 능히 배운 법을 남을 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에는 능히 법답게 멸하고 변화가 구족하며 신통을 증득하였다.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도 또한 그러하다. 주나야, 나는 그로서 널리 범행을 유포하고, 나아가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하였다.
주나야, 일체 세간의 모든 도사 중에 그 명성과 이양을 얻은 것이 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과 같은 이는 보지 못했다. 주나야, 모든 세간의 온갖 무리들 중에 그 명성과 이양이 나의 무리와 같은 자들은 보지 못했다.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떤 것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인가? 일체의 범행을 청정히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울두람자(鬱頭藍子)6)가 대중들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는가? 마치 칼은 볼 수 있어도 칼날은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6) Uddaka Rmaputta로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하여 도를 배웠던 두 선인(仙人) 가운데 한 사람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범부의 무식한 말로 비유를 들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 무엇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가? 네가 바로 일체 범행을 청정하게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여 흘러 퍼지게 해야 한다고 말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볼 수 없는 것이니라. 주나야, 저 인과가 계속되는 법[相續法]은 구족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지만, 인과가 계속되지 않는 법은 구족하여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주나야, 모든 법 범행(梵行)은 비유하면 낙(酪)과 소(酥) 가운데 제호와 같은 것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법 가운데서 몸소 스스로 증명을 얻었다. 이른바 4념처(念處)ㆍ4신족(神足)ㆍ4의단(意斷)ㆍ4선(禪)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와 현성의 여덟 가지 도(道)가 그것이다. 너희들은 다 함께 화합하고 서로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하니라. 여래의 정법에 대하여 마땅히 스스로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안락을 얻어 마치고 나서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자리에서 말하기를 '저 사람이 말한 구절은 옳지 않고 그 뜻도 옳지 않다'고 말하거든 비구들은 그런 말을 듣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여러분,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한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내 글귀는 이러하고 내 뜻은 이러하다. 너의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그래서 너의 글귀가 낫고 너의 뜻도 낫다.'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할 때 또한 그것을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하여 서로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한 것이다. 여래의 바른 법 가운데서 마땅히 스스로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안락을 얻어 마치고 나서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도중에 다른 비구가 있어 말하기를 '저 사람이 말한 글귀는 바르지 못하다. 그러나 그 뜻은 바르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더라도 비구는 그 말을 듣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비구여,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네 글귀는 이러하다. 네 글귀가 낫다.'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하더라도, 또한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할 것이요, 서로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한 것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스스로를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안락을 얻고 나서 만일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도중에 다른 비구가 있다가 '저 사람이 말한 글귀는 바르지만 뜻은 바르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더라도, 비구는 그 말을 듣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비구여,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나의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너의 뜻이 낫다.'
그 비구가 이렇게 말더라도, 또한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또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비구는 다 함께 화합하여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한 것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스스로를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안락을 얻고 나서 또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도중에 다른 비구가 있다가 '저 사람의 말은 글귀도 바르고 뜻도 또한 바르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더라도 비구는 그 말을 듣고 그르다고 하지 말고 마땅히 그를 칭찬해 말하라.
'네 말이 옳다, 네 말이 옳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12부경(部經)에 대하여 몸소 진리를 깨닫고 마땅히 널리 유포해야 한다. 12부경이란 첫째는 관경(貫經), 둘째는 기야경(祇夜經), 셋째는 수기경(受記經), 넷째는 게경(偈經), 다섯째는 법구경(法句經), 여섯째는 상응경(相應經), 일곱째는 본연경(本緣經), 여덟째는 천본경(天本經), 아홉째는 광경(廣經), 열째는 미증유경(未曾有經), 열한째는 비유경(譬喩經), 열두째는 대교경(大敎經)이다. 마땅히 이것을 잘 받아 지니고 헤아려 관찰하고 널리 펴서 분포하라.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옷은 혹은 무덤 사이의 옷, 혹은 장자의 옷, 혹은 추하고 천한 옷이다. 이 옷들은 추위와 더위, 모기나 등에를 막기에 충분하고 몸뚱이를 가리기에 넉넉하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음식은 빌어온 음식이거나 혹은 거사의 음식이니 이 음식이면 스스로 족하다. 몸이 괴롭고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 이 음식을 허락한 것이니 족한 줄 알면 그만인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주처(住處)는 혹은 나무 밑에 있거나 혹은 한 데 있으며, 혹은 방 안에 있거나 혹은 누각 위에 있으며, 혹은 굴 속에 있고 혹은 그 밖의 여러 곳에 있다. 이 주처들은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 모기와 등에를 막기에 족하며 한적하고 피곤할 때 쉴 곳이 된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약은 대소변ㆍ소유(酥油)ㆍ흑밀(黑蜜)ㆍ석밀(石蜜) 등이니 이런 약이면 스스로 족하다. 혹은 몸에 고통이 생기고 온갖 병이 닥쳐와 마침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 이 약을 허락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혹 어떤 외도(外道) 범지가 와서 '사문 석자(釋子)는 온갖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긴다'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이렇게 대답하라.
'그대들은 (사문 석자는 온갖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긴다>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는 것 중에 여래께서 꾸짖는 것이 있고,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는 것 중에 여래께서 칭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외도 범지가 다시 '구담은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꾸짖는가?'라고 묻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라.
'5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탐착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이 빛깔을 보면 애착을 가질 수 있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되며 귀가 소리를 듣고, 코가 냄새를 맡고, 혀가 맛을 맛보고, 몸이 촉감을 느끼고 나면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된다. 여러분, 바로 이 5욕의 인연이 희락(喜樂)을 일으킨다. 이런 것들은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꾸짖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이면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몰래 도둑질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범행(梵行)을 범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대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행이 아닌 이교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모든 비구여, 여래께서는 사람들이 다섯 가지 욕망의 공덕을 탐내어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꾸짖으신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 나서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되며,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혀는 맛을 알고, 몸은 촉감을 느끼고 나서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즐거움이라지만 사문 석자에게 이러한 즐거움은 없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은 일부러 중생을 죽이고 이를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게 그러한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공공연하게 도둑질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게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범행을 범하고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게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일부러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겐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방탕한 짓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겐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이교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겐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만일 어떤 외도 범지가 '사문 구담은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칭찬하시는가?' 하고 묻거든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라.
'여러분, 5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들이 탐착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 나아가 마음이 법진(法塵)을 알고 나면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들이 탐착하는 것이다. 여러분, 5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한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이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공공연하게 도둑질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범행을 범하고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일부러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방탕한 짓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외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탐욕을 여의고 다시 악을 여의어 각(覺)과 관(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각(覺)과 관(觀)을 없애고 안으로 기뻐 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는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에 들어간다면, 그런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기쁨을 버리고 사(捨)에 들어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을 알고 성현이 구하는 바인 호념일심(護念一心)의 제3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즐거움도 다하고 괴로움도 다하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다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護: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만일 어떤 외도 범지가 '너희들은 그 즐거움에서 얼마만한 공덕의 과(果)를 구하느냐?'고 묻거든 마땅히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이 즐거움에는 7과(果)의 공덕이 있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현세에서 도증(道證)을 이루는 것이다. 만일 현세에서 이루지 못하면 목숨을 마칠 때 도증을 이루는 것이요, 만일 목숨을 마칠 때에도 이루지 못하면 반드시 5하결(下結)을 다해 중유의 단계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거나 다른 세계에 태어나서 반열반에 들거나 그 곳에서 수행하여 반열반에 들거나 수행하지 않고도 반열반에 들거나 가장 위의 세계인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에서 반열반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 즐거움의 일곱 가지 공덕이다.
여러분, 만일 배우는 위치[學地]에 있는 비구가 위로 안온처(安穩處)를 구하는데 아직 5개(蓋)를 없애지 못했다고 하자.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탐욕개(貪欲蓋)ㆍ진에개(瞋恚蓋)ㆍ수면개(睡眠蓋)ㆍ도희개(掉戱蓋)ㆍ의개(疑蓋)가 그것이다. 저 배우는 위치에 있는 비구가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면서 아직 5개를 없애지 못했고 4념처(念處)를 정근하지 않고 7각의(覺意)를 정근하지 않는다면 상인(上人)의 법과 현성의 지혜를 늘려서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 학지에 있는 비구가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여 능히 탐욕개ㆍ진에개ㆍ수면개ㆍ도희개ㆍ의개 등 5개를 없애고 또 4념처를 정근하고 7각의를 여실히 수행한다고 하자. 그런 사람이 상인의 법과 현성의 지혜를 늘려서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 혹 어떤 비구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하고 무거운 짐을 버리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有)7)의 번뇌를 다하며,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여 9사(事)를 행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아홉 가지인가?
첫째는 살생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간음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거짓말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도(道)를 버리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욕심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성냄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여덟째는 두려움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해야 할 일을 다해 마치고 무거운 짐을 버리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有)의 번뇌를 다하며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여 9사(事)를 멀리 떠난다고 하는 것이다.'
7) 3유(有) 즉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를 말한다.
또 어떤 외도 범지가 '사문 석자(釋子)에겐 머무르지 않는 법[不住法]이 있다'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여러분, (사문 석자에겐 머무르지 않는 법이 있다)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사문 석자의 법은 영원히 머물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마치 문지방은 항상 머물러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사문 석자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들의 법은 항상 머물러 있고 움직이지 않는다.'
또 어떤 외도 범지는 '사문 구담은 과거 세상의 일을 다 알지만 미래의 일은 모른다'고 말한다. 그 이학(異學) 범지는 지혜도 다르고 지혜로 보는 관점도 또한 다르며 그의 말은 허망하다. 여래는 과거 세상의 일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미래 세상에 대해서도 도지(道智)8)로써 안다.
8) 도지(道智, mrgaja)는 깨달음으로 생기는 지혜를 말한다.
그러나 만일 과거 세상의 일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하고 즐거워할 것이 못되며 이익될 것이 없으면 부처는 곧 기억하지 않는다. 혹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는 하나 즐거워할 것이 못되고 이익될 것이 없으면 부처는 또한 기억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기도 하나, 이익되는 바가 없으면 부처는 또한 기억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며 또 이익되는 바도 있으면 여래는 그것을 다 알고 기억한다. 미래와 현재도 또한 그러하다.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대하여 제 때에 말하고[時語], 진실하게 말하며[實語], 뜻대로 말하고[義語], 이익되게 말하고[利語], 법에 맞게 말하고[法語], 계율에 맞게 말하는[律語] 자로서 거짓이 없다.
부처가 최정각(最正覺)을 이룬 최초의 밤부터 최후의 밤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한 말은 모두 진실한 것[如實]이다. 그러므로 여래라 이름한다. 또한 여래의 말은 사실과 같고 사실이 그의 말과 같으므로 여래라 이름한다. 어떤 이유로 등정각(等正覺)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로서 알고 보아야 할 것, 멸해야 할 것, 깨달아야 할 것을 부처는 다 깨달아 안다. 그러므로 등정각이라 이름한다.
또 어떤 외도 범지는 이렇게 말한다.
'세간은 영원하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세간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영원한 것도 아니요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邊]이 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것은 목숨이고 이것은 몸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것은 목숨도 아니요 몸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목숨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목숨이 다른 것도 아니요 몸이 다른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기도 하고 마치지 않기도 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이러한 모든 소견이 있는데 이것을 본생본견(本生本見)이라 이름한다. 이제 너를 위하여 기록한다. 이른바 '이 세상은 영원하다. 나아가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는 것은 본견본생(本見本生)인데 너를 위해 기록한다.
이른바 미견미생(未見未生)9)도 나는 또 기록하리니 어떤 것이 내가 기록하는 미견미생인가?
'색(色)이 나[我]인데 생각[想]을 좇아 마침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색이 없는 것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또 색이 있기도 하고 또 색이 없기도 한 것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9) 2본에는 '말견말생(末見末生)'으로 되어 있다. 앞의 '본견본생(本見本生)'과 대비해 볼 때 '말견말생(末見末生)'이 옳을 듯하다.
나는 끝이 있다, 나는 끝이 없다, 나는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나는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즐거움이 있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즐거움이 없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한 생각[想]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갖가지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적은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무량한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이것이 삿된 소견의 본견본생10)으로써 내가 기록하는 것이다.
10) 맥락으로 보아 원문의 '본견본생(本見本生)'은 '말견말생(末見末生)'으로 해야 옳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나아가 무량한 생각[想]이 곧 나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또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라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너는 참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데, 어찌하여 이 세상은 영원하며 그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가? 그러한 말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런 모든 소견 가운데에는 모두 번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치로써 미루어 볼 때 모든 사문 바라문 중에는 나와 짝할 이가 없다. 하물며 나를 뛰어 넘으려고 하는 자이겠는가?'
이 모든 삿된 소견은 한낱 말만 있을 뿐 함께 의논하기에는 적당치 않다. 나아가 '무량한 생각이 나[我]이다'라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런 말을 한다.
'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 어떤 사문 바라문은 말한다.
'이 세간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
혹은 이렇게 말한다.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
혹은 또 말한다.
'저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갑자기 생긴 것이다.'
저 사문 바라문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모두 촉(觸)의 인연을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만일 촉의 인연을 떠나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왜냐 하면 6입(入)을 말미암기 때문에 촉이 생기고, 촉을 말미암기 때문에 수(受)가 생기고, 수를 말미암기 때문에 애(愛)가 생기고, 애를 말미암기 때문에 취(取)가 생기고, 취를 말미암기 때문에 유(有)가 생기고, 유를 말미암기 때문에 생(生)이 생기고, 생을 말미암기 때문에 노(老)ㆍ사(死)ㆍ우(憂)ㆍ비(悲)ㆍ고(苦)ㆍ뇌(惱)의 걱정[患] 덩어리가 있는 것이다.
만일 6입이 없으면 촉이 없고, 촉이 없으면 수가 없고, 수가 없으면 애가 없고, 애가 없으면 취가 없고, 취가 없으면 유가 없고, 유가 없으면 생이 없고, 생이 없으면 노ㆍ사ㆍ우ㆍ비ㆍ고ㆍ뇌의 큰 걱정덩어리 음집(陰集)이 없을 것이다. 또 '이 세간은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고 말하고, 또 '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또 '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갑자기 생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 촉을 말미암아 있는 것으로서 촉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러한 모든 삿되고 나쁜 소견을 없애려 하거든 4념처(念處)를 세 가지 수행법으로 닦아라. 어떤 것이 비구가 모든 악을 없애려고 4념처를 세 가지 수행법으로 닦는 것인가? 비구들아,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요. 또 외신신관(外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기억하고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며, 또 내외신신관(內外身身觀)을 기억하고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수(受)ㆍ의(意)ㆍ법(法)을 관(觀)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모든 악법을 멸하기 위해 4념처를 세 가지 수행법으로 닦는 것이다.
또 8해탈(解脫)이 있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색(色)을 색으로 관(觀)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요, 마음 속에 색(色)에 대한 생각11)을 가지고 밖으로 색을 관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정(淨)해탈은 세 번째 해탈이요, 색이라는 생각을 초월하여 상대할 만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에 머무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며,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머무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버리고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르는 것은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멸진정(滅盡定)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11) 색욕(色欲)을 탐하는 생각이다.
그 때 아난이 세존의 뒤에서 부채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있다가 곧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며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은 청정하고 미묘하기 제일입니다. 마땅히 뭐라 이름하고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을 청정(淸淨)이라 이름하나니, 너는 마땅히 청정하게 이것을 지녀야 한다.”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2 권
18. 자환희경(自歡喜經)12)
12) 송(宋) 시대 법현(法賢)이 한역한 『불설신불공덕경(佛說信佛功德經)』이 있다. 또 참고 경문으로는 『잡아함경』 제18권 497번째 소경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란타성(那爛陀城)의 파파리암바(波波利菴婆)숲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장로 사리불(舍利弗)이 고요한 곳에서 잠자코 혼자 생각하였다.
'나는 마음으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사문 바라문으로서 지혜와 신족(神足), 공덕과 도력이 여래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과 같은 분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사리불은 고요한 방에서 일어나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부처님의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아까 고요한 방에서 잠자코 혼자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사문 바라문으로서 그 지혜와 신족, 공덕과 도력이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과 같은 이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능히 부처 앞에서 그러한 말을 할 줄 아는구나. 너는 한결같이 간직하고 있던 말을 바로 사자처럼 외쳤도다. 어느 사문 바라문도 너에게 미칠 자가 없다. 어떤가? 사리불아, 너는 과거 모든 부처님들 마음 속 생각과 그 부처님들께서 지녔던 그러한 계(戒)와 그러한 법과 그러한 지혜와 그러한 해탈과 그러한 해탈의 집[堂]에 대해 아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어떤가? 사리불아, 너는 미래 모든 부처님들의 마음 속 생각과 지니실 그러한 계와 그러한 법과 그러한 지혜와 그러한 해탈과 그러한 해탈의 집에 대하여 아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어떤가? 사리불아, 이제 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마음 속 생각과 지니고 있는 그러한 계와 그러한 법과 그러한 지혜와 그러한 해탈과 그러한 해탈의 집에 대하여 너는 아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부처님께서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의 마음 속 생각을 너는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결정코 그런 생각을 가지며 무슨 일 때문에 그런 생각을 내어 한결같이 굳게 지니고, 또 사자처럼 외쳐대는가? 다른 사문 바라문이 만일 '나는 결정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사문 바라문으로서 지혜와 신족, 공덕과 도력이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과 같은 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는 너의 말을 들으면 반드시 너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반적인 법은 저도 능히 알고 있습니다. 여래께서는 저를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그것은 갈수록 고상하고 갈수록 미묘합니다. 더러운 법[黑法]과 깨끗한 법[白法], 인연이 있는 법[緣法]과 인연이 없는 법[無緣法], 비춤이 있는 법[照法]과 비춤이 없는 법[無照法]을 말씀하셨는데, 여래의 설법은 갈수록 고상하고 갈수록 미묘합니다.
저는 그 법을 듣고 하나하나의 법을 알았으며 그 법을 끝까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믿고, 여래의 법은 잘 분별된 것임을 믿으며, 여래께서 모든 괴로움을 멸하는 일을 성취하였음을 믿습니다. 모든 선법(善法) 가운데서 이것이 최상입니다. 세존의 지혜는 남김이 없고 신통도 남김이 없어 모든 세간에 있는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세존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제법(制法)이 그것입니다. 제법이란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신족(神足)ㆍ4선(禪)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현성도(賢聖道)를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더 없이 훌륭한 제어하는 법이며, 더없이 지혜롭고, 더없이 신통하여 모든 세간에 있는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세존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입(入)을 제어하는 것[制諸入]입니다. 모든 입(入)이란 눈과 빛깔,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뜻과 법을 말합니다. 과거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도 또한 이 입(入)을 제어하셨으니 이른바 눈과 빛깔에서부터 나아가 뜻과 법까지의 일입니다. 미래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도 또한 이 입을 제어하시리니 이른바 눈과 빛깔에서부터 나아가 뜻과 법까지의 일입니다. 지금 우리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도 또한 이 입을 제어하시니 이른바 눈과 빛깔에서부터 나아가 뜻과 법까지의 일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 이보다 능가할 것은 없습니다.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세존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태에 들어감을 아는 것[識入胎]입니다. 태에 들어감[入胎]이란, 첫째는 저 자신도 모르게 태에 들어가 저 자신도 모르게 태에 머물다가 저 자신도 모르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들어갔다가 저 자신도 모르게 태에 머물고 저 자신도 모르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셋째는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들어갔다가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머물다가 저 자신도 모르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넷째는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들어가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머물다가 저 자신이 알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중에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들어가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머물다가 저 자신이 알고 태어나는 것이 태에 들어감에 있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도(道)입니다. 이른바 도란, 모든 사문 바라문이 갖가지 방편으로써 정혜의삼매(定慧意三昧)에 들어가고, 삼매의 마음을 따라 염각의(念覺意)를 닦을 때 욕(欲)에 의지하고 이(離)에 의지하며, 멸진(滅盡)을 의지하고 출요(出要)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정진각의(精進覺意)ㆍ희각의(喜覺意)ㆍ의각의(猗覺意)ㆍ정각의(定覺意)ㆍ사각의(捨覺意)도 욕에 의지하고 이에 의지하며 멸진에 의지하고 출요에 의지합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멸(滅)입니다. 멸함에 있어서 고생스럽게 멸하고 더디게 얻는 것[苦滅遲得]은 두 가지 다 비루한 것이요, 고생스럽게 멸하나 빨리 얻는 것[苦滅速得]은 고생스러움만이 비루한 것이요, 즐겁게 멸하고 더디게 얻는 것[樂滅遲得]은 오직 더딤만이 비루한 것이요, 즐겁게 멸하고 빨리 얻는 것[樂滅速得]이라도 널리 구제하지 못하면 널리 구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루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여래께서는 즐겁게 멸하고 빨리 얻으셨으며 또한 널리 구제하셨기에 더 나아가 하늘과 사람들도 그 신통 변화를 보고 있습니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의 설법은 미묘하기가 제일가는 것이어서 아래로 여자까지도 또한 능히 받아 지녀 유루(有漏)를 다하고 무루(無漏)를 이루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 세계에서 몸소 이렇게 깨닫습니다.
'생사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다해 마쳤으니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으리라.'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위없는 멸(滅)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가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말씀이 청정한 것입니다. 말씀이 청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존께서는 모든 사문 바라문에게 무익하고 허망한 말을 하지 않으며, 말하되 이기기를 바라지 않고 또 편을 들지도 않습니다. 하시는 말씀은 부드럽고 시기를 놓치지 않으며 말을 헛되게 내뱉지 않으시니 이것이 말씀이 청정하다는 것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견정(見定)입니다. 견정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문과 바라문은 여러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머리에서 발까지 관(觀)하고 발에서 머리까지 관합니다. 그리하여 '피부의 안팎에는 다만 부정한 머리털ㆍ털ㆍ손톱ㆍ발톱과 간ㆍ허파ㆍ창자ㆍ밥통ㆍ지라ㆍ콩팥 등 5장(臟)과 땀ㆍ기름ㆍ뼈골ㆍ골ㆍ똥ㆍ오줌ㆍ콧물ㆍ눈물의 냄새나고 더러운 것만 있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견정입니다.
또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피부와 살 등 바깥에 있는 모든 부정한 것을 없애고 오직 백골과 이빨을 관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견정입니다.
또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피부와 살 등 바깥의 부정한 것과 백골까지도 없애고 오직 심식(心識)이 어디에 머무는가를 관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금세에도 있고, 후세에도 있다. 금세에도 끊어지지 않고, 후세에도 끊어지지 않는다. 금세에도 해탈하지 못하고 후세에도 해탈하지 못한다'고 관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견정입니다.
또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피부와 살 등 바깥의 모든 부정한 것을 없애고 또 백골도 없애고 다시 거듭 식(識)을 관찰합니다. 그리하여 '식은 후세에 있고 금세에는 있지 않다. 금세에는 끊어지지만 후세에는 끊어지지 않는다. 금세에는 해탈하지만 후세에는 해탈하지 못한다'고 관합니다. 이것이 네 번째 견정입니다.
또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피부와 살 등 바깥의 부정한 것을 없애고 또 백골도 없애고 다시 거듭 식을 관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금세에도 있지 않고 후세에도 있지 않다. 두 시기에 모두 끊고 두 시기에 모두 해탈한다'고 관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견정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상법(常法)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법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세간의 20성겁(成劫)과 패겁(敗劫)을 기억해 알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내가 기억하고 인식함[憶識]을 말미암아 이 성겁과 패겁이 있는 줄을 안다. 그 밖의 과거는 나는 모른다. 미래의 성겁과 패겁(敗劫)도 나는 또한 모른다.'
이 사람은 언제나 무지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첫 번째 상법(常法:세상은 영원하다고 보는 법)입니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40성겁과 패겁을 기억해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기억하고 인식함을 말미암아 성겁과 패겁을 안다. 그러나 나는 능히 과거의 성겁과 패겁은 알지만 미래의 성겁과 패겁은 모른다.'
이처럼 처음을 안다고는 말하지만 마지막을 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무지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두 번째 상법입니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80성겁과 패겁을 기억해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기억하고 인식함을 말미암아 성겁과 패겁이 있는 줄을 안다. 다시 과거의 성겁과 패겁도 알고 또 미래의 성겁과 패겁도 나는 다 안다.'
