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균주 황벽운선사 시중
2.조주심 선사 시중
3.현사비 선사 시중
4.아호대의 선사 수계
5.영명수 선사 수계
6.황룡 사심신 선사 소참
7.동산연선사 제자의 행각에 부침
8.불적 이암진 선사 보설
9.경산 대혜고 선사 답함
10. 몽산이 선사 시중
11.양주 소암전 대사 시중
12.처주 백운무량창 선사 보설
13.사명 용강연선사 선인에게 답함
14.원주 설암흠선사 보설


도(道)에 내외(內外)없으며 출입이 없는 것이어늘 선(禪)에서 어찌 관문 (關門)이 있으랴. 그러나 도를 닦음에 사람에는 미(迷)와 오(悟)가 있으므로, 이에 큰 선지식인 관문지기가 있어서 시기에 맞춰 관문을 열고 닫으며, 자물 쇠를 잘 단속하며 사실을 엄히 감정함으로써 말과 복색을 달리하여 슬며시 법도를 뛰어넘어 가려는 자로 하여금, 부득이 그 간사를 부리지 못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관문을 지나기가 쉽지 아니 한 지도 이미 오래다.

내가 처음 출가하였을 때 마을에서 한질 책을 얻었었는데 이름을 선문불 조강목(禪門佛祖綱目)이라 하였다. 거기에는 옛 여러 큰스님께서 처음 공부 지어가기 어려웠던 일이며 중간에 노고하신 경력이며 마침내 신오(神悟)를 얻으신 일 등이 실려있어, 내 이를 크게 아끼고 중히 여겨 깊이 배우기를 간 절히 바랐더니, 이윽고 이 책은 다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어 오등(五燈) 제 어록과 여러 스님들의 전기를 열람하면서 치 소(緇素)를 막론하고 다만 실지 참구하고 실답게 깨친 대문은 모두 모으고, 다시 번거로운 것은 삭제하고 요긴한 것만을 간추려서 한편을 만들어 이름을 바꾸어 선관책진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집에 있을때는 책상머리에 두고 행각 할 때는 걸망에 넣어서 항상 지니고 다녔던 것인데, 한번 책장을 펴면 즉시 에 심지(心志)가 격발하고 정신이 새로와져 불각 중 스스로 깨우치고 채직질 되어 앞으로 내닫는 것이었다.

혹 어떤 사람은 이르기를, "이는 아직 관문을 지나지 못한 이를 위함이요 이미 관문을 지난 이는 벌써 멀리 갔거니 이를 어디에 쓰랴" 할 것이다.

그러나 관외에는 거듭 관이 있는 것이니 저 거짓 닭 소리를 빌어서 잠시 호랑이의 환을 면하며 적은 것을 얻고 족히 여기는 것은 이미 증상만인(增上 慢人)이 됨이니, 아직 물이 다 하지 아니하고 산이 다 하지 않았는데, 채찍 이 손에 있으면 빠르고 다시 멀리 달려 마침내 최후의 깊은 관문을 뚫을 것 이니 그 때에 서서히 파참재(罷參齋)를 베풀어도 늦지 않느니라.

만력(萬曆) 28년 경자년 이른 봄 운서 주굉 적음

* 용어정리

[1]선관책진(禪關策進): 참선공부를 지어가매 꼭 지나가야 할 관문으로 일깨우고 채찍질하여 나아간다는 말이니, 깨우치지 못하는 것을 일깨고 나아 가지 않는 것을 채찍함이다. 꼭 지나가야 할 관문이란 바로 조사관이다.

[2]관문.조사관(關門.祖師關): 옛날에 국방상, 혹은 경제상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 관문인데,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데는 반드시 화두를 꼭 통과하여야 하므로 화두가 조사가 되니 관문인 것이니 그래서 공안을 조사관이라 하는 것이다. 무문개(無門開)선사가 말씀 하시기를, "참선은 반드시 조사관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반드시 마음길이 끊어져야 한다. 조사관을 뚫지 못하고 마음길 이 끊기지 않았으면 이것은 다 초목에 붙은 허깨비 종류니라."하였다.

[3]오등(五燈): 등이 차례차례 불 붙어져 꺼지지 않는 것처럼, 법을 받고 전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전등이라 하고, 전법 수법하는 의식을 전등식이 라 한다. 그래서 조사스님들의 행적과 사법의 경위와 순서를 기록한 글에"등 "자를 붙여왔으니 전등(傳燈), 속등(續燈), 광등(廣燈) 보등(普燈), 연등(聯 燈)이 그것이다.

[4]치소(緇素): 출가인과 재가인. 승속이라는 말.

[5]거짓 닭소리: 맹상군(孟嘗君)이 슛기어 변성명하고 밤중에 함곡관(函 谷關)에 이르렀는데 닭이 울어야 문을 열므로 못 나가고 있었더니 마침 3천 명의 맹상군 식객 중에는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있어 그가 닭 울음소 리를 내니 모든 닭이 일제히 우는지라 관문지기가 시간이 된 줄 알고 문을 열음에 맹상군은 문밖으로 달아나 위기를 피하였다.

[6]증상만인(增上慢人): 소견소법(小見小法), 즉 소승에 만족하고 다시 다른 법 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리.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 다고 생각하여 자시하는 무리. 법견에 국집하는 무리.법화회상(法華會上)벽 두에 퇴석한 5천인이 보인다.

[7]파참재(罷參齎): 공부를 마치고 조사의 인가(印加)를 받을 때 베푸는 재연.

[8]만력(萬曆): 명(明) 제13대 신종(神宗)때의 역호. 28년은 우리나라 이 조 15대 선조 33년이니(서기 1600년) 임진왜란이 지난 2년 후가 된다.

1.균주 황벽운선사 시중

대중들아, 너희들이 만약에 미리 칠통을 철저히 타파하여 놓지 않으면 납월 30일을 당하여는 정녕 열뇌(熱惱)하고 황란(惶亂)할 것이 분명하니라.

어떤 외도들은 공부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저러고 있다"하며 냉소하나 내 그대들에게 묻노니, 홀연 죽음이 닥치면 너는 무엇으로 생사를 대적하겠느냐, 모름지기 평상시에 힘을 얻어 놓아야 급할 때에 다소 힘을 더는 것이니, 마 땅히 목마르기를 기다려 샘을 파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마라. 죽음이 박도하여서는 이미 수족이 미치지 못하니 앞길이 망망하여 어지러이 갈팡질팡 할 뿐이니, 가위 딱하고 딱 하도다.

평시에 다만 구두선(口頭禪)만 익혀서 선을 설하고 도를 말하며 불을 꾸짖 고 조사를 욕하여 제법 모두 해 마친 듯하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아무 용처 없 으니, 평시에 남만은 속여왔으나 어찌 이때에 당하여 자기 마저 속이랴.

형제들아, 권하노니 신체가 강건한 동안에 이 일을 분명히 판단해 두라. 대 개 이 문제는 풀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목숨을 떼어 놓고 힘써 공부 하려고는 아니하고, 다만 어렵고 어렵다고만 하니 만약 진정한 대장부라면 어 찌 이와 같으랴. 모름지기 저 공안(公案)을 간(看)하되 "승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답하되 "무"하였으니 다만 26시중에 이 "무"자를 참구하여 밤이고 낮이고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누우나 옷 입으 나 밥 먹으나 변소에 가나 생각생각 끊이지 아니하고 맹렬히 정신을 차려 저 "무"자를 지켜갈 것이다. 이리하여 날이 가고 해가 가서 공부가 타성일편(打 成一片)이 되면 어느듯 홀연히 마음빛이 활짝 밝아 불조의 기틀을 깨달아 문 득 천하 노화상의 혀끝에 속지 않고 스스로 큰 소리를 치게될 것이다.

알고 보면 달마가 서쪽에서 왔다는 것도 바람 없는데 파도를 일으킨 것이 오,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신 것도 오히려 한바탕 허물이라 할 것이라, 여기 에 이르러서는 천성(千聖)도 오히려 입을 떼지 못하거든 하물며 어찌 염라노 자(閻羅老子)를 말 할까보냐.

대중들아, 이 사이에 기특한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생각 하지마 라. 매사에 일이란 마음있는 사람을 두려워 하느니라.

<<평>> 이것이 후대에 화두를 가져 공부하게 된 시초가 된다. 그러나 반드 시 "무"자만으로 한할 것은 아니니 혹은 "만법귀일(萬法歸一)" 혹은 "수미산 (須彌山)혹은"사요소요(死了燒了) 혹은 "참구염불(參究念佛)도 좋으니 한개 의 화두만을 지켜서 오직 크게 깨치기만 기약하라. 비록 의심하는 바는 같지 않으나 깨침인즉 둘이 없는 것이다.

* 용어 정리

[1]황벽(黃檗): (?~850) 법명은 희운(希運), 남악(南嶽)하(下) 4세(世).백 장회해(百丈懷海)선사의 법을 이었다. 일찌기 출가하여 여러곳을 유력하였는 데 이마에 자그마한 혹이 돋혔고 음성이 우렁차고 키는 7척에 의기가 충담하 였다고 한다.

천태산과 경사에서 배우다가 마조(馬祖)를 찾아가니 벌써 입적한 뒤였다.그 래서 법을 받은 제자인 백장(百丈)을 찾아 마조의 평일 기연(機緣)을 물었더 니 말하기를"내가 한번은 방장에 들어가니 화상이 선상에 놓여있는 불자(拂子 )를 들어 보이기에 내가 "다만 그것뿐이지 딴 것이 있읍니까?"하니 화상이 불 자를 도루 선상에 놓으시면서 "네가 이후에 후래를 가르친다면 무엇으로 어떻 게 하겠느냐?"하시더라.

내가 그때 선상의 불자를 들어 보이니 말씀이 "다만 그것 뿐 딴 것이 있느 냐?"하기에 내가 불자를 도로 선상에 놓고 자리에 앉으려 하니 화상이 벽력 같은 "할"을 하셨는데 그때 내가 사흘이나 귀가 먹고 눈이 캄캄 하더라."하는 말에 황벽이 불각중에 토설(吐舌)하고 대오하였다. 하루는 백장이 묻기를 "어 디를 갔다 오느냐?" "대웅산 밑에 가서 버섯을 따옵니다." "범을 안만났더냐? "황벽이 "으흥!"하고 범이 물려는 형세를 지으니 백장이 도끼로 찍는 시늉을 하는 것을 황벽이 덤벼들어 한번 쥐어박았다. 백장도 한 차례 쥐어박고 크게 웃으며 돌아갔다. 그날 백장스님이 상당설법에서 말하기를 "대웅산 아래 큰 범이 있으니 대중은 조심하라. 내가 오늘 한번 물렸다."하였다.

그후 백장의 법을 받아 가지고 여러 곳으로 다니며 형적을 숨기고 지냈다. 한번은 용흥사(龍興寺)에 와서 쓰레질이나 하면서 머물고 있었는데 홍주자사 (洪州刺史)배휴(裵休)가 왔다. 배휴는 법당(영각인듯?) 벽 그림을 가리키며 " 저것이 무엇이요?" 안내하는 스님이 "고승의 상(像)입니다." "형상인즉 볼 만 하나 고승은 어데 있소?"스님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니, 배휴"이 절에 선 승(禪僧)이 없소?""근자에 한 중이 와 있는데 선승같이 보입니다." 휴는 그 중을 불러오라 하였다. 바로 황벽이다. 휴는 다시 앞서의 말로 물으니 황벽이 즉시에 큰 목소리로 "배휴!"하고 불렀다. 휴는 엉겁결에 "네!"하니, "어느 곳 에 있는고?"하는데서 배휴가 활연 계합하였다. 휴는 그 자리에서 제자의 예 를 드리고 사제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법하였다.

그 후 배휴의 청으로 완능(宛陵)의 개원사(開元寺) 홍주 대안사(大安寺)에 있으면서 크게 교화하니, 법중이 항상 천여명이 넘었다. 법을 이은 제자가 12 인이 있는데 그중에 임제(臨濟)스님이 있다. 지금 여러곳에서 성행하고 있는 완릉록(宛陵錄)과 전심법요(傳心法要)는 선사법어를 배휴가 기록한 것이다. 시호(諡號)는 단제(斷際)선사다.

[2]칠통(漆桶): 어두운 중생심을 가리키는 말. 본래 밝은 이 마음이 미혹, 착각, 전도하여 이른바 무명이 덮여 어둑하기가 옷(칠)을 담은 통속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통은 무명(無明)과 같은 말로 쓰인다.

[3]납월 30일:임종시, 숨질 때

[4]구두선: 입에 붙은 선이라는 말이다. 참선은 오직 실다이 공부하고 실다 이 깨칠따름이요, 아무런 글도 말도 지식도 당한 것이 아닌데, 실다운 깨침은 없으면서 입으로만 선이니 도니 법이니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것 을 구두선이니 구두삼매니 한다.