이 사람은 언제나 무지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세 번째 상법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모든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관찰입니다. 관찰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문 바라문은 생각[想]으로써 관찰하고는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떻고, 이 사람의 마음은 어떻다'고 말합니다. 그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할 때 혹은 거짓되고 혹은 진실한데, 이것을 첫 번째 관찰이라 합니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생각으로서 관찰하지 않고 혹은 하늘이나 귀신의 말을 듣고 그에게 말합니다.
'네 마음은 이렇고, 네 마음은 이렇다.'
이것도 또한 혹은 진실하기도 하고 혹은 거짓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관찰입니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생각으로써 관찰하지도 않고 또 모든 하늘이나 귀신의 말도 듣지 않으며, 스스로 자기 몸을 관찰하고 또 남의 말을 듣고는 그에게 말합니다.
'네 마음은 이렇고, 네 마음은 이렇다.'
이것도 또한 혹은 진실하기도 하고 혹은 거짓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관찰입니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생각으로써 관찰하지도 않고, 또 모든 하늘이나 귀신의 말도 듣지도 않으며 스스로를 관하거나 남을 관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각(覺)과 관(觀)을 모두 없앤 뒤 정의삼매에 들어 다른 이의 마음을 관찰하고는 그에게 말합니다.
'네 마음은 이렇고, 네 마음은 이렇다.'
이러한 관찰은 곧 진실한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관찰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교계(敎誡)입니다. 교계란, 혹 때로 어떤 사람은 교계를 어기지 않고 유루(有漏)를 다하며 무루(無漏)를 이루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 세계에서 이렇게 몸소 증명을 얻습니다.
'나는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해야 할 일을 다해 마쳐 뒷세상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
이것을 첫 번째 교계라고 합니다.
혹은 때로 어떤 사람은 교계를 어기지 않고 5하결(下結)을 없애 저 세상에서 멸도(滅度)하고 이 세상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것을 두 번째 교계라 합니다.
때로 어떤 사람은 교계를 어기지 않고 3결(結)을 없애 간음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斯陀含)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와 멸도를 취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교계입니다.
혹은 때로 어떤 사람은 교계를 어기지 않고 3결을 없애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이 세상에 일곱 번 왕복한 뒤에는 반드시 도과(道果)를 얻고 나쁜 세계[惡趣]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교계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남을 위해 설법하여 계율을 청정히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계율을 청정히 지키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문 바라문은 그 말이 진실하여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 공경하고 엄숙하며, 잠을 없애고 간사하고 아첨하지 않으며 입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길흉을 예언하지 않고, 남에게서 들은 것을 내 말이라 하면서 사람들에게 보여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좌선(坐禪)으로 지혜를 닦아 걸림없는 변재(辯才)가 있으며, 생각을 오로지해 어지럽지 않고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습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바로 해탈의 지혜입니다. 이른바 염송ㆍ해탈의 지혜란 무엇인가? 세존께서는 다른 인연으로 말미암아 속으로 스스로 생각해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수다원(須陀洹), 이 사람은 사다함(斯陀含), 이 사람은 아나함(阿那含), 이 사람은 아라한(阿羅漢)이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하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스스로 숙명을 아는 지증(智證)입니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스스로 과거 1생, 2생, 나아가 백천 생과 성겁(成劫)과 패겁(敗劫)의 무수한 세상 일들을 다 기억합니다. 이와 같이 무수한 세상에서 '나는 어디에 태어났었고 이름은 무엇이었으며, 종족과 성은 무엇이었고 수명은 얼마였으며, 음식은 어떠했고 고락은 어떠했는가'를 기억합니다. 또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에 났다는 등 여러 가지 현상들을 다 기억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전생의 무수한 겁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여 밤낮으로 항상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때는 색(色)이 있었고 이 때는 무색(無色)이었으며, 이 때는 상(想)이 있었고 이 때는 무상(無想)이었으며, 또 이 때는 비무상(非無想)이었다'고 모두 기억하고 모두 압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하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바로 천안지(天眼智)입니다. 천안지란 무엇인가?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모든 중생을 관찰하고 죽은 사람ㆍ산 사람ㆍ좋은 몸ㆍ나쁜 몸ㆍ좋은 세계ㆍ나쁜 세계와 혹은 잘나고 혹은 추한 것을 그 소행을 따라 다 보고 다 압니다. 혹 어떤 중생은 몸의 악행ㆍ입의 악행ㆍ뜻의 악행을 성취하고 현성을 비방하며 삿되고 거꾸로 된 소견을 믿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3악도에 떨어집니다. 또 어떤 중생은 몸으로 착한 일을 행하고 입으로 착한 말을 하며 뜻으로 착한 생각을 하고 현성을 비방하지 않으며 소견이 바르고 믿음으로 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 태어납니다. 이들은 깨끗한 천안(天眼)으로 모든 중생을 관하여 이러한 사실을 여실히 알고 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바로 신족증(神足證)입니다. 신족증이란 모든 사문 바라문이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가 삼매의 마음을 따라 무수한 신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능히 한 몸을 변화시켜 무수한 몸이 되기도 하고 무수한 몸을 합해 한 몸을 만들기도 하며 돌 벽에도 걸림이 없습니다. 허공에서 결가부좌하는 것은 마치 나는 새와 같고, 땅 속으로 출입하는 것이 마치 물에서와 같으며, 땅에서처럼 물 위를 걷고, 몸으로 연기와 불꽃을 내뿜는 것은 불더미와 같으며, 손으로 해를 만지고 선 채로 범천에 오릅니다.
그러나 만일 다른 사문 바라문이 이 신족을 칭찬하면 마땅히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신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신족은 비루하고 하열(下劣)한 범부나 행할 일이지 현성들이 닦아 익힐 것은 못된다.'
만일 비구가 모든 세간에 있어서 사랑스런 색(色)에 물들지 않고 이것을 떠나 정당한 것을 행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현성의 신족이라 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색에도 미워하지 않고 이런 것을 떠나 정당하게 행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현성의 신족이라 합니다. 모든 세간에 있어서 사랑스러운 색이나 사랑스럽지 않는 색, 두 가지를 다 버리고 평등한 마음을 지켜 생각을 오로지해 잊지 않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현성의 신족이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세존께서 용맹히 정진하고 큰 지혜와 지각(知覺)이 있어 제일의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에 등각(等覺)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제 탐욕을 좋아하지 않고 비천한 범부들이 익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또 부지런히 애써 모든 고뇌를 받지도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만일 악한 법을 없애고 각(覺)도 있고 관도 있으며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노닐고 싶으면, 곧 악한 법을 없애고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면서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에 노닙니다. 2선ㆍ3선ㆍ4선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용맹하게 정진하고 큰 지혜와 지각이 있으며 제일의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에 등각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외도(外道) 이학(異學)들이 너를 찾아와 '과거의 사문 바라문 중에 사문 구담과 같은 자가 있었느냐?'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가 다시 '미래의 사문 바라문 중에 사문 구담과 같은 자가 있겠느냐?' 하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가 다시 '현재의 사문 바라문 중에 사문 구담과 같은 자가 있느냐?'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과거의 사문 바라문 중에 부처님과 같은 자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만일 '미래의 사문 바라문 중에 부처님과 같은 자가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현재의 사문 바라문 중에 부처님과 같은 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저 외도 범지가 만일 다시 '너는 무슨 까닭으로 혹은 있다 하고 혹은 없다 하는가?' 하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저는 마땅히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과거의 삼야삼불(三耶三佛)은 여래와 동등하였고, 미래의 삼야삼불도 여래와 동등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친히 부처님에게서 (현재에 여래와 동등한 삼야삼불이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씀을 직접 들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들은 대로 법에 의거하고 법에 따라 이렇게 대답하면 허물이 없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답은 법에 의거하고 법을 따른 것으로서 틀림이 없다. 왜냐 하면 과거의 삼야삼불은 나와 동등하였고, 미래의 삼야삼불도 나와 동등할 것이나, 현재에 두 부처가 세상에 나타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때 존자 울다이(鬱陀夷)가 세존의 뒤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울다이야, 너는 세존이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것[少欲知足]을 관해야 한다. 지금 내게는 큰 신력이 있고 큰 위덕이 있지만 나는 욕심이 없고 만족할 줄 알며 탐욕 속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울다이야, 만일 다른 사문 바라문이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애써 한 법이라도 얻는다면 그는 깃발을 세우고 사방에 널리 알리면서 말하리라.
'여래께서는 지금 욕심이 없고 만족할 줄 아신다. 이제 여래의 욕심이 없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살펴보면, 여래께서는 큰 신력이 있고 큰 위덕이 있지만 그것을 욕심대로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 때에 존자 울다이가 옷을 바로잡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며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모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처럼 욕심이 없고 만족할 줄 아시는 분은 드뭅니다. 세존께서는 큰 신력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시지만 그것을 욕심대로 쓰지 않으십니다. 만일 다른 사문 바라문이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애써 한 법이라도 얻는다면 그는 곧 깃발을 세우고 사방에 널리 알리며 말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지금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신다.'
사리불은, 마땅히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해 자주 이 법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들이 만일 불ㆍ법ㆍ승과 도(道)에 대하여 의심이 있다면 이 가르침을 듣고 다시는 의심의 그물에 휩싸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때 세존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해 자주 이 법을 설명하라. 왜냐 하면 그들이 불ㆍ법ㆍ승과 또 도에 대하여 의심이 있다면 너의 설명을 듣고 반드시 깨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후 사리불은 자주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해 설법하고, 스스로 청정하기 때문에『청정경(淸淨經)』이라고 이름했다. 그 때 사리불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2 권
19. 대회경(大會經)13)
13) 경의 이역경으로는 송 시대 법천(法天)이 한역한 『불설대삼마야경(佛說大三摩惹經)』이 있고, 참고 경문으로는 『별역잡아함경』 제5권 105번째 소경과 『잡아함경』 제44권 1,176번째 소경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시제국(釋翅提國)의 가유(迦維) 숲에서 큰 비구 대중 5백 명과 함께 계셨는데, 그들은 다 아라한이었다. 또 시방의 모든 신묘(神妙)한 천인(天人)들도 모두 모여 와서 여래와 비구들에게 예경하였다.
이 때 4정거천(淨居天)14)은 곧 천상에서 각각 스스로 생각하면서 말했다.
'지금 세존께서는 석시제국에 있는 가유 숲에서 큰 비구 대중 5백 명과 함께 계시는데, 그들은 다 아라한이다. 또 시방의 모든 신묘한 천인들도 다 모여 와서 여래와 비구들에게 예경하였다. 우리도 이제 저기 세존에게 함께 가서 각각 게송으로써 여래를 찬양하자.'
14)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한 성인들이 태어나는 곳으로 색계 제4선천이다.
그 때 4정거천은 역사(力士)가 팔을 굽혔다 펼 만큼 짧은 시간에 그 하늘에서 사라져 석시제국에 있는 가유 숲에 이르렀다. 4정거천은 머리를 부처님의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그 때 한 정거천이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써 찬탄했다.
오늘 이 대중들의 모임에
모든 천신들 두루 모였네.
모두 다 법을 위해 왔으니
더할 나위 없는 대중들께 예경하리라.
이 게송을 마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 때 다른 한 정거천이 또 게송을 지어 말했다.
비구들은 온갖 더러움 보고
단정한 마음으로 스스로 방호(防護)하네.
탐욕은 바다가 강물을 삼키듯 하니
지자(智者)는 모든 감관[根] 보호한다네.
이 게송을 마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 때 다른 한 정거천도 게송을 지어 말했다.
번뇌의 가시 끊고 애욕의 구덩이 고르며
또 무명의 해자 메우고
홀로 청정한 도량에 노니나니
좋은 코끼리 길들인 것 같구나.
이 게송을 마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 때 다른 한 정거천도 게송을 지어 말했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모든 사람들
끝내 나쁜 세계엔 떨어지지 않나니
이 세계의 인간 형상 버리고
하늘의 청정한 몸을 받으리
그 때 4정거천이 이 게송을 마치자 세존께서는 그것을 인가(印可)하셨고, 그들은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뒤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모든 하늘이 다 모였구나. 이제 모든 하늘이 다 모였구나. 시방의 모든 신묘한 천인 중에 여기 와서 여래와 비구들에게 예배하고 뵙지 않는 이는 없구나. 모든 비구들이여, 과거의 모든 여래ㆍ지진ㆍ등정각들께도 또한 모든 하늘이 모인 것이 나에게 모인 것과 같았다. 미래의 모든 여래ㆍ지진ㆍ등정각들께 모든 하늘이 모이는 것도 오늘 나에게 모인 것과 같을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지금 모든 하늘이 많이 모였고 시방의 모든 신묘한 천인들도 모두 와서 여래와 비구들에게 예배하고 뵈었다. 마땅히 그 이름을 일컫고 그들을 위해 게송을 노래하리니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대지와 산 골짜기를 의지하여
숨어서 살아가는 무서운 신들
몸에는 새하얀 옷을 입고
깨끗하고 깔끔하여 더러움 없네.
하늘 사람들 이 말을 듣고
모두 범천(梵天)으로 돌아갔네.
내 이제 그 이름 일컬으리니
차례차례로 틀림 없으리.
모든 하늘 무리 이제 다 왔으니
비구들이여, 너희들 마땅히 알라.
이 세간 범부의 지혜로써는
백 가운데 하나도 보지 못하리.
7만이나 되는 귀신의 무리들
어떻게 다 볼 수 있으리오.
혹 10만의 귀신들을 본다 해도
한끝조차도 볼 수 없거늘
어떻게 천하에 가득한
그 모든 귀신을 볼 수 있으랴.
7천 종의 지신(地神)이 있었고 얼마간의 열차(悅叉)15)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신족과 모양과 색상과 명칭이 있었는데 기쁜 마음을 품고 비구들이 있는 숲으로 왔다. 그 때 설산(雪山)의 신(神)은 6천의 귀신과 얼마간의 열차를 거느렸는데 그들은 모두 신족과 모양과 색상과 명칭이 있었다. 그들도 기쁜 마음을 품고 비구들이 있는 숲으로 왔다. 어떤 사라신(舍羅神)은 3천의 귀신과 얼마간의 열차를 거느렸는데 그들은 다 신족과 모양과 색상과 명칭이 있었다. 그들도 기쁜 마음을 품고 비구들이 있는 숲으로 왔다. 이들 1만 6천명의 귀신과 얼마간의 열차는 모두 신족과 모양과 색상과 명칭을 가졌는데 환희로운 마음을 품고 비구들이 있는 숲으로 왔다.
15) 팔리어 yakkha의 음역어이다. 또한 야차(野叉)ㆍ약차(藥叉)라고도 한다.
또 비파밀신(毘波蜜神)은 마국(馬國)에 있으면서 5백 귀신을 거느렸는데 그들은 다 신족과 위덕이 있었다. 또 금비라신(金毘羅神)은 왕사성(王舍城)의 비부라산(毘富羅山)에 살고 있었으며 무수한 귀신을 거느리고 와서 공경스럽게 빙 둘러 있었다.
또 동방의 제두뢰타천왕(提頭賴吒天王)은 건답화신(乾沓★神:건달바신)을 거느렸는데 큰 위덕이 있었고, 그 91명의 아들도 또한 인다라(因陀羅)라고 이름하며 큰 신력이 있었다. 남방의 비루륵(毘樓勒)천왕은 모든 용왕을 거느렸는데 큰 위덕이 있었고, 그 91명의 아들도 또한 인다라라고 이름하며 큰 신력이 있었다. 서방의 비루박차(毘樓博叉)천왕은 모든 구반다(鳩槃茶) 귀신을 거느렸는데 큰 위력이 있었고, 그 91명의 아들도 또한 인다라라 이름하며 큰 신력이 있었다. 북방천왕의 이름은 비사문(毘舍門)으로서 모든 열차를 거느렸는데 큰 위덕이 있었고, 그 91명의 아들도 또한 인다라라 이름하며 큰 신력이 있었다. 이 4천왕은 세상을 보호하는 자로서 큰 위덕이 있었는데, 몸으로 광명을 놓으며 가유 숲으로 찾아 왔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들의 허깨비 같고 거짓되며 허망한 마음을 항복받고자 주문(呪文)을 외우셨다.
마구루라 마구루라 비루라 비루라 뎐타나가마세티 가니연두 니연두 파나
摩拘樓羅 摩拘樓羅 毗樓羅 毗樓羅 ★陀那加摩世致 迦尼延豆 尼延豆 波那
로 오호노노 주 뎨바소모 마두라 지다라시나 건답파 나라주 자니사 시하
攎 嗚呼奴奴 主 提婆蘇暮 摩頭羅 支多羅斯那 乾沓波 那羅主 闍尼沙 尸呵
모련타라 비파미다라 수진타라 나려니하 두부루 수지바차바
無蓮陀羅 鼻波蜜多羅 樹塵陀羅 那閭尼呵 斗浮樓 輸支婆迹婆
이렇게 모든 왕과 건답파(乾畓婆) 및 나찰(羅刹)은 다 신족과 모양과 색상이 있었는데, 그들은 기쁜 마음을 품고 비구들의 숲으로 왔다. 그 때 세존께서 다시 주문을 외우셨다.
아혜 나타슬 나두 비샤리 사하 대차사바뎨 뎨두뢰타 뎨바 사하 야리야 가
阿醯 那陀瑟 那頭 毗舍離 沙呵 帶叉蛇婆提 提頭賴吒 帝婆 沙呵 若利耶 加
비라사바나가 아타가마 천뎨가 이라바타 마하나가 비마나가다 타가타예
毗羅攝波那伽 阿陀伽摩 天提伽 伊羅婆陀 摩呵那伽 毗摩那伽多 陀伽陀餘
나가라자 파하사하 차기뎨 바뎨라뎨 바뎨라뎨 비매대젹촉 비하사바녜 아
那伽羅闍 婆呵沙呵 叉奇提 婆提羅帝 婆提羅帝 毗枚大迹閦 毗呵四婆嚀 阿
바바사 짇다라 속카니나 구사다 아바유 나가라졔 아사 수바라 살뎨노아가
婆婆四 質多羅 速和尼那 求四多 阿婆由 那伽羅除 阿四 修跋羅 薩帝奴阿伽
붇다셰 실라녜 바야 우라두바연루 수반누불도 사라누 가류루
佛陀灑 失羅嚀 婆耶 憂羅頭婆延樓 素槃★佛頭 舍羅★ 伽類樓
그 때 세존께서 아수라를 위해 주문을 외우셨다.
지타발자하뎨 삼물뎨 아수라 아실타 바연디 바삼바사 이뎨아타 뎨바 마쳔
祇陀跋闍呵諦 三物第 阿修羅 阿失陀 婆延地 婆三婆四 伊弟阿陀 提婆 摩天
디 가려묘 마하비마 아수라 다나비라타 비마질도루 수질뎨리 바라하례 모
地 伽黎妙 摩呵祕摩 阿修羅 陀那祕羅陀 鞞摩質兜樓 修質諦麗 婆羅呵黎 無
이련나바 사례아셰 바리 불다라나 살볘 볘루야나몌 사나몌뎨 바리 셰예 라
夷連那婆 舍黎阿細 跋黎 弗多羅那 薩鞞 鞞樓耶那迷 薩那迷諦 婆黎 細如 羅
야바도루 이하암바라몌 사마유이 다나 바타야 비구나 삼미톄 니발
耶跋兜樓 伊呵菴婆羅迷 三摩由伊 陀那 跋陀若 比丘那 三彌涕 泥拔
그 때 세존께서 다시 모든 하늘을 위해 주문을 외우셨다.
아부 뎨바 비리혜볘 뎨예 바유 다타누 바루누 바루니 셰뎨소미 야사아두
阿浮 提婆 萆犁醯陛 提豫 婆由 多陀★ 跋樓★ 婆樓尼 世帝蘇彌 耶舍阿頭
미다라바 가라나이바 아라 뎨바 마쳔뎨야 타샤뎨샤 가예 살볘 나난다라바
彌多羅婆 伽羅那移婆 阿邏 提婆 摩天梯與 陀舍提舍 伽予 薩鞞 那難多羅婆
발나 이디반대 수디 반나반대 야사볘누 모타바나 아혜건대 비구나 바주뎨
跋那 伊地槃大 讎地 槃那槃大 耶舍卑★ 暮陀婆那 阿醯揵大 比丘那 婆朱弟
바니 볘노 뎨보 사가리 아혜 디 용몌나찰 뎨례부라시기대 아타만다라 바
婆尼 鞞弩 提步 舍伽利 阿醯 地 勇迷那刹 帝隸富羅息幾大 阿陀蔓陀羅 婆
라볘뎐대수 바니소 뎨바 아타 뎐타 부라시기대 수리야 수바니소 뎨바 아타
羅鞞栴大蘇 婆尼捎 提婆 阿陀 ★陀 富羅翅支大 蘇黎耶 蘇婆尼捎 提婆 阿陀
수뎨야 부라시대 마가타 바수인 도로아두 석구 부라대로 삭가 가라마라나
蘇提耶 富羅翅大 摩伽陀 婆蘇因 圖攎阿頭 釋拘 富羅大攎 叔伽 伽羅摩羅那
아대 볘마니바 오바뎨 기하 바라모하 볘바라 미아니 살타마다 아하례 미
阿大 鞞摩尼婆 嗚婆提 奇呵 波羅無呵 鞞婆羅 微阿尼 薩陀摩多 阿呵黎 彌
사아니 바수도 탄노아로예 뎨샤 아혜바사 사마 마하 사마 마도사아 마도
沙阿尼 鉢讎菟 歎奴阿攎余 提舍 阿醯跋沙 賖摩 摩呵 賖摩 摩菟沙阿 摩菟
수다마 글타 파두셰아타마도 파두셰아혜 아라야 뎨바 아타 례타야 바사
䟽多摩 乞陀 波頭灑阿陀摩菟 波頭灑阿醯 阿羅夜 提婆 阿陀 黎陀夜 婆私
파라 마하 파라아타 뎨바 마쳔뎨야 차마 도솔타 야마 가사니아니 람비 람
波羅 摩訶 波羅阿陀 提婆 摩天梯夜 差摩 兜率陀 夜摩 伽沙尼阿尼 藍鞞 提
바절뎨 수뎨 나마이 셰념마라뎨 아타혜 파라념미대 아혜 뎨바 뎨바 자란뎨
藍婆折帝 樹提 那摩伊 灑念摩羅提 阿陀醯 波羅念彌大 阿醯 提婆 提婆 闍蘭
아기 시오파 마아리타로야 오마 부부 니바사 차바 타모 아주타 아니 수두
阿奇 尸吁波 摩阿栗吒攎耶 嗚摩 浮浮 尼婆私 遮婆 陀暮 阿周陀 阿尼 輸豆
단 야도 아두 아라 비사문이셰
檀 耶菟 阿頭 阿邏 毗沙門伊灑
이것이 이 60종의 하늘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68명의 5통(通) 바라문을 위해 주문을 외우셨다.
라야리사야 아혜건대바니 가비라 바도 비디사도 아두차모살뎨앙기비디모
羅耶梨沙耶 何醯揵大婆尼 伽毗羅 跋兜 鞞地闍菟 阿頭差暮薩提鴦祇鞞地牟
니 아두 볘리야차가시리 사바하 야도 아두 범마뎨바 뎨나바비디모니 아두
尼 阿頭 閉犛耶差伽尸梨 沙婆呵 若菟 阿頭 梵摩提婆 提那婆鞞地牟尼 阿頭
구사리이니로마자라앙기라 야반자 아루오원두 마하라야아 구뎨 루이 도아
拘薩梨伊尼攎摩闍邏鴦祇邏 野般闍 阿樓嗚猿頭 摩訶羅野阿 拘提 樓杙 菟阿
두 루볘 구사리 아루 가릉의가이라단혜죄 부부야 복도 로리세신타보 아두
頭 六閉 俱薩梨 阿樓 伽陵倚伽夷羅檀醯罪 否符野 福都 盧梨灑先陀步 阿頭
뎨나가부바 하이가야라야 다타아가도 바라만타도 가목라야 아두 인다라루
提那伽否婆 呵移伽耶羅野 多陀阿伽度 婆羅蔓陀菟 迦牧羅野 阿頭 因陀羅樓
몌 가부타로모마가혜아소샹구베예 아두혜란 야가부비리미사리다타아가도
迷 迦符陀攎暮摩伽醯阿敕傷俱卑予 阿頭醯蘭 若伽否鞞梨味余梨多他阿伽度
아혜 바호라자 미도로다타아가도 바시 부리수다라라예다타아가도 이리야
阿醯 婆好羅子 彌都盧多陀阿伽度 婆斯 佛離首陀羅羅予多陀阿伽度 伊梨耶
차마하라예선아보다타아가도 반자바예바리디시아라예다타아가도 울아란
差摩訶羅予先阿步多陀阿伽度 般闍婆予婆梨地翅阿羅予多陀阿伽度 鬱阿蘭
마하라예변피바리마리수바혜 대나마아반디고마리라예아구시리타나바디
摩訶羅予便被婆梨摩梨輸婆醯 大那摩阿槃地苦摩梨羅予阿具斯利陀那婆地
아두 시볘라예 시예니 미니마하라예부 바루다타아가도 바타바리마하라예
阿頭 翅鞞羅予 尸伊昵 彌昵摩呵羅予復 婆樓多陀阿伽度 跋陀婆利摩呵羅予
구사리마뎨슈시한뎨점바리라예수다라 루다타아가도아하 인두루 아두 마
俱薩梨摩提輸尸漢提苫婆梨羅予修陀羅 樓多他阿伽度阿呵 因頭樓 阿頭 摩
라예예 수리야 타비리뎨보아하비리사 아두항아 야루바라 목차나모아이도
羅予余 蘇利與 他鞞地提步阿呵鞞利四 阿頭恒阿 耶樓婆羅 目遮耶暮阿夷菟
아두일마야사비나바차마라예아리건도예비도발지예시수파나로마수라예야
阿頭一摩耶舍枇那婆差摩羅予阿梨揵度余枇度鉢支余是數波那路摩蘇羅予耶
시다유혜란야소반나 비수도티야수라사파라볘타 울타바하바셰바하바바모
賜多由醯蘭若蘇槃那 祕愁度致夜數羅舍波羅鞞陀 鬱陀婆呵婆灑婆呵婆婆謀
사하사탐부사대사법 자사리라 타나마반지수다다라 건답바사하 바사다 뎨
娑呵沙貪覆賖大賖法 闍沙麗羅 陀那摩般枝瘦多哆羅 乾沓婆沙呵 婆薩多 提
수리라예 아혜건수 비구 사미디바니디바니
蘇鞞羅予 阿醯揵瘦 比丘 三彌地婆尼地婆尼
그 때 또 1천 명의 5통 바라문이 있었는데 여래께서는 다시 그들을 위하여 주문을 외우셨다. 이 세계의 제일인 범왕과 모든 범천은 다 신통이 있었다. 어떤 범동자(梵童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을 제사라 하였는데 그도 또한 큰 신통이 있었다. 또 시방의 다른 범천왕들도 각각 권속에게 둘러싸여 찾아 왔다. 또 1천 세계를 지나서 큰 범왕이 있었는데 많은 대중이 세존의 곁에 있는 것을 보고 그도 곧 권속에게 둘러싸여 찾아 왔다.
그 때 마왕은 모든 대중이 세존의 처소에 있는 것을 보고 해칠 마음을 품고 스스로 생각했다.
'내 마땅히 모든 귀병(鬼兵)을 거느리고 가서 저 대중을 파멸시키리라. 주위를 에워싸고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모조리 죽이리라.'
그가 4병(兵)을 거느리고 손으로 수레를 치니 벼락치는 소리와 같았다. 그래서 그것을 보는 모든 무리들은 다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큰 바람과 비를 일으키고 번개와 천둥을 치면서 가라(迦羅) 숲으로 와서는 대중을 에워쌌다.
부처님께서는 비구와 이 대중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오늘 악마의 무리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찾아왔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제 마땅히 공손히 따라
부처의 가르침을 굳건히 세워서
마치 코끼리가 꽃덤불을 부수듯
이 악마 무리들을 무찌르라.
생각을 오로지해 방일하지 말고
깨끗한 계율을 두루 갖추며
고요한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그 의지(意志)를 잘 보호하여라.
만일 바른 법 가운데에서
능히 방일하지 않는다면
곧 늙음과 죽음의 땅을 벗어나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영원히 없애라.
모든 제자는 이 말을 듣고
부지런히 더욱 정진하라.
온갖 탐욕을 뛰어 넘어
털끝 하나도 움직이지 말라.
이 무리들 가장 훌륭하나니
큰 지혜와 명성이 있고
그 제자들도 다 용맹스러워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으리라.
그 때 모든 하늘과 귀신과 5통(通) 선인(仙人)들은 다 가유(迦維) 동산에 모여 악마의 소행을 보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며 괴상하게 여겼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 8만 4천 모든 하늘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리고 모든 하늘ㆍ 용ㆍ귀신ㆍ아수라ㆍ가루라(迦樓羅)ㆍ진다라(眞陀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ㆍ사람ㆍ사람 아닌 이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3 권
[제3분] ①
20. 아마주경(阿摩晝經)1)
1) 이 경의 이역본으로 오(吳) 시대 지겸(支謙)이 한역한 『불개해범지아발경(佛開解梵志阿★經)』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俱薩羅國)을 유행하실 적에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이차능가라(伊車能伽羅)의 구살라 바라문 마을에 이르러 그 곳에 있는 이차 숲에서 묵으셨다.
그 때 비가라사라(沸伽羅娑羅)2)라는 바라문이 욱가라(郁伽羅) 마을에 있었는데, 그 마을은 풍요롭고 살기 좋아 백성들이 많았다. 파사닉왕(波斯匿王)은 비가라사라 바라문에게 그 마을을 봉(封)해 주어 범분(梵分)으로 삼았다. 이 바라문은 7대를 내려오는 동안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眞正] 남의 멸시나 비방을 받지 않았고, 3부(部)의 구전(舊典)3)을 읽고 외워 기뻐 알고 갖가지 경서도 다 분별하였다. 또 대인(大人)의 상법(相法)과 제사의 의례(儀禮)를 잘 알았으며, 5백의 제자를 두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첫째 가는 마납(摩納) 제자4)는 이름이 아마주(阿摩晝)였다. 그도 7대를 내려오는 동안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의 멸시나 비방을 받지 않았고, 3부의 구전을 읽고 외워 환히 알고 갖가지 경서를 다 잘 분별했다. 또 대인의 상법(相法)과 제사의 의례도 잘 알았으며 또 5백의 마납 제자를 두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그 스승과 다름이 없었다.
2) Pokkharasr이고 비가사(費迦沙)라고도 음역하며 연화경(蓮華莖)이라 한역한다.
3) 베다를 말한다.
4) mavo antevs 즉 '나이 어린 제자'로 되어 있다. 마납(摩納)은 음역어로서 고유명사가 아니라 '나이 어린'이란 뜻이다.
그 때 비가라사라 바라문은 석가종족 출신인 사문 구담이 집을 나와 도(道)를 이루고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이차능가라라는 구살라 바라문 마을에 있는 이차숲 속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분은 큰 명성이 천하에 퍼져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 10호를 구족하였으며,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과 악마와 또 악마의 하늘과 사문 바라문들에게 자신이 몸소 증득한 것을 설법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법은 처음도 중간도 끝도 다 훌륭하고 의미가 구족하며 범행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참다운 사람은 찾아가서 친히 뵈어야 한다. 나는 이제 저 사문 구담에게 과연 32상(相)이 있는지, 사방에 퍼진 명성이 사실과 같은지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과연 어떻게 해야 그 부처님의 상(相)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내 제자 아마주는 7대를 내려오는 동안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의 멸시나 비방을 받지 않았고, 3부의 구전을 모두 읽고 외워 환희 알며 갖가지 경서를 능히 분별한다. 또 대인의 상법과 제사의 의례도 잘 안다. 부처님을 살펴보고 32상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올 사람은 오직 이 사람뿐이다.'
그 때 그 바라문은 곧 제자 아마주에게 명령해 말했다.
“너는 가서 저 사문 구담에게 과연 32상이 있는지 혹은 거짓말인지 가서 보고 오라.”
그 때 아마주는 그 스승에게 물었다.
“제가 어떤 징험으로 그 구담의 상을 살펴야 그 허실(虛實)을 알 수 있겠습니까?”
스승이 곧 대답했다.
“내가 이제 너에게 말하리라. 만일 32 대인상(大人相)을 구족한 사람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두 곳[處]으로 나아간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가 세속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4천하(天下)의 왕으로서 법으로 다스리고, 만 백성을 통치[統領]하며 7보를 구족할 것이다. 7보란 첫째는 금륜보(金輪寶)요, 둘째는 백상보(白象寶)이며, 셋째는 감마보(紺馬寶)요, 넷째는 신주보(神珠寶)이며, 다섯째는 옥녀보(玉女寶)요, 여섯째는 거사보(居士寶)이며, 일곱째는 전병보(典兵寶)이다. 그 왕에게는 용맹스럽고 지혜가 많은 천 명의 아들이 있어 원적(怨敵)을 항복받아 무기를 쓰지 않게 되고, 천하는 태평하여 국내의 백성들이 두려워함이 없게 된다. 만일 그가 세간을 좋아하지 않고 집을 나가 도(道)를 구한다면 마땅히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 10호를 구족한 자가 될 것이다. 너는 이것으로서 구담의 허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아마주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곧 보배 수레를 장엄하게 꾸며 마납 제자 5백 명을 거느리고 이른 아침에 마을을 떠나 이차 숲으로 갔다. 동산에 이르자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 나아갔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앉으면 그는 서고 부처님께서 서면 그는 앉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둘은 서로 담론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일찍이 나이 많고 덕이 높은 모든 큰 바라문들과도 이런 식으로 담론하였었는가?”
마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앉으면 자네는 서고 내가 서면 자네는 앉는다. 그러는 동안에 서로 담론한다. 자네 스승이 담론하는 법은 언제나 이러한가?”
마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우리 바라문들은 법을 담론할 적에는 앉으면 같이 앉고 서면 같이 서며 누우면 같이 눕습니다. 지금 모든 사문들은 머리를 깎고 홀아비로 살며 비루하고 용렬하여 어리석은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앉고 서고 하는 것을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마납아, 자네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구나.”
그러자 마납은 세존께서 '그대'라고 부르는 말과, 또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곧 화를 내며 부처님을 비방하였다.
'이 석가족들은 질투와 악의를 잘 품고 예의가 없구나.'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석가족 사람들이 그대에게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가?”
마납이 말하였다.
“옛날 제가 언젠가 스승을 위해 조그마한 볼 일이 있어 석가족의 가유라월국(迦維羅越國)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석가족 사람들이 무슨 일로 강당에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멀리서 제가 오는 것을 보고는 업신여기고 희롱하면서 예법을 지키지 않고 공경을 다해 대우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저 모든 석가 종족의 아들은 제 나라에 돌아가서도 자유롭게 유희한다. 마치 날아다니는 새가 숲 속 둥지를 자유로이 드나드는 것처럼, 모든 석가 종족의 아들이 본국에서 자재롭게 유희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마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상에는 4성(姓)이 있으니 찰리ㆍ바라문ㆍ거사(居士)ㆍ수다라(首陀羅)입니다. 저 세 족성은 항상 바라문을 존중하고 공경하며 공양해야 하니, 저 모든 석가 종족의 아들은 도리로 보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 석가 종족의 아들은 비천한 종놈들로 비루하고 용렬하여 우리 바라문을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묵묵히 혼자서 생각하셨다.
'이 마납은 갖가지로 헐뜯고 비방하며 비천한 종놈이란 말까지 하는구나. 이제 내가 차라리 그 근본 인연을 설명하여 항복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
부처님께서 이내 마납에게 물으셨다.
“자네의 성은 무엇인가?”
마납이 대답했다.
“제 성은 성왕(聲王)입니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성이 그렇다면 그대는 곧 석가족 종[奴]의 후손이구나.”
그러자 마납의 5백명 제자들이 모두 큰 소리로 부처님께 말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마납이 석가족 종의 후손이라니요?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이 큰 마납은 참된 족성(族姓)의 아들로서 용모가 단정하고 걸림 없는 변재가 있으며 널리 알고 많이 들어 구담과 더불어 서로 주고 받으면서 담론(談論)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5백 명의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너의 스승이 너희들의 말과 같지 않다면 나는 마땅히 너희들과 이야기할 것이다. 만일 너희들의 스승이 앞에서 너희들의 말한 것과 같다면 너희들은 잠자코 있으라. 나는 마땅히 너희들의 스승과 이야기할 것이다.”
그 때 5백 명 마납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다 잠자코 스승님과 이야기하시는 것을 듣겠습니다.”
그제서야 5백 마납은 모두 침묵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아마주에게 말씀하셨다.
“아주 먼 옛날에 성마(聲摩)5)라는 왕이 있었다. 그 왕에게는 네 왕자가 있었는데, 첫째는 면광(面光)이요, 둘째는 상식(象食)이며, 셋째는 노지(路指)요, 넷째는 장엄(莊嚴)이라 이름했다. 그 네 왕자가 작은 잘못을 저지르자 왕은 그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그들은 설산 남쪽으로 가서 직수림(直樹林) 속에서 살았다. 그 왕자들의 어머니와 가족들은 모두 그들을 보고 싶어했다.
5) Okkka라 하고, 범어로는 Ikvku라 한다. 또한 의사마(懿師摩)ㆍ의마미(懿摩彌)라고도 하고 감자(甘蔗)로 한역한다. 석가족 시조의 이름이다. 원ㆍ명 2본에는 의마(懿摩)로 되어 있다.
그들은 모여 서로 의논한 뒤 성마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대왕이여, 부디 아소서, 우리가 네 왕자와 이별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찾아가 만나보고 싶습니다.'
왕이 곧 말했다.
'가 보고 싶거든 마음대로 하라.'
그 때 그 어머니와 권속들은 왕의 허락을 얻어 곧 설산 남쪽의 직수림으로 가 네 왕자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러 어머니들끼리 서로 말했다.
'내 딸을 당신의 아들에게 줄테니 당신의 딸은 내 아들에게 주시오.'
그리하여 서로 짝을 맺어 주어 마침내 부부가 되게 하였다. 그 후로 그들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용모가 단정하였다.
그 때 성마왕은 그 네 왕자의 어머니들이 딸들을 시집보내 서로 부부로 맺어주었고 또 그들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용모가 단정하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는 진정한 석가 종족의 아들[釋子]이고, 진정한 석동자(釋童子)로다.'
능히 스스로 존립(存立)했기에 석가라 이름하였던 것이다. [석(釋)은 진(秦)나라 말로 능(能)이다. 직수림에 있었기 때문에 '석'이라 이름했으니, 석은 진나라 말로 직(直)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성마왕은 곧 석종(釋種)의 조상이다. 왕에게 방면(方面)이란 이름의 하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용모가 단정했다. 그녀가 어떤 바라문과 교통하여 곧 아기를 배었고 한 마납을 낳았는데, 아기는 땅에 떨어지자마자 곧 말을 할 줄 알았다.
그 아이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저를 목욕시켜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주십시오. 제가 자라면 마땅히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는 처음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왕(聲王)이라고 이름했다. 요즘 처음 태어나자마자 말하는 아이가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가외(可畏)라고 이름짓는 것처럼, 그도 또한 이와 같이 처음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였기 때문에 성왕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로부터 바라문 종족은 드디어 성왕으로써 성을 삼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또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그래 너는 나이 많고 덕이 높은 큰 바라문에게서 이런 종성(種姓)의 인연을 들은 적이 있는가?”
마납은 잠자코 대답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거듭 물으셨으나 그는 또 대답하지 못했다. 부처님께서는 세 번 물으신 뒤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 번씩이나 물었다. 너는 마땅히 빨리 대답해보아라. 만일 네가 대답하지 못하면 손에 금강저[金杵]를 잡고 내 곁에 있는 밀적역사(密迹力士)가 곧 네 머리를 부수어 일곱 조각을 낼 것이다.”
이 때 밀적역사는 손에 금강저를 잡고 마납의 머리 위 허공에 서서 만일 마납이 제 때에 대답하지 못하면 곧 금강저로 내리쳐 마납의 머리를 부수려 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위를 쳐다보라.”
마납이 위를 쳐다보니 밀적역사가 손에 금강저를 잡고 허공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두려워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곧 일어나 자리를 옮겨 세존께 가까이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세존에게 의지해 구원과 보호를 받으려 했다.
그는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물으십시오. 저는 지금 대답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곧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전에 나이 많고 덕이 높은 큰 바라문에게서 이러한 종성의 인연을 들은 적이 있는가?”
마납이 대답했다.
“저는 사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때 5백명 마납 제자들은 다들 소리를 높여 서로 말하였다.
“이 아마주는 진실로 이 석가 종족의 후손입니다. 사문 구담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철이 없어 업신여기고 교만한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곧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5백 마납은 뒷날 반드시 교만한 마음을 품고 저 사람을 종[奴]이라 부를 것이다. 이제 내가 방편을 써서 종이라는 오명을 없애 주리라.'
곧 5백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모든 사람들아, 그를 종의 자식이라고 부르지 말라. 왜냐 하면 그의 선조는 바라문으로서 큰 선인(仙人)이었고 큰 위력이 있었다. 그래서 성마왕을 정벌하여 여자를 요구했고 왕은 두려워서 곧 그 여자를 주었던 것이다.”
그는 이 부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종이라는 이름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 아마주에게 말씀하셨다.
“어떤가? 마납아, 찰리(刹利)의 여자로서 7대를 내려오는 동안 그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의 업신여김과 비난을 받지 않는 여인이 있다고 하자.
그녀가 어떤 바라문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낳았다고 하자. 마납아, 그 아이는 용모도 단정하다. 그 아이는 찰리 종족에 들어가 앉아서 관정(灌頂)의식을 받고 찰리의 법을 외울 수 있겠는가?”
그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가? 마납아, 바라문의 여자로서 7대를 내려오는 동안 그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에게 업신여김이나 비난을 받지 않는 여인이 있다고 하자. 그녀가 찰리에게 시집가 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의 용모가 단정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아이는 바라문의 무리에 들어가 앉고 서서 관정의식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바라문의 법을 외울 수 있고 아버지의 유산을 받을 수 있으며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가? 마납아, 만일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을 배척하고 찰리 종족에 들어갔다면 그는 같이 앉고 서고 관정의식을 받으며 찰리의 법을 외울 수 있겠는가?”
그는 답했다.
“없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고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만일 찰리 종족으로 찰리를 배척하고 바라문에 들어갔다면 그는 같이 앉고 서서 관정의식을 받으며 바라문의 법을 외우고 아버지의 유산을 받고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납아, 여자 중에서는 찰리 여자가 가장 훌륭하고 남자 중에서도 찰리 남자가 가장 훌륭하다. 바라문이 훌륭한 것이 아니다.”
범천이 직접 게송으로 말했다.
찰리가 중생 중에 가장 훌륭하고
종성도 또한 순수하고 참되다네.
지혜와 행실이 두루 구족하여
하늘과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니라.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범천이 말한 이 게송은 참으로 훌륭한 말이요, 훌륭하지 않은 말이 아니다. 왜냐 하면 이제 나 여래ㆍ지진ㆍ등정각도 또한 이 뜻을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찰리가 중생 중에 가장 훌륭하고
종성도 또한 순수하고 참되다네.
지혜와 행실이 두루 구족하여
하늘과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니라.
마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떤 사람이 무상사(無上士)이고 지혜와 행을 구족한 자입니까?”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고 기억하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그는 대답했다.
“예, 즐겨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마납아,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면 그는 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니라. 그는 모든 하늘 신과 세상 사람ㆍ사문 바라문ㆍ하늘 악마ㆍ범왕 가운데서 홀로 깨달아 스스로 증험했다. 남을 위해 법을 설명할 때에는 처음에 하는 말도 좋고 중간에 하는 말도 좋으며 맺는 말도 또한 좋고 의미도 구족하여 청정한 행을 행하게 한다. 혹 거사(居士)나 거사의 아들이나 그 밖의 종성들도 이 바른 법을 들은 사람은 곧 믿음과 즐거운 마음을 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믿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제 세속에 있게 되면 처자에 얽매여 범행을 청정하고 순결하게 닦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차라리 수염과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으리라.'
그는 뒷날 집과 재산을 버리고 친족을 버리고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는다. 다른 출가인과 더불어 장식을 버리고 모든 계행을 구족한다.
곧 중생을 해치지 않고 칼과 몽둥이를 버리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일체를 사랑하고 돌볼 것이니 이것을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이라 한다.
도둑질하려는 마음을 버려 주지 않는 것은 취하지 않으며 그 마음이 청정하여 몰래 훔치려는 생각조차 없을 것이니, 이것을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음욕을 버리고 범행을 깨끗이 닦기를 은근히 하고 정진하며 욕심에 물들지 않고 정결하게 머무를 것이니, 이것을 간음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거짓말을 버리고 지극히 성실하고 속이지 않으며 남을 놀리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이간하는 말[兩舌]을 버리고 비록 이 사람의 말을 들었더라도 저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 또 저 사람의 말을 들었더라도 이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다. 갈라서려는 이가 있으면 잘 화합시켜 서로 친하게 하고 공경하게 한다. 하는 말이 온화하고 순하며 또 때를 아니, 이것을 이간하는 말[兩舌]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또 악한 말[惡口]을 버린다. 하는 말이 거칠고 사나우며 남 괴롭히기를 좋아하면 다른 이의 분노를 일으키게 되므로 그런 말을 버린다. 그 말이 부드럽고 유연하며 원망을 사거나 해를 입히지 않고 남에게 이익됨이 많으면 모든 사람이 공경하고 사랑하며 그 말 듣기를 좋아할 것이니, 이것을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또 꾸밈말[綺語]을 버린다. 때에 맞게 말하고 성실하고 법에 맞게 말하며 율(律)에 따라 다툼을 없애고, 인연이 있으면 말하되 말을 헛되게 하지 않나니, 이것을 꾸밈말을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또 술 마시는 것을 버리고 방탕한 곳을 떠나며, 향과 꽃과 영락으로 치장하지 않고, 노래와 춤과 광대 노름을 보거나 듣지 않으며, 높은 자리에 앉지 않고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금ㆍ은 따위의 7보를 가지거나 쓰지 않고 아내와 첩을 두지 않으며, 남녀 노비나 코끼리ㆍ말ㆍ수레ㆍ소ㆍ닭ㆍ개ㆍ돼지ㆍ염소ㆍ토지ㆍ집ㆍ동산 따위를 쌓아 두지 않는다.
됫박이나 저울질로 사람을 속이지 않고 주먹으로 서로 멱살질하거나 때리지 않으며, 사람을 모략하지 않고 거짓으로 속이지 않는다.