[5]문제: 여기서는 관렬자(關렬子)의 번역인데, 관렬자란 올개미, 함정, 혹 은 장치의 뜻을 가진 중국고어다. 여기서는 조사 공안을 말하고 있다.

[6]공안:화두라고도 하며 도를 판단하는 법어다. 공안이라 하는 것은 본래 관청의 "공변된 문서"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써 공정하여 범치 못할 법령이라 는 것이다. 대개 공부하는데 있어 올바르게 깨치는데는 불조의 바른 이치를 직절(直截) 설하신 조사의 말씀이나 몸짓이나 그밖에 모든 방법은 그것이 모두 깨치는데 있어 바른 법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반드시 이 공안을 요달하 여야 한다. 고래로 조사공안은 천7백칙이 된다고 하나 어찌 조사 공안을 수로 헤아리랴! 이 숫자는 아마도 전등록에 실린 불조사의 수효가 천7백1인데 이 수효에 기인한 것인 듯하다.

[7]타성일편:화두가 순숙하여 끊일 사이가 없어져 듣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 어 언제나 화두가 현전하는 경지, 오직 화두를 들고 간절히 꾸준히 그리고 힘 차게 밀고 나가면 이 경지가 된다. 참으로 공부인의 득력 시절은 이때부터다.

[8]달마(達磨): (?~528)범어로 <보오디.다르마>. 선종의 중국 초조로 세존. 가섭.아란으로 전하여 내려오는 불조법통의 제28대 조사가 된다. 남인도 향지 국 제3왕자로 본명은 <보리다라>라 하였다. <반야다라>존자에게 도를 배우며 40년 동안을 섬기다가 <반야다라>가 죽은 뒤 본국에서 크게 교화하여 당시 성 행하던 소승선관의 육종(六宗)을 굴복시켜 전인도에 그 이름을 떨치고 60여년 을 교화하였다. <반야다라>가 법을 전할 때 "내가 죽은 후 67년이 되면 네가 동방으로 가서 대법을 선양하라. 부디 속히 가려고 서두르지를 마라. 남방에 는 유위공업(有爲功業)이나 좋아하고 불리(佛理)는 보지 못하니 그곳에는 머 물지 마라. 동토에는 보리를 이룰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하셨는데, 사 조카 이견왕(異見王)을 교화하고는 마침내 바다길로 중국을 향하여 3년만 에 양(梁)나라 보통(普通)1년(서기520)9월 광주(廣州)에 이르러 10월에 금릉 (金陵)으로 가서 무제(武帝)와 만났다.

무제가 묻기를, "화상은 서천에서 무슨 교법을 가지고 오셨읍니까?""한가지 의 교법도 가져 오지 않았습니다." "짐이 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고 중을 득 도시켰는데 어떤 공덕이 있읍니까?""조그마한 공덕도 없읍니다." "왜 그렇습 니까?" "그것은 인천(人天)의 작은 복이니 유루(有漏)공덕이 될 뿐입니다." "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 뚜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 일(有爲之事)로는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가는 도리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무제 는 이 문답에서 알아듣지 못하였다. 달마는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 숭산 (嵩山)으로 갔다. 사(師)가 떠난 뒤에 무제는 지공대사에게서 "그분이 바로 관음보살이라"는 말을 듣고 급히 뒤쫓아 모셔 오라고 하였으나 지공대사는 온 나라 사람이 다 가도 오지 않을거라고 말렸다. 그뒤 사는 소림사(少林寺)석굴 에 9년동안 면벽하고 있었으므로 세상에서는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고 불렀다.

이락(伊洛)에 있던 신광(神光)이 도를 구하여 소림굴 밖에 이르렀다. 신광 은 박학군람(博學群覽)하고 불, 유, 선의 깊은 이치를 통달한 이름난 달승(達 僧)이었다. 물론 달마는 면벽단좌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신광은 "옛 사람은 도를 구하 기 위하여 뼈를 부수고 골수를 내며, 피를 뽑아 굶주림에 먹이고, 머리를 풀 어 진흙을 덮었으며, 절벽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에게 먹였는데 나는 또한 무 엇하는 거냐!"하고 마침내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 9일밤, 무릎을 넘는 눈속에 합장하고 서 있었다. 날이 밝아 해가 높이 떴을때야 달마와 이야기할 수 있었 다. 달마가 신광을 돌아 보고"네가 밤새 눈 속에 서 있어 무엇을 구하는 것 이냐?"신광은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말하였다. "원하옵건데 화상이시여, 자비 를 베푸시어 감로문(甘露門)을 열어 주십시요." "제불(諸佛)의 무상묘도(無上 妙道)는 광겁으로 정근하여 행하기 어려운것을, 능히 행하고 참을 수 없는 것 을 능히 참아야 하는 것인데 너는 어째서 소지소덕(小智小德)과 경만심(輕慢 心)으로 대법을 바라보고 헛고생이나 하는 것이냐!"

신광은 즉시에 자기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허물을 통절히 뉘우쳤다. 그리고 즉시에 칼을 빼어 왼쪽 팔을 탁! 치니 팔은 동강 잘라졌다. 이 순간 홀연히 눈 속에서 파초가 솟아올 라 그 팔을 바쳤다고 한다. 달마 이것을 보고 "제불의 최초구법이 모두가 법을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았는데 네가 또한 이러하니 가히 도를 구할만 하 다."하고 드디어 이름을 혜가(慧可)로 고치게 하였다. 혜가가 "제불의 법인 (法印)을 얻게하여 주십시요."하자 달마는 "제불의 법인은 남에게서 얻는 것 이 아니다." 하였다. 그 당시 혜가는 과연 알 수 있는 것은 다 알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웠으나 마음 속에 차지하고 보채고 있는 인간 불안은 어떠한 지식이나 배운 것으로는 해결은 커녕 더욱 그 마음의 불안은 더하여 갔던 것 이다. 그래서 그는 그 지헤총명과 박학강기로는 어찌할 수 없는 마음속 "한물 건"의 해결을 구하고자 물었다."화상이시여, 저의 마음이 아직 편안치 않습 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십시요.""좋다, 그러마. 너의 마음을 이리로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 보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내 너의 마음을 편 안하게 해 마쳤다." 하였다.

위(魏)나라 효명(孝明)황제가 사의 이적을 듣고 크게 경앙하여 세번이나 청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고 예물도 세차례나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막지 못하 고 마납의(摩衲衣) 가사(袈裟) 두벌, 금발우(金鉢) 은수병(銀水甁)과 비단만 은 받았다.

소림사에서 9년동안 있다가 하루는 문인을 불러서 "이제는 내게 때가 왔다. 너희들은 각기 소득을 말해보라."하시니 이미 사의 세연이 다하여 온 것이다. 그때 도부(道副)가 나와서 "문자는 취할것도 없고 버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 다."하니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하고, 다음에 비구니 총지(總持)가 나와 서 "제가 본바로는 <아란>이 아촉불국을 한번 보고는 다시 보지 못한것과 같 습니다."하니,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하고, 도육(道育)은 "사대(四大)는 본래 공했고 오온(五溫)도 본래로 있는 것이 아니오니 제가 본 바로는 한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하니,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하였는데, 혜가는 나와 다만 예배하고 물러가 제자리에 서니,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하고, 이어 말하기를 "여래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가섭(迦葉)존자에게 전하신 후 전전히 전하여 내려와 지금 나에게 와 있다. 이를 이제 너에게 부 치니 잘 호지하라. 그리고 가사를 너에게 전하니 법의 신(信)으로 삼고 그 뜻 을 잘 알아 두어라.

의발은 내가 죽은지 2백년 뒤에는 전하지 마라. 그때는 법이 천하에 퍼져 도에 밝은 자는 많고, 도를 행하는 자는 적으며, 이치를 말하는 자는 많고 이치를 통한자는 적을 것이며, 비밀한 이치에 계합하고 도 를 통한 자가 천만인이 넘을 것이니, 너는 마땅히 이 법을 천양하되 깨치지 못한 자를 가벼이 여기지 마라. 그들이 한생각 기틀을 돌이키면 본래로 도를 얻은자와 같은 것이다."하고 게송으로 이르기를, "내가 이땅에 온것은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니, 한 꽃이 다섯잎이 피면 결과가 자연히 이 뤄지리라(吾本來玄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하고 또 이르기를, "나에게 능가경(楞伽經) 4권이 있으니 이를 너에게 부친다. 이경은 곧 여래심 지(如來心地)의 요문이니 여러 중생을 가르쳐 깨달아 들어가게 하라."하였다.

그 당시 광통율사(光統律師), 보리류지(菩提流支) 3장등 집상(執相) 학자들 은 사를 시기하고 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다섯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으나, 그 때마다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번째는 법은 이미 전했고 때는 왔다 생각하고 그 대로 두어 마침내 앉으신채 입적하니 웅이산(熊耳山)에 매 장하였다. 위나라 효장제(孝莊帝) 영안(永安)원년 10월 5일이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 오다가 총령(蔥嶺)에 서 달마대사가 맨발로 신 한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 니 신 한 짝만 남기고 전신 탈거하였더라고 한다. 사의 저술이라 전해지는 혈 맥론(血脈論), 파상론(破相論), 사행론(四行論), 오성론(五性論), 심경송(心 經誦), 안심법문(安心法門)등이 있어 지금의 종문교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달마전에는 이설이 있다.

[9]세존이 꽃을 들다(拈花微笑):세존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실 때 한번은 대법천 왕이 꽃비를 분분히 내려 세존께 공양하였다. 세존은 그중 금색파리와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나,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 는데 오직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나의 [정법안장 열반묘 심]을 가섭에게 전한다." 하였다. 이것이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써 이밖에 다자탑전(多子塔前)에서 설법 하실적에 <가섭>과 자리를 나누어 앉은 것과, 열반에 드신 뒤 <가섭>에게 곽밖으로 두발을 내어 보인것을 합하여 종문에서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10]염라노자: 이른바 <염라대왕>이다. 범어로<야마라야지>이니 박(縛). 차 지(遮止).정식(靜息).가포외(可怖畏)라 번역된다. 귀신세계의 수령으로 사후 에 유명계를 지배하는 왕이다. 범부가 죽어서 보(報)를 받아갈 때 염라왕이 이를 판단한다. 오직 화두만 간절히 지어가는 사람은 설사 깨치지 못하더라도 이 사람은 스스로 광명을 발하는 사람이라 이런 어두운 문이 상관 없는 것이 다.

[11]일은 마음있는 사람을 두려워 한다: "세상사 어려울 것 없으니 오직 마 음만 있으면 된다."는 말과 같다.

[12]만법귀일(萬法歸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다. 조주의 기연이다.

[13]수미산: 한 중이 운문에게 묻기를, "한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 허물이 있읍니까?"하는데 "수미산!"하였다.

[14]사요소요(死了燒了): "죽어서 태워져 한줌의 재가 되니 너의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는가?"하는 말인데 <철산경이 항상 이 말로 찾아오는 납자를 다 루었다.

[15]참구염불(參究念佛): 염불하면서 "이 염불하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의 심을 지어가는 공부법이다. 자세한 것이 뒤의 "지철선사 정토현문"중에 보인 다.

2.조주심 선사 시중

너희가 다만 이 도리를 궁구하되 혹 20년 30년을 참구하여도 만약 계합 하지 못하거든 노승의 머리를 끊어 가라.

노승은 40년을 잡된 마음을 쓰지 않았느니라. 다만 하루 두 때의 죽반 (粥飯)시는 제하니 이때는 잡용심을 하는 때니라.

* 용어해설

[1]조주(趙州): (778-897) 남악하 4세. 남전보원(南泉普願)의 법을 이었 다. 법명을 종심(從心), 속성은 확(확)씨, 산동성조주부에서 출생. 어려서 출가하여 계는 받지 않고 있다가 한번은 남전스님에게 갔는데 묻기를, "너 는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읍니다." "네가 스승이 있는 사미냐? 없는 사미냐?" "네! 스님이 계십니다"하니,곧 자리에서 일어나 남 전에게 절하면서, "엄동설한에 화상 존체 만복하십니까?"하고 문안하니 남 전이 기특히 여겨 입실을 허락하였다. 하루는 묻기를 "어떠한 것이 도입니 까?" 남전"평상심이 도니라" "그러면 어떻게 공부하면 됩니까?"도라는 것 은 알고 모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안다는 것은 망각(妄覺)이요,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기(無記)니 참도는 허공과도 같아서 탕연히 비고 통한 것 이다."하는데서 곧 깨치고 숭악(嵩嶽) 유리단(瑠璃壇)에 가서 계를 받고 이내 남전 회상에 돌아와 지내다가 그후 제방을 유력하고 80세에 조주의 관음원(觀音院)에서 크게 교화하였다.

이곳에서 조주고불(趙州古佛)의 이름이 천하에 떨쳤는데 지금의 조주무 자(趙州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者),청주포삼(靑州布衫)등 허다한 공안 이 법기에서 나왔다.