이러한 악을 버려 모든 다툼이나 송사, 갖가지 착하지 못한 일을 없애며, 행하려면 곧 때를 맞추어 행하고 때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음식은 알맞게 먹고 쌓아두는 것이 없으며 몸에 맞추어 옷을 입을 뿐이다. 몸에는 항상 법우와 발우만 지니니 마치 나는 새에 날갯죽지가 붙어 있는 것과 같다. 비구에게 여분의 물건이 없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받아 다시 쌓아두려고 하고 또 의복과 음식에 만족할 줄을 모르지만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시주한 것을 먹고도 자신의 생업(生業)을 경영하며 나무를 심어 귀신이 의지할 곳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 다시 방편으로써 갖가지 이양(利養)을 위해 상아(象牙)ㆍ잡보(雜寶)ㆍ높고 넓고 큰 평상ㆍ온갖 비단 이부자리ㆍ침구 따위를 구하지만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받고 또 방편으로써 소유(酥油)를 몸에 바르고 향수(香水)에 목욕하며 향료를 바르고 향기름으로 머리를 빗질하며 아름다운 꽃다발을 걸치고 눈을 짙푸른 빛으로 물들이며 얼굴을 문질러 치장하고 깨끗한 고리를 차고 끈을 매고는 거울에 비춰 본다. 온갖 빛깔의 가죽신에 하얀 웃옷을 입고 칼과 몽둥이를 든 호위꾼을 거느리고 보배 일산과 보배 부채를 들고 장식한 보배 수레를 구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 오로지 놀음만 일삼아 바둑ㆍ장기ㆍ8도(道)ㆍ10도ㆍ100도 나아가 일체도의 온갖 잡기로 즐기고 논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도 도에 방해되는 실없는 말만 한다. 그들은 왕들의 전투와 군마(軍馬)에 관한 일이나 모든 대신들이 말이나 수레를 타고 동산에 드나들며 노는 일 따위만을 이야기한다. 또 눕고 일어나고 걷는 일과 여자에 관한 일과 의복ㆍ음식ㆍ친구에 관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또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캐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 무수한 방편으로써 삿된 직업을 가지며 달콤한 말로 얼굴을 붉히며 아첨하고 서로 헐뜯기도 하고 이익으로써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 그저 서로 다투기만 한다. 혹은 동산에서 혹은 욕지(浴池)에서 혹은 당(堂)에서 서로 시비를 가리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경(經)과 율(律)을 알지만 너는 모른다. 나는 바른 길로 나아가지만 너는 삿된 길로 향하면서 앞의 것을 뒤에 붙이고 뒤의 것을 앞에 붙인다. 나는 능히 네게 참지만 너는 능히 참지 못한다. 네가 하는 말은 진실하고 올바른 것이 아니다. 만일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내게 와서 물으라. 내가 다 대답해 주리라.'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 또 방편을 써서 심부름꾼 되기를 바란다. 혹은 왕이나 왕의 대신, 바라문이나 거사를 위하여 심부름꾼이 되어 여기서 저기로 가고 저기서 여기로 온다. 이 소식을 저기에 가져다 주고 저 소식을 여기에 가져다 주며 혹은 자기가 하기도 하고 혹은 남을 시켜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 그저 전장에서 싸우는 일만 익힌다. 혹은 칼과 창과 활 쏘는 일을 익히고 혹은 닭ㆍ개ㆍ돼지ㆍ염소ㆍ코끼리ㆍ말ㆍ소ㆍ낙타 등 모든 짐승들을 싸움 붙이며 혹은 남녀간에 싸움을 붙이기도 한다. 또 고동 소리ㆍ북 소리ㆍ노래 소리ㆍ춤추는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내게 하고 깃대를 오르거나 거꾸로 떨어지는 등 온갖 재주를 부린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간다. 남녀의 관상을 보아 길흉과 호추(好醜)를 점치고 또 짐승의 관상을 보아주고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 도에 방해되는 일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간다. 귀신을 부르거나 내쫓기도 하고 혹은 머물러 있게도 하며 갖가지 푸닥거리와 무수한 방법으로 사람을 위협하여 모으기도 하고 흩어지게도 하며 괴롭게도 하고 즐겁게도 한다. 그들은 또 태(胎)를 편안하게 하고 태의(胎衣)를 빠져나올 수 있게도 하며, 또 사람을 저주하여 나귀로 만들기도 하고 또 사람을 장님ㆍ귀머거리ㆍ벙어리로 만들기도 한다. 또 여러 가지 술법을 부리고 손을 모으고 해와 달을 향하는 등 갖가지 고행을 하며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간다. 남을 위하여 병을 치유하는 주문을 외우는데 혹은 악술(惡術)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선한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혹은 의방(醫方)ㆍ침ㆍ뜸ㆍ약석(藥石)으로써 온갖 병을 고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고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간다. 혹은 물과 불의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귀신의 주문을 외우기도 하며, 혹은 찰리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새[鳥] 주문이나 팔 다리의 주문을 외우기도 하며, 혹은 집을 편안하게 하는 부적과 주문, 혹은 불에 데이거나 쥐에 물린 것을 낳게 해주는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혹은 죽고 사는 것을 판별하는 글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꿈을 풀이하는 글을 외우기도 한다. 혹은 손금과 관상을 보기도 하고 혹은 천문 (天文)에 관한 글을 외우기도 하며 혹은 일체 소리에 대한 글을 외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간다. 천기를 살펴 비가 올지 안 올지 곡식이 귀할지 천할지 병이 많을 것인지 적을 것인지 세상이 혼란스러울지 태평할지 따위를 말한다. 혹은 지진ㆍ혜성(彗星)ㆍ일식ㆍ월식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별과 일식ㆍ월식 따위를 말하기도 하며 혹은 불식(不蝕)을 말한다. 또 이러이러한 것은 좋은 상서이고, 이러이러한 것은 나쁜 징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 도에 방해되는 일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간다. 혹은 '이 나라가 저 나라를 이기고 저 나라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저 나라가 이 나라를 이기고 이 나라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기도 하며 길흉을 점쳐 그 성쇠를 말해 준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다만 성계(聖戒)를 닦아 물들고 집착하는 마음 없이 안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린다. 눈이 비록 색(色)을 대하나 그 모습[相]을 취하지 않으므로 눈은 색에 얽매이지 않고, 견고하고 적연(寂然)하여 탐착하는 것이 없다. 또 걱정이나 근심이 없고 모든 악을 누설시키지 않으며 계품(戒品)을 굳게 지켜 안근(眼根)을 잘 보호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섯 가지 촉(觸)을 잘 제어하고 보호하고 항복받아 안온하게 하나니, 비유하면 마치 평지에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능숙한 마부가 채찍을 잡고 고삐를 당겨 수레바퀴가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 6근(根)의 말을 잘 몰아 안온함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이와 같이 성계(聖戒)를 지켜 성스러운 모든 근(根)을 얻는다.6) 음식에 만족할 줄 알고 또한 맛을 탐하지 않으며 그저 몸을 기르고 괴로움과 근심을 없앤다. 그리하여 거만하지 않고 그 몸을 조화(調和)하여 이전의 괴로움은 없애고 새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게 하며, 힘은 있어도 일을 하지 않고 그 몸을 안락하게 한다. 마치 사람이 부스럼에 약을 바르는 것은 곧 부스럼을 낫게 하려는 것이지 모양을 내거나 스스로 잘난 체하려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는 이와 같이 음식은 몸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교만과 방자한 마음을 품지 않는다. 이것은 또 수레에 기름을 쳐 잘 돌아가게 하여 짐을 목적지에 옮기는데 이용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이 음식은 몸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도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6) '득성안근(得聖眼根)'으로 되어 있고, 명본에는 '득성제근(得聖諸根)'으로 되어 있다. 뒷 문장에서 '득성제근(得聖諸根)'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안(眼)'은 '제(諸)'로 써야 옳을 듯하다. 여기에서는 명본에 의거하여 번역하였다.
마납아, 비구는 이와 같이 성계(聖戒)를 성취하여 성스러운 모든 근(根)을 얻는다. 음식에 대하여 만족할 줄 알고 저녁이나 새벽이나 부지런히 도를 닦아 깨닫고, 또 낮에도 다니던지 앉던지 간에 항상 일심으로 모든 음개(陰蓋) 없앨 것만 생각하느니라. 그는 초저녁에도 다니던지 앉던지 간에 일심으로 모든 음개를 없애며 한밤중에 이르러서는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비스듬히 누워서 제 때에 일어나겠다는 생각을 가다듬고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새벽이 되면 곧 일어나 다니던지 혹은 앉던지 간에 항상 일심으로 온갖 음개를 없앨 것만 생각하느니라. 비구는 이렇게 성계(聖戒)를 구족하여 깨끗한 모든 근(根)을 얻는다. 또 음식에 만족할 줄 알고, 초저녁이나 새벽에 부지런히 닦고 깨달아 항상 일심으로 생각하여 어지러움이 없다.
'비구는 생각이 어지럽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비구들은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또 외신신관(外身身觀)과 내외신신관(內外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수(受)ㆍ의(意)ㆍ법(法)을 관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이 '비구는 생각이 어지럽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한마음[一心]이라 하는가? 이렇게 비구들은 걸어다니거나 드나들거나 좌우를 돌아보거나 몸을 굽혔다 펴거나 위를 쳐다보고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옷을 입거나 발우를 들고 음식을 받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잠자거나 깨거나 앉거나 서거나 말하거나 잠자코 있거나 모든 때에 항상 생각하여 위의(威儀)를 잃지 않는다. 이것을 일심이라고 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대중과 함께 갈 때에는 앞에서 가건 혹은 가운데에 있건 뒤에 있건 항상 안온함을 얻어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서 걸어다닐 때나 드나들 때나 말하거나 잠자코 있을 때나 항상 일심으로 생각하여 근심과 두려움이 없다.
비구는 이와 같이 성계(聖戒)를 지켜 성스러운 모든 근(根)을 얻는다. 음식에 만족할 줄 알고, 저녁이나 새벽이나 정근하여 깨달아서 항상 일심으로 생각하여 착란(錯亂)이 없느니라. 그들은 고요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무덤 사이에서 지내기를 즐기고 혹은 산굴에 혹은 한데 및 거름 무더기 사이에 머물면서 때가 되면 걸식하고 돌아와서는 손발을 씻는다. 가사와 발우를 정돈해 두고 가부좌하고 앉아 몸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로 가지고 생각을 앞에 묶어 둔다.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없애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고 성내는 마음을 없애 원결(怨結)이 없다. 마음을 청정한 데 머물러 두어 항상 자비심을 품고 수면을 제거하여 생각을 밝은 데에 매어 두며, 생각에 어지러움이 없고 들뜨고 희롱하는 마음을 끊어 없애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안으로 적멸(寂滅)을 행하여 들뜨고 희롱하는 마음을 없애고 의혹을 끊어 없애 의심의 그물[疑綱]을 넘어서면 그 마음은 전일하여 착한 법에 머무르게 된다.
비유하면 아이 종[僮僕]이 양반의 성(姓)을 받으면 안온하고 해탈하여 종의 고역을 벗어나 그 마음이 기쁘고 다시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남에게 돈을 빌려 장사하여 큰 이익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서 본 주인의 재물을 갚고도 남은 재산이 쓰기에 넉넉하자 스스로 '나는 원래 남의 빚을 얻을 적에는 뜻대로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이제 이익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본 주인에게 돈을 갚고도 남은 재산이 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고는 다시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다.
또 사람이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병이 나아 음식 소화도 잘되고 원기도 완전히 회복되었을 때 그는 스스로 '나는 병을 앓다가 이제 병이 나았다. 음식 소화도 잘되고 원기도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옥에서 무사히 빠져 나왔을 때 그는 스스로 '나는 여태껏 구속되었지만 이제는 이미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많은 재보를 가지고 도적을 만나는 일이 없이 무사히 큰 광야를 지나자 그는 스스로 '나는 재물을 가지고 이 험난한 곳을 지나 왔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 크게 기뻐하면서 그 마음이 안락한 것과 같다.
마납아, 5개(蓋)로 스스로를 덮어 항상 걱정과 두려움을 품는 것이 이와 같나니, 마치 빚진 사람, 오랫동안 앓는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드넓은 광야를 건너가는 사람과 같다. 그는 스스로 자기가 아직 모든 음개(陰蓋)의 마음을 떠나지 못해 덮임과 어둠으로 지혜의 눈이 밝지 못함을 보고 곧 정근하여 탐욕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버린다. 그리하여 각(覺)과 관(觀)을 갖추고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간다. 그는 이미 기쁨과 즐거움에 온몸을 담가 두루하고 가득해 충만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마치 사람이 목욕 그릇에 여러 가지 약을 담고 물에 우리면 안팎에 다 배여 나와 두루 퍼지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비구들도 이처럼 초선에 들었을 때 기쁨과 즐거움이 온몸에 충만하게 된다. 마납아, 이것을 '현신(現身)으로써 얻는 최초의 즐거움'이라 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진하고 생각에 착란(錯亂)이 없으며 고요한 것을 좋아해 한가히 살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는 각(覺)과 관(觀)을 버리고 곧 믿음을 낸다. 항상 한마음[一心]으로 생각하여 각(覺)도 없고 관(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第二禪)에 들어간다. 그는 이미 한마음으로 기쁨과 즐거움에 몸을 담가 두루하고 가득해 충만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마치 산꼭대기에 맑은 샘물이 저절로 솟고 밖에서 흘러 들어온 것이 아닌, 곧 이 샘 가운데서 솟은 청정한 물이 도로 스스로를 적시며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이와 같아 제2선에 들어가면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이것을 '현신(現身)으로써 얻는 두 번째 즐거움'이라 한다.
또 그는 기쁨에 머묾을 버리고, 평정[護:捨]과 기억[念]이 착란하지 않으며, 몸에 쾌락을 느낀다. 이른바 성인(聖人)이 말씀하시는 평정[護]ㆍ기억[念]ㆍ즐거움[樂]을 일으켜 제3선에 들어간다. 그의 몸은 기쁨[喜]이 없어지고 즐거움[樂]에 젖어 두루하고 가득해 충만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우발꽃ㆍ발두마꽃ㆍ구두마꽃ㆍ분다리꽃이 처음으로 진흙탕에서 나와 아직 물밖에 떠오르지 않았을 때에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이 물 속에 잠겨 두루 젖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들도 이와 같아 제3선에 들어가면 기쁨을 떠나 즐거움에 머물며 그 몸은 두루 젖지 않은 데가 없게 된다. 이것을 '현신으로 얻는 세 번째 즐거움'이라 한다.
또 그는 기쁨도 즐거움도 모두 버리는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멸하였으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護]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간다. 그의 몸과 마음에는 청정함이 갖추어져 가득 차 넘치고 두루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마치 사람이 깨끗이 목욕하고 하얀 새천으로 그 몸을 감싸 온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제4선에 들어가면 그 마음의 청정이 온몸에 충만하여 두루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또 제4선에 들어가면 마음에 더해지거나 덜해짐이 없고 또 기울거나 움직이지도 않으며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일도 없어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르게 된다. 마치 밀실의 안팎을 틈새 없이 바르고 굳게 문을 닫아 바람이나 먼지가 새어들지 못하게 하고 그 안에서 등불을 밝혀 건드리지 않으면 그 등의 불꽃은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제4선에 들어가면 마음에 더함도 덜함도 없고 또 기울거나 움직임도 없으며 사랑도 미움도 없어진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이것을 '현신으로써 얻는 네 번째 즐거움'이라 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게으름 없이 정근하고 생각이 착란하지 않으며 고요한 것을 좋아해 한가히 삶으로써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안정된 마음을 얻어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부드럽고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스스로 그 몸 속에서 변화를 부리려는 마음을 일으켜 다른 몸을 변화로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변화로 만들어 낸 몸은 지절(支節)이 구족하고 모든 근(根)이 빠짐이 없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관(觀)한다.
'4대(大)로 이루어진 이 색신(色身)에서 저 몸을 만들었으나 이 몸과 저 몸은 다르다. 그러나 이 몸에서 마음을 일으켜 저 몸을 변화로 만들어 낸 것이므로 모든 근이 구족하고 지절도 빠짐이 없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빼는 것과 같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칼집과 칼은 다르다. 그러나 그 칼은 칼집에서 나왔다.'
또 어떤 사람이 삼실을 꼬아 노끈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삼과 노끈은 다르다. 그러나 노끈은 삼에서 나왔다.'
또 어떤 사람이 상자에서 뱀을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상자와 뱀은 다르다. 그러나 뱀은 상자에서 나왔다.'
또 어떤 사람이 상자에서 옷을 꺼내는 것과 같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상자와 옷은 다르다. 그러나 상자에서 옷이 나왔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은 비구가 최초로 얻는 훌륭한 법[勝法]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진하고 생각이 착란하지 않으며 고요한 것을 즐겨 한가히 삶으로써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이미 4대로 이루어진 색신 속에서 마음을 일으켜 변화로 몸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모든 근과 지절이 구족하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관한다.
'이 몸은 4대가 모여 된 것이요, 저 몸은 변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몸과 저 몸은 다르다. 그러나 이 마음은 이 몸 가운데 있고 이 몸에 머물다가 변화로 만들어진 몸에까지 간다.'
비유하면 이렇다. 유리와 마니(摩尼)를 티없이 밝고 깨끗하게 다듬어 만일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 실로 꿰면 눈이 있는 사람은 손바닥 위에 놓고 보아 구슬과 실은 다르지만 실이 구슬에 의지하여 이 구슬에서 저 구슬에까지 간 것임을 알 것이다.
마납아, 비구가 마음이 이 몸에 의지해 머무르면서 저 변화로 만들어진 몸에까지 이르는 것을 관찰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은 비구의 두 번째 훌륭한 법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근하고 생각이 착란하지 않으며 혼자 있기를 즐겨해 한가히 삶으로써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고 익혀 신통지(神通智)를 증득하여 능히 갖가지 조화를 부린다. 한 몸을 변화시켜 무수한 몸이 되고 무수한 몸을 합해 한 몸이 되기도 한다. 석벽도 걸림이 없이 날아다니되 마치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와 같고 땅에서처럼 물 위를 걷는다. 몸에서는 연기와 불꽃을 내뿜는 것이 마치 큰 불더미 같고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지고 선 채로 범천에까지 이른다.
비유하면 옹기장이가 진흙을 잘 빚어 마음대로 어떤 그릇이나 만들어 많은 이익을 얻는 것과 같다. 또 능숙한 목수가 나무를 잘 다듬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 많은 이익을 얻는 것과 같다. 또 상아 세공사[牙師]가 코끼리의 이빨을 능숙히 다루는 것과 같고, 또 금 세공사[金師]가 순금[眞金]을 잘 제련하여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어 많은 이익을 얻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르면서 뜻대로 변화하고 나아가 손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지며 서서 범천에까지 이른다. 이것은 비구의 세 번째 훌륭한 법이다.
그는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천이지(天耳智)를 증득한다. 그의 천이(天耳)는 깨끗하고 사람의 귀보다 뛰어나 하늘 소리와 사람 소리, 두 가지 소리를 다 듣는다. 마치 성내에 높고 넓고 환히 드러난 큰 강당이 있을 때 귀 밝은 사람이 그 강당 안에 있으면 그 안에서 나는 소리를 애써 힘들이지 않고도 모두 듣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아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하늘 귀가 청정하여 두 가지 소리를 다 듣는다. 마납아, 이것은 비구의 네 번째 훌륭한 법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타심지(他心智)를 증득한다. 그는 남의 마음 속에 욕심이 있는지 없는지와 번뇌가 있는지 없는지, 어리석음이 있는지 없는지와 마음이 넓은지 좁은지, 마음이 큰지 작은지와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어지러운지, 마음이 막혔는지 풀렸는지와 훌륭한 마음과 용렬한 마음, 위없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안다. 마치 사람이 맑은 물에 자신을 비추면 좋고 나쁨을 틀림없이 아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이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능히 남의 마음을 안다. 마납아, 이것은 비구의 다섯 번째 훌륭한 법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일심으로 닦아 익혀서 숙명지(宿命智)를 증득하고 곧 능히 전생의 무수한 갖가지 일들을 기억해 안다. 능히 한 생에서부터 무수한 생에 이르기까지 겁수(劫數)와 겁의 성패와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것과 성명ㆍ종족ㆍ음식의 좋고 나쁨ㆍ수명의 길고 짧음ㆍ고락의 경험ㆍ형상과 모습을 모두 기억해 안다.
비유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나라로 가 거기서 다니기도 하고 서기도 하며 말도 하고 잠자코 지내기도 하다가 다시 그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갔다. 이렇게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다시 본토에 돌아온 그는 애써 마음을 쏟지 않고도 돌아다닌 모든 나라와 여기서 저기로 가고 저기서 여기로 오며 걷고 머물고 말하고 침묵했던 것을 모두 기억한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능히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래서 숙명지로써 능히 전생의 무수한 겁에 있었던 일들을 다 기억한다. 이것은 비구가 첫 번째 승(勝)7)을 얻은 것이다. 무명(無明)이 영원히 소멸되고 큰 지혜[大明]의 법이 생겨나며 어둠이 소멸되고 광요(光耀)의 법이 생겨난다. 이것이 비구의 숙명지의 밝음[明]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근하고 생각에 착란이 없으며 혼자 있기를 즐겨해 한가히 삶으로써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7) 제2명(明)ㆍ제3명을 거론하며 비구가 3명(明)을 얻게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승(勝)'은 '명(明)'이 되어야 내용상 옳을 듯하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생사를 아는 지혜[見生死智]를 증득한다. 그는 깨끗한 천안(天眼)으로 모든 중생이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에 나는 것을 본다. 형색의 아름답고 추함과 선과 악의 모든 과보와 존귀하고 비천한 것과 짓는 업에 따른 보응(報應)의 인연을 모두 안다.
'이 사람은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으로 악을 말하고 뜻으로 악을 생각하며 현성을 비방하고 삿되고 거꾸로 된 소견을 믿었으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세 갈래 악도(惡道)에 떨어진다. 이 사람은 몸으로 선을 행하고 입으로 선을 말하고 뜻으로 선을 생각하며 현성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을 믿고 행하였으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난다.'
이렇게 깨끗한 천안으로써 모든 중생이 업연(業緣)에 따라 5도(道)로 오가는 것을 본다. 비유하면 성 안의 높고 넓은 평지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 높은 누각을 지어 놓고 눈 밝은 사람이 그 위에 올라가 모든 행인을 살핀다면 그들이 동ㆍ서ㆍ남ㆍ북으로 가는 것과 그들의 거동과 하는 짓을 모두 보게 되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정심이 청정하여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르고 생사를 보는 지혜를 증득한다. 그는 깨끗한 천안으로써 모든 중생들이 그가 지은 선악의 업에 따라 생(生)을 받아 다섯 갈래 세계에 오가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다 안다. 이것은 비구가 두 번째 명(明)을 얻은 것이다. 무명을 끊고 혜명(慧明)을 내며 어둠을 버리고 지혜의 광명을 낸다. 이것이 중생의 생사를 보는 지혜의 밝음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근하여 생각이 착란하지 않고 혼자 있기를 즐겨해 한가히 삶으로써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게 길들여져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무루지(無漏智)를 증득한다. 그는 여실히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알고 유루(有漏)가 모이는 것을 알며 여실히 유루(有漏)가 없어지는 것을 알고 여실히 누진(漏盡)으로 나아가는 길을 안다. 그는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를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그 마음이 해탈을 얻고 해탈의 지혜를 얻는다. 생사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며 할 일을 다해 마치고 뒷세상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 비유하면 맑은 물 속에 나무와 돌과 고기와 자라 따위의 물 속에 사는 족속[水性]들이 동서로 돌아다닐 때 눈이 있는 사람은 '이것은 나무와 돌이요, 이것은 고기와 자라다'라고 분명히 보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이와 같아 정심이 청정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물러 무루지를 증득하고 나아가 뒷 목숨을 받지 않게 된다. 이것은 비구가 세 번째 명(明)을 얻은 것이다. 무명을 끊고 혜명을 내며 어둠을 버리고 큰 지혜의 광명을 낸다. 이것을 번뇌가 없는 지혜의 밝음이라고 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정근하여 생각이 착란하지 않고 혼자 있기를 즐겨해 한가히 살므로 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明行)의 구족'이라 한다.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러한 명행을 옳다고 하겠느냐, 그르다고 하겠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의 구족을 얻지 못해 네 가지 방편(方便)을 행한다. 어떤 것을 네 가지라 하는가? 마납아, 어떤 사람은 위없는 구족을 얻지 못해 도끼를 들고 광주리를 지고 산에 들어가 약을 구하고 나무뿌리를 먹는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쓰는 첫 번째 방편이라고 한다.어떠냐? 마납아, 이것이 첫 번째 방편인데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실천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실천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참으로 비천하고 한미[卑微]하여 참과 거짓도 모르면서 석자(釋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이는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마납아, 또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손에 물병을 들고 지팡이를 가지고 산림 속으로 들어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주워 먹는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쓰는 두 번째 방편이라고 한다. 어떠냐? 마납아,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실천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실천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참으로 비천하고 한미하여 참과 거짓도 모르면서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이는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마납아, 또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이전에 캔 약과 떨어진 과일을 버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의지해 살면서 초막 암자를 세우고 풀과 나무의 잎을 먹는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서 쓰는 세 번째 방편이라고 한다. 어떠냐? 마납아,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실천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실천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참으로 비천하고 한미하여 참과 거짓도 모르면서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이는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을 세 번째 방편이라 한다.8) 마납아, 또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약초도 먹지 않고 떨어진 과일도 먹지 않으며 풀잎도 먹지 않고 마을이나 성에다 큰 집을 짓고 살면 동ㆍ서ㆍ남ㆍ북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이 힘닿는대로 공급한다.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서 쓰는 네 번째 방편이라고 한다. 어떠냐? 마납아,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실행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실행하지 않습니다.”
8) '이것을 세 번째 방편이라 한다[是爲第三方便]'는 생략하고 읽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으로 보아도 옳지 않고 반복되고 있는 문장 구조상에도 빠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참으로 비천하고 한미하여 참과 거짓도 모르면서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이는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어떠냐? 마납아, 옛날의 여러 바라문과 선인(仙人)들은 모두들 재주가 많아 본래 외우고 익힌 것에 대해 찬탄하고 칭설(稱說)하였는데, 그것이 지금은 너희 바라문들이 외우고 칭설해야 할 것이 되었다.
그들은 곧 첫째 아타마(阿咤摩)요, 둘째 바마(婆摩)이며, 셋째 바마제바(婆摩提婆)요, 넷째 비파밀다(鼻波密多)이며, 다섯째 이두뢰실(伊兜瀨悉)이요, 여섯째 야바제가(耶婆提伽)이며, 일곱째 바바바실타(婆婆婆悉吒)이요, 여덟째 가섭(迦葉)이며, 아홉째 아루나(阿樓那)요, 열째 구담(瞿曇)이며, 열한째는 수이바(首夷婆)요, 열두째 손타라(損陀羅)이다.
이러한 여러 큰 선인(仙人) 바라문들도 지금 너의 스승이나 제자들이 살고 있는 곳처럼 모두 해자[塹]를 파고 당각(堂閣)을 세웠었느냐?”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 모든 큰 선인들도 지금 너의 스승이나 제자들이 살고 있는 곳처럼 성곽(城郭)을 세우고 집에 둘러싸인 채 그 가운데에서 살았었느냐?”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 모든 큰 선인들도 지금 너의 스승이나 무리들처럼 높은 침상과 겹이불 위에서 부드러운 옷을 입고 살았었느냐?”
“아닙니다.”
“저 모든 큰 선인들도 지금 너의 스승이나 제자들처럼 혹은 금ㆍ은ㆍ영락과 갖가지 빛깔의 화만과 미녀(美女)를 즐겼었느냐?
저 모든 큰 선인들도 지금의 너의 스승이나 제자들처럼 혹은 보배 수레를 타고 창을 든 자를 앞장 세우며 흰 일산으로 몸을 가리고 손에는 보배 총채를 잡으며 갖가지 빛깔의 보배 신을 신고 또 새하얀 옷을 입었었느냐?”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납아, 너는 참으로 비천하고 한미하여 참과 거짓도 모르면서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이는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어떠냐? 마납아, 저 모든 큰 선인과 옛날의 바라문들이 본래 외우고 익혔던 것에 대해 찬탄하고 칭설했던 것이 지금은 바라문들이 칭설하고 외워야 할 것이 되었다. 만일 아마타 등 선인들의 말을 전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으로써 범천에 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납아, 그것은 마치 파사닉왕이 사람들과 의논한 것이나 혹은 여러 왕과 혹은 대신과 바라문과 거사와 의논한 것을 다른 하인[細人]이 듣고는 사위성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 곧 '파사닉왕은 이런 말을 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떠냐? 마납아, 왕은 이 사람과 함께 의논한 적이 있느냐?”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납아, 이 사람이 왕의 말을 외워 남에게 말한다고 해서 왕이나 대신 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
그는 대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마납아, 너희들이 오늘날 옛날의 큰 선인 바라문들이 한 말을 전하여 남에게 가르치는 것으로써 범천에 태어나려고 하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떠냐? 마납아, 너희들은 남의 공양을 받고 능히 법에 따라 실천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남의 공양을 받으면 마땅히 법에 따라 실천합니다.”
“마납아, 너의 스승 비가라사라 바라문은 왕이 봉(封)해 준 마을을 받고도 파사닉왕과 함께 이야기할 때 왕에게 긴요한 말은 해주지 않고 무익한 말만 했으며 바른 일로써 서로 충고하고 깨우쳐 주지 않았다. 너는 이제 스스로 너와 너의 스승의 잘못을 살펴보아라. 그러나 그 일은 우선 두고 일단 네가 여기 온 이유를 생각해 보라.”
마납은 곧 눈을 들어 여래의 몸을 살피면서 모든 상호(相好)를 찾아보았다. 다른 상호는 다 볼 수 있었으나 오직 두 가지 상만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곧 마음에 의심을 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잠자코 생각하셨다.
'이제 이 마납이 두 가지 상을 보지 못해 의심을 품는구나.'
곧 넓고 긴 혀의 상을 내어 귀를 핥고 얼굴을 덮었다. 그래도 저 마납은 다시 한 가지 상을 의심했다.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하셨다.
'이제 이 마납이 아직 한 가지 상을 보지 못해 의심하는구나.'
곧 신력으로 저 마납 혼자만 음마장(陰馬藏)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마납은 상을 전부 다 보고 나서야 여래에 대해서 다시는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돌고 물러갔다.
그 무렵 비가라 바라문은 문 밖에 서있다가 멀리서 그 제자가 오는 것을 보고는 그를 맞이하며 물었다.
“네가 구담을 살펴보니 진실로 상을 갖추었더냐? 또 공덕(功德)과 신력(神力)이 듣던 바와 같더냐?”
그는 곧 스승에게 아뢰었다.
“구담 사문은 32상을 다 구족하고 있었고, 공덕과 신력도 듣는 바와 같았습니다.”
스승은 또 물었다.
“너는 구담과 잠시라도 이야기해 보았느냐?”
그는 대답했다.
“실로 구담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승은 또 물었다.
“너는 구담과 무슨 일을 이야기하였느냐?”
그 때 마납은 부처님과 이야기한 것을 낱낱이 그 스승에게 아뢰었다.
스승이 말했다.
“나의 총명한 제자가 이렇게 하였으니 우리가 지옥에 들어갈 날도 멀지 않았구나. 왜냐 하면 너는 모든 탐욕이 좋다고 말하여 구담을 헐뜯어서 그를 불쾌하게 하였고 그가 나를 멀리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너는 총명한 제자라면서 이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머지 않아 나를 지옥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스승은 분노에 찬 마음으로 곧 마납을 차서 수레에서 떨어뜨리고 자기는 수레에 올랐다. 저 마납은 수레에서 떨어질 때에 그만 백라(白癩)병이 생겼다.
그 때 비가라사라 바라문은 하늘을 우러러 해를 보았다. 그리고 잠자코 스스로 생각했다.
'오늘은 사문 구담을 만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니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찾아가 만나 보리라.'
이튿날 아침에 보배 수레를 엄숙하게 치장하고 5백 명 제자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이차(伊車) 숲으로 나아가 수레에서 내려 걸어갔다. 세존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안부를 물은 뒤 한쪽에 앉았다. 거기서 여래의 몸을 우러러보았는데 모든 상을 다 보았으나 오직 두 가지 상만은 보지 못했다.
이렇게 바라문이 두 가지 상을 의심하자 부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아시고 곧 넓고 긴 혀의 상을 내어 귀를 핥고 얼굴을 덮었다. 바라문은 또 한 가지 상을 의심했다. 부처님께서는 그 생각을 아시고 곧 신력으로서 음마장(陰馬藏)을 볼 수 있게 하셨다. 그제서야 바라문은 여래의 32상을 빠짐없이 보고 마음이 곧 열려 다시는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제가 길을 가다가 길에서 부처님을 만날 때, 잠깐이라도 수레를 멈추거든 곧 저는 이미 세존을 경례했다고 아소서. 왜냐 하면 저는 봉읍(封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수레에서 내리면 반드시 이 봉읍을 잃고 나쁜 소문이 퍼질 것입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제가 수레에서 내리면서 칼을 풀고 일산을 물리고 또 깃대와 물병과 신발을 치우거든 곧 저는 이미 여래를 예경했다고 아소서. 왜냐 하면 저는 봉읍을 받아 다섯 가지 위의(威儀)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예배한다면 곧 봉읍을 잃고 나쁜 소문이 퍼질 것입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제가 여러 사람 속에 있다가 부처님을 보고 일어나서는 만일 오른 쪽 어깨를 드러내고 스스로 성명을 대거든 곧 저는 이미 여래를 예경했다고 아소서. 왜냐 하면 저는 봉읍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배한다면 곧 봉읍을 잃고 나쁜 소문이 퍼질 것입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제가 정법 가운데에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저는 지금부터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원컨대 세존과 모든 대중께서는 제 초청을 들어주소서.”
그 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셨다. 그 때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시는 것을 보고 허락하신 줄을 알았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부처님께 예배하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그는 돌아가서 음식을 장만하였고 공양 준비가 다 되자 다시 돌아와 공양 때가 되었다고 아뢰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모든 대중 1,250명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가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바라문은 손수 갖가지 맛난 음식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바쳤다. 공양이 끝나자 발우를 거두고 물을 돌리기를 마쳤다.
그 때 바라문은 오른손으로 제자 아마주의 손을 잡고 세존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여래시여, 이 자의 참회를 받아주소서. 원하옵건대 여래시여, 이 자의 참회를 받아주소서.”
이렇게 세 번 말하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마치 잘 길들여진 코끼리나 말이 잠깐 미끄러져 넘어졌다가도 다시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처럼 이 사람도 비록 실수가 있었으나 부디 그 참회를 받아주소서.”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너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현세에서 안온하게 하며 네 제자의 백라병도 낫게 해 주리라.”
부처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그 제자의 백라병은 곧 나았다. 그 때 바라문은 작은 자리를 가져다 부처님 앞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곧 바라문을 위하여 설법하시고 가르쳐 보여 이롭고 기쁘게 하셨으니, 그것은 시론(施論)ㆍ계론(戒論)ㆍ생천론(生天論)이었다. 욕심은 더러운 때[穢汙]이고, 상루(上漏)는 우환거리[患]가 되며 출요(出要)가 제일이라 하시면서 청정함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바라문의 마음이 이미 부드럽게 다루어지고 청정하고 때가 없어 도(道)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아셨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들이 늘 그러하셨던 법과 같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ㆍ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ㆍ괴로움의 벗어남에 대한 진리[苦出要諦]를 말씀하셨다.
그러자 바라문은 곧 그 자리에서 번뇌의 때를 멀리 여의고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것은 마치 정결한 흰 천이 쉽게 염색되는 것과 같았다. 비가라사라 바라문도 또한 그와 같아 법을 보고 법을 얻어 도과(道果)가 확고해졌고 다른 도를 믿지 않고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이제 다시금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께 귀의합니다. 제가 정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저는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간음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과 모든 대중께서는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7일 동안의 초청을 들어주소서.”
그 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것을 허락하셨다. 그리하여 바라문은 곧 7일 동안 부처님과 대중에게 갖가지로 공양하였다. 세존께서는 7일을 지내고 나서 세상에 나와 노니셨다.
부처님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비가라사라 바라문은 병들어 목숨을 마쳤다. 그 때 비구들은 이 바라문이 7일 동안 부처님께 공양하고는 곧 목숨을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각각 궁금해하였다.
'그는 목숨을 마치고 어느 세계에 태어났을까?'
그 때 여러 비구들은 세존께 나아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바라문은 7일 동안 부처님께 공양하고 나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났는데, 장차 어느 곳에 가서 태어났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족성자(族姓子)는 모든 착함을 다 모아 법을 구족하였고 법을 어기지 않고 행하여 5하결(下結)을 끊었다. 그는 저 세상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 것이며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모든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4 권
[제3분] ②
21. 범동경(梵動經)1)
1) 경의 이역본으로는 오(吳) 시대 지겸(支謙)이 한역한 『불설범망육십이견경(佛說梵網六十二見經)』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갈국(摩竭國:마가다국)을 유행하실 적에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인간 세상을 유행하시다가 죽림(竹林)에 이르러 왕의 전당에 머무셨다.
그 때 선념(善念)이라는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선념의 제자 이름은 범마달(梵摩達)이었다. 그들 스승과 제자는 항상 부처님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선념 범지는 무수한 방편으로써 부처님과 법과 비구 대중을 헐뜯었고 그 제자 범마달은 무수한 방편으로써 부처님과 법과 비구 대중을 칭찬했다. 그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마음을 품고 서로 엇나갔다. 왜냐 하면 그들은 습관이 다르고 소견이 다르고 가까이 하는 사람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 때 많은 비구들은 걸식한 뒤에 강당에 모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다. 세존께서는 큰 신력을 지녔고 위덕을 구족하여 중생의 마음과 좋아하는 바를 다 아신다. 저 선념 범지와 그 제자 범마달은 여래와 비구 대중을 따라다니는데 선념 범지는 무수한 방편으로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을 비방하고 제자 범마달은 무수한 방편으로 여래와 법과 스님들을 칭찬한다. 그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마음을 품었다. 그것은 소견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가까이 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고요한 방 안에서 사람의 귀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이(天耳)로써 모든 비구들이 말하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셨다. 세존께서는 고요한 방에서 일어나 강당으로 나아가 대중 앞에 앉아 다 알고 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무슨 인연으로 이 강당에 모였고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가?”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걸식한 뒤에 이 강당에 모여 여럿이 이야기했습니다.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다. 여래께서는 큰 신통력이 있고 위덕을 구족하여 중생들이 마음으로 지향해 나가는 것을 아신다. 지금 선념 범지와 그 제자 범마달은 항상 여래와 스님들을 따라 다니는데, 선념 범지는 무수한 방편으로 여래와 스님들을 헐뜯고 그 제자 범마달은 무수한 방편으로 여래와 법과 스님들을 찬양한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소견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가까이 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강당에 모여 이런 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방편으로써 여래와 법과 스님들을 헐뜯더라도 너희들은 분노에 찬 마음을 품고 저들을 해칠 뜻을 가져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만일 나와 법과 비구들을 비방한다고 해서 너희들이 분노에 찬 마음을 품고 해칠 뜻을 일으킨다면 너희들은 곧 스스로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분노에 찬 마음을 품고 저들을 해칠 뜻을 가져서는 안 된다.
비구들아, 만일 부처와 법과 스님들을 칭찬하더라도 너희들은 그 가운데서 또한 기뻐하며 경사스럽게 여길 것 없다. 왜냐 하면 만일 너희들이 환희심을 가지면 곧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기쁜 마음을 내어서도 안 된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소소한 인연으로서 위의(威儀)를 지키고, 계행을 따르는 것일 뿐인데 범부들이 들은 것이 적고 깊은 뜻을 몰라 곧 저의 소견으로써 제가 본 그대로 찬탄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소소한 인연으로서 위의를 지키고 계행을 따르는 것일 뿐인데 범부들이 들은 것이 적어 곧 저의 소견으로써 제가 본 그대로를 찬탄한다'고 하는가? 그들은 이렇게 찬탄한다.
'사문 구담은 살생을 소멸하여 살생을 없앴으며 칼과 몽둥이를 버리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품고 일체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긴다.'
이것은 소소한 인연으로서 위의를 지키고, 계행을 따르는 일일 따름인데 들은 것이 적은 저 범부들은 이것을 가지고 부처를 찬탄한다.
또 이렇게 찬탄한다.
'사문 구담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려는 마음을 소멸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려는 마음을 없애 도둑질할 마음이 없다.'
또 이렇게 찬탄한다.
'사문 구담은 음욕을 버리고 범행을 깨끗이 닦으며 한결같이 계를 지키고 음탕함을 익히지 않으며 행하는 바가 청결하다.'
또 이렇게 찬탄한다.
'사문 구담은 거짓말을 버려 없애고 하는 말마다 진실하고 성실하여 세상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또 이렇게 찬탄한다.
'사문 구담은 두 말[兩語]을 버려 없앴다. 그리하여 이쪽 사람의 말로 저쪽 사람을 헐뜯지 않고 저쪽 사람의 말로 이쪽 사람을 헐뜯지 않는다. 다툼이 있으면 잘 화합시키고 이미 화합하면 그 기쁨을 더하게 한다. 또 말을 하면 화합하는 말만 하고 성실하게 남의 마음을 살펴 때에 맞게 말씀하신다.
사문 구담은 악한 말[惡口]을 버려 없앴다. 만일 추한 말로 사람을 손상하면 그 맺힌 원한은 늘어나고 원한과 미움이 자라게 되는데 그런 추한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여러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항상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그런 착한 말만 한다.
사문 구담은 꾸밈말을 버리고 없앴다. 때에 맞는 말ㆍ진실한 말ㆍ이로운 말ㆍ법다운 말ㆍ율(律)다운 말ㆍ잘못을 그치게 하는 말 이런 말만 한다.
사문 구담은 술 마시기를 버리고 향화(香華)로 몸을 치장하지 않으며 노래와 춤을 구경하지 않고 높은 평상에 앉지 않는다. 때 아닌 때에 먹지 않고 금ㆍ은을 지니지 않는다. 아내와 자식과 남녀의 종을 두지 않고 코끼리ㆍ말ㆍ돼지ㆍ염소ㆍ닭ㆍ개 및 모든 새나 짐승을 기르지 않고 상병(象兵)ㆍ마병(馬兵)ㆍ차병(車兵)ㆍ보병(步兵)을 기르지 않는다. 밭과 집을 가지지 않고 5곡을 심지 않으며, 주먹으로 남과 맞서지 않고 말과 저울로써 남을 속이지 않는다. 또한 판매하거나 계약하지도 않는다. 또한 저당을 잡고 빚을 주어 함부로 이익을 내지 않으며 또 음모를 꾸미거나 면전(面前)과 배후(背後)를 다르게 하지 않는다. 때가 아니면 행하지 않으며 몸을 위하고 목숨을 기르기 위해 알맞게 먹는다. 그가 가는 곳마다 옷과 발우가 몸을 따르는 것은 마치 나는 새의 몸에 날개가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은 계를 가지는 소소한 인연일 뿐인데 저 들은 것이 적은 범부는 이것을 가지고 부처를 찬탄한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信施]을 받고도 다시 저축하기를 구하며 의복과 음식에 만족할 줄을 모르지만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자기의 생업을 경영하고 나무를 심어 귀신이 의지할 곳을 만들지만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다시 방편을 지어 온갖 이양(利養)ㆍ상아(象牙)ㆍ잡보(雜寶)ㆍ높고 넓은 큰 평상과 온갖 무늬가 있는 비단ㆍ털로 짠 담요ㆍ돗자리ㆍ이불 등을 구하지만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다시 방편을 써서 자신을 치장한다. 소유(酥油)를 몸에 문지르고 향수에 목욕하며 향가루를 몸에 바르고 향수로 머리를 빗으며 아름다운 화만(華鬘)을 걸치고 눈을 감색으로 물들이며 얼굴을 문질러 장엄하고 깨끗한 고리를 차고 끈을 묶고 거울에 제 자신을 비추어 본다. 보배 가죽신을 신고 새하얀 옷을 입으며 일산을 쓰고 총채를 잡으며 깃발로 장엄하게 꾸민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오로지 잡기를 즐겨 바둑ㆍ장기ㆍ8도(道)ㆍ10도ㆍ백천 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놀이로 스스로 즐긴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무익한 이야기만 한다. 왕들의 전쟁과 군마에 관한 일, 뭇 대신과 관리들이 수레나 말을 타고 드나들며 동산에서 유희하는 일을 말할 뿐이다. 또 눕고 일어나고 걸어다니는 일, 여자에 관한 일, 의복과 음식과 친척의 일을 이야기하며, 또 바다에 들어가 보물 캐는 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 무수한 방편을 써서 나쁜 직업으로 생활하고 아름다운 말로 아첨하며, 대놓고 서로 헐뜯고 이익으로써 이익을 구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서로 다툼만 일삼는다. 혹은 동산에서, 혹은 욕지(浴池)에서, 혹은 당(堂)에서 서로 시비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경률(經律)을 알지만 너는 모른다. 나는 바른 길을 가지만 너는 삿된 길을 가며 앞의 것을 뒤에 붙이고 뒤의 것을 앞에 붙인다. 나는 잘 참지만 너는 잘 참지 못한다. 네가 하는 말은 모두 정직하지 않다. 만일 의심되는 것이 있거든 내게 와서 물으라. 내가 모두 답해주리라.)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다시 방편을 써서 스스로 심부름꾼이 되기를 구한다. 혹은 왕이나 왕의 대신ㆍ바라문ㆍ거사(居士)를 위해 심부름꾼이 되어 여기서 저기로 가고 저기서 여기로 오며 이 소식을 가져다 저 사람에게 주고 저 소식을 가져다 이 사람에게 주되 혹은 스스로 하기도 하고 혹은 남을 시켜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다만 전쟁에서 싸우는 일만 익힌다. 혹은 칼이나 몽둥이 활 쏘는 법을 익히고, 혹은 닭ㆍ개ㆍ돼지ㆍ염소ㆍ코끼리ㆍ말ㆍ소ㆍ낙타 따위의 짐승들을 싸움 붙이기도 하며, 혹은 남녀간에 싸움 붙이기도 한다. 피리 소리ㆍ북소리ㆍ노래 소리ㆍ춤 추는 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를 내고, 혹은 깃대에 오르고 거꾸로 떨어지는 재주 등 갖가지 재주부리기를 익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남녀의 길흉과 잘 생기고 못생긴[好醜] 관상을 보고 점치며 또 짐승의 관상까지 보면서 이익을 구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귀신을 부르고 혹은 쫓으며 갖가지 기도와 무수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하여 모으기도 하고 능히 흩어지게도 하며 괴롭게도 하고 즐겁게도 한다. 또 능히 사람을 위해 태(胎)를 편안하게도 하고 태의(胎衣)가 밖으로 나오게도 하며, 또 능히 사람을 저주해 나귀로 만들기도 하고 또 사람을 귀머거리나 장님, 벙어리로 만들기도 한다. 또 여러 가지 기술을 보여주고 손을 모으고 일월(日月)을 향하는 등 온갖 고행을 하는 것으로써 이양을 구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혹은 사람을 위해 병을 치료하는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나쁜 주문을 외우기도 하며, 혹은 선한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혹은 의방ㆍ침ㆍ뜸ㆍ약석(藥石)으로써 여러 가지 병을 고쳐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혹은 홍수나 화재를 방지하는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귀신의 주문을 외우기도 하며 혹은 찰리의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혹은 코끼리 주문, 지절(支節)의 주문, 집을 편안케 하는 부적과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불에 데이고 쥐에게 물린 독을 풀어주는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혹은 죽고 사는 것을 점치는 글을 외우고 꿈풀이 하는 글을 외우며, 손금이나 관상을 보고 천문서를 외우며, 혹은 모든 소리에 대한 글을 외운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천기를 살펴 비가 올지 오지 않을지, 곡식이 귀할지 천할지, 병이 많을지 적을지, 세상이 혼란스러울지 안온할지를 말해 준다. 혹은 지진ㆍ혜성ㆍ월식ㆍ일식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별이나 일식ㆍ월식[星蝕]에 대해 말하기도 하며, 혹은 불식(不蝕)을 말하기도 하고 어느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다 능히 말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런 일이 없다.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이 시주한 것을 먹으면서도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방법으로 생활한다. 혹은 (이 나라가 마땅히 이기고 저 나라는 그렇지 못하리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저 나라가 마땅히 이기고 이 나라는 그렇지 못하리라)고 말하기도 하며, 길흉을 점쳐 그 성쇠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문 구담은 그러한 일이 없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은 계를 가지는 소소한 인연들인데 저 들은 것이 적은 범부들은 이것을 가지고 부처님을 찬탄한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과는 다른 법으로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다. 오직 현성(賢聖)의 제자만이 능히 이 법을 가지고 여래를 찬탄한다. 어떤 것이 '깊고 미묘한 큰 광명의 법으로서 현성의 제자만이 능히 이 법을 가지고 여래를 찬탄한다'는 것인가?
모든 사문 바라문들이 갖가지로 무수하게 나름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本劫本見)과 말겁 말견(末劫末見)은 다 62견에 들어가며 갖가지로 무수하게 나름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과 말겁 말견은 다 62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은 어떤 인연으로 본겁 본견과 말겁 말견에 대해서 갖가지 무수한 나름대로의 주장이 다 이 62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하는가?