한번은 설법하기를, "손에 잡은 밝은 구슬과 같아야 호인이 비치고 한 인이 오면 장육금신을 가져 한 풀잎을 삼아 쓰기도 한다. 불(佛)은 번뇌요 번뇌는 곧 불이라."하니, 한 중이 나와 말하기를, "불은, 이것이 누구의 번뇌입니까?" "일체인의 번뇌니라." "어떻게 하면 이것을 벗어날 수 있읍 니까?" "벗어나서 무엇하려느냐!"하고 마당을 쓸었다.

한 중이 묻기를 "어떤 것이 불입니까?" "법당안에 안계시더냐?" "법당의 부처님은 흙으로 뭉쳐 깎아만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니 어떤 것이 불입니까?" "법당안에 계시지!" "학인은 미욱해서 모르겠아오니 알도 록 가르쳐 주십시요." "네가 아침 죽을 먹었느냐?" "네! 먹었읍니다." "가 서 바루를 씻어라!"이에 그중이 홀연히 깨쳤다.

한 중이 와서 문안 한다. "여기 온 적이 있던가?" "아니, 처음 입니다." "차 한잔들게!" 또 한 중이 왔다. "여기 와 본적이 있던가?" "네! 벌써부 터 자주 옵니다.""차 한잔 들게!"하였다. 원주가 와서 묻기를, "화상께서 는 어째서 처음 온 사람에게도 일향 차 한잔 들라 하시고 자주 오는 사람 에게도 차 한잔 들라 하십니까?"하니 "원주!"하고 불렀다. 원주가 "네!"하 니, "차 한잔 들게!"하였다. 이것이 조주 끽다거(喫茶去)기연이다.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4년, 1백20세로 입적, 시호는 진제대사(眞際大師).

3.현사비 선사 시중

대개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큰 근기를 갖추고 큰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근기가 옅고 둔하거든 모름지기 힘써 괴로움을 참으며 밤낮으로 피 로를 잊고 정진 하기를 흡사 친상(親喪)을 당한 듯이만 하라. 이와같이 급하고 간절히 지으며 다시 선지식의 도움을 받아 뼈저리게 실다히 궁구 하면 비록 둔근 일지라도 또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용어정리

[1]현사(玄沙): (835-908) 호는 종일(宗一), 법명은 사비(師備)다. 청 원하(靑原下) 7세가 된다. 설봉의존(雪峰義存)선사의 법을 이었다. 속성 은 사(謝)씨. 어려서부터 낚시질을 좋아하여 복주(福州) 남대강(南臺江) 에 배를 띄우고 지냈다. 나이 30세가 되어 문득 세속 생활에 싫증이 나 서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선사에게 가서 축발하고 개원사(開元寺) 도현(道玄) 율사에게서 계를 받았다.처음부터 의식(衣食)을 극히 절제하 고 극단으로 고행하며 진종일 정진하였다. 설봉스님은 사를 비두타(備頭 陀)라고 부르고 지도하였다. 설봉스님을 따라 상골산(象骨山)에 가서 밤 낮을 이어가며 입실 결택(決擇)하더니, 하루는 능엄경을 보다가 크게 깨 치고 이로부터 응기(應機)민첩하고 모든 경에도 또한 확통하여 제방 현 학(玄學)이 답지하였다.

설봉선사를 도와 지내다가 매계장(梅谿場) 보응원(普應院)에 출세하 고 얼마 있다가 현사산(玄沙山)으로 옮기어 여기서 종신하였다.

시중일단(示衆一段)-"이제 너희들은 이일(一大事)을 마쳤느냐? 안심입 명(安心立命)도리를 얻었느냐? 이 도리를 판단하지 못하였다면 너희들이 보고 듣는 산하 대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광로화상(狂勞華相)인 것이다. 무릇 출가인은 마음을 밝혀 근본을 요달하는 것이 사문인데 너 희들은 이제 머리 깎고 가사를 입어 겉모양만 사문모양을 하고 자리리타 (自利利他)의 분을 하는 것처럼 차렸으니 이제 알고보니 모두가 캄캄하 기가 그야말로 먹통이로구나. 제 치닥거리도 못하는 위인들이 무슨 남을 돕는다 하느냐? 인자(仁者)야! 너희들은 이 일이 참으로 큰것임을 알아 야 한다. 아예 한가하게 모여 앉아 어지러히 잡된 이야기나 희롱하면서 세월을 보내지 마라. 참으로 세월은 빠르고 시간은 귀한 것이다. 아깝다. 대장부들아! 어찌하여 스스로 살피고 이 일을 밝혀내려 하지 않는가! 하 루 아침에 무상살귀(無常殺鬼)가 덮치면 그런 구물구물 졸던 살림으로 는 터럭끝만큼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업식이 망망하여 아무것도 빙거할 것이 없으니, 나귀배나 소배에 쑥 들어가기도 하고 쟁기를 끌거나 길마다 안장을 지기도 하고 지옥멧돌에 들어가거나 화탕노탕에 굽고 져지기도 하리니 어찌하여 사문이 이꼴이 된단 말이냐?"

후량(後梁)태조 개평(開平) 2년 74세로 시적(示寂)하였다. 그의 법을 받은 제자가 13인이 있는데 그중에 나한원(羅漢院) 계침(谿琛)선사가 있 다. 저술로는 현사어록(玄沙語錄) 3권, 현사광록(玄沙廣錄) 3권이 있다.

[2]반야(般若): 중생이 중생된 연유가 오직 미혹으로 인한 착각으로 말미암아 지견이 전도하여 본래의 자기 즉, 부처와 더불어 지혜와 덕상 과 위력이 자족한 자기를 한정 상태로 결박지워진 까닭이니-실은 한정 결박된 것이 아닌것을 그렇게 착각하고 망견을 집착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므로 결박 부자유에서 해탈하는 길은 그 첫째가 어떠한 역량이나 복을 구하는 데 있는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바른 지견 즉 이 바른 종사를 만나는 것을 첫째가는 큰 복으로 치는 소이가 있다. 공부인은 밝은 지혜 에 의하여 비로소 정지견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종문을 반야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공부인의 지혜를 반야라고도 한다.

반야는 범어의 "푸라쥬냐"인데 반야는 파리어를 음대로 적은 것이다. 일체 사물의 도리를 밝게 사무쳐 보는 깊은 지혜를 말한다.

[3]선지식(善知識): 또는 도사(道師)라고도 한다. 사람에게 능히 생사 가 없는 도리를 설하고 학인을 이끈다.

4.아호대의 선사 수계

공부를 짓되, 다만 몸을 잊고 생각을 없애는 것으로 능사를 삼지 말아야 하니 이 것이 공부인의 고치기 어려운 병통 중의 가장 큰 것이다.

단연 날카로운 칼날을 빼어든듯, 맹리한 정신으로 기어이 "조사가 서쪽 에서 온뜻"을 밝혀 내도록 하여야 하니, 두눈을 똑바로 뜨고 반복하여 공 안을 드리지 않고서야 어느 때에 마음이 공하여 급제하랴!

*용어정리

[1]아호대의: (735-818) 남악하 3세. 마조의 법을 이었다. 형주(衡州)수 강(須江)에서 출생. 속성은 서(徐)씨다.

당나라 현종 친림하 제법사와의 문답일단. 법사 묻기를, "어떠한 것이 선(禪)입니까?" 사(師)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점을 치니, 법사 알아듣지 못하니, 현종"법사는 그 허구 많은 경을 강하면 서 다만 이 일점도 모르시오?" 사 이어 현종에게 말하기를 "순종(順宗)이 시리선사에게 묻기를 "대지중생이 어떻게 견성성불 하겠읍니까?"하니 시리 선사는 "불성은 물 속에 있는 달그림자와 같아서 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 는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바와 같이 불성은 봄이 없는 마음으로 가히 보는 것입니다."현종 "어떠한 것이 불성입니까?" "폐하께서 물으시는 바를 여의지 않았읍니다."하였다. 현종 원화(元和) 3년 시적. 향수 74세. 시호는 혜각(慧覺)선사.

[2]병통: 공부를 잘못 지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대주해(大珠海)선사 는 <무자화두>를 지어가는데 열가지 병통을 경계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 자만에 한한 것은아니다. 우리나라 조계종 종조로 볼 수 있는 보조지눌 선 사도 대혜종고 선사가 공부인에게 다음 열가지를 경계한 것을 거울삼아 공 부하여 대오 하였다. 오직 의정을지어 나갈줄만 알면 되는 것인데 다들 꾀 를 내고 치구심(馳求心)을 버리지 못하여온갓 병통에 마구 떨어지는 것이 다. 열가지는 다음과 같다.

1.이근하복탁(耳根下卜度)-꾀를 내어 생각하여 알아 마치려는 것.
2.양미순목처타근(楊眉瞬目處楕根)-눈섭을 오르내리고 눈을 껌벅거리는 곳 에 들어앉았는 것.
3.어로상작활계(語路上作活計)-말길에서 알아 마침을 삼는 것.
4.문자중인증(文字中引證)-글에서 끌어다가 인증을 삼으며 알려하는 것.
5.거기처승당(擧起處承當)-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 마치려는 것.
6.양재무사갑리(양在無事甲裡)-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고 일 없는 곳에 들 어 앉았는것.
7.작유무회(作有無會)-있는 것이라거나 없는 것으로 아는 것.
8.작진무회(作眞無會)-참으로 없는 것으로 아는 것.
9.작도리회(作道理會)-도리가 그렇거니 하고 알음알이를 짓는 것.
10.장미대오(將迷待悟)-깨치기를 기다리는 것.

[3]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말한다. 이 말은 조사 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달마조사가 인도에서 오시어 처음 으로 동토에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선법을 전하시니 그 문하에 많은 도인이나왔고 그때 사람들이 많이 이 선법을 배웠는데,여기 조 사가 서쪽에서 온뜻이란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도리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 大意)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 조사서 래의를 밝히려는데서 수 많은 조사 공안이 나오게 되었는데 여기 한 예를 들어본다. 한 중이 <조주>에게 묻기를,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 입니까?" 하니,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栢樹者>"하였다. 중이화상은 경계를 가지고 말씀하지 마십시요." "내가 경계를 가져 말하지 않았느니라."중이 다시 "어 떠한 것이 조사서래의 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대답 하였다.이 일단 의 문답에서 알아듣지 못한 것을 참구하는 것을 정전백수자 화두라고 한다.

[4]마음이 공하여: 방거사(龐居士-마조의 법을 얻다)의 게송에서 취한 말 이다. "시방의 모든 납자 함께 모여서, 모두가 함이 없는 도를 배우니, 이 곳은 부처 뽑는과거장이라, 마음이 공하니 급제 하더라(十方同聚會 個個學 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5.영명수 선사 수계

도를 배움에는 기특한 것이 따로 없다. 다만 마음속에 무량겁으로 내려 오면서 익히고 쌓인 업식(業識)종자를 씻어 없애는 것이 요긴하다. 너희 들이 능히 일체 망상을 털어 버리고 망년된 인연을 끊어 없애어, 세간의 모든 오욕 경계를 대하더라도 마음이 마치 목석과 같게만 되면 비록 너희 가 아직 도안(道眼)이 밝지 못하더라도 자연히 청정신을 성취할 것이다.

만약 진정한 선지식을 만나거든 모름지기 간절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친 근하라. 설사 참구하여도 깨치지 못하여 배워도 원만히는 못 이루더라도 묘법은 이근(耳根)에 남아 있어, 길이 무상도리의 종자가 되어 세세생생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몸을 잃지 않을 것이니, 한번 사람몸을 받아 태어나게되면 그때는 하나를 듣고 천을 깨칠 것이다.

# 용어정리

[1]영명(永明): (904-875) 항주 혜일 영명연수지각(抗州 永明延壽智覺) 선사다. 청원하(靑原下) 11세가 된다. 천태덕소(天台德韶)선사의 법을 이었다. 법안종(法眼宗)에서는 제3조가 되고 정토종(淨土宗)에서는 제6조로 잡는 다. 속성은 왕(王)씨, 절강성 항주부 여항에서 출생. 소년시절 부터 불법 에 뜻이 컸고 특히 법화경을 수지독송하여 들에서 암송하면 양떼가 감응 하여 엎드려 들었다고 한다. 벼슬을 하여 28세때는 화정진장(華亭鎭將)이 되었더니 그때의 오월(吳越) 문목왕(文穆王)이 그의 도심(道心)이 큰것을 알고 그의 뜻대로 출가하게 하였다. 처음 취암영명(翠巖永明)을 섬기어 온갖 대중시공을 갖추 받들었고, 그후 천태산 천주봉에 가서 석달 동안을 지냈는데 날짐승이 머리를 앉고 옷 소매에 둥지를 쳤다고 전한다.