모든 사문 바라문이 갖가지로 무수하게 나름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은 다 18견에 들어가고, 갖가지로 무수하게 나름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은 다 18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어떤 인연으로 본겁 본견에 대해서 갖가지 무수한 나름대로의 주장이 다 18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하는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있어서 상론(常論)을 일으켜 말한다.
'나와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런 주장은 다 4견에 들어간다.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고 말하는 것은 다 4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은 어떤 인연으로 본겁 본견에 대해서 상론(常論)을 일으켜 '나와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고 말하고, 모두 4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하는가?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20번의 성겁(成劫)과 패겁(敗劫)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2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생은 늘지도 않았고 줄지도 않았으며 항상 모이고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영원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초견(初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들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4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4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생들은 늘지도 않았고 줄지도 않았으며 항상 모여 있고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영원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 2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그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8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8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생들은 늘지도 않았고 줄지도 않았으며 항상 모여 있고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영원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3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가 있어 잘 관찰한다. 민첩한 지혜 방편으로 관찰하여 '자세히 밝혔다'고 여기고는 자기 소견과 자기의 말재주로써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이 제4견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그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이와 같은 일체 견해는 모두 4견에 들어가는 것이고,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는 견해는 이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여래만이 이 견처(見處)와 이러한 가짐[持]과 이러한 고집[執]을 알고 또한 그 보응(報應)을 안다. 여래가 아는 것은 또 이것을 넘어서지만 비록 알아도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적멸(寂滅)을 얻는다. 수(受)의 집(集)ㆍ멸(滅)ㆍ미(味)ㆍ과(過)ㆍ출요(出要)를 알고 평등관으로써 남김 없이 해탈하였기 때문에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혀 다른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요, 현성의 제자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하는 것이다.
또 다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어 현성의 제자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한다. 어떤 것이 그것인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나와 세간은 반은 항상하고 반은 무상하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헤아리는데, 이러한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은 이런 때도 있었다. 이 겁(劫)이 처음으로 시작되던 때에 어떤 중생이 복(福)이 다하고 목숨[命]이 다하고 행(行)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이 끝나 허공의 범천에 태어났다. 그는 곧 그곳에서 애착심을 내어 다른 중생도 함께 그곳에 태어났으면 하고 원했다. 이 중생이 애착의 원을 일으킨 뒤에 다시 다른 중생이 목숨과 행과 복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을 마치고 범천에 태어났다.
그러자 먼저 범천에 태어난 중생은 곧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곳의 범(梵)이요, 대범(大梵)이다. 나는 저절로 있게 되었으며 아무도 나를 만든 자는 없다. 나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自在)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나는 중생의 아버지로서 나 혼자 먼저 있었고 다른 중생은 뒤에 왔으니, 뒤에 온 중생은 다 내가 조화로 만든 것이다.'
그 뒤에 온 중생들도 또 이렇게 생각했다.
'저 분은 대범이다. 저 분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중생의 아버지로서 저 분 혼자 먼저 있었고 그 뒤에 우리가 있게 되었다. 우리들 중생은 저 분이 조화로 만든 것이다.'
저 범천의 중생들은 목숨과 행이 다해 이 세상에 와서 태어났다. 그들은 점차 자라나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았다. 그들은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자기 자신의 본생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 대범천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없다. 모든 뜻을 다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저 분은 중생의 아버지로서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저 범천이 조화로 만들었으므로 무상하여 변하고 바뀌며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초견(初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중생은 쓸데 없는 우스갯소리와 게으름을 좋아하고 자주 우스갯소리를 하며 스스로 즐겼다. 그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기다가 몸이 매우 피로해 곧 의식을 잃었고 의식을 잃음으로써 곧 목숨을 마치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점점 자라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았다. 그는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자기 자신의 본생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 곳에 있는 다른 중생들은 자주 태어나지 않고 자주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그곳에 있고 영원히 머물며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자주 우스갯소리를 한 까닭에 이 무상한 곳에 태어나 변하고 바뀌는 몸[變易法]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 2견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중생은 이리저리 서로 쳐다보다가 곧 뜻을 잃고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마치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점점 자라나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아 정의삼매에 들어갔다. 그는 삼매의 마음으로써 본래 태어났던 곳[本所生]을 기억하고는 곧 이렇게 말했다.
'저 중생들은 이리저리 서로 쳐다보지 않았으므로 뜻을 잃지 않았다. 그러므로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곳에서 자주 서로 보았고 자주 서로 보고는 곧 뜻을 잃었기에 이 무상한 곳에 태어나 변하고 바뀌는 몸이 되었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 이것은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3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智慧)가 있어 능히 잘 관찰한다. 그는 민첩하게 관찰하는 지혜로써 관찰하고 자기의 지혜와 말재주로써 말한다.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 이것은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제 4견이다. 모든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들은 다 4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오직 부처님만이 이 견처(見處)와 이러한 가짐과 이러한 고집을 알고 또한 그 보응을 안다. 여래가 아는 바는 또 이것을 넘어서지만 비록 알더라도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적멸을 얻는다. 그래서 수(受)의 집(集)ㆍ멸(滅)ㆍ미(味)ㆍ과(過)ㆍ출요(出要)를 알고 평등관으로써 남김 없이 해탈하였기 때문에 여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혀 다른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요, 현성의 제자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하는 것이다.
또 다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어서 현성의 제자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한다. 어떤 법이 그것인가? 여러 사문 바라문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나와 세간은 끝[邊]이 있다, 끝이 없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끝이 있다, 끝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가 삼매의 마음으로써 세간을 관찰하고는 '끝이 있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있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세간에 끝이 있음을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간은 끝이 있으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초견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끝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세간을 관찰하고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간은 끝이 없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세간이 끝이 없음을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간은 끝이 없으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2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끝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세간을 관찰하고는 '상방(上方)은 끝이 있고, 4방은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상방은 끝이 있고 4방은 끝이 없음을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간이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3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 '나와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가 있어 잘 관찰한다. 그는 민첩하게 관찰하는 지혜로 관찰하고는 자기의 지혜로와 말재주로써 말한다.
'나와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제4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끝이 있다, 끝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데, 그것들은 다 4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이 견처(見處)와 이러한 가짐과 이러한 고집을 알고 그 응보도 안다. 여래가 아는 바는 또 이것을 넘어서지만 비록 알아도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적멸을 얻는다. 수(受)의 집(集)ㆍ멸(滅)ㆍ미(味)ㆍ과(過)ㆍ출요(出要)를 알고 평등관으로써 남김 없이 해탈하였기 때문에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것이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요, 현성의 제자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하는 것이다.
또 다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어 현성의 제자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한다. 어떤 것이 그것인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이문이답(異問異答)2)을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물을 때 다른 질문, 다른 대답을 하는데, 그것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다른 질문, 다른 대답을 하는데 그것은 다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 궤변론법이다. 팔리본에서는 이러한 부류를 불사교란논자(不死矯亂論者, amar-vikkhepika)라 하였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러한 주장을 하고 이러한 견해를 가진다.
'나는 선악에 과보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나는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선악에는 과보가 있는가, 과보가 없는가?)
세간에는 널리 알고 많이 듣고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항상 한적한 것을 즐기고 그때그때 하는 말이 미묘하고 자세하여 세상 사람들이 존중하며 능히 지혜로써 모든 소견을 잘 분별하는 사문 바라문이 있다. 만일 그런 자들이 나에게 깊은 뜻을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어 저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저들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이런 대답으로써 귀의할 데를 삼고 섬[洲]을 삼고 집을 삼고 구경도(究竟道)를 삼자.
그가 만일 내게 물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리라.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초견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다른 질문, 다른 대답을 하는데, 그것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러한 주장을 하고 이러한 견해를 가진다.
'나는 다른 세상이 있는지 다른 세상이 없는지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세간의 여러 사문 바라문은 천안지(天眼智)와 타심지(他心智)로써 능히 먼 일을 본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더라도 다른 사람은 그를 보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능히 다른 세상이 있는지 다른 세상이 없는지를 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세상이 있는지 다른 세상이 없는지를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만일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곧 거짓말이 된다. 나는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니 이것으로써 귀의할 데를 삼고 섬을 삼고 집을 삼고 구경도를 삼자.
그가 만일 물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리라.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이 일은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이 제2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다른 질문, 다른 대답을 하는데 그것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러한 소견을 가지고 이러한 주장을 한다.
'나는 어떤 것이 선(善)이고 어떤 것이 불선(不善)인가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선인지 불선인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 나는 곧 여기서 애착을 일으키고 애착으로부터 화를 낸다. 애착이 있고 성냄이 있으면 곧 수(受)3)가 생기게 된다. 나는 수를 없애고자 한다. 그러므로 집을 나와 행을 닦는다.'
3) 맥락을 살펴보고 또 팔리본과 대조해 보았을 때 '취(取, updna)'의 의미가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신역에서 '5취온(取蘊)'이라 한역된 것이 구역에서는 '5수음(受陰)'으로 한역된 것과 같은 경우이다.
그는 수를 미워하고 두려워하여 이것으로써 귀의할 데를 삼고 섬을 삼고 집을 삼고 구경도를 삼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 물으면 그는 마땅히 이렇게 답하리라.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이 제3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다른 질문, 다른 대답을 하는데 그것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어리석고 어둡고 미련하여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말을 따라 이렇게 대답한다.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이 제4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다른 질문, 다른 대답을 하는데, 그것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그로 인해 다른 질문, 다른 대답들을 하는데 그것은 다 4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 것들이다.
오직 부처만이 능히 이 견처와 이러한 가짐과 이러한 고집을 알고 또 그 응보도 안다. 여래가 아는 것은 또 이것을 넘어서지만 비록 알아도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적멸을 얻는다. 수(受)의 집(集)ㆍ멸(滅)ㆍ미ㆍ과ㆍ출요를 알고 평등관으로써 남김 없이 해탈하였기 때문에 여래라 이름한다. 이것이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요, 현성의 제자들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하는 것이다.
또 다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어 현성의 제자들로 하여금 진실 평등하게 여래를 찬탄하게 한다. 어떤 것이 그것인가? 어떤 사문 바라문은 본겁 본견에 있어서 '이 세간은 원인 없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다 2견에 들어간다. 본겁 본견에 대해서 '이 세간은 원인 없이 생겼다'고 하는 것은 2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은 무슨 일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원인 없이 생겨났다고 하며, 이 2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가?
혹 어떤 중생4)은 생각도 없고 앎도 없다. 만일 그 중생이 생각을 일으키면 곧 목숨을 마치고 이 세간에 태어난다. 그가 점점 자라나면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는다. 그는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본래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기억하고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본래 없었는데 이제 갑자기 생겨났다. 이 세간은 본래 없었는데 이제 있게 되었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초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원인 없이 생겨났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2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4) 세간의 중생이 아니라 무상천(無想天)의 신(神)을 말한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로 능히 잘 관찰한다. 그는 민첩하게 관찰하는 지혜로써 관찰하고는 자기의 지혜와 말재주로써 이렇게 말한다.
'이 세간은 원인 없이 생겼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제2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이 세간은 원인 없이 생겼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2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원인 없이 생겼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다 2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 것들이다.
오직 부처만이 능히 안다는 것은 또한 위의 내용과 같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무수한 온갖 주장을 나름대로 펴는데 그것은 다 18견에 들어간다. 본겁 본견에 대해서 무수한 나름대로의 주장은 이 18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아는데 그 내용은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 다른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다. 어떤 것이 그것인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말겁 말견(末劫末見)에 대해서 무수한 온갖 주장을 나름대로 펴는데 그것은 모두 44견에 들어간다. 또 말겁 말견에 대해서 무수한 나름대로의 주장은 4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무슨 일로 말겁 말견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주장을 나름대로 펴는 것이며, 또 44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말겁 말견에 대해서 유상론(有想論)5)을 일으켜 세간에는 생각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다 16견에 들어간다. 말겁 말견에서 상론(想論)을 일으켜 세간에는 생각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다 16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무슨 일로 인해 말겁 말견에 있어서 상론을 내어 세간에는 생각이 있다고 주장하며, 또 다 16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하는가?
5) 지각하는 의식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와 같은 주장을 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 몸도 있고 생각도 있는 존재[有色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초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말겁 말견에 대해서 상론(想論)을 내어 세간에는 생각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16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은 없고 생각만 있는 존재[無色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이 있을 수도 있고 몸이 없을 수도 있지만 생각은 있는 존재[有色無色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생각은 있는 존재[非有色非無色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도 있고 생각도 있는 존재[有邊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이 없고 생각만 있는 존재[無邊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면서 생각은 있는 존재[有邊無邊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생각이 있는 존재[非有邊非無邊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또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한결같이 즐거움이 있고 생각이 있는 존재[一向有樂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한결같이 고통이 있고 생각이 있는 존재[一向有苦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즐거움도 있고 고통도 있으면서 생각이 있는 존재[有樂有苦有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고통스럽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면서 생각이 있는 존재[不苦不樂有想]으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한 가지 생각만 있는 존재[有一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는 존재[有若干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생각이 적은 존재[少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한량 없는 생각이 있는 존재[有無量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16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말겁 말견에 대해서 상론(想論)을 일으켜 세간에는 생각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16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아는데, 그 내용은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 다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다. 그것은 어떤 법인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말겁 말견에 있어서 무상론(無想論)6)을 일으켜 세간에는 생각이 없다[無想]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다 8견에 들어간다. 말겁 말견에 대해서 무상론을 일으키는 것은 이 8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무슨 일로 인하여 말겁 말견에 대해 무상론을 일으켜 세간에는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고, 또 8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6) 지각하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이러한 주장을 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은 있고 생각은 없는 존재[有色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도 없고 생각도 없는 존재[無色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이 있기도 하고 몸이 없기도 하지만 생각은 없는 존재[有色無色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생각 없는 존재[非有色非無色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이 있고 생각이 없는 존재[有邊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도 없고 생각도 없는 존재[無邊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지만 생각이 없는 존재[有邊無邊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생각이 없는 존재[非有邊非無邊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8견이다. 만일 사문 바라문들이 이로 인해 말겁 말견에 있어서 무상론을 일으켜 세간에는 생각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다 8견에 들어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부처만이 아는데, 그 내용은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 다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다. 그것은 어떤 법인가?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말겁 말견에 있어서 비상비비상론(非想非非想論)을 일으켜 이 세간에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다 8견에 들어간다. 말겁 말견에 있어서 비상비비상론을 일으켜 세간에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8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무슨 일로 인하여 말겁 말견에 있어서 비상비비상론을 일으켜 세간에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또 8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러한 주장을 하고 이러한 견해를 가진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은 있으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존재[有色非有想非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또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이 없으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존재[無色非有想非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이 있기도 하고 몸이 없기도 하며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존재[有色無色非有想非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 없는 것도 아니며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존재[非有色非無色非有想非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은 있으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존재[有邊非有想非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은 없으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존재[無邊非有想非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며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존재[有邊無邊非有想非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나는 이 생을 마친 뒤에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며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존재[非有邊非無邊非有想非無想]로 태어난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8견이다. 만일 사문 바라문이 이로 인해 말겁 말견에 대해서 비유상비무상론을 일으켜 세간에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다 8견에 들어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아는데, 그 내용은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 다시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다. 그것은 어떤 법인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말겁 말견에 있어서 단멸론(斷滅論)을 일으켜 중생은 남김 없이 단멸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다 7견에 들어간다. 말겁 말견에 있어서 단멸론을 일으켜 중생은 남김 없이 단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7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무슨 일로 인하여 말겁 말견에 있어서 단멸론을 일으켜 중생은 남김 없이 단멸한다고 주장하고, 또 7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러한 주장을 하고 이러한 견해를 가진다.
'내 몸의 4대(大)와 6입(入)은 부모로부터 나서 젖을 먹고 길러지고 옷과 음식으로 자라나며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무상하여 반드시 없어져[磨滅]버린다. 그러므로 단멸이라 이름한다.'
이것이 제1견이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나를 단멸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욕계천(欲界天)에서 남김 없이 단멸한다. 이러하므로 단멸이라 한다.'
이것이 제2견이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단멸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근(根)이 갖추어져 있는 화신(化身)은 색계(色界)에서 남김 없이 단멸한다. 이것을 단멸이라 한다.'
어떤 자는 말한다.
'이것은 단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무색공처(無色空處)에서 단멸한다.'
어떤 자는 말한다.
'이것은 단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무색식처(無色識處)에서 단멸한다.'
어떤 자는 말한다.
'이것은 단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무색불용처(無色不用處)에서 단멸한다.'
어떤 자는 말한다.
'이것은 단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무색유상무상처(無色有想無想處)에서 단멸한다.'
이것이 제7단멸이다. 이것을 7견(見)이라 한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말겁 말견에 대해서 '이 중생의 무리들은 남김 없이 단멸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7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아는데, 그 내용은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 다른 깊고 미묘한 큰 법의 광명이 있다. 그것은 어떤 법인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말겁 말견에 대해서 현세의 니원론(尼洹論:涅槃論)을 일으켜 중생은 현세에 니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모두 5견에 들어간다. 말겁 말견에 대해서 현세에 니원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5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무슨 일로 인해 말겁 말견에 대해서 중생은 현세에 니원을 얻는다 하며, 그 또한 5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현세에서 5욕(欲)을 마음대로 누린다. 이것이 내가 현세에 니원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제1견이다.
또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현세에 니원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다시 제일 미묘한 현세의 니원이 있다. 이것은 네가 모르는 것으로 오직 나만이 안다. 나는 욕심[欲]과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버리고, 각(覺)도 있고 관(觀)이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간다. 이것을 현세의 니원이라 한다.'
이것이 제2견이다.
또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현세에 니원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다시 제일 미묘한 현세의 니원이 있다. 이것은 네가 모르는 것으로 오직 나만이 안다. 나는 각(覺)과 관(觀)을 멸하고 안으로 기쁜 한마음[一心]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에 들어간다. 이것을 현세의 니원이라 한다.'
이것이 제3견이다.
또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현세의 니원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다시 제일 미묘한 현세의 니원이 있다. 이것은 네가 모르는 것으로 오직 나만이 안다. 나는 염(念)을 없애고 기쁨을 버리고 즐거움에 머무르며 한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가진다. 그리하여 현성께서 말씀하신 몸의 즐거움을 스스로 알아 제3선에 들어간다. 이것을 현세의 니원이라 한다.'
이것이 제4견이다.
또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현세의 니원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다시 제일 미묘한 현세의 니원이 있다. 이것은 네가 모르는 것으로 오직 나만이 안다. 나는 즐거움도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멸하였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바른 생각으로 청정한 제4선에 들어간다. 이것을 첫째가는 니원이라 한다.'
이것이 제 5견이다. 만일 사문 바라문들이 말겁 말견에 대해서 현세의 니원론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5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아는데, 그 내용은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이 말겁 말견에 있어서 여러 가지를 마음대로 주장하지만 다 4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이 모든 견처(見處)를 아는데, 그 내용은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이 여러 가지로 무수하게 마음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과 말겁 말견은 다 이 62견에 들어가고, 여러 가지로 무수하게 마음대로 주장하는 본겁 본견과 말겁 말견은 62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여래만이 이러한 견해들을 아는데, 그 내용은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상론(常論)을 세워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주장한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여기서 지혜를 내는데, 그것은 이른바 다른 믿음ㆍ다른 욕심ㆍ다른 들음ㆍ다른 인연ㆍ다른 깨달음ㆍ다른 소견ㆍ다른 선정[定]ㆍ다른 인식[忍]이다. 그들은 이것으로 인하여 지혜를 내고는 널리 펴 나타내는데 이것을 곧 이름하여 수(受)라고 한다. 나아가서는 현세의 니원론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상론을 세워 '세간은 항상 영원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수(受)의 연을 인하여 애착을 일으키고 애착을 내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해 그만 애착에 물들고 애착에 굴복한다. 나아가서는 현세의 니원론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에 대해서 상론을 세워 '세간은 영원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들이 접촉[觸]의 인연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접촉의 인연을 떠나서 그런 주장을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아가서는 현세의 니원론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다.
모든 사문 바라문들은 본겁 본견과 말겁 말견에 있어서 각각 본대로 말하는데, 그것은 다 62견에 들어간다. 각각 그 소견을 따라 말하는 것은 모두 그 가운데 의지하고 그 가운데 들어있어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마치 노련한 어부가 섬세한 그물로 작은 못을 덮은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못 가운데 있는 모든 고기들은 다 그물 속에 들어가고 피할 곳이 없으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문 바라문들도 또한 그와 같다. 본겁 본견과 말겁 말견에 대한 갖가지 주장은 다 62견에 들어가 벗어나지 못한다.
만일 비구가 6촉(觸)의 발생[集]ㆍ소멸[滅]ㆍ맛[味]ㆍ허물[過]ㆍ벗어남[出要]에 대해서 여실히 안다면 그것은 곧 가장 뛰어난 것으로서 저들의 모든 소견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여래가 스스로 생사가 이미 다한 것을 알면서도 그 몸을 가지고 있는 까닭은 모든 하늘과 사람을 복되게 하고 제도하기 위함이다. 만일 몸이 없다면 곧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은 믿을 곳이 없을 것이다. 마치 다라수(多羅樹)는 한 번 끊어내면 다시는 나지 않는 것처럼 부처도 또한 그와 같이 이미 생사를 끊어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연설하실 때 대천(大千) 세계는 세 차례나 반복해 여섯 가지로 진동했다.
그 때 아난은 부처님 뒤에서 부채를 들고 부처님을 부쳐드리고 있다가 오른 팔을 드러내고 길게 꿇어앉아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법은 참으로 심오합니다. 마땅히 무엇이라 이름하고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이 경을 이름하여 의동(義動)ㆍ법동(法動)ㆍ견동(見動)ㆍ마동(魔動)ㆍ범동(梵動)7)이라 하라.”
그 때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7) 해당하는 팔리어는 cra이다. 그런데 한역본 '의동(義動)~범동(梵動)'에 해당하는 부분이 팔리본에는 'Attha-jla~Brahma-jla'로 되어 있는데 이를 한역하면 '의망(義網)~범망(梵網)'이 되는 셈이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5 권
[제3분] ③
22. 종덕경(種德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앙가국(鴦伽國)에 계시면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인간 세계를 유행하시다가 첨파성(瞻婆城)에 있는 가가(伽伽)못 가에 머물고 계셨다.
당시 첨파성에는 종덕(種德)이라는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 성은 인민이 많고 번성하였으며 풍족하고 즐거웠다. 파사닉왕(波斯匿王)은 이 성을 종덕 바라문에게 봉(封)해 주어 범분(梵分)으로 삼았다. 그 바라문은 7대를 내려오면서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眞正]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았다. 이학(異學)의 3부(部)를 외워 통달하였고 온갖 경서를 다 능히 분별하였으며 세상 서적의 깊은 뜻도 두루 익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대인(大人)의 상법(相法)과 길흉을 점치는 법과 제사 의례에도 능하였으며, 5백 명의 제자를 두어 언제나 가르치고 있었다.
그 때 첨파성에 사는 모든 바라문ㆍ장자(長者)ㆍ거사(居士)들이 모두 이 소문을 들었다.
'사문 구담(瞿曇) 석가 종족의 아들이 집을 나와 도를 이루었는데, 앙가국에서 인간 세계를 유행하시다가 첨파성에 있는 가가(伽伽)못 가에 이르러 머물고 계신다. 그의 큰 이름은 천하에 두루 퍼졌고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 등의 10호를 구족했으며 모든 하늘ㆍ세상 사람ㆍ악마 혹은 악마의 하늘과 사문 바라문들 가운데서 스스로 증득하고 또 남을 위해 설법하는데, 그 말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바르고 참되며 의미가 구족하고 범행도 청정하다.'
그들은 말했다.
“이러한 진인(眞人)1)은 마땅히 찾아가 뵈어야 한다. 이제 우리도 함께 찾아가 뵙는 것이 좋겠다.”
1) 10호 중의 하나인 지진(至眞) 즉 아라한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이렇게 말하고는 곧 서로를 이끌고 첨파성을 나가 무리지어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때 종덕 바라문은 높은 대(臺)에 올라 멀리서 여러 사람들이 무리지어 서로 따라가는 것을 보고 시자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일로 저렇게 무리지어 서로 따라가며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시자가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는 사문 구담 석가 종족의 아드님께서 집을 나와 도를 이루셨는데 앙가국에서 인간 세계를 유행하시다가 첨파성의 가가못 가에 이르러 머물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의 큰 이름은 천하에 두루 퍼졌고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의 10호를 구족했으며, 모든 하늘ㆍ세상 사람ㆍ악마 혹은 악마의 하늘과 사문 바라문들 가운데서 스스로 증득하고 또 남을 위해 설법하시는데, 그 말씀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바르고 참되며, 의미가 구족하고 범행도 청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첨파성의 모든 바라문ㆍ장자ㆍ거사들은 서로 무리 지어 따라가 구담 사문을 뵙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그 때 종덕 바라문은 곧 시자에게 명령했다.
“너는 빨리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들은 기다리시오. 내가 거기에 도착하면 그 때 함께 저 구담의 처소로 갑시다'라고 전하여라.”
그 시자는 곧 여러 사람에게 가서 “여러분 잠깐 기다리시오. 내가 거기에 도착하면 그 때 함께 구담의 처소로 갑시다”라고 종덕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시자에게 대답했다.
“너는 빨리 돌아가 바라문에게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 함께 갑시다'라고 아뢰어라.”
시자가 돌아와 아뢰었다.
“모든 사람들이 멈춰서서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 함께 갑시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종덕 바라문은 곧 대에서 내려와 중문에 섰다. 그 때 다른 5백 바라문들이 사소한 인연으로 먼저 문 앞에 모여 있다가 종덕 바라문이 오는 것을 보고는 모두들 일어나 맞이하면서 물었다.
“큰 바라문이여, 어디를 가려고 하십니까?”
종덕이 대답했다.
“사문 구담 석가 종족의 아드님이 집을 나와 도를 이룬 뒤 앙가국에서 인간 세계를 유행하시다가 지금 첨파성에 있는 가가못 가에 이르러 머물고 계신다고 한다. 그의 큰 이름은 천하에 두루 퍼졌고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의 10호를 구족했으며, 모든 하늘ㆍ세상 사람ㆍ악마 혹은 악마의 하늘과 사문 바라문들 가운데서 스스로 증명하고 남을 위해 설법하시는데 그 말씀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참되고 바르며 의미가 구족하고 범행은 청정하다고 한다. 이러한 진인(眞人)은 마땅히 찾아가 뵈어야 한다. 나는 이제 그 곳으로 가서 만나 뵙고자 한다.”
그러자 5백 바라문이 종덕에게 아뢰었다.
“보러 가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그가 마땅히 당신께 찾아와야 하기 때문이니, 당신께서 찾아가시면 안 됩니다. 이제 큰 바라문께서는 7대를 내려오면서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마땅히 당신께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이학(異學)의 3부 경전을 외워 통달했고 온갖 경서를 다 잘 분별하며 세상 서적의 깊은 뜻도 두루 익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능히 대인의 상법과 길흉의 점치기와 제사 의례(儀禮)에도 능하십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얼굴이 단정하고 범천과같은 몸[色像]을 지니셨습니다. 이러한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계덕(戒德)이 뛰어나고 지혜를 성취하셨습니다. 이러한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말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변재(辯才)가 구족하고 의미가 청정합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큰 스승으로서 제자가 매우 많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항상 5백 바라문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사방의 학자들이 모두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며, 모든 기술과 제사의 법을 물을 때 모두 자세히 대답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파사닉왕과 병사왕(甁沙王)의 공경과 공양을 받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창고에 재산과 보물이 가득하게 많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마땅히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큰 바라문께서는 지혜가 밝고 언변이 좋아 두려울것이 없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그 때 종덕은 모든 바라문들에게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그대들의 말과 같다. 나는 진실로 그러한 덕을 갖추고 있으니, 그런 덕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대들은 마땅히 내 말을 들으라. 사문 구담께서는 모든 공덕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마땅히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사문 구담께서는 7대를 내려오면서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으셨다. 그가 이러한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얼굴이 단정한 찰리(刹利) 종족의 출신이다. 이러한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존귀한 집에서 태어나 집을 나와 도를 이루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빛나는 몸을 구족하고 종성(種姓)이 진실하고 올바른데도 집을 나와 도를 닦았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재물이 많은 가문에서 태어나 큰 위력이 있으면서도 집을 나와 도를 닦았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현성(賢聖)의 계를 갖추었고 지혜를 성취하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말을 잘하고, 부드럽고 온화하며 또한 고상하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대중의 도사(導師)로서 제자가 많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영원히 욕애(欲愛)를 없애고 경박하거나 사납지 않으며 걱정과 두려움을 이미 없애 털이 곤두서는 일이 없으시다. 환희하고 화열(和悅)하며 사람을 보면 착함을 칭찬하고 행과 과보에 대해 잘 말하며 남의 도를 헐뜯지 않으신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항상 저 파사닉왕과 병사왕의 공경과 공양을 받는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비가라사라 바라문의 예경과 공양을 받고, 또 범(梵) 바라문ㆍ다리차(多利遮) 바라문ㆍ거치(鋸齒) 바라문ㆍ수가마납도야자(首迦摩納都耶子)의 공양을 받는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모든 성문(聲聞)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예경과 공양을 받으며, 또 모든 하늘과 다른 귀신 무리들의 공경을 받고 석종(釋種)ㆍ구리(俱利)ㆍ명녕(冥寧)ㆍ발지(跋祇)ㆍ말라(末羅)ㆍ소마(酥摩) 등 여러 종족이 모두 높이 떠받든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파사닉왕과 병사왕에게 3귀(歸)와 5계(戒)를 주었다. 이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비가라사라 바라문 등에게 3귀(歸)와 5계를 주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제자들에게 3자귀(自歸)와 5계를 주셨고, 모든 하늘과 석가 종족과 구리 종족들에게 3귀와 5계를 주셨다. 이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유행하실 때에도 모든 사람의 공경과 공양을 받는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성곽이나 촌락에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공양을 받으신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비인(非人)과 귀신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그곳의 백성들은 다 광명을 보고 하늘의 음악 소리를 듣는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만일 거기서 떠나시려고 할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사모하고 울면서 보낸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처음 집을 나오셨을 때 그 부모는 울면서 애석해 하였고 그리워하면서 서러워했다. 이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젊어서 집을 나와 모든 장식과 코끼리ㆍ말ㆍ보배 수레ㆍ5욕(欲)ㆍ영락을 버리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세속을 벗어나 도를 닦으셨다. 만일 그가 세속에 있었더라면 4천하의 임금이 되어 만백성을 통치했을 것이요, 우리도 다 그의 신하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범법(梵法)을 밝게 알아 능히 남을 위하여 설명하고 또 범천과 오가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32상(相)을 다 구족하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지혜가 통달하여 겁내는 일이 없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저 사문 구담께서는 지금 첨파성의 가가못 가에 와 계신다. 우리보다 높은 분이시고 또 귀한 손님이시니 마땅히 가서 친히 뵈어야 한다.”
그 때 5백 바라문은 종덕에게 아뢰었다.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합니다. 그분의 공덕이 그와 같단 말입니까? 만일 그가 그 모든 공덕 중에 하나만 성취했더라도 그를 오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지금 전부 다 갖춤이겠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서로를 이끌고 함께 찾아가 문안 드려야 하겠습니다.”
종덕이 대답했다.
“그대들이 가고자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그리고 종덕은 곧 보배 수레를 장엄하게 꾸미고 5백 바라문과 첨파성의 모든 바라문ㆍ장자ㆍ거사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함께 가가못으로 갔다. 못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만일 구담에게 물을 때 그것이 혹 그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면 저 사문 구담은 반드시 (마땅히 이렇게 물으라.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된다)며 나를 꾸짖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나를 무지하다고 하면 내 이름은 손상되리라. 만일 사문 구담이 나의 뜻을 물을 때 내 대답이 혹 그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저 사문은 반드시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라.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나를 꾸짖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이 말을 듣고 나를 무지하다고 하면 내 이름은 손상될 것이다. 만일 내가 잠자코 여기서 돌아가면 여러 사람들은 (이 자는 무지하여 끝내 사문 구담에게 가지 못한다)고 말하리라. 그리하여 내 명예는 손상될 것이다. 만일 사문 구담이 나에게 바라문의 법을 묻는다면 나의 답은 구담의 뜻에 맞을 수 있으리라.'
그 때 종덕은 가가못 가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곧 앞으로 나아가다가 수레에서 내려 걸어갔다. 그래서 세존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러 문안을 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이 때 첨파성의 여러 바라문ㆍ장자ㆍ거사들 중에는 부처님께 절하고 앉는 자가 있는가 하면 안부를 묻고 앉는 자도 있었고, 성명을 대고 앉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앉는 자도 있었으며, 혹은 잠자코 앉는 자도 있었다. 그들이 모두 앉자 부처님께서는 종덕 바라문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그대의 생각대로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종덕에게 물으셨다.
“당신들 바라문들은 몇 가지 법을 성취하여야 스스로 바라문이라 칭하는 그 말이 진실이고 거짓말이 아닐 수 있습니까?”
그 때 종덕은 잠자코 생각했다.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다. 사문 구담은 큰 신통력이 있어 사람의 마음을 알고는 내가 생각한 대로 나의 뜻을 묻는구나.'
그 때 종덕 바라문은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아 사방으로 대중을 돌아보며 기쁘게 웃었다. 그리고 곧 부처님께 대답했다.
“우리 바라문이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스스로 바라문이라 칭하니, 그 말은 진실이며 거짓말이 아닙니다.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 바라문은 7대를 내려오는 동안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에게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이학(異學)의 3부 경서를 다 외우고 온갖 경서를 모두 분별하며 세속 서적의 깊은 뜻도 두루 익히지 않은 것이 없고, 또 대인의 상법과 길흉을 밝게 살피는 것과 제사 의례까지도 능한 것입니다. 셋째, 얼굴이 단정한 것입니다. 넷째, 계를 온전히 지키는 것입니다. 다섯째, 지혜가 통달한 것입니다. 이것을 다섯 가지라 합니다. 구담이시여, 바라문이 이 다섯 가지 법을 성취했다면 스스로를 바라문이라 칭하니, 그 말은 진실이고 거짓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합니다, 종덕이여. 만일 바라문으로서 다섯 가지 법 중에서 하나를 버리고 네 가지를 이루었다면 그도 또한 하는 말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을 터이니 바라문이라고 이름할 수 있겠습니까?”
종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구담이시여, 그 종성(種姓)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일 바라문으로서 이학의 3부 경서를 외워 통달하고 온갖 경서를 다 잘 분별하며 세상 서적의 깊은 뜻도 두루 익히지 않은 것이 없고, 또 능히 대인의 상법과 길흉을 밝게 살피고 제사 의례에 능하며, 얼굴이 단정하고 지계가 구족하며 지혜가 통달하였다고 합시다. 만일 이 네 가지 법이 있다면 말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리니 바라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종덕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만일 이 네 가지 법 중에서 하나를 버리고 세 가지를 성취한 자가 있다면 또한 말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리니 바라문이라고 이름할 수 있겠습니까?”
종덕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종성과 경전을 외우는 두 가지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일 바라문으로서 얼굴이 단정하고 계를 지키며 지혜가 통달하였다고 합시다. 만일 이 세 가지를 이루었다면 말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리니 바라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어떻습니까? 만일 이 세 가지 법 중에서 한 가지를 버리고 두 가지를 이룬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또한 말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리니 바라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종덕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종성과 경전 외우는 것과 얼굴 단정한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때 5백 바라문들이 제각기 소리를 높여 종덕 바라문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종성과 경전 외우는 것과 얼굴 단정한 것을 소용없다고 치부하십니까?”
그 때 세존께서는 5백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종덕 바라문이 그 얼굴이 누추하고 종성(種姓)이 보잘것없으며 글을 외우지도 못하고 변재와 지혜가 없어 잘 대답하지 못하며 나와 더불어 이야기할 수 없는 자라고 생각한다면 너희들이 말참견을 해도 좋다. 그러나 만일 종덕이 얼굴이 단정하고 종성이 구족하며 글을 외워 통달했고 지혜와 변재가 있어 문답을 잘하며 나와 더불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너희들은 모두 잠자코 이 사람의 말을 들으라.”
그 때 종덕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구담이시여,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직접 법으로써 이 사람들을 가르치겠습니다.”
그 때 종덕은 5백 바라문들에게 물었다.
“앙가마납(鴦伽摩納)2)은 지금 이 대중들 속에 있다. 이는 나의 생질[外甥]이다. 그대들은 보았는가? 이제 모든 대중들이 다 여기에 모였는데 오직 구담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마납만큼 얼굴 단정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마납은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음탕하고 무례하며 허망한 말로 남을 속이고 불을 질러 사람을 태우며 도를 끊고 악을 행한다. 모든 바라문들이여, 이 앙가마납은 모든 악을 다 갖추고 있다. 그러니 경전 외우는 것과 얼굴 단정한 것이 결국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 사람의 이름이고 마납(摩納, mnavaka)은 나이 어린 바라문을 일컫는 말이다.
5백 바라문들이 잠자코 대답하지 못하자, 종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계를 온전히 지키고 지혜가 통달한 자라면 하는 말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을 터이니 바라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어떻습니까? 종덕이여, 만일 그 두 가지 법 중에서 한 가지를 버리고 한 가지를 이루었다면 또한 하는 말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을 터이니 바라문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계가 곧 지혜요 지혜가 곧 계이기 때문입니다.
계가 있고 지혜가 있은 뒤에야 말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리니 저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그대의 말과 같습니다. 계가 있으면 곧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으면 곧 계가 있게 됩니다. 계는 능히 지혜를 깨끗하게 하고 지혜는 능히 계를 깨끗하게 합니다. 종덕이여, 그것은 마치 사람이 손을 씻을 때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를 필요로 하여 왼손이 오른손을 깨끗이 해주고 오른손이 왼손을 깨끗이 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지혜가 있으면 곧 계가 있고 계가 있으면 곧 지혜가 있게 됩니다. 계는 능히 지혜를 깨끗하게 해 주고 지혜는 능히 계를 깨끗하게 해 줍니다. 바라문이여, 계와 지혜를 구족하면 나는 그를 비구라 말합니다.”
그 때 종덕 바라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계(戒)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생각하고 기억하십시오. 나는 마땅히 그대를 위해 하나하나 분별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대답했다.
“예, 기꺼이 듣기를 원합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면 그는 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성(明行成)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 될 것입니다.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과 사문과 바라문 가운데서 그는 스스로 증득한 것을 남을 위해 설법합니다. 그 말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바르고 참되며 의미가 구족하고 범행이 청정합니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 법을 들으면 신심(信心)이 청정하게 될 것이고, 신심이 청정해지면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집에 있으면 저렇게 되기가 어렵다. 집은 마치 족쇄와 같아서 범행을 닦고자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차라리 수염과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다른 날 집과 재산과 친족을 버리고 3법의를 입고 모든 장신구를 버립니다. 그리하여 비구(比丘)3)들이 갖추어야 할 계율을 외우며 살생할 생각을 버리고 살생하지 않으며 나아가 심법(心法)으로 4선(禪)을 닦으면 현세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그것은 부지런히 노력[精勤]하고 마음을 오로지해 잊지 않으며 홀로 있기를 좋아하며 한가하게 사는 데서 얻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계(戒)의 구족이라 합니다.”
3) 비구(比丘)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 3본에는 비니(毗尼)로 되어있다. 비니(毗尼, vinaya)는 비나야(毗奈耶)로도 음역하며 계율(戒律)을 말한다. 송ㆍ원ㆍ명 3본에 의거하여 번역하면 '비니를 외우고 계율을 구족하며'가 된다.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을 혜(慧)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삼매(三昧)에 들어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부드럽게 길들여진 마음으로 부동처(不動處)에 머무르면 나아가 3명(明)을 얻고 무명(無明)을 없애 혜명(慧明)을 내고 어두움을 멸하게 되며, 큰 법의 광명을 내고 누진(漏盡)의 지혜를 내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그것은 부지런히 노력하고 마음을 오로지 해 잊지 않으며 홀로 있기를 좋아하며 한가하게 사는 데서 얻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지혜의 구족이라 합니다.”
그 때 종덕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저는 부처님과 법과 거룩한 대중께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제가 정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이 때 종덕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 15 권
23. 구라단두경(究羅檀頭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살라국(俱薩羅國)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부처님께서 인간 세계를 유행(遊行)하시다가 구살라국에 있는 가누바제(佉누婆提)라는 바라문촌의 북쪽에 이르러 시사파(尸舍婆)숲4)에 머무셨다.
4) Sisp-vana)은 신서림(申恕林)ㆍ시섭화림(尸攝★林)이라고도 한다.
당시 가누바제 마을에는 구라단두(究羅檀頭)라는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 마을은 풍요로워서 인민들이 치성(熾盛)하였으며 동산과 욕지(浴池)와 숲이 맑고 시원하였다. 파사닉왕은 곧 이 마을을 구라단두 바라문에게 봉(封)해 주어 범분(梵分)으로 삼았다. 이 바라문은 7대를 내려오는 동안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에게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았고 이학의 3부 경전을 다 외워 통달하였으며 온갖 경서를 다 잘 분별하고 세상 서적의 그윽한 뜻도 두루 익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대인(大人)을 상보는 법과 길흉을 점치는 것과 제사 의례에도 능통하였으며, 5백의 제자를 두어 언제나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 그 바라문은 큰 제사를 차리기 위하여 5백 마리 수소와 5백 마리 암소와 5백 마리 수송아지와 5백 마리 암송아지와 5백 마리 암염소와 5백 마리 숫염소를 잡아 제사에 쓰려고 하였다.
그 때 가누바제 마을의 모든 바라문ㆍ장자ㆍ거사들은 이런 소문을 들었다.
'사문 구담 석가 종자의 아들이 집을 나와 도를 이룬 뒤 구살라국에서 인간 세계를 유행하시다가 가누바제 마을의 북쪽에 있는 시사파숲에 이르러 머물고 계신다. 그의 큰 이름은 천하에 두루 퍼졌고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의 10호를 구족했으며, 모든 하늘ㆍ세상 사람ㆍ악마 혹은 악마의 하늘과 사문 바라문들 가운데서 스스로 증득하고 남을 위해 설법하는데 그 말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바르고 참되며 의미가 구족하고 범행도 청정하다.'
그들이 말했다.
“이러한 진인(眞人)은 마땅히 찾아가 뵈어야 한다. 이제 우리도 함께 찾아뵙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은 곧 서로를 이끌고 가누바제 마을을 나가 무리지어 서로 따르며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때 구라단두 바라문은 높은 누각 위에서 멀리 여러 사람들이 무리 지어 서로 따라가는 것을 보고 시자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일로 저렇게 무리 지어 서로 따라가며, 또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시자가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는 사문 구담 석가 종족의 아드님께서 집을 나와 도를 이룬 뒤 구살라국에서 인간 세계를 유행하시다가 가누바제 마을 북쪽에 있는 시사파숲 속에 이르러 머물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의 큰 이름은 천하에 두루 퍼졌고,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의 10호를 구족했으며, 모든 하늘ㆍ세상 사람ㆍ악마 혹은 악마의 하늘과 사문 바라문들 가운데서 스스로 증득하고 남을 위해 설법하시는데 그의 말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바르고 참되며 의미가 구족하고 범행도 청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마을의 모든 바라문ㆍ장자ㆍ거사들이 다 모여 서로를 따라 사문 구담을 뵈러 가는 것입니다.”
그 때 구라단두 바라문은 곧 시자에게 명령하였다.
“너는 빨리 가서 모든 사람에게 '그대들은 잠깐 기다리시오. 내가 거기 도착하면 그 때 함께 저 사문 구담의 처소로 갑시다'라고 내 말을 전하라.”
그 때 그 시자는 명령을 받고 곧 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분 잠깐만 기다리시오. 내가 거기에 도착하면 그 때 함께 구담의 처소로 갑시다”라고 말했다.
여러 사람들은 시자에게 말했다.
“너는 빨리 돌아가서 바라문에게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 함께 갑시다'라고 아뢰거라.”
시자가 돌아와 바라문에게 아뢰었다.
“여러 사람들이 멈춰서서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함께 가시지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바라문은 곧 누각에서 내려와 중문(中門)에 나와 섰다. 그 때 다른 5백 바라문들도 중문 밖에 앉아 구라단두를 도와 큰 제사를 준비하다가 구라단두가 나오는 것을 보고 모두 일어나 맞으면서 물었다.
“큰 바라문이여, 어디를 가려고 하십니까?”
그는 대답했다.
“내가 들으니, 사문 구담 석가 종족의 아드님이 집을 나와 도를 이룬 뒤 구살라국에서 인간 세계를 유행하시다가 가누바제 마을 북쪽에 있는 시사파숲에 이르러 머물러 계신다고 한다. 그의 큰 이름은 천하에 두루 퍼졌고,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의 10호를 구족했으며, 모든 하늘ㆍ세상 사람ㆍ악마 혹은 악마의 하늘과 사문 바라문들 가운데서 스스로 증득하고 남을 위해 설법하시는데 그 말씀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참되고 바르며 의미가 구족하고 범행은 청정하다고 한다. 이러한 진인(眞人)은 마땅히 가서 뵈어야 한다.
모든 바라문이여, 나는 또 구담께서는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祀具)5)를 안다고 들었다. 그것은 지금 우리 대중 가운데 있는 노숙한 학자들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큰 제사를 지내려고 한다. 소와 염소는 이미 준비되었으니 구담의 처소로 나아가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祀具)를 묻고자 한다. 우리가 이 제사법을 다 배우게 되면 공덕은 구족하고 명성이 널리 퍼질 것이다.”
5)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열여섯 가지 조건을 말한다.
그러자 5백 바라문은 구라단두에게 아뢰었다.
“대사(大師)께서는 가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그가 당신께 와야하기 때문이니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대사께서는 7대를 내려오는 동안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마땅히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말했다.
“대사께서는 이학의 3부 경전을 다 외워 통달했고 온갖 경서를 다 분별하였으며 세상 서적의 깊은 뜻도 두루 익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대인의 관상보는 법, 길흉을 점치는 법, 제사 의례 등에도 능하십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대사께서는 얼굴이 단정하고 범천과 같은 몸을 가졌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대사께서는 계덕(戒德)이 매우 뛰어나고 지혜를 성취했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대사께서는 하시는 말씀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변재(辯才)를 구족했고 그 의미도 청정합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대사께서는 대중의 스승[導首]으로서 제자가 매우 많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대사께서는 항상 5백 바라문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대사께서는 사방의 학자들이 모두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고 모든 기술과 제사의 법을 물으면 다 자세히 대답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대사께서는 저 파사닉왕이나 병사왕의 공경과 공양을 받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대사께서는 부자로서 창고에는 재산과 보물이 가득 차 넘칩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마땅히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또 대사께서는 지혜가 밝고 말이 유창하여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대사께서는 이러한 열한 가지 법을 구족하셨으니 그가 당신께 와야지 당신께서 그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구라단두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그대들의 말과 같다. 나는 진실로 그러한 덕을 갖추고 있으니, 그런 덕이 없지 않다. 그러나 너희들은 다시 내 말을 들으라. 사문 구담께서 성취한 공덕으로 볼 때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사문 구담께서는 7대를 내려오는 동안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에게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으셨다. 그가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얼굴이 단정한 찰리 종족의 출신이다. 이러한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존귀한 집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집을 나와 도를 닦으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빛나는 몸을 구족하고 종성(種姓)이 진실하고 올바른데도 집을 나와 도를 닦으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부잣집에 태어나 큰 위력이 있으면서도 집을 나와 도를 닦으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현성의 계를 갖추었고 지혜를 성취하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말을 잘하고 부드럽고 온화하며 고상하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대중들의 도사(導師)로서 제자가 많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욕애(欲愛)를 아주 없애 경박하거나 사납지 않으며 걱정이나 두려움을 이미 없애 털이 곤두서는 일이 없으시다. 또 기뻐하고 화열(和悅)하여 사람을 보면 착함을 칭찬하고 행과 과보(果報)를 잘 말하며 남의 도(道)를 비방하지 않으신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로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항상 파사닉왕과 병사왕의 예경과 공양을 받는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비가라사라 바라문의 예경과 공양을 받고 또 범(梵) 바라문ㆍ다리차(多利遮) 바라문ㆍ종덕(種德) 바라문ㆍ수가마납도야자(首伽摩納兜耶子)의 공경과 공양을 받는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모든 성문(聲聞) 제자들에게 추앙받고 예경과 공양을 받으며, 모든 하늘과 귀신의 공경을 받고 석종(釋種)ㆍ구리ㆍ명녕ㆍ발지ㆍ말라ㆍ소마 등의 여러 종족이 모두 높이 떠받든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파사닉왕과 병사왕에게 3귀(歸)와 5계(戒)를 주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비가라사라 바라문 등에게 3귀와 5계를 주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제자들에게 3귀와 5계를 주셨고 모든 하늘과 석가 종족과 구리 종족 등에게도 3귀와 5계를 주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유행하시는 곳마다 모든 사람에게 공경과 공양을 받는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가시는 성곽이나 촌읍에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와 공경하고 공양한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이르는 곳마다 비인(非人)과 귀신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 가시는 곳마다 그곳의 백성들은 다 광명을 보고 하늘 음악 소리를 듣는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그곳을 떠나려 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알뜰히 사모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보낸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처음 집을 떠났을 때 그 부모와 종친(宗親)들이 울면서 그리워하고 서러워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젊어서 집을 나와 모든 장식과 코끼리ㆍ말ㆍ보배 수레ㆍ5욕ㆍ영락을 버리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집을 떠나 도를 닦으셨다. 만일 그가 집에 있었더라면 4천하의 왕이 되어 백성을 통치했을 것이고 우리도 모두 그의 신하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범법(梵法)을 밝게 알아 능히 남을 위하여 설명하고 또 범천과 오가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를 밝게 알고 계신다. 그것은 우리 노숙한 학자들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32상을 다 구족하셨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지혜가 통달하여 겁내는 일이 없다. 이런 법을 성취하셨으니 우리가 그에게 가야지 그가 우리에게 오게 해서는 안 된다. 저 구담께서는 이 가누바제 마을에 와 계신다. 우리보다 높은 분이시고, 또 귀한 손님이시니 마땅히 찾아가 뵈어야 한다.”