천태산 덕소(德韶) 국사를 뵈오니 곧 큰 그릇임을 알아보고 법을 전하 면서 이르기를 "너와 왕과는 인연이 있으니 앞으로 크게 불사를 지을 것 이다."하였는데 후에 과연 그와 같았다. 처음에 명주(明州) 영명사(永明 寺)에 있었는데 대중이 항상 2천명이 되었다. 영명사에 15년 있는 동안에 제자 천7백인을 제도하였고 천태산에 들어 가서는 1만명에게 계를 주었 으며, 저녁에는 귀신에게 시식하고 아침에는 방생하기를 이루 말할수 없 이 많이하였다. 매일 백여덟가지 일과 조록을 정하고 지켰는데, 그중에는 염불만도 10만번이다. 생전에 법화경을 1만3천번을 외웠고, 종경록(宗鏡 錄) 백권,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6권, 유심결(唯心訣) 1권등 60여부외 에도 수백권의 큰 저술을 남겼다. 고려 광종(廣宗)과는 서신 거래가 많았 는데 고려스님이다.

송 태조 개보(開寶) 8권, 대중에게 설법하고 가부좌 한채 입적 하셨다. 향수72세.

[2]업식(業識): 중생심이 밝지 못하여 망념이 일어나 업이 움지이는 첫 모양을 업식이라 한다. 이 업식과 전식(轉識), 현식(現識),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을 오식이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중생심이 근본무명으 로 인하여 망념이 일어나고 거기서 대상이 생기고 다시 그것을 인정하고 집착심을 내며, 그 집착에서 다시 가지 가지로 분별교량하는 총체적 상태 를 말하고 있다.

[3]오욕(五慾): 중생의 욕망 다섯가지니 물욕(財慾), 색욕(色慾), 식욕 (食慾), 명예욕, 수면욕이다. 본래 한물건 없는 가운데에서 무단히 상(相 )을 보며, 다시 생명을 보며 분별하고 호오를 보며 취사 집착하여, 본래 걸림없이 자유스럽고 스스로 원만한 자기의 본곳을 등지고 항상 바깥으로 달리어 얻기에 허덕이는 것이 중생인 것이다. 이 밖으로 얻고져 구하고 치달리는 중생의 마음 취향이 곧 욕심인데 이 욕심을 크게 다섯가지로 나 누어 오욕이라 한다.이 오욕의 근본은 곧 탐(貪)이며 탐의 근본은 애(愛) 며, 애의 근본은 우리 본성(本性)의 활성(活性)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 해서 이 오욕자체의 근본은 정추(淨醜)를 떠난 것이라 하겠다. 범부는 전 도된 지견으로 애와 탐을 착각된 방식으로 작용시키므로, 우리의 본성이 가지는 전성적(全性的)인 활성(活性)의 역능(力能)은 그 기능이 감소되고 제약되고 비뚤어지므로 여기에서 분별취사의 중생심은 더욱 자라는 것이 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오욕의 근본을 요달하여 다시 취할 것도 없으며 버릴 것도 없어야 한다. 만약 이 오욕의 근본을 요달하지 못하였다면 이 오욕은 인간의 무한 자재 원만성을 좀먹는 도적으로 작용하므로 반드시 억지 마음을 지어서라도 오욕을 억제하고 없이 하여야 하니 그러면 자연 심신이 청정하여지며 오복이 따르게 된다. 계를 가져 천생에 나고, 선행 을 닦아 복을 받는 도리가 여기에 있다.

[4]마음이 목석과 같이: 백장해(百丈海)선사에게 한 중이 묻기를 "어떻 게 하면 일체 경계에 대하여 마음이 목석과 같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 "일체제법이 본래로 그 스스로가 공이라 하지 않으며 또한 옳으니 그르니 청정하니 하지 않으며, 또한 어떤 마음이 있어 사람을 결박하는것 도 없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분별, 계교, 사량, 집착하고 알음알이를 내 며, 가지가지 지견을 일으키며 애착도 하며 또한 두려운 생각도 내는 것 이다. 오직 제법이 본래로 남이 없는(不生)것임을 알며, 자기의 한생각 망상전도로 인하여 상(相)을 취함에서 있게 되는것을 요달하면 마음이나 경계라는 것이 도무지 실다운 것이 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되어 즉시 에 해탈할 것이다" 하였다.

[5]선지식(善知識): 앞서 선지식은 생사가 없는 도리를 설한다고 하였 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반드시 선지식을 의지하여야 한다. 고인은 모두가 한 표주박, 한벌 누더기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선지식을 구하고 신명 을 버려 친근공양 하였다. 경의 말씀에 "말세중생이 선지식을 만나면 도 를 이룰 수 있다."하였고, 또한 말세 선지식의 요건으로 "오직 지견이 바 른사람(正知見人)"을 말씀하고 있다.

[6]악취(惡趣): 중생이 지은 업의 경향을 대충 여섯으로 나누어, 육취 (六趣)라고 하는데 이 육취에 의하여 육도에 나는 것이다. 육취란 천취, 인취, 수라취, 아귀취,축생취, 지옥취(천취,인취,수라취,아귀취,축생취, 지옥취)를 말하는데 이중 삼악도에 나는 지옥취, 아귀취, 축생취를 악취 라고 한다. 지혜가 없이 악한 업을 많이 지어, 극단으로 고통스럽고 어리 석고 복이 없는 보나 따르게 된다.

6.황룡 사심신 선사 소참

제상좌들이어,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불법은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것인데 이몸을 금생에 제도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 하겠느냐!

대중들이어, 참선을 하고저 하거든 모름지기 모든것을 놓아 버려라. 무엇을 놓아 버릴고 하면 이 사대오온의 심신을 놓아 버리며, 무량겁으로 익혀온 허 다한 업식을 놓아 버리라는 것이니, 그리하여 자기의 발밑을 향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일고?"하고 추궁하고 추궁하면 홀연 마음 빛이 활짝 밝아 시방세계 를 비추게 될 것이다. 그때는 가이 마음에 맞고 손에도 어울려 능히 대지(大 地)를 변하여 황금을 만들고,큰 내를 저어서 소락(소酪)을 만들수 있게 될 것 이니 이 어찌 평생이 유쾌하고 시원하지 않으랴.

부디 책자상으로 글귀를 더듬어 선을 찾고 도를 구하는 것을 삼가라. 선은 결코 책자상에 있는 것이 아니니, 설사 일대장교(一大藏敎)와 제자백가(諸子 百家)를 다 외운다 하더라도 이것은 다만 한가로운 말뿐이라 죽음에 임하여는 아무런 응처도 없는 것이다.

<<평>> 이러한 말을 듣고 교법을 훼방하지 마라. 이것은 말이나 문자에만 국 집하고 실지 수행을 힘쓰지 않는 것을 경계한 것이요 글 한자도 모르는 자를 위하여 붉은 깃대를 세운것은 아니다.

#용어정리

[1]황룡사심오신(黃龍死心悟新): (1044-1115) 남악하 4세, 황룡조심(黃龍祖 心)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나라 인종때 소주(韶州) 곡강(曲江)에서 났다. 속 성은 왕씨.

28세에 출가하여 제방을 행각 하다가 황룡보각(黃龍寶覺) 선사에게 갔더니 사의 변론이 장한 것을 보고 "이 재주대로 둔다면 마치 말로 음식을 말하는 거와 같으니 어찌 배가 부르겠느냐?"하였는데, 사, 과연 공부에 진취가 없으 므로 하루는 보각스님에게 나아가서 "오신은 이제 활도 부러지고 화살도 다 했읍니다. 원컨데 화상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안락처를 가르쳐 주십시요"하 였다. 보각은 "먼지 하나가 하늘을 덮고 띠끌 하나가 땅을 덮는다. 안락처는 상좌의 그 허다한 골동 살림살이를 가장 꺼리는것이니 당장 무량 겁래의 온갖 마음을 죽여 없애 버려라. 그러면 가히 안락처를 얻을 것이다."하였다. 이후 사의 공부가 한층 더 간절하여 주야로 정진하였는데 하루는 선실에서 좌선중 에 마당을 지나가는 사람의 지팡이 소리를 듣고 크게 깨치고, 신 벗는 것도 잊고 방장실에 뛰어들어가 보각에게 자랑하기를 "천하사람들은 모두가 배워 얻었지만 이 오신은 깨쳐 얻었읍니다."하니 보각은 "부처를 고르는데 장원 으로 뽑히니 어찌 무슨 말이 당하랴!"칭찬하니 이후로는 자호를 사심수(死心 수-마음이 죽은 사람)라 하고 방에 패를 붙이기를 사심실(死心室)이라 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이 말후구(末後句)입니까?"물으니 게송으로 답하기를 "말후인구는 마음길 끊어야지, 육근문 공했으니 만법이 생멸 없네, 근원을 사 무쳤거니 해탈구해 무엇하리, 평생을 욕질하기 즐겨하니, 이것이 단지 길이 쾌락함인저(末後一句子 直須心路絶 六根門旣空 萬法無生滅 於此微其源 不須求 解脫 生平愛罵人 只爲長快活)하였다.

송 휘종(徽宗) 정화(政和) 5년 평상시대로 병 없이 앉아서 입적 향수 72세.

[2]소참(小參): 총림에서 새벽상당을 조참(早參)이라하고, 저녁 해거름의 염송을 만참(晩參)이라하고 그밖의 설법을 소참이라 한다.

[3]놓아 버려라: 방하착(放下着). 이 "놓아 버려라."는 말은 종문중에서 많 이 쓰인다. 마음에 있는 소득심(所得心) 번뇌망상 일체를 쉬라는 깊은 의미를 가진 것인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한번은 흑씨범지(黑氏梵志)가 신력으로 좋은 오동나무 꽃을 나무채 뽑아서 좌우손에 한 그루씩 들고 와서 세존께 공 양하니 세존이 "선인아놓아라."하시었다. 범지는 왼손의 꽃을 땅에 놓았다. 세존은 다시 "놓아라."하시니 이번에는 바른손의 꽃을 땅에 놓았다. 세존은 또 "놓아라."하시니 범지가 말씀 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내 이제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사온데 다시 무엇을 놓아라 하시나이까?" "선인아, 내 너에게 그 꽃을 놓아라 함이 아니니라. 너 마땅히 밖으로 육진(六塵)과 안으로 육근(六 根)과 중간의 육식(六識)을 일시에 놓아버려 다시 더 가이 버릴것이 없게되면 이곳이 곧 네가 생사에서 벗어나는 곳이니라."하셨는데 범지는 언하에 대오 하였다.

[4]사대오온(四大五溫), 사대환신(四大幻身):사대는 이 몸과 자연계의 기본 구성요소 4종이니,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다. 오온은 오음(五陰)이라고 도 하니 다섯가지의 모아 쌓인것이라는 뜻으로 색, 수, 상, 행, 식(色.受.想. 行.識)이다.

색은 물질이니 우리의 육신과 환경의 전체를 말함이요. 수란 우리의 환경을 받는 감각이요. 상은 접촉할 대상을 분별한 생각이니 곧 표상(表象)이다. 행 은 대상에서 얻은 감각에서 좋으니, 나쁘니, 기쁘거나, 성내거나, 하는등 단 순한 감각에서 취사분별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니 모든 정식(情識)작용을 의미 하고 특히 의지나 의욕도 이 속에 든다.

식은 모든 사물에 대하여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마음의 주 체니 순수관념(純粹觀念)이다. 이것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 사대오온이 이 육체와 정신과 세계의 전체다. 그러나 이들 사대오온 이라는 것은 중생의 망견으로 인하여 실다운 것으로 착각할 뿐이지 실상인즉 인연따 라 일어나는 환(幻)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이 몸을 4대환신이라고도 한다.그 러면 이 몸도 세계도 생각도 중생도 모두가 환일 바엔 그 무엇이 환이 아닌 것일까?

[5]발밑(脚 ): 온건착실한 입각처를 말한다.

[6]붉은 깃대: 특별히 표한 것이라는 뜻. 한나라 한신(韓信)이 조(趙)를 칠 때, 날쎈 기병 2천명을 뽑아서 각각 붉은 깃대를 갖게하고 이르기를,"내가 싸 우다가 달아나면 적은 성을 비우고 나를 슛을 것이니 그때 성을 들이쳐 조나 라 기를 뽑고 이 붉은 기를 꽂아라"하였다. 붉은 깃대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7.동산연선사 제자의 행각에 부침

반드시 "생사"두자를 이마 위에 붙여두고 이 일을 분명히 판단 하도록 하라. 만약 무리들을 따라 떼를 지어 헛된 이야기로 날을 보낸다면, 후일 에 염라노자가 밥값을 추심할 것이니, 그때를 당하여 내가 너에게 미리 일러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라. 만약 공부를 하고저 할진대 항상 간 단없이 지어가되 어떤 곳이 힘을 얻는 곳이고 어떤 곳이 힘을 얻지 못하 는 곳이며 어떤 곳이 잘못된 곳이고 어떤 곳이 잘못되지 아니한 곳인가를 때때로 점검하라.

혹 어떤 자는 포단에 앉아 마냥 졸기만 하다가, 졸음에서 깨어서는 어 지러히 망상만 하며, 포단에서 내려오면 곧 잡된 이야기만 치중하는 것을 보니 이와 같이 공부하여서는 비록 미륵하생(彌勒下生)에 이르더라도 마 침내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용맹히 정신을 차려 화두를 들되,밤이나 낮이나 오직 힘써 밀 어 나갈것이요, 일 없는 집(無事甲)에 들어 앉았거나, 포단 위에 정신없 이 주저앉아 있지말아야한다. 혹 잡념이 일어 힘써 버려도 더욱 일어나거 든 모두를 활활 놓아버리고조용히 땅에 내려와 한바퀴 거닐은 다음, 다시 포단에 앉아 두눈을 똑 바로뜨고 주먹을 불끈쥐고 척양골(脊粱骨)을 바르 게 세워 다시 전과같이 화두를 들면 문득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 흡사 끓 는 물에 한국자 냉수를 부은것과 같을 것이다. 이와 같이 공부하면 결정 코 집에 돌아갈 시절이 있을 것이다.

*용어정리

[1]동산연(東山演):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선사다. 남악하 14세. 백운수단(白雲守端)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나라 면주(綿州)에서 출생.속 성은 등(鄧)씨,35세에 출가하여 성도에 가서 유식(唯識) 백법론(百法論) 을 연구하다가 한번은 "물을마셔봐야 차고 더운 것을 안다"는 구절에 이 르러 생각하기를 "차고 더운 것을 알기는하나 이 스스로 아는 물건은 무 엇인가 하고 의심이 나서 강사에게 여러 가지로 물어보아도 아무말이 없 으므로 마침내 말하기를, "스스로 아는 이치를 모르면서 어떻게 강의를 하십니까?"하니 강사 한참만에 하는 말이 남방으로 불심종(佛心宗)을찾아 가 보라는 것이었다. 이에 여러 선지식을 찾아 뵈온 끝에 원조본(圓照本 )에게참예하여 의심을 파하긴 하였으나 아직도 미진한 바가 있어 부산원 (浮山遠)에 참예하였다가 다시 원의 권유로 백운단(白雲端)에게로 갔다. 백운을 뵈워서 조주(南泉?)의 "마니주(摩尼珠) 화두"를 물으니 백운이 되 게 꾸짖는데서 곧 깨치고 게송을 지어바쳤는데 "산밑의 한뙈기 밭, 몇번 팔고 다시 산, 그 이유를 노인에게 은근히 물었더니, 송죽(松竹)을 이웃 하여 밝은 바람 분다고(山前一片閑田地 又手町영問祖翁幾度賣來還自買 爲隣松竹引淸風)"하였다.

백운은 "옳다"하시고 방앗간 일을 맡아 보게하 였다. 얼마후 백운이 "여러 선객이 노산(盧山)에서 왔는데 다 깨친 바가 있어 저에게 말하라 하면 제자가 내유를 말하고 인연을 들어 말하라면 또 한 밝게 말하고 또한 할말 일러라 하면 또한 이르나 그러나 아직 멀었더 라."하는 말을 듣고,크게 의심이 나서 혼자 생각하기를, "이미 깨쳐서 말 할 것도 잘하고 밝을 것도 또한밝은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아직 멀었다 하실까?"하고 마침내 참구 하기를 여러날만에 깨치고 종전에 보배같이 아 끼고 간직하던 것들을 일시에 다 놓아 버리고 백운에게 달려가 뵈오니 백 운이 춤을 추었다 한다. 한번은 백운이 대중에게 이르기를, "고인이 말 씀하기를 "거울로 모양을 만들때에 모양이 다된 후에는 거울이 어느 곳에 있느냐?"하였으니 대중은 일러라."하시는데 대중은 아무도 계합하지 못하 는데 사에게 물으니 사는 백운에게 나아가 인사하고 "너무도 많지 않겠읍 니까?"하였다. 백운은 웃으면서 "도자(道者)만이 아는구나!"하고 이후부 터 백운과 같이 죽비를 들고 대중을 지도하였다.

한 사람이 묻기를,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어떻게 더 나아 갑니까?" 하니 "빨리달려야된다"하였다. 사는 임제종(臨濟宗)의 대종장으로 사면산 (四面山) 백운산 (白雲山) 태평산(太平山), 오조산(五祖山) 동선사(東禪 寺)등에서 크게 교화하여 많은제자가 나왔다.

사의 법을 이은 이가 이른바 오조문하 삼불(五祖門下 三佛)이라고 일컫 는 불과(佛果圓悟) 불감(佛鑑慧勤) 불안(佛眼淸遠)등을 위시한 22인이 있 다. 송 휘종(徽宗), 숭녕(崇寧)3년, 법문을 마치고 산내 토목 역사를 돌 보고는 "너희들 잘들 힘써라. 나는 다시 오지않는다"하고 돌아와 삭발 목 욕후 앉아서 갔다.

[2]미륵하생(彌勒下生): 당래에 이 사바세계에서 성불 할 부처님이 미 륵불인데 미륵하생이란 오는 세상에 미륵 보살이 도솔천에서 강탄하시어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한 뒤 3회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신다는 경의 말씀에서 나온 말, "미륵하생 까지"라 하면 흔히 "멀고 먼 미래, 미래가 다한 미래"라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도 그 뜻이다.

경에 이르기를 미륵불은 정명(定命) 8만4천세시에 출현 하신다하였고, 석가세존이 열반에 드신후 8백만 9천2백년에 탄생하신다는 설도 있다.

[3]일 없는 집:무사집(無事甲)을 옮긴 말인데 화두를 알뜰히 궁구하지 는 않고 모든것을 다 털어 버리고 도무지 아무 할일 없다 하고 멀건히 지 내면서 "본래 일없는것이다"라는 알음알이를 짓고 지내가는것을 "무사갑 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무사갑은 당후(堂後)의 소실(小室)인데 무용처 (無用處)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화두 십종병의 하나.

[4]집에 돌아간다: 중생은 제 본곳을 모르고 무지(無知)와 불안속에서 허둥지둥 눈물과 웃음과 기대와 탄식의 범벅을 먹고 사는 것이니, 이것이 착각(錯覺)의 구름다리를 서성대며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인생선(人生 線)을 어지러히 방황하는 중생살이의 전부이다. 말하자면 본집은 잊어 버 리고 객지에서 고생하는 것이니 그 원인은 다름아니고 망견으로 인한 착 각이 원인일 뿐이다. 그 망견만 버리면 즉시에대안은지(大安은地)인 자 기 본집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이 도리를 궁구하는 공부 가 생사윤회고해삼계(生死輪廻古海三界)인 객지살이에서 사덕(四德)원만 한 대해탈지인 본집에 돌아가는 가장 지름길임을 확신하여야 한다. 공안 이야말로 중생을 본집으로 이끄는 가장 빠르고 확실하고 안전한 큰 수래 인 것이다.

8.불적 이암진 선사 보설

믿음이 십분이면 의정이 십분이요, 의정이 십분이면 깨침이 십분이니 라. 평생에 본것 들은것이나 그릇된 알음알이나 기특하고 묘한 말귀며 선 도(禪道)니 불법이니와 자기를 높여 아만을 부리는 마음씨 등을 철저히 털어 버려라.

오직 요달하지 못한 공안을 향하여 가부좌를 결하고 척량골을 바로 세 우고 밤이나낮이나 동서남북을 분별하지말고 궁구하여, 흡사 숨이 남은 사람같이 되면, 이때에마음이 경계를 따라 전하여 혹 경계에 부딪치면 지 각은 있으나 안으로 자연히 분별하는 생각이 없어지고 마음길이 끊어져서 문득 칠통을 타파하게 될 것이다. 이 사이소식은 원래 딴데서 오는것이 아니니, 어찌 어느 때이고 평생이 기쁘고 쾌활하지 않으랴.

*용어정리

[1]이암진(이庵眞): 남악하 27세. 법을 소암전(素庵田)대사에 이었다.

9.경산 대혜고 선사 답함.

근일에 자기 안목도 밝지 못하면서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맥없이 "쉬어 가라"하며, 또한 이르기를 "인연을 따라 마음을 잡으며 생각을 잊고 잠잠 히 비추라"하며, 또한 "모든 것을 상관하지 마라"하니 이와 같은 병든 소 견으로는 설사 힘써 공부한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 일은 마칠날이 없게 된 다. 단지 마음을 한곳으로만 지으면 아무도 얻지 못할자가 없는 것이니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저절로 축착합착하야 분연히 깨칠 것이다.

항상 세간 육진(六塵) 망상경계로 딸려가는 자기 심식을 잡아서 반야 위에 돌이켜 놓으면 비록 금생에 마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는 결코 악 업에 끌리지 않을 것이니 오는 생에는 반드시 반야중에서 분명히 수용하 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정된 사실이라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느니라.

다만 항상 화두를 들어야 하니 설사 망념이 오더라도 생각으로 막고 제 하려고 하지말고 오직 힘써 간절하게 화두만을 들어라. 가나오나 서나 앉 으나 항상 화두를 들어, 화두로 오고 화두로 가면 아무 재미도 없게 될 것이니 이때가 참으로 좋은 시절이라 부디 놓아지내지 말라. 일조에 홀연 마음빛이 활짝 밝아 시방세계를 비추면 능히 한 터럭 끝에 불국토를 나투 며, 가는 먼지 속에 앉아서 대법륜을 굴릴 것이다.

<<평>> 사께서 "타인은 정(定)을 앞에 하고 혜(慧)를 후로 한다 하나 나 는 혜를 먼저 하고 정을 후로 하겠다"하신다. 그러나 화두만 타파하면 이 른바 "쉬어가고 쉬어 가라"하는 것은 하려하지 않아도 그대로 되는 것이 다.

[1]대혜고(大慧고): (1089-1163) 임제종의 대종장이다. 남악하 16세, 원오근(圓悟勤)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 철종(哲宗) 원우(元佑) 4년에 선 주의 영국(寧國, 지금의 安微省寅城)에서 출생. 속성은 해(奚)씨, 12세에 향고에 글을 배웠는데 장난하다가 벼루를 던진 것이 선생의 모자에 맞아 돈으로 변상하고 돌아와서 생각하기를 "대장부가 세간의 글을 배우느니 출세간의 도를 배움만 같지 않다."하고 출가하여 동산(東山) 혜운사(慧雲 寺)에 가서 혜제(慧濟)스님을 섬기다가 축발하고 종문 제어록을 널리 보 았다. 그중 운문(雲門), 목주(睦州) 어록을 가장 좋아 하였다 한다. 부모 의 권유로 제방에 유학하여 조동종 여러 종사를 섬겨 그 종지를 남김없 이 요달하여서 깨친 바가 있었으나 만족하지 아니하고, 여러 종장에 참예 하고 담당준(湛堂準) 회상에 시자가 되어 깨친 바가 있었다. 하루는 준이 말하기를 "너는 이치를 일일이 다 알아 듣느냐?" "예 다 압니다." "네가 말로 할 것은 다 하고 지으라 하는 것은 다 짓고 고금 선지식의 모든 법 문은 다 안다마는 다만 한가지만이 덜 됐다. 내가 이것을 아느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읍니다." "네가 다만 왁! 한 소리(도地一聲) 하나만이 모자 란다. 그 까닭에 말할 때는 있고, 말하지 않을때는 없으며 방장 안에서는 있고 방장 밖에서는 없고, 깨었을 때는 있으나, 잠들었을 때는 없으니, 이래고서야 어찌 생사를 당적 하겠느냐!"한다. 사 말씀이 "고(고)가 의 심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 입니다. 앞으로 누구를 의지하면 되겠읍니 까?" "극근(克勤)이 하나 있다. 내 그를 만나보지는못했으나 네가 찾아가 보아라. 마땅히 너의 일을 판단하여 줄 것이다. 만약에 네가 거기서 판단 짓지 못하거든 저 부처님의 일대장교를 보며 수행하라. 내생에는 결코 참 선하여서 이 일을 결정내고 훌륭한 선지식이 될 것이다."하고 얼마 안가 서 준이 열반에 드니 원오극근(圓悟克勤)을 찾아 갔다.