그 때 5백 바라문이 구라단두에게 아뢰었다.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합니다. 그분의 공덕이 그와 같단 말입니까? 만일 구담께서 그 모든 공덕 가운데 하나만 성취하였더라도 그를 이 곳으로 오게 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하물며 지금 전부를 갖춤이겠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서로를 이끌고 함께 찾아가 문안 드려야 할 것입니다.”
구라단두가 말했다.
“가고 싶은 자는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알라.”
그리고 바라문은 곧 보배 수레를 장엄하게 꾸미고 5백 바라문과 가누바제의 모든 바라문ㆍ장자ㆍ거사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시사파숲으로 나아갔다. 근처에 도착하자 수레에서 내려서는 걸어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 인사를 마치고 한쪽에 앉았다.
이 때 모든 바라문ㆍ장자ㆍ거사들 중에는 부처님께 절하고 앉는 자가 있는가 하면 문안을 드리고 앉는 자도 있었고, 제 이름을 대고 앉는 자도 있었고 혹은 손을 모으고 부처님을 향해 앉는 자도 있었으며, 혹은 잠자코 앉는 자도 있었다.
모두 앉자 구라단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만일 짬을 내어 들어주시겠다면 감히 여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물으시오.”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구담께서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祀具)를 밝게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노숙한 학자들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제 큰 제사를 지내려고 합니다. 이미 5백 마리 숫소와 5백 마리 암소며 5백 마리 숫송아지와 5백 마리 암송아지며 5백 마리 숫염소와 5백 마리 암염소를 준비하였고, 그것으로 제사를 지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일부러 찾아와 세 종류 제사법과 16사구를 묻는 것입니다. 만일 이 제사를 성취한다면 큰 과보를 얻고 명성이 널리 퍼지며 하늘과 인간의 공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구라단두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생각하고 기억하십시오. 마땅히 그대를 위해 말하겠습니다.”
바라문이 말했다.
“예. 구담이시여, 듣기를 원합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구라단두에게 말씀하셨다.
“아주 먼 옛날 머리에 물을 붓는 관정의식을 하고 왕위에 나아간 찰리 종족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제사를 지내려고 바라문 대신들을 모아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많은 재보를 구족하고 있고 다섯 가지 욕망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나이는 이미 늙었지만 군사가 강성하여 겁날 것이 없고 창고도 가득 차 넘친다. 그래서 이제 큰 제사를 지내려고 하니, 너희들은 제사지내는 법을 말하라.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 때 대신들이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왕의 말씀과 같이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는 강성하며 창고는 가득 차 넘칩니다. 다만 모든 백성들이 많은 악심을 품고 온갖 법답지 못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런 때에 제사를 지낸다면 제사의 법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도적을 시켜 도적을 쫓으면 사명을 이루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이들은 내 백성이니 칠 수 있고 죽일 수 있으며 꾸짖을 수 있고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은 마십시오. 왕을 가까이 모시는 자에게는 마땅히 그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주고 백성들을 관리하는 자에게는 마땅히 재물을 주며 농사를 짓는 모든 자들에게는 마땅히 소와 송아지와 종자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각각 스스로 경영하게 하십시오. 왕이시여, 백성을 핍박하지 않으면 곧 백성들은 안온할 것이며 그 자손을 기르면서 서로 즐겁게 지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구라단두에게 말씀하셨다.
“이 때 왕은 모든 신하의 말을 듣고 모든 측근들에게는 옷과 양식을 주고 모든 상인들에게는 재보를 주며 농사를 짓는 자들에게는 소와 씨앗을 주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은 저마다 스스로 경영하며 서로 침노하거나 괴롭히지 않았고 자손을 기르면서 서로 즐겁게 지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때 왕은 다시 모든 신하를 불러 말했습니다.
'내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도 강성하며 창고도 가득 차 넘치고 있다. 또 나는 모든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부족한 것이 없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손을 기르면서 서로 즐겁게 지내고 있다. 나는 이제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너희들은 제사법을 말하라. 무엇이 필요한가?'
모든 신하들은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의 말씀과 같이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도 강성하며 창고는 가득 차 넘칩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부족한 것이 없게 하셨고, 그들은 자손을 기르면서 서로 즐겁게 지냅니다. 왕이시여, 제사를 지내고자 하신다면 궁 안에 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궁 안에 들어가 말했습니다.
'내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도 강성하며 창고에는 많은 재보가 가득 차 넘친다. 나는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자 모든 부인들이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왕의 말씀과 같이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도 강성하며 창고도 가득 차 넘치도록 많은 보배가 있습니다.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하신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왕이 궁에서 나와 모든 신하에게 알렸습니다.
'내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는 강성하며 창고는 가득 차 넘친다. 모든 백성들에게는 부족함이 없게 하였고 그들은 자손을 기르면서 서로 즐겁게 지내고 있다. 나는 이제 큰 제사를 지내겠다고 궁 안에도 이미 알렸다. 너희들은 그 제사에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를 나에게 모두 말하라.'
모든 대신들이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의 말씀과 같이 큰 제사를 지내겠다고 이미 궁 안에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태자와 황자(皇子), 대신과 장군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왕께서는 마땅히 그들에게도 알리소서.'
그 때 왕은 모든 신하의 말을 듣고 곧 태자와 황자 및 모든 신하와 장군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도 강성하며 창고도 가득 차 넘친다. 나는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 때 태자ㆍ황자ㆍ대신ㆍ장군들이 곧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지금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도 강성하며 창고는 가득 차 넘칩니다. 제사를 지내고자 하신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 때 왕은 다시 대신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는 강하며 많은 재보가 있다. 나는 큰 제사를 지내겠다고 이미 궁 안과 태자ㆍ황자 나아가 장군들에게까지 알렸다. 이제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여기 무엇이 필요한가?'
모든 신하들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대왕의 말씀과 같습니다. 제사를 지내고자 하신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곧 성 동쪽에 새 집을 세웠습니다. 왕은 새 집에 들어가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향기로운 소유(酥油)를 몸에 바르고 또 사슴뿔을 머리에 쓰고 쇠똥을 땅에 바르고는 그 위에서 앉고 누웠습니다. 첫째 부인과 바라문 대신은 한 마리 누런 암소를 골라 젖을 짜 한 그릇의 우유는 왕이 먹고 한 그릇은 부인이 먹고 한 그릇은 대신이 먹고 한 그릇은 대중에게 공양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송아지에게 주었습니다.
그 때 왕은 8법을 성취하고 대신은 4법을 성취하고 있었습니다. 왕이 성취하고 있던 8법이란 무엇인가?
그 찰리왕은 7대를 내려오면서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에게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법의 성취입니다. 그 왕은 얼굴이 단정한 찰리 종족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법입니다. 그 왕은 계율과 덕망을 풍성하게 갖추었고 지혜를 구족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법입니다. 그 왕은 갖가지 기술을 익혀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탈 줄 알고 칼ㆍ창ㆍ활을 쓰는 전투법 등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법입니다.
그 왕은 큰 위력이 있어 모든 작은 왕을 포섭하였고 그에게 굴복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법입니다. 그 왕은 말을 잘하고 그 말은 부드러우며 의미를 구족했습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법입니다. 그 왕은 많은 재보가 있어 창고에 가득 차 넘칩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법입니다. 그 왕은 지혜로운 계책이 있고 용감하며 또 겁내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법입니다. 그 찰리 종족의 왕은 이 8법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대신이 성취하고 있던 4법이란 무엇인가?
저 바라문 대신은 7대를 내려오는 동안 그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에게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법입니다. 저 대신은 이학(異學)의 3부 경전을 외워 통달하였고 온갖 경서를 잘 분별하며 세속 서적의 깊은 뜻까지도 다 익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대인의 관상보는 법, 길흉을 점치는 법과 제사 의례에도 능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법입니다.
그 대신은 말을 잘했고 그 말은 부드러우며 의미를 구족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법입니다. 그 대신은 지혜로운 계책이 있고 용감하여 겁내는 것이 없었고 모든 제사법을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법입니다. 그 때 그 왕은 8법을 성취하고 바라문 대신은 4법을 성취하고 있었으며, 그 왕에게는 그를 돕는 네 부류6)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 제사법과 16사구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6) 거론된 궁 안의 여러 부인ㆍ태자ㆍ황자ㆍ대신ㆍ장군을 말한다.
그 때 바라문 대신은 그 새 집에서 열여섯 가지 일[事]로써 왕의 마음을 열어주고 왕의 의심을 없애주었습니다. 열여섯 가지란 무엇인가? 대신이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지금 찰리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7대를 내려오는 동안 그 부모가 바르지 못해 항상 남에게 업신여김과 비방을 받는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왕을 더럽히지는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7대를 내려오는 동안 그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에게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지금 찰리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얼굴이 추하고 더러우며 찰리종족이 아니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왕을 더럽히지는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얼굴이 단정하며 찰리종족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지금 찰리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증상(增上)의 계가 없고 지혜를 갖추지 못했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왕을 더럽히지는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계덕이 뛰어나고 지혜를 구족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지금 찰리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모든 기술에 능하지 못하고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탈 줄 모르며 병법을 두루 알지 못한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왕을 더럽히지는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모든 기술에 능하고 진을 치는 법과 병법을 모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모든 작은 왕들을 포섭할 큰 위력이 없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큰 위력이 있어서 모든 작은 왕들을 포섭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말을 잘하지 못하고 그 말은 거칠고 억세며 의미를 구족하지 못했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말을 잘하고 그 말은 부드러우며 의미를 구족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재보가 많지 않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창고가 가득하여 넘칠 만큼 많은 재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계책이 없고 의지가 약하고 겁이 많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은 지혜로운 계책이 있고 용감하며 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궁 안에 알리지 않았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제사를 지내겠다고 미리 먼저 궁 안에 알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태자ㆍ황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제사를 지내겠다고 미리 태자ㆍ황자에게 알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여러 신하에게 알리지 않았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큰 제사를 지내겠다고 미리 여러 신하에게 알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장군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왕께서는 제사를 지내겠다고 미리 장군들에게 알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바라문 대신은 7대를 내려오는 동안 부모가 바르지 않아 항상 남에게 업신여김과 비방을 받는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저는 7대를 내려오는 동안 부모가 진실하고 올발라서 남에게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대신이 이학(異學)의 3부 경전을 통달해 외우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경서를 분별하지 못하며 세상 서적의 그윽한 뜻도 두루 익히지 못했고 대인의 관상보는 법, 길흉을 점치는 법, 제사 의례에도 능하지 못하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저는 이학의 3부 경전을 외워 통달하였고 온갖 경서를 능히 분별하며 세속 서적의 깊은 뜻까지도 두루 익히고 또 대인의 관상보는 법, 길흉을 점치는 법, 제사 의례에도 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대신이 말을 잘하지 못하고 그 말은 추하고 억세며 의미를 갖추지 못했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저는 말을 잘하고 그 말은 부드러우며 의미를 구족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왕은 큰 제사를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대신이 지혜로운 계책을 갖추지 못했고 의지가 나약하며 제사의 법을 모른다.)
비록 이런 말이 있더라도 그것으로는 왕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저는 지혜로운 계책이 있고 용감하며 겁이 없고 모든 제사법을 두루 알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구라단두에게 말씀하셨다.
“그 왕은 16처(處)에 대해 의심이 있었는데 그 대신이 16사(事)로써 왕의 뜻을 열어 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때 대신은 그 새 집에서 열 가지 일에 대한 행(行)을 왕에게 가르쳐 왕을 기쁘게 하고 이롭게 하였습니다. 어떤 것을 열 가지라 하는가?
대신이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제사를 지낼 때 살생한 사람이건 살생하지 않은 사람이건 와서 모인 자에게는 모두 평등하게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살생한 사람이 오더라도 역시 베풀어주어 그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고, 살생하지 않은 사람이 와도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마음으로 베풀어야 합니다. 또 도둑질ㆍ간음ㆍ이간하는 말ㆍ욕설ㆍ거짓말ㆍ꾸밈말을 하며 탐심ㆍ질투ㆍ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 모임에 오더라도 그에게 베풀어 주어 그들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고, 도둑질하지 않고 나아가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이 와도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마음으로 베풀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저 대신은 이 10행을 가르쳐 보여 기쁘게 하고 이익되게 하였습니다.”
또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찰리왕은 그 새 집에서 세 가지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켰는데, 대신이 그 마음을 없애주었습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왕은 후회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큰 제사를 지낸다. 이미 큰 제사를 지냈다. 앞으로도 큰 제사를 지낼 것이다. 이렇게 큰 제사를 지내느라 많은 재보를 없앴다.'
이 세 가지 마음을 일으켜 후회하였습니다. 대신은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이미 큰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미 보시했고, 앞으로도 보시할 것이며, 지금 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복된 제사에 후회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왕이 새 집에 들어가 세 가지 후회하는 마음을 낸 것을 대신이 없애 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머리에 물을 붓는 의식을 하고 왕위에 나아간 찰리종족의 왕은 보름날 달이 찼을 때 그의 새 집에서 나와 그 집 앞에다가 큰 불더미를 피우고는 손에 기름병을 들고 불 위에 쏟아 부으면서 '주리라, 주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그 왕의 부인은 왕이 보름날 달이 찼을 때 그의 새 집에서 나와 집 앞에 큰 불더미를 피우고는 손에 기름병을 들고 불 위에 쏟아 부면서 '주리라, 주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부인과 채녀들은 많은 재보를 가지고 왕에게 가 아뢰었습니다.
'이 여러 가지 보물로 왕의 제사를 돕겠습니다.'
바라문이여, 그 왕은 곧 부인과 채녀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만 두라, 그만 두라. 너희들은 이미 공양하였다. 내게도 많은 재보가 있어 제사 지내기에 충분하다.'
모든 부인과 채녀들은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물을 가지고 궁중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만일 왕께서 동쪽에서 큰 제사를 지내면 그 때에 사용하여 도움이 되게 하리라.'
바라문이여, 그 뒤에 왕은 동쪽에서 큰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때 부인과 채녀들은 곧 그 보물을 가지고 큰 제사를 지내는 데 도왔습니다.
그 때 태자와 황자는 왕이 보름날 달이 찼을 때 새 집에서 나와 집 앞에다가 큰 불더미를 피우고는 손에 기름병을 들고 불 위에 쏟으면서 '주리라, 주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태자와 황자는 많은 재보를 가지고 왕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이 보물로써 왕의 큰 제사를 돕겠습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그만 두라, 그만 두라. 너희들은 이미 공양하였다. 내게도 많은 재보가 있어 제사 지내기에 충분하다.'
모든 태자와 황자들은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이 이 보물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왕께서 만일 남쪽에서 제사를 지낸다면 마땅히 이것으로써 도와 드리리라.'
이와 마찬가지로 대신들도 보물을 가지고 와서 자원하여 왕의 서쪽 제사를 돕고 장군들도 보물을 가지고 와서 자원하여 왕의 북쪽 제사를 도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 왕은 큰 제사를 지낼 때 소나 염소 및 모든 중생을 죽이지 않고 오직 소(酥)와 우유ㆍ깨 기름ㆍ꿀ㆍ흑밀(黑蜜)ㆍ석밀(石蜜)만을 써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저 찰리왕은 큰 제사를 지낼 때 처음에도 기뻤고 중간에도 기뻤으며 나중에도 또한 기뻤습니다. 이것을 제사를 성취하는 법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저 찰리왕은 제사를 마친 뒤 수염과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고 4무량심(無量心)을 닦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범천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왕의 부인도 큰 보시를 마친 뒤 또한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고 네 가지 범행(梵行)을 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범천에 태어났습니다. 바라문 대신도 왕에게 사방에 제사지내도록 가르치고 또 큰 보시를 행한 뒤 수염과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고 네 가지 범행을 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범천에 태어났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왕은 세 종류의 제사법과 16사구를 갖추어 큰 제사를 성취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때 구라단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잠자코 대답하지 못했다. 이 때 5백의 바라문이 구라단두에게 말했다.
“사문 구담의 말은 미묘합니다. 대사께서는 왜 잠자코 대답이 없습니까?”
구라단두는 대답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미묘합니다. 저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잠자코 있었던 까닭은 저 혼자 깊이 생각했을 뿐입니다. 사문 구담께서는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남에게 들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자코 생각했습니다.
'사문 구담이 바로 그 찰리왕이 아니었을까? 혹은 저 바라문 대신이 아니었을까?'”
그 때 세존께서 구라단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그대는 여래를 바로 보았습니다. 그 때 큰 제사를 지낸 그 찰리왕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그대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지 마시오. 내가 바로 그였습니다. 나는 그 때 아주 크게 은혜7)를 베풀었습니다.”
7) '혜(慧)'로 되어 있고 원ㆍ명 2본에는 '혜(惠)'로 되어 있다. 의미상 '혜(惠)'가 옳을 듯하여 원ㆍ명 2본에 의거해 번역하였다.
구라단두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祀具)는 큰 과보를 얻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습니다.”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그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로 만일 항상 여러 스님들을 끊임없이 공양하면 이 공덕은 그보다 훌륭합니다.”
또 여쭈었다.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로 만일 항상 여러 스님들을 끊임없이 공양하면 그 공덕이 가장 훌륭하다 하셨는데, 그것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있습니다.”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그렇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로 여러 스님들을 끊임없이 공양하더라도 초제승(招堤僧)8)을 위하여 승방이나 당각(堂閣)을 세우는 것만 못합니다. 이 보시가 가장 훌륭합니다.”
8) ctuddisa)은 사방승가(四方僧伽)를 말한다.
또 여쭈었다.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로써 여러 스님들을 끊임없이 공양하고 또 초제승을 위해 승방이나 당각을 세우면 그 복이 가장 훌륭하다 하셨는데, 다시 그보다 훌륭한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습니다.”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그렇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세 종류의 제사와 16사구로써 여러 스님들을 끊임없이 공양하고 또 초제승을 위하여 승방이나 당각을 세우더라도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켜 입으로 직접 '나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 복이 가장 훌륭합니다.”
또 여쭈었다.
“이와 같이 3보에 귀의하면 큰 과보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습니다.”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그렇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기뻐하는 마음으로 5계(戒)를 받들어 행하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간음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이 복이 가장 훌륭합니다.”
또 여쭈었다.
“이 세 종류의 제사를 지내고 나아가 5계를 지키면 큰 과보를 얻을 것입니다. 다시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습니다.”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그렇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우유를 짜는 동안만큼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생각하면 그 복이 가장 훌륭합니다.”
또 여쭈었다.
“이 세 종류의 제사를 지내고 나아가 자비심을 가지면 큰 과보를 얻습니다. 다시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습니다.”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그렇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불법 가운데 출가하여 도를 닦아 온갖 덕을 두루 갖추고 나아가 3명(明)을 구족하면 모든 어리석음과 어둠을 멸하여 지혜의 밝음을 구족할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방일(放逸)하지 않고 한적한 것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이 복이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구라단두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저는 제사를 위하여 모든 소와 염소를 각각 5백 마리씩 준비했는데, 이제 그들 마음대로 물이나 풀을 찾아다니도록 다 놓아주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합니다. 제가 정법 안에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간음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과 모든 대중께서는 때맞추어 저의 공양 요청을 받아 주소서.”
그 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 청을 허락하셨다. 그러자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잠자코 허락하시는 것을 보고 곧 일어나 부처님께 절하고 세 바퀴 돌고는 떠나갔다.
그는 집에 돌아가 갖가지 음식을 마련하였다. 이튿날 때가 되자, 그 때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큰 비구 1,250명과 함께 바라문의 집으로 가서 자리에 앉으셨다. 이 때 바라문은 손수 음식을 집어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했다. 다 드시고 나자 발우를 거두고 손 씻을 물을 돌려 공양을 끝마쳤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을 위하여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제사에서는 불이 으뜸이고
풍송(諷誦)에서는 시(詩)가 으뜸이며
사람 중에는 왕이 으뜸이고
모든 물 중에선 바다가 으뜸이며
별 가운데는 달이 으뜸이고
광명 중에서는 해가 으뜸이며
위와 아래, 사방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과
하늘과 세간 사람 중
오직 부처만이 가장 으뜸이니
큰 복을 얻고자 하는 사람
마땅히 삼보(三寶)에 공양하여라.
그 때 구라단두 바라문은 곧 작은 자리 하나를 가지고 와서 부처님 앞에 앉았다. 그 때 세존께서는 차례로 설법하고 가르쳐 보여 이롭고 기쁘게 하셨으니, 그것은 시론(施論)ㆍ계론(戒論)ㆍ생천론(生天論)이었다. 욕심은 큰 걱정거리가 되고 상루(上漏)는 장애가 되며 출요(出要)가 제일이라 하시면서 모든 청정한 행을 널리 펴고 나타내 보이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바라문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음개(陰蓋)가 가벼워져 쉽게 조복(調伏)될 것임을 아셨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께서 그러했듯이 그를 위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말씀하시고, 다시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集聖諦]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集滅聖諦]ㆍ괴로움의 벗어남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出要聖諦]를 분별해 나타내 보이셨다.
그러자 구라단두 바라문은 그 자리에서 번뇌의 티끌과 때를 멀리 떠나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것은 마치 흰 천이 쉽게 물드는 것과 같았다. 구라단두 바라문도 또한 그와 같아 법을 보고 법을 얻었으며 과(果)를 거두어 확고히 머무르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믿음을 따르지 않고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이제 다시금 부처님과 법ㆍ비구대중들께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제가 정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는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다시 이렛동안 저의 공양청을 받아 주소서.”
그 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청을 허락하셨다. 그 때 바라문은 이렛일 동안 손수 음식을 준비하여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했다. 이레가 지난 뒤 세존께서는 세상으로 유행을 떠나셨다. 부처님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구라단두 바라문은 병을 얻어 목숨을 마쳤다. 그 때 많은 비구들은 구라단두가 이렛동안 부처님께 공양하고 부처님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목숨을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는 각자 생각했다.
'저 사람은 목숨을 마친 뒤에 어디 가서 태어났을까?'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부처님께 여쭈였다.
“저 구라단두는 이제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는 어디 가서 태어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범행을 깨끗이 닦아 법 중의 법을 성취하였고 또 법에 저촉되는 짓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5하분결(下分結)을 끊고 저 세상에서 반열반에 들어 이 세상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