이곳에서 조석으로 참정하는데 한번은 극근이 말하기를, "한 중이 운 문에게 묻되"어떤 곳이 제불이 나온 곳입니까?"하니, 운문 답하기를, "동 산이 물위로 간다."하였으니 너 한마디 일러봐라."하는데 계합하지 못하 여 1년을 참구하면서 49회나 대답하였으나, 다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더 니, 하루는 한 거사집에서 극근이 설법하는데 "한 중이 운문에게 묻기를 "어떤곳이 제불이 나온 곳입니까?"하는데 운문은 "동산이 물위로 간다. "하였지만 천녕(天寧)은 그렇지 아니하여 누가 와서 어떤 곳이 제불이 나 온 곳이냐?"하면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집안이 시원해진다."할 것이 다.함을 듣고 활연히 깨쳤다. 깨친바를 극근에게 말하니 가지가지로 시험 하여 보고는 "아직 멀었다. 네가 비록 얻은 바는 없지 않으나 아직 대법 은 밝지 못했다."하고 하루는 "너의 그 경지에 이르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다만 죽기만 하고 능히 살아나지 못했으니, 언구를 의심치 않는 것이 큰 병통이다.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고 뛴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승 당할 수 있으나,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것은 남을 속이지 못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모름지기 이런 도리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하였다.

사 말이 "고(고)는 지금의 얻은 것으로 이미 쾌활하니 다시 더 알아 얻을것이 있겠읍니까?"하였으나 근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 후는 매일 서 너번씩 입실하는데 근은 매양 저 "있으니 없느니가 나무에 의지한 등넝 쿨과 같다(有句無句如藤기樹)"는 공안을 가지고 힐난 하면서 입실하여 입 만열기만하면 "틀렸어! 틀렸어!"하여 이러기를 반년이 넘도록 인가를 받 지못하고 생각 생각에 잊지 않고 지내는데 하루는 관객들과 식사를 하다 가사가 손에 수저를 들은것도 잊고 멍멍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근이 웃 으면서 "저 놈이 황양목선(黃楊木禪-진취가 없는 공부)을 하여 도리혀 쭈 그러지는구나"하는데 사 비유를 들어 말씀 들이기를 "화상이시여, 이 도 리는 흡사 개가 뜨거운 기름가마를 본 것과 같아서 핥을려야 핥을수도 없 고 버리고 갈려야 버리고도 못가는 것과 같읍니다."하였더니 근이 "그 비 유가 극히 좋다. 단지 그것이 금강석으로 된 밤송이다."하였다. 또 하루 는 근에게 묻기를,"화상께서 오조에 계실때 오조화상께서 이 공안을 들으 셨다 하온데, 그때 오조화상에게 어떻게 대답하였는지 가르쳐 주십시요. "하니 근이 묵묵히 응하지 않으니 사 "그때 대중 앞에서 말씀하셨을 터인 데 이제 다시 말씀 하셔서 안될것이 있겠읍니까!"하니, 근이 드디어 "내 가 그때 묻기를 "있느니 없느니가 나무에 의지한 등넝쿨 같은 때는 어떠 합니까?"하니 오조말씀이 "말로 형용할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릴수도 없느 니라"하시기에 또 묻기를 "문득 나무도 쓰러지고 등(藤)도 말라 죽었을 때 어떠합니까?"하니 "서로 따라 오느니라."하시더라."하는데, 사 곧 깨 치고 근에게 "제가 이제 알았읍니가."하니 근은 "아직 네가 저 공안을 뚫 지 못하였을까 걱정이다."하고 여러가지 까다로운 공안을 들어 대어도 조 금도 걸림이 없으니 이에 근은 손벽을 치며 기뻐하였다. 이후로는 병의물 을 거꾸로 세운것 같고 둥근 바위를 천길 언덕에서 내 굴리는 것과 같아 서 아무도 그 기봉을 당하는 사람이 없으니 혹 근에게 누가 와서 참문하 면 "나의 저 선자(禪者)가 마치 큰 바닷물과 같으니 너희들은 저 큰 바 닷물에 가서 물어 가라."하였다. 이때부터 극근과 분좌설법하고 낙자를 제접하니 그 이름이 총림에 떨쳤다.

극근이 운거사(雲居寺)에 옮기자 거기서 제일좌(第一座)가 되고, 극근 이 성도(成都)로 떠난 뒤는 여러곳을 거쳐 경산(俓山-절강성 여항현)에 있었는데 낙자 도속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대중이 항상 2천명이 넘어 종 풍을 크게 떨치니, 세상 사람들은 임제(臨濟)의 재흥이라 하였다. 소흥 (紹興) 11년(서기 1141년 송 고종때)진회(秦檜)의 모함으로 장구성(張九 成)당으로 정사를 비방하였다는 구실로 의첩(衣牒)을 빼앗기고 형주(衡 州)로 귀양갔다. 여기서 10년 있는 동안, 고인의 기연(機緣)을 모으고 염 제(拈提)를 가하여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썼고, 다시 매주(梅州)로 옮겼 다. 이곳은 기후가 불순하고 악병이 돌고 약이라고는 아주 없는 곳이었으 나 여기서도 한여름에 13명의 큰 법 그릇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였다. 이 곳에서의 신고는 말할 수 없었으니 사가 귀양갈때 사를 따라갔던 제자가 백여명이었는데 이 지방의 풍토병에 걸려 반수 이상이 죽었다. 가히 고인 의 위법망구(爲法忘軀) 정신을 엿보게 한다. 여기서 5년만에 소흥 26년 효종(孝宗)의 특사를 받고 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68세였다. 사방에 서 청하여도 가지 않더니 칙명으로 명주(明州) 아육왕산(阿育王山) 광리 선사(廣利禪寺)에 갔다가 곧 다시 칙명으로 경산에 돌아왔다. 효종은 보 안군왕(普安君王)때부터 사의 가르침을 받은 바 있었으므로 사를 극진히 공경하였다. 만년에 묘희암(妙喜庵) 명월당(明月堂)에 퇴거, 여기서 입적 하였다.효종 융흥(隆興) 원년이다. 향수 75세. 사의 저술로는 앞서 말한 정법안장(正法安藏) 6권, 대혜어록(大慧語錄) 30권, 법어(法語) 3권, 종 문무고(宗門武庫) 1권, 서장(書狀) 2권, 대혜선사보설(大慧禪師普說) 5권 이 있고, 법을 이는 제자가 94인이 된다. 가이 가풍의 성한 것이 짐작된 다. 사가 교화한 가운데 특히 힘써 주장한 것은 천동정각(天童正覺)이 주 장한 묵조선(默照禪)을 타파하고 활구선(活句禪)을 강조한 것이다. 임종 에 당하여 시자가 유게(遺揭)를 청하니, "송 없이 갈 수 없다."하고 붓을 들어 큰 글자로 "생(生)도 다만 이러하고 사(死)도 다만 이러한데,게송 이 있던 없던 이것이 무슨 큰 일이냐?"쓰고는 붓을 던지고 갔다.

[2]축착합착: 속이 그대로 "척 척"들어 맞는다는 뜻.

[3]터럭 끝에 불국토: 능엄경에 "하나가 무량이 되고, 무량이 하나가 되며, 적은 것으로 크게 나투고 큰 것으로 적게 나투며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시방세계에 두루 하고, 한 몸속에 시방 무진 허공을 머그머며 한터 럭 끝에 보왕찰(寶王刹)을 나투고 가는 먼지속에 앉아서 대법을 굴린다.

"하고 있다. 10. 몽산이 선사 시중

내 나이 20에 이 일을 있음을 알고, 32세에 이르도록 십칠팔의 장로에게 참예하여법문을 듣고 정진하였으나 도무지 적실한 뜻을 알지 못하였었다.

후에 완산(脘山)장로께 참예하니 "무"자를 참구하라 하시며 말씀 하시기 를, "12시중에 반드시 생생한 정신으로 지어가되, 마치 저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고 닭이 알을 품듯이끊임이 없이 하라. 만약 투철히 깨 치지 하거든 취가 나무궤를 썰듯이 결코 화두를바꾸지 말고 꾸준히 지어 가라.

이와 같이 지어가면 결정코 발명할 시절이 있을 것이다."하시더라. 그로 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궁구하였더니 18일이 지나서 한번은 차 를 마시다가 문득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심에 <가섭>이 미소한 도리"를 깨치고 환희를 이기지 못하여 34장로를 찾아 결택을 구하였으나 아무도 한 말씀 없으시더라. 어떤 스님이 이르시기를, "다만 해인삼매 일인으로 인정 하고 다른 것은 모두 상관하지 마라."하시기에 이 말을 그대로 믿고 두 해 를 지내갔다.

경정(景定) 5년 6월에 사천의 중경(重慶)에서 이질병에 걸려 밤낮 백번 위극이 극심하여 곧 죽을 지경에 빠졌으나 아무 병거할 힘도 없으며 해인 삼매도 아무 용맹 없고, 종전에 좀 알았다는 것도 또한 아무 쓸데가 없어, 입도 달삭 할 수 없고 몸도 꼼짝 할수 없으니 남은 길은 오직 죽음 뿐이라, 업연 경계가 일시에 나타나 두렵고 떨려 갈팡질팡 할뿐 어찌할 도리 없고 온갖 고통이 한꺼번에 핍박하여 오더라. 그때에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가족에게 후사를 분부하고, 향로를 차려놓고 좌복을 높이 고이고, 서서히 일어나 좌정하고 삼보와 용천에게 묵도하기를, "이제까지의 모든 불선업 (不善業)을 지심회과 하옵나니 원하옵건데 이몸이 이제 수명이 다 하였거 든 반야의 힘을 입어 정녕대로 태어나서 일찌기 출가하여 지오며, 혹 병 이 낫게 되거든 곧 출가하여 중이 되어 속히 크게 깨쳐서 널리 후학을 제 도하게 되어지이다."이와 같이하고 저 "무"자를 들어 마음을 돌이켜 스스 로를 비추고 있으니 얼마 아니하여 장부(贓腑)가 서너번 동하는것을 그대 로 버려 두었더니 또 얼마 있다가는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으며, 다시 얼 마 있다가는 몸이 없는듯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화두만이 끊이지 아니하더 라.

밤 늦게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니 병이 반은 물러갔기에 다시 앉아 3경 4 경에 이르니 모든 병이 씻은 듯이 없어지고 심신이 편안하고 아주 가볍게 되었다.

그리하여 8월에 강릉에 가서 삭발하고 일년 동안 있은 후 행각을 나섰더 니 도중에 밥을 짓다가 생각하기를, 공부는 모름지기 단숨에 해 마칠 것이 요, 단속(斷續)이 있으면 아니될 것이라 깨닫고, 황룡에 이르러 당으로 돌 아갔었다. 첫번째 수마(睡摩)가 닥쳐 왔을 때는 자리에 앉은채 정신을 바 짝 차려서 힘안들이고 물리쳤고 다음에도 역시 이와 같이 하여 물리쳤으며 , 세번째에 수마가 심하게 닥쳐왔을 때는 자리에서 내려와 불전에 예배하 여 슛아버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규식이 이미 정한지라 그때그 때 방편을 써서 수마를 물리치며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목침을 베고 잠깐 잤고 뒤에는 팔을 베었고 나중에는 아주 눕지를 아니하였다. 이 러히 하여 23일이 지나니 밤이고 낮이고 홀연 눈앞의 검은 구름이 활짝 열 리는듯하고 몸이 흡사 금방 목욕에서라도 나온듯 심신이 청쾌하며 마음에 는 의단(疑團)이 더욱 더욱 성하여 힘 들이지 않아도 끊임 없이 현전하며 일체 바깥 경계의 소리나 빛깔이나 오욕 팔풍(八風)이 모두 들어 오지 못 하여 청정하기가 마치 은쟁반에 흰눈을 담뿍 담은듯 하고 청명한 가을 공 기와도 같았다.

그때 돌이켜 생각하니 공부경계는 비록 좋으나 가히 결택할 길이 없어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승천(承天)의 고섬(孤蟾)화상 회상에 이르러 당에 돌아와 스스로 맹세 하기를, "확연히 깨치지 못하면 내 결코 단(單)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하고 배겨냈더니 월여에 다시 공부가 복구되었다.

그 당시 온몸에 부스럼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떼어놓고 공부를 지 어 자연히득력하여 병중 공부를 지어 얻었으며,재에 참여하려고 절에서 나 와 화두를 들고 가다가 재가(齋家)를 지나치는 것도 알지 못하고 하니 이 러히하여 다시 동중공부(動中工夫)를 지어 얻으니 이때의 경계는 마치 물 에 비친 달과도 같아야 급한 여울이나 거센 물결속에서 부딛쳐도 흩어지 지 아니하며 탕연히 놓아 지내도 또한 잊혀지지 아니하여 가히 활발한 경 지였느니라. 3월 초6일 좌선중에 바로 "무"자를 들고 있는데 수좌가 당에 들어와 향을 사르다가 향합을 건드려 소리가 나는데 "왁!"한 소리치니 이 윽고 자기 면목을 요달하여 조주를 착파 하였던 것이다.

그때 게송을 짓기를

"어느듯 갈 길 다 하였네
밟아 뒤집으니 물결이 바로 물이로다.
천하를 뛰어 넘은 노조주(老趙州)
네 면목 다못 이뿐이런가"하였다.

그해 가을 임안(臨安)에서 설암(雪巖) 퇴경(退耕) 석범(石帆) 허주(虛 舟)등 여러 장로를 뵈었더니 주장로는 완상장로께 참청하기를 권하시기에 이윽고 산장로를 뵈오니 묻기를, "광명이 고요히 비춰 온 법계에 두루했네 "의 게송은 이것이 어찌 장졸수재(張拙秀才)가 지은 것이 아니냐?"하시는 데 내가 대답하려하자 벽력같은 "활"로 슛아 내셨다. 이로부터 서나 앉으 나 음식을 먹으나 아무 생각이 없더니,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다음해 봄, 하루는 성을 나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돌층계를 올라가다가홀연 가슴속 에 뭉쳤던 의심덩어리가 눈녹듯하니, 이몸이 길을 걷고 있는 줄도 알지 못 할러라.

곧 산장로를 찾으니 또 먼저번 말을 하시는것을 언하에 선상을 들어 엎 었고 다시 종전부터 극히 까다로운 수칙의 공안을 들어대시는 것을 거침없 이 확연히 요달하였느니라.

여러인자들이어, 참선은 모름지기 자세히 하여야 한다. 산승이 만약 중 경에서 병들지 않았던들 거의 평생을 헛되이 마쳤으리라. 참선에 요긴한 일을 말한다면 첫째 정지견인(正知見人)을 만나는데 있다 하겠다. 이 까닭 에 고인은 조석으로 참청하여 심신을 결택하고 쉬임 없이 다시 간절히 이 일을 구명 하였던 것이다.

<<평>> 타인은 병으로 인하여 퇴타하나, 이 장로는 도리어 병을 가지고 더 욱 정진하여 마침내 큰 그릇을 이뤘으니 어찌 이를 덤덤히 보아 지내랴.참 선인을 병이 있거든 마땅히 이를 거울삼아 간절히 힘써야 한다.

#용어정리

[1]몽산: 남악하 21세. 완산정응(脘山正凝) 선사의 법을 이었다. 이름은 덕이(德異)인데, 때로는 고균비구(古鈞比丘) 또는 전산화상(殿山和尙),휴 휴암주(休休庵主)라고도 한다.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時陽) 에서 출생. 사가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나라 고려 충렬왕 때로 우리나라 고승들과 문필거래가 많았고 특히 사의 저서 법어략 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때에 와서 우리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법어일단-마땅히 조주의 면목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니, 저 "무"자의 뜻 이 무엇인가를 일러 내어야 한다.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모두가 불성이 있 거늘 조주는 어째서 "없다"하였는가? 필경에 저 "무"자는 그 의미가 어느 곳에 있는 것일까? 본래로 밝은 이 도리를 아직 밝혀내지 못하였으면 모든 것 하나하나가 의심감일 것이니 참으로 큰 의정하에서 큰 깨침이 있는 것 이다. 그러나 깨치기를 기다리는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되며, 또한 생각에 깨치기를 구하지 말며, 있는 것이니 없는 것으로 알지 말며, 텅 비어 아주 없는 것으로 알지 말며 쇠 빗자루로 쓸듯이 짖지 말며, 나귀를 매는 말뚝 같이 의정없이 화두에 매어있지 말고 저 의단(疑團)을 26시중 사위의(四威 儀)내에 더욱더욱 성성하게 하여 다만 "무"자만을 들어서 빈틈없이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살펴, 가나 오나 서나 앉으나 의정으로 오고 의정으로 가 면 온갖 재미가 없게 되리니 그때에 조금이라도 재미를 내면 이때에 도리 어 번뇌가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으면 화두에 의정이 커져서 화두를 들지 않아도 자연히 현전하게 될 것이니 이때를 당하면 환희한 마음을 내 지 말고 좋고 나쁘고 괘의치 말고 마치 늙은 쥐가 나무를 썰듯이 한결같이 "무"자를 들고 나아가야 한다.

좌선중에 묘하게 정력(定力)을 얻으면 공부에 도움이 되나 이런때는 부디 정(定)의 묘한 것에 힘을 두지 말아야 하니, 만약 정력에 힘을 쓰면 오히려 정의 경계가 흩어지는 것이다. 혹 능히 마음을 잘 지어 정(定)에 들었다 하더라도, 정을 탐하여 화두를 잊으면 아니되니 만약 화두를 잊으 면 공(空)에 떨어지고 묘오(妙悟)는 얻지 못한다.정에서 일어날때 또한 반 드시 정력을 잘 간직하여 동정(動靜)중에 항상 한결같이 하여 혼침이나 산 란심을 아주 끊어야하며 또한 환희한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하니, 이중에 홀 연 "왁!"한소리(방地一聲)쳐, 조주의 관문을 뚫고 지나가 낱낱 공안에 모 두 밝고 조사기붕에 일일이 다 계합하여 조주를 감파하고 생각으로 이룰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모든 법에 뚜렷이 통하여 가지 가지 차별인연에 모두 밝으며, 깨다른 후 일용 생애가 또한 그러하지 않으면 어찌 법그릇을 이루 었다 하랴. 마땅히 먼저 지나가신 성인들의 표준 될 격도를 잘 살려서 부 디 소홀하게 알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2]결택(決擇): 의심을 결단하여 이치를 분별하는 것인데, 이것이 종문 에서는 극히 중요시 된다. 그것은 공부인의 안목을 검사하는 것이기 때문 이다. 대개 공부를 지어 깨치는 정도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선지식 이라 야 그 정부(正否)와 심천(深淺)을 가려보고 판단하여 삐뚤어 졌으면 올바 르게 잡아주고 얕게 깨쳤으면 깊게 인도한다.

스승 없이 혼자 깨친것은 혹 없지는 아니하나 이때에도 반드시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는 것이다.

[3]해인삼매(海印三昧): 해인정(海印定)이라고도 한다. 일체번뇌가 끊 어져 맑은 마음이 현전하여 진여법이 명랑히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기신 론(起信論)에는 "무량공덕을 갖춘 법성 진여의 바다라 소이로 해인삼매라 한다"고 하고 있다.

[4]경정(景定): 송나라 제13대 이종(理宗)때의 년호, 5년은 서기 1264년.

[5]출가(出家): 수도를 위하여 가정을 나오는 것을 말하는데 흔히 중 되 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출가(身出家)에는 반드시 정신적으로 번뇌망 상 사견(邪見) 삼독(貪心,성냄, 어리석음)의 불집에서 뛰어 나오는 이른 바 심출가(心出家)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출가를 진출가라 할 것이 지만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부용개(芙蓉槪)선사 시중에 "무릇 출 가라 하는 것은 진로 망상을 멀리하고 생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마음을 쉬고 생각을 식혀 모든 반연을 끊기 때문에 출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 한가한 것에 재미를 삼아 매몰할까 보냐"하고 있다.

[6]마음에 돌이켜: 불법은 밖에서 구하여 얻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의 모든 공부 방식은 마음을 돌이켜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니 이것을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여 공부의 기본 방식이 된다. 앞서의 경산 대혜선사의 법어에도 "항상 세간 육진망상 경계로 달려가는 자기의 심식을 잡아서 반야위로 돌이켜 놓아라"하심을 본 다. 이때의 반야는 정념(正念)을 말한다.

[7]팔풍(八風): "여덟가지 바람이란 말이니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어 지럽게 동하게 하는 여덟가지다.
1.이(利)-나에것 이익 되는 것,
2.쇠(衰)-세력이 줄어드는 것.
3.훼(毁)-나를 비난하는 것.
4.예(譽)-이름이 좋게 드러나는 것.
5.칭(稱)-마음에 맞는 것.
6.기(기)-비웃는 것.
7.고(苦)-고생되는 것.
8.락(樂)-즐거운 것 등이다.

[8]왁! 한소리(방 地一聲): 의정이 타파되는 형용인데 칠통이 탁! 터질 때를 형용하는 말이다. 이말은 무거운 물건을 들때 얼결에 오!하는 소리에 서 취해온 것.

[9]광명이 고요히: 장졸수재(張拙秀才)의 게송이다.

"광명이 고요히 온 법계를 두루 비춰 성현 범부 중생으로 한집을 이루었네 한 생각 잠잠하면 온 몸이 드러나나 한 생각 움직이자 구름속에 파묻히네 번뇌망상 끊을 지면 더욱 더욱 어긋나며 참 이치를 찾는다면 삿된길에 빠짐이라 세상인연 수순하여 가나오나 걸림없고 성불이나 지옥고나 한가지 헛것일세"

[10]장졸수재(張拙秀才): 성은 "장", "졸"은 이름이다. 수재는 당시 선 비를 뽑는데 효렴(孝廉) 수재(秀才)의 두칭이 있었는데, 졸은 이 수재에 뽑힌 것이다. 청원(靑原行思)하 6세로 석상경제(石霜慶諸)선사의 법을 이 었다. 처음 석상에게 참예하니 묻기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성은 장이 고 이름은 졸입니다." "공교한것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졸이 어데서 왔느냐?"하는데서 홀연히 깨치고 위의 게송을 지어 바쳤다.

[11]할(喝): 종문에서 법을 문답하는데 쓰는 한 법어인데 큰소리로"엑!" 하고 꾸짖는 형세를 짓는 것. "할"을 처음 쓴것은 마조인데, 임제가 많이 써서 지금에 "임제할"이라는 말이 전한다.

11.양주 소암전 대사 시중

근래에 돈독히 뜻을 세워 참선하는 자가 드물고, 설혹 참선한다 하여도 혼산이마(昏散二魔)에 얽히고 결박되어 정히 혼산과 의정이 서로 상대가 되어 대치 되는 줄을 아지 못하는구나!

신심이 큰즉 의정이 반드시 크고 의정이 큰즉 혼산은 스스로 없어진다.

#용어정리

[1]소암전(素庵田): 남악하 26세. 법을 하안거사(何庵居士)에게 이었다.

[2]혼산이마: 마음을 어지럽히고 어둡게하여 공부를 방해하고 공덕을 좀 먹는 것이 "마"이니, 공부에는 혼침과 산란심이 두가지 큰 마다.

12.처주 백운무량창 선사 보설

26시중에 화두로 가고 화두로 머물며 화두로 앉으며 화두로 눕되, 마음 속이 흡사 밤송이를 삼킨것 같기만 하면, 일체의 시비분별과 무명과 오욕 삼독(三毒)등에 휩쓸리지 않아 행주좌와(行住座臥)가 온통 한개의 의단 (疑團)이 되리니, 의단으로 오고 의단으로 가서 종일 숙맥같이 어리석게 지내가면, 어느듯 경계를 당하여 "왁!"한소리 칠것이 분명하다.

#용어정리

[1]무량창(無量滄): 남악하 28세. 법을 이암진(이庵眞)선사에게 이었다.

[2]무명(無明): "어둑한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뜻한다. 중생이 미하 여 지혜의밝음이 없어져 사물과 도리를 바로 이해 못하는 정신상태이니 중 생 윤회는 무명이 근원이 된다. 공안을 요달 할때 무명은 타파 된다.곧 자 재(自在)하게 된다는 말이다. 기신론(起信論)에는 무명을 나누어, 참 이치 에 어둡게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그로 말미암 아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고 있다.

[3]삼독(三毒): "세가지 독"이니 원만청정한 마음을 흐리고 어둡게 하여 그 공능을 감색하는 것이 "독"인데, 우리에게 있어 탐냄(貪)과 성냄과(瞋) 어리석음(痴)이 근본이 되어 8만4천 번뇌와 정욕과 온갖 죄악이 생기게 된 다. 이 삼독이 6근(根)에 나타나면 6적(적)이 되고, 6적은 즉시 6식(識)이 라 이 6식이 제근(諸根)에 출입하여온갖 경계를 탐착하므로 악업(惡業)을 이루어 진여체(眞如體)를 장애하는 것이니,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마땅히 능히 삼독을 굴려 삼취정계(三聚淨戒)를 만들고, 6적을 굴려서 6바라밀을 만들면 자연히 일체 모든 고에서 벗어날 것이다." "삼계(三界"라는 것은 곧 삼독이다. 탐이 욕계(欲界)가 되고, 성냄이 색계(色界)가 되고, 어리석 음이 무색계(無色界)가 되나니 이 삼독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악한 것을 결 집하여 업보가 성취되고 육취(六聚)로 윤회하는 것이 삼계업보는 오직 마 음에서 난 바이나 만약 능히 마음을 요달하면 즉시에 삼계중에 있으면서도 삼계에서 해탈한다."

13.사명 용강연선사 선인에게 답함

공부를 지음에는 첫째 큰 의심을 발하여야 한다. 비록 너의 공부가 아직 한달이나 반달 동안도 한뭉치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만약 진의(眞疑)만 현 전하면 설사 흔들어도 동하지 아니하여 자연 혹란(惑亂)중에서도 한결 같 으리니 이런 때를 당하여 오직 용맹히 분심을 내어 한결같이 밀고 나가면 마치 종일 숙맥같이 되리니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공안 타파는 저 옹기 속 에 잡아놓은 자라 이리라.

#용어정리

[1]사명 용간연(四明用剛軟): 남악하 28세. 법을 화암충(和庵忠)선사에 게 이었다.

[2]옹기속 자라: "옹기 속에 잡아 놓은 자라가 다름질 쳐도 걱정할것 없 다"는 말인데, 옹기 속의 자라는 손만 넣으면 곧 잡히니 이와같이 일념상 응(一念相應)이 확실 하다는 비유다. 종문무고(宗門武庫)에 이 말이 보이 는데, 하루는 서사천(徐師川)이 원오극근(圓悟克勤) 스님의 정상(頂上)을 보고 "이 노장 아직도 발밑이 땅에 닿지 않는군!" 원오 "옹기속 자라를 어찌 놓치랴." "이 노장 발밑이 땅에 닿는 것이 기쁘다." "남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하고 있다.

14.원주 설암흠선사 보설

때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눈을 돌리면 곧 내생인데, 어찌하여 신력이 강건한동안에 철저히 깨치지 못하며 명백하게 밝혀내지 않느냐!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이 명산대택(名山大澤) 신룡세계(神龍世界)조 사법굴(祖師法窟)에 승당이 명정(明淨)하고 죽반이 정결하며 탕화(湯火)가 온편하니...

만약 이곳에서도 철저히 타파하지 못하고 명백히 밝혀 내지 못한다면 이 것은 너희들의 자포자기라, 스스로 퇴타를 달게여겨 우치한자가 되는것 뿐 이다. 만약 아직도 아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널리 선지식을 찾아 묻지 않느냐!대 중은 대개 오참(五參)마다 곡록상(曲菉床)위의 노장이 가지 가지로 간곡히 일름을 만날 터인데 어찌하여 귀뿌리에 깊이 간직하여 두고 반복하여 "필경 이것이 무슨 도리 일까?"하고 생각하지 않느냐!

산승이 5세에 출가하여 상인(上人)시하에 있을때, 하루는 화상이 손과 이 야기 하시는 것을 듣고 문득 이 일 있음을 믿게 되어 곧 좌선을 시작하였다. 16세에 중이 되고 18세에 행각하여, 쌍림원(雙林遠)화상 회하에 있으면서 백사를 제쳐 놓고 정진하는데 온종일 뜰 밖을 나서지 않았으며 설사 중료 (衆寮)에 들어가후가(後架)에 이르더라도 차수하고 좌우도 돌보지 아니하 였으며 눈앞에 보이는바가 3척에 지나지 않았었다. 처음에 "무"자를 간(看)하는데, 문득 한생각 일어나는 곳을 뒤쳐 살펴니 저 한생각은 즉시 얼음과같이 냉냉하며 밝고 고요하여 전혀 동요가 없었으 니 이때는 하루를 지내기가 눈 깜짝할 사이 같았으며 종일토록 종이나 북소 리를 듣지 못하고 지냈었다.

19세에 영은(靈隱)에서 지내는데 처주(處州)화상의 하서에 이르시기를, 흠선(欽禪)아, 너의 공부는 죽은 불이라 아무일도 해 내지 못하느니라. 동 정이상(動靜異相)으로 항상 두 쪼각을 내는구나! 참선은 모름지기 의정을 내어야 하니 적은 의정에 적은 깨침이 있고 큰 의정에 큰 깨침이 있는 것이 니라"하셨기에 화상의 말씀을 듣고 곧 화두를 간시궐(乾屎獗)로 바꾸고 한 결같이 이리도 의심하고 저리도 의심하여 이리도 들어보고 저리도 들어 보 았으나 도리어 혼산에 시달려서 잠시도 공부가 순일하지 못하므로 자리를 정자(淨慈)로 옮겨 지냈는데, 거기서는 7인의 도반과 짝을 맺고 좌선하는데 와구(臥具)는 아주 치워 놓고 아예 눕지를 않았다. 그때에 따로 수상좌(修 上佐)가 있었는데, 매일 포단위에 앉아있는 것이 마치 철장대(鐵杖子)와 같 고,걸어 다닐때도 두눈을 크게 뜨고 두팔을 축 늘어 트려서, 역시 그 모양 이 철장대 같으며, 친근하여 이야기를 하고저 하여도 할 수 없더라.

두해 동안을 눕지 않고 지냈더니, 피곤하고 지쳐서 드디어 한번 누음에 마침내 내쳐 모두를 다 놓아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두달이 지난후 종전 을 정돈하고 다시마음을 거두니 비로소 정신이 새로웠으니, 원래 이일을 발 명하는 데는 잠도 아니 잘수는 없더라. 그래서 밤중에 이르러 한숨 깊이 자 고나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러고 지내는 중 하루는 수상좌를 만나 친근할 수 있었기에 묻기를, "거 년에는 상좌와 말하고저 하여도 항상 나를 피하니 웬일이었읍니까?" 하니 "진정한 공부인은 손톱 깎을 겨를도 없다는 것인데 어찌 너와 더불어 이야 기 하고 있으랴?한다. 내가 다시 묻기를 "내 지금도 혼산(昏散)을 쳐 없애 지 못하였으니 어찌하면 좋겠읍니까?" "네가 아직도 정신이 맹렬하지 못한 때문이다. 모름지기 높이 포단을 돋구고 척량골을 똑바로 세우고 있는 힘을 다 합쳐 온 몸둥이채로 높이 한개의 화두를 만들면, 다시 어디메에 혼산을 찾아 볼수 있으랴!"한다. 그래서 수상좌가 이른대로 지으니 과연 불각중에 신심을 모두 잊고 청정하기 3주야-그동안 잠시간도 눈을 부치지 않았는데, 제3일째 되는 오후, 삼문 아래에서 화두인 체로 가다가 문득 수상좌를 만났 다. 수가 묻기를 "너 여기서 무엇을 하는거냐?" "도를 판단하오.""너는 무 엇을 가지고 도라 하는거냐?"하는데, 내 마침내 대답하지 못하고 속만 답답 하여 곧 선실에 돌아가 좌선 하고저 하는데 또 수좌를 만났다.말하기를 "너 다만 눈을 크게 뜨고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만하라."이 한마디를 듣 고 곧 자리에 돌아와 겨우 포단에 앉았는데 홀연 눈앞이 활짝 열리니 마치 땅이 툭!꺼진거와 같은데, 이 경지는 남에게 들어 보일수도 없고 세간에 있 는 그 무엇으로도 비유할수도 없었으니, 곧 단(單)에서 내려와 수상좌를 찾았더니 수 내말을 듣고 "좋다 좋다"하고 손을 잡고 문 밖에 있는 버드나 무가 심긴 뚝 위를 한바퀴 돌며 천지간을 우러러보니, 삼라만상-눈에 보이 는 것이며 귀에 들리는 것이며 기왕에 싫어하고 버리던 것이며 무명 번뇌등 이 온통 원래 자기의 묘하고 밝은 참성품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계가 반달이 넘도록 동하는 상이 없었는데 아까울새라! 이 때에 명안(明眼) 종사(宗師)를 만나지 못하여 애석하게도 저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견처(見處)를 벗지 못하면 정지견을 장애 한다고 하는 것이니, 매 양 잠들때는 두 조각이 되었고 공안에 의로(義路)가 있는 것은 곧 알수 있 으나 의로가 끊어져서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은 것은 아주 알 수 없었다. 비록 무준(無準)선사 회하에서 다년 입실 청법 하였으나, 한마디도 이 심중 의 의심을 건드리고 집어내는 말씀이 없었고, 경교나 어록을 찾아도 또한 이 병을 풀 한마디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이와같이 하여 가슴속에 뭉텅이 를 넣어 둔채 10년이 지났는데, 천목(天目)에서 지낼때 하루는 법당에 올라 가다가 눈을 들어 한 큰 잣나무를 쳐다보자 번득 성발(省發)하니 기왕에 얻 었던 경계도 가슴 속에 걸렸던 뭉텅이도 산산이 흩어져서 마치 어두운 방에 있다가 햇빛으로 나온것만 같았다.

이로부터 생(生)도 의심하지 않으며 사(死)도 의심하지 않으며, 불도 의 심하지 않으며 조사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에 경산(徑山)노인의 입직 처를 보니 족히 30방을 주기 알맞더라.

#용어정리

[1]설암법흠(雪巖法欽): 남악하 21세. 경산(徑山) 사범무준(師範無準)선 사의 법을 이었다.

[2]오참(五參): 옛 총림에서는 초5일, 10일, 25일의 설법을 5참이라 했다.

[3]상인(上人): 안으로 지혜와 덕을 갖추고, 밖으로 수승한 행을 겸하여 사람의 위에 가기 때문에 상인이라 하는데 대덕 대화상의 존칭으로 쓴다.

[4]후가(後架): 총림에서 선당(禪堂)뒤에 있는 대중이 세수하는 곳을 후 가라고 하는데 동사(東司-변소)에도 있다.

[5]간시궐(乾屎獗): "마른 똥막대기"라는 말인데 조사공안의 하나다. 운 문선사에게한 스님이 묻기를 "삼신(三身)중 어떤 몸이 법을 설합니까?"운 문 |"요(요)" 또 묻기를 "어떤 것이 석가신(釋伽身)입니까?" "간시궐"이라 하였다.

[6]삼문(三門): 절에 들어가는데는 세문을 지나 간다. 이것은 삼해탈문 (三解脫門)을 의미하는 것이니 공문(空門), 무상문(無上門),무작문(無作門) 을 상징한다. 본래 절은 계를 가지고 도를 닦아 열반에 이르기를 구하는 사 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또한 대웅세존 <부처님>을 모신 대궁전이기도 하므 로 삼해탈문을 문으로 삼는다.

[7]단(單): 선실의 각자의 자리.

[8]은산철벽: 공부의 한 경계인데, 의단이 치성하여 온통 의정뿐이어서 의정이 극(克)하여 마침내 다시 더 생각을 어찌할 수 없는-마치 길을 가다 가 코끝과 등뒤에 하늘에 치닿은 듯이 철벽을 당한 것과 같은 경지를 말하 는데, 이 경지는 무슨 말로 형용하는 것이 모두가 거짓이니 친히 맛 보아야 한다. 백운단(白雲端)선사 시중에 이르기를 "고인은 일언반구를 받아 듣고 혹 알아듣지 못할때는 철벽(鐵壁)에 맛닿은 것과 같았다. 하루 아침 홀연히 이 를 뚫고나면 비로소 자기가 즉시 철벽임을 아는 것이다. 자! 일러라 이제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이냐?"이어 말씀하되 "철벽 철벽"하였다.

[9]무준(無準): 경산(徑山) 무준사범(無準師範). 바로 설암흠선사의 법사 다. 와룡조선(臥龍祖先)선사의 법을 이었다. 9세에 출가하여 독서하는데, 눈이 한번 지나가면 다 외웠다고 하는데,얼 마후에 성도(成都) 정법사(正法寺) 익요(益堯) 스님에게 참선을 배웠다. 스 님이 묻기를 "선이 무엇이며 앉는 것이 무엇이냐?"하는데 대답 못하고 주야 로 체구하여 한번은 변소에서 똥누면서 화두를 들어 마침내 깨쳤다. 그후 영은(靈隱)으로 파암(破庵)스님을 찾아갔는데 한 납자가 파암에게 묻기를 "잔나비가 마구 붙잡으려고 허대니 어떡합니까?" 파암이 "붙잡아서 무엇하 느냐! 바람이 물위에 불면 자연히 무늬(紋)가 일어나느니라"하였는데 곁에 서 이말을 듣고 언하에 대오하였다. 뒤에 경산에 있으면서 절 40리밖 길가 에 큰 집을 지어 만년정속이라 하고, 방을 백개나 갖춰 놓고 오고 가는 운 수(雲水)를 쉬게 하였다.

말년에 대중을 모아 놓고 "나는 이미 늙고 병들어서 대중들과 이말 저말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내가 특히 힘을 내어 여기 나온 것은, 이제까지 말하지 못한 것을 남김없이 다 털어놓고저 하는 것이다."하고는 몸을 일으 켜 옷을 활활 털더니 "이것이 얼마나 되느냐?"하고 방장에 돌아와서 얼마 후에 시적하였다. 남송의 영종(寧宗)과 이종(理宗)의 두터운 귀의를 받았는 데 사호는 불감(佛鑑)선사다.

[10]입실(入室): 방장(方丈) 화상앞에 나아가 문답하는 것을 말하는데,사 가(師家-스승)는 학자를 시험하고 다뤄 보아 아직 공부가 미진한 것을 채찍 하고, 허황하여실이 없는 것은 부수고, 치우친 것은 바로 잡는다. 이 입실 감변(勘辯)이야말로 종사를 만들어 내는 풀무요 대장간이니 고래로 종사의 묘하고 치밀한 방망이질 밑에서 공부인의 푸른 눈알은 이뤄진다